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64

한가한 날들의 일기 - 퇴임 이후 예전에 숙직을 할 때처럼 교실들을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유령처럼……. 나는 사실은 유령인데 자신이 유령인 줄도 모르고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교실의 정원 쪽으로 난 출입문이 잠겨 있지 않은 걸 발견했는데, 손을 대니까 문이 열렸고 그러자마자 밖에 서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키가 2미터도 넘을 것 같았고 흰색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들고 있던 책을 그 남자의 가슴팍에 들이밀며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가 나가자마자 얼른 걸고리를 걸긴 했지만 빗장으로 쓸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서 조바심을 내다가 잠이 깼습니다.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었으니까 '자정을 갓 지났겠지?' 짐작하며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산기슭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학부모들과 삼삼.. 2014. 7. 3.
기어이 살아야겠다는 잡초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글은 본래 마음으로 쓰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낙서만 봐도 복잡하거나 심란한 그 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마음을 담은 글을 썼는데, 그걸 읽은 사람이 시큰둥하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장관님은 "잡초와 전쟁 중"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열 명도 넘는 장관을 만났지만 그분은 잘 계시는지 때때로 연락해 보고 싶은 분이고, 그만큼 그분의 나에 대한 애정도 그리 허술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비대한 편인 장관님께서 밭에 나가 잡초와 씨름을 하면서 땀을 닦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고, '새벽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2014. 6. 22.
무슨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산 속에 들어가 살며 그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 자신이나 친지의 병이 아닌데도 저 산이 고마워진다. 그렇지만 "몸살을 앓는다" 그 정도의 표현으로 될까 싶고, 어릴 때 그 바지저고리 이곳저곳에 숨어서 내 몸을 갉아 먹던 그 허연 이 혹은 머리통에 번지던 그 버짐 생각이 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 요즘은 TV에서 그런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주 작정하고 뒤집어 엎어버리자고 작정한 방송 아닌가 싶어질 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인지 다음 중에서 골라볼까?  "한 명만 고르면 되나?"  "○×로 하면 되나?"  "있는 대로 다 고르기냐?" ………… 제발 한국의 초중등학교 학생들처럼 사람 난처하게 그렇게 묻지 말자. 없으면 고르지 않아도.. 2014. 6. 18.
편지쓰기 Ⅰ 밤에 이 편지들을 씁니다. 저녁식사 후에 아내와 함께 TV를 보거나 하다가, 헬스장에 가서 하체(下體)가 굳어버리지 않도록 좀 부스대고 돌아오면 아내가 TV를 끄고, 그러면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언제까지 이 짓을 하나?' 더러 회의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Ⅱ '친구 맺기'를 하자는 블로거들이 있을 때마다 '이런 좋은 것도 있구나!' 하고 무조건 그러자고 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골골하면서 얼마를 더 살겠나' 싶고 이래저래 부담스러워서 스스로 '친구 맺기'를 하자고 연락을 보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친구가 되자는 데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싶어서 '얼씨구나!' 했는데, 알.. 2014. 6. 15.
이 화려한 봄날의 앰뷸런스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어둠침침한 세상에서 계단을 올라섰을 때, 나는 이곳이 다른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이 삽상한 풍경이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거기 서! 그 자리에서 구경 좀 해.' 문득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그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바이올린의 트레몰로 지속부에서부터 연주를 시작했는데, 몇 소절 전체에 걸쳐 그 소리만이 전경을 다 차지하며 들리다가 갑자기 그 트레몰로가 옆으로 물러서는 듯하더니, 피터 더 호흐의 그림에서처럼 살짝 열린 문의 좁은 문틈으로 인하여 깊숙한 원경이 생기면서, 아주 멀리서, 벨벳처럼 부드럽게 비쳐드는 빛 속에서 어떤 다른 색조를 띠며, 그 소악절이 춤을 추듯, 목가풍으로, 중간에 끼워 넣은 삽화처럼, 어떤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인 양 나타났다. 빛은 참 좋은 것.. 2014. 6. 1.
클라우디오 아바도, 『SYMPHONY NO.25』 클라우디오 아바도, 『SYMPHONY NO. 25』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타계한 이튿날 블로그 『Welcome to Wild Rose Country』에 실린 사진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저승으로 갔습니다. 지난 1월 20일, 이미 지나간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섭섭해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이런 몸으로 살 수 있겠나….. 2014. 5. 8.
아! 세월호… (Ⅱ) 아! 세월호… (Ⅱ) 탑승 476명 : 구조 174명·사망 58명·실종 244명 -2014.4.20.오후10시현재(2014.4.21.조간)- <2014.4.21(월). 조간> 세월號 "탈출할까요" 海警 "선장이 판단하라" 서로 미뤘다(1면) 세월호 침몰/통곡이 팽목항(2면) 대형 화면에 死亡者 인상착의 뜰 때마다 곳곳서 오열 세월호 침몰/.. 2014. 4. 21.
아! 세월호...(1) 아! 세월호 (Ⅰ) 탑승 475명 : 구조 179명·사망 14명·실종 282명 -2014.4.17.현재(2014.4.18.조간)- <2014.4.16(수). 석간> 476명 탄 여객선 침몰… 대참사 날 뻔했다(1면). 오전 8시58분 조난 → 민·군·관 총동원… 가슴 쓸어내린 1시간(3면). ⇒ 오보였다고 밝힘. <2014.4.17(목). 조간> 침몰까지 140.. 2014. 4. 19.
열차 옆자리의 미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雪國』은 이렇게 시작되고, 그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설국』 민음사, 2014, 1판51쇄, 10~11). 벌써 세 시간도 전의 일로, 시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붙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있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 2014. 4. 16.
비둘기 신세 한때 비둘기를 애용(愛用)한 정치인도 있었습니다. 서울역 광장 같은 곳에 운집한 사람들 앞에서 가두어 놓은 비둘기들을 풀어주면 수많은 비둘기가 마치 '평화'나 '자유'를 찾아가는 것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평화’라는 단어가 저절로 가슴을 적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는지, 운동 경기를 할 때 그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지상의 전철역 같은 곳에서 모이를 찾는 비둘기들을 보면 참 평화롭고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이것들과 이렇게 다정한 사이로 살아가고 있구나……' ‘온세상에, 이와 같은 평화가 깃들어야 할 텐데……’ 그때는 그 비둘기들이 먹이를 찾아 오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조심했고, 어쩌다가 하필이면 그 비둘기 무.. 2014. 4. 3.
신기한 스마트폰맨 신기한 스마트폰맨 전철역 주변의 지난겨울 어느 아침 2011년 겨울에 이곳으로 전철이 지나가게 되자 이런저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선 초등학교 동기생인 친구가 어느 대학교 앞에서 원룸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이제 집에서 전철을 타고 다닌다며 하루아침에 다 빠져나가는.. 2014. 3. 27.
드디어 나를 가르치게 된 '그 애' 선생 노릇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닌데 자꾸 제자 이야기를 하게 되어 쑥스럽습니다. 이 글은, 지난 2008년 겨울, 아직 교장이었을 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라는 곳에서 발간하는 『교육광장』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마침내 제자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한두 가지이겠습니까만…… 2014.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