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64 현수막 구경 지금 팔고 있는 커피가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코리아노'라고 주장하는 가게입니다. 현수막이 너무 많아서 지나치기가 쉽고, '내가 지금 너무 소홀한 태도로 사는 건 아닌가?'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펴보면 '에이,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싶기도 하고, 써붙인 쪽의 마음이 까칠하기 때문인지 읽어본 뒤의 느낌이 개운치 않은 것도 있고, '저런 걸 막 붙여도 될까?' 싶더니, 관청에서 떼어낼 때까지 한시적으로 무슨 '번개시장'식으로 붙여놓은 것도 있고, '저 행사장에는 한번 가봐야 되는 건가?' 싶은 것도 있고, ………… 어쨌든 우리는 수많은 현수막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2013년 꼭 실천할 일 ― 대한민국 1호 바리스타의 '고종의 뜰'에서 커피수업을 신청한다!!" 이걸 보면서, .. 2013. 10. 21. 水無痕, 無痕 水無痕, 無痕 『현대문학』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이었습니다. 한번은 강의 중에 중국 송대 야보도천이 『금강경오가해』에 남긴 두 줄의 선시를 놓고 검에 관한 열변을 토한 적도 있었다. 竹影掃階 塵不動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먼지 한 점 일지 않고 .. 2013. 10. 7. 나는 어떻게 있다가 떠나는 것인가? 황치영이란 분은 예전에 무슨 건설회사에 근무했다는데, 오래전부터 교과서나 문화재, 국어사전 등의 오류를 찾아 담당자들에게 그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행색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고 게다가 꾸미지도 않습니다. 머리는 산발한 것 같고 그 누르스름한 점퍼에 적당한 운동화, 언제나 그 차림에 한쪽 어깨에 사시사철 그 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그 속에는 오류를 찾아 포스트잇을 붙인 책이나 자료들이 들어 있습니다. 정부 담당자들은 대체로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데 좋아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처럼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 그에게 당한 이후로는 만나도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을 두어 명 봤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대할 일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 2013. 9. 29. 로토 이야기 로토 이야기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오냐?", 그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돈이 왕창 생기면 좋겠습니다. '왕창'? 그게 얼만가 하면, 로토 역대 최고 배당금이 95억원이었다는데, 그것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아내는 복권을 살 때마다 "이게 당첨만 되면 .. 2013. 9. 20. 전 편수국장 H에 대하여 예전에 교육부 편수관으로 들어갔을 때, 편수국 관리관(국장)은, 특이한 인물이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카리스마도 대단했고, 신념도 남달랐습니다. 한때 나에게도 편수관으로서의 신념과, 심지어 오만 같은 게 있었다면, 그런 분이 근무하는 곳의 공무원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그런 분 밑에서 오래 근무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건 공무원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잠시라도 함께 근무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그분은 정년 퇴임 즈음에 영국에 머무르면서 누드 사진 등에 온갖 이야기를 실어 친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더니 귀국해서는 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더 이상 누드 사진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어언 2000호에 이르는 .. 2013. 9. 19. 2013년 秋夕 2013년 秋夕 ♬ 아내는 열흘쯤 전부터 제사, 차례 준비를 합니다. 가령 약주, 건어물, 식용유, 햅쌀, 한과 같은 건 미리 한가한 마음으로 사두어야 서두르지 않게 되고, 제값을 주고 살 수 있고, 양도 속지 않고, 무엇보다 정성들여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세 군데의 시장을 둘.. 2013. 9. 18. 재미있는 1인 1병 이상! "술 1인 1병 이상은 판매하지 않습니다"저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지만 ――아, 그리운 그날들!―― 그래도 저 해장국집에만 가면 안내문을 쳐다보고 생각합니다.'사람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수학 교과서를 보면, '이상(以上)'이란 그 수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2이상'이면 2가 포함되고, '3이상'이면 3이 포함되며, '19세 이상'이면 19세도 포함된다는 뜻입니다.그러니까 '1인 1병 이상'이면 1병도 포함되고, "1인당 1병 이상'은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면 결국 "한 병도 판매하지 않겠다", "한 병도 마실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술 1인 1병 이상은 판매하지 않습니다." = "우리 가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손님들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2013. 9. 9. 아름다운 시인들 아름다운 시인들 Ⅰ 해마다 열리는 전시회입니다. 무슨 문학 동호회가 있는 것 같고, 역장님이 우두머리인 듯합니다. 구석진 자리에 그 역장님의 작품도 한 편 걸린 걸 봤습니다. 전에는 이런 걸 보면 '쓸데없는 짓거리는 집어치워야 한다!'고 업신여겼습니다. '옛날식 연애편지 같은, 허.. 2013. 9. 2. 2013 가을엽서 2013 가을엽서 저 하늘 좀 보십시오, 내 참……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실없는 사람처럼 저러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아니 며칠 전이라고 할 것도 없지요, 저 땀내 나는 옷 좀 보십시오. 그래 놓고는 시치미떼듯…… 나 참…… 어제저녁에는 '.. 2013. 9. 1. 다행! 내 이명(耳鳴) 이명(耳鳴)이란 귀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아주 쉬운 낱말이지만 경험이 없을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뭐 그런 게 있나?' 할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그렇다고 내가 뭐 '특별한 사람'이란 뜻은 아니지만―― 그 이명이 예를 들어 귀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라든가, 병이 나서 몸이 허약해졌을 때라든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특별한 때'에는 혹 들릴 가능성이 있지만, 나와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특별한 때'에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언제나, 늘, 그러니까 평생 그 소리가 들리고, '보통사람들'과 정반대로 '아주 특별할 때' 그러니까 너무나 즐거울 때라든가, 왁자지껄 정신없이 떠들며 노는 짧은 한순간에는 혹 그 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지냅니다. 그렇다고 그 소리가 멈추는 것은 아니고 느끼지 못.. 2013. 8. 26. 절전은 그만하고 에어컨 켜라 Ⅰ 지난해 여름에는 강남대로의 어떤 가게들 앞을 지나가면 한여름인데도 서늘했습니다. 온 세상을 서늘하게 하겠다는 듯 문을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블랙아웃'이 되면 큰일이라는, 예비전력이 아슬아슬한 수준이라는 뉴스가 연일 눈에 띄는 나날이었습니다. “절전은 그만하고 에어컨을 켜라.”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여름철마다 대대적인 절전 운동을 벌여 온 일본에서는, 우리와 정반대로 이와 같은 ‘희한한 조언’이 나오고 있답니다. 더위에 고통 받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그렇게 절전을 하는 그 일본이 부러웠습니다. 그 기사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1일 ‘열사병 예방… 과도한 절전 말고 냉방 활용을’ 제하의 사설에서 “절전을 하겠다고 에어컨 .. 2013. 8. 20. 그렇게 더워요? 남양주시청에서 발간하는 『쾌한도시』 8월호 표지 뒷면입니다. 전철을 타고 오며 펼쳤습니다. 철썩 철썩 파도소리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빠, 엄마와 함께 쌓던 모래성, 혹시라도 파도에 쓸려 내려갈까 조심조심 토닥이며 한 단, 한 단 모래를 쌓으면 아슬아슬한 나만의 성이 맞이해 준다. 이 글과 그림을 보며 아무것도 없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나의 여름방학들을 생각했습니다. '모래성'은 무슨…… '아빠, 엄마'는 무슨…… 나는 방학만 되면, 방학숙제를 했다 하면, 커다란 수박과 넓고푸른 바다를 그렸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 위의 저런 그림과 글들이 주는 막연한 '기대'를 생각하고 그리워했습니다. 내게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겠지 이번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그렇게 여섯 번의 여름방학과 여.. 2013. 8. 14. 이전 1 ··· 69 70 71 72 73 74 75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