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31 생각과 느낌, 몸이 따로따로 있다 생각은 느리다. 내가 처한 시간과 공간을 따르지 못할 때도 있다.앞으로 나가려고 하기보다는 뒤쪽을 바라보려고 한다.생각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하고, 그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과 함께하려면 허덕허덕해야 할 것 같다.드문드문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건 편리하고 고마운 일이다.몸은 여기에 있다.자다가 깨면 새삼스럽 '내가 여기 있구나' 한다.얼핏 '거기인가?' 하다가 설풋 둘러보고 '여기구나' 하고는 또 잠이 든다.생각이나 느낌은 엊그제나 잘해봤자 어제에 머무르기 일쑤인데, 몸은 늘 오늘 이 시각(시간)의 여기에 있다.달이 가고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느낌은 자주 생소하다.느낌은 큰일날 일 없는 사소한 것이다. '그 참... 내가 이미 여기에 있네'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생각과 느낌, 몸은.. 2025. 3. 31. 멀쩡한 곳에서 엎어지기 이 얘기를 올려놓으면 나를 업신여길 인간이 드디어 이 꼴이 되었다며 코웃음을 칠 것 같아 없던 일로 하려다가 까짓 거 그런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일 것이어서 그냥 공개해 버리기로 했다. 온 시민이 잘만 다니는 멀쩡한 길에서 사정없이 엎어져 피를 좀 흘린 이야기다. #지난해 7월 중순 어느 아침나절, 나는 2~3초간 이 동네에선 간선도로라고 할 만한 도로변 인도에 엎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잠시였다.동네 중심가를 향해 걸어 내려가는데 어느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내가 시멘트 보도블록에 얼굴과 배를 대고 엎어진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처구니없어하며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는데 가까이 앞서가던 녀석(나보다는 10년쯤 젊어 보이는 '70대 젊은이'로 아직 10년쯤은 안심하고 살아도.. 2025. 3. 5. 내 지팡이는 지팡이가 아니다 나는 자주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그건 내 의지가 아니다. 아내 때문에 갖고 다닌다. 연전에 나는 어처구니없이 보도블록이 깔린 길바닥에 엎어졌었고 얼굴 일부를 다쳐서 피를 많이 흘렸고 그 상처 때문에 몰꼴이 말이 아니었었다. 아내는 놀라진 않았지만 곧 지팡이를 써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버렸다.그 결정을 듣는 순간, 이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 싶었지만 길바닥에 엎어져 다친 건 이미 기정사실이고, 그 사실은 무슨 대단한 일로서 방송이나 지역 언론에 발표되는 식으로 널리 알려진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공개된 일이어서 아내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그 결정을 갈아엎고 되돌린다는 건 결국 나에게 무엇으로든 '손해'가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손해'라니, 무슨 손해?그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 2025. 1. 28. 와다 히데키 《어차피 죽을 거니까》 와다 히데키 《어차피 죽을 거니까》오시연 옮김, 지상사(청홍) 2024 1. 어차피 죽을 거니까...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깨달은 것들 • 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Carpe diem 오늘이라는 날의 꽃을 꺾어라.• 노인은 감기 같은 사소한 병으로도 죽을 가능성이 크다.• 아등바등해도 소용없다. 반드시 죽는다. 100% 진실이다.• 몸에 좋은 것보다 좋아하는 삶의 질을 위해 주 5회 라멘을 먹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심리 상태(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 죽는 순간에는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다. 잠들듯 죽어간다.• 노인의 암치료는 괴롭기만 하다. 나는 모르핀을 맞겠다.•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것보다 암으로 죽겠다. 정리도 하고 인사도 할 수 있다.. 2025. 1. 20.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한 삶의 마음가짐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는 자신의 저서 《어차피 죽을 거니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나는 이 책을 조통 님 소개로 읽었다. 아, 참! 이 책은 노인(70세 이상?)을 진료 대상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다. ㉮ 최상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 힘들거나 번거로운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 내 마음 가는 대로 산다. 참으면 몸과 마음이 더 빨리 늙어간다 ㉱ 간병이 필요해지면 남은 기능과 개호보험*을 최대한 이용해 인생을 즐긴다 ㉲ 섣불리 의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치료와 약은 나 자신이 선택한다 ㉳ 치매를 예방하고 다리와 허리가 약해지지 않도록 뇌와 몸을 계속 사용한다 ㉴ 죽음을 두려워할수록 삶의 행복도는 떨어진다 ㉵ 인간관계가 풍부할수록.. 2025. 1. 18. 사람 구경 '그들은 남들을 보고 또한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서둘러 성당으로 갔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이탈리아')에서 이 문장을 봤다.요즘 내가 밖에 나갈 때의 이유 중 반은 사람 구경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파트에서는 일단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내 호기심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가에 미친다. 하다못해 편의점에 다녀올 때도 그렇다. 누구를 만나도 만난다.'만난다'? 구경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다. 그 재미가 괜찮은 것이었는데 저 문장을 보고는 나 자신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물론 그들도 나를 슬쩍 쳐다보며 '저렇게 허접한 노인도 여기 사는구나' 하겠지만) 일방적·이기적으로 '사람구경'에 몰입한다는 걸 깨닫게 .. 2024. 7. 23. 왜 그렇게 앉아 있나요? 비는 오는데 그렇게 앉아 있으니까 좀 민망합니다. 나는 아예 그 벤치나 의자에 앉지 않으려고 몸이 무거우면 선 채로 좀 쉬었다 걷지만, 그렇게 하는 건 나도 그렇게 앉게 되면 지금 그 모습과 한 치의 다름이 없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망하겠지요. 아니, 그 벤치에 앉게 되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것입니다. 왜 혼자 그렇게 앉아 있습니까? 역시 노년의 문제겠지요? "노년에 관하여"(키케로)라는 책 혹 읽어보셨습니까? 키케로는 흔히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고 불평들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노년에도 정치 활동과 정신 활동은 물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체력 저하.. 2024. 4. 22. 그녀를 위한 눈물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을 때는 좀 일러서 단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녀였고, 말이 없었고,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여서 한 번만 더 쳐다보고는 그만 봤습니다. 예사로운 장면이었다면 마음놓고 몇 번 더 살펴봤겠지요. 어머니는 많이 늙었고, 딸은 삼사십 대?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고 냉랭한 표정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서 나가면서도 그들 사이에는 단 한 마디 대화도 없었습니다. 딸이 계산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바닥에 무거운 물건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두 명의 여 종업원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습니다. 그런데도 딸과 어머니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출입구와 홀 사이에 파티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만에 일어나는 듯했습니다. "괜찮아요.. 2023. 9. 27.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다시 직장을 구하거나 돈을 한 번 더 벌어보거나 다시 사람을 만나거나... 무엇을 새로 시작하거나 할 기회나 에너지가 소멸된다는 것이겠지? 그런 사람에게 뭘 달라고,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건 염치가 없고 도리가 아니고 예의가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전제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포기하거나 하는 사람은 게으르다느니 어떻다느니, 의례적인 헛소리를 하는 인간과는 일단 대화를 거부하고 싶다. 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 본 장면이다. # 1 나를 바라보는 모리츠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너를 보내고 싶지 않구나, 스밀라." 모든 인생은 정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다. 모리츠는 그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금 의자에 .. 2023. 7. 30. 겨우 손목뼈에 서너 줄 금이 갔다는데 지난 2월 말에 나는 이런 글을 써놓았었다. * 겨우 손목뼈에 서너 줄 금이 갔다는데 겨우 그 정도였는데 내 생활은 변했다. 운전을 못한다. 해도 될 것 같긴 한데 돌발상황이 일어날까 봐 엄두가 안 난다. 식사를 어린애처럼 한다. 포크로 하고, 왼손을 하고, 오른손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음식물을 찢거나 자를 수가 없다. 이것쯤이야 싶던 칼질도 왼손으로 하니까 차라리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양식 먹을 일이 없으니 다행이다. 스파게티는 좋다. 왼손으로라도 돌돌 말면 된다. 워드를 못한다. 손목이 비틀어지면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신호가 오니까 '독수리타법'을 쓴다. 글씨 쓰기도 거의 술 취한 사람 수준이다. 왼손으로 해놓은 어제의 메모를 오늘 알아볼 수가 없어서 화딱지가 난다. 이런 바보! 왼손으로 .. 2023. 4. 3. 노인의 시간 새벽에 쓸데없이 일찍 잠이 깨어 오랫동안 뒤척였다. 그 시간이 꽤 오래 흘러 마침내 일어날 수 있었다(잠시, 왜 눈을 떴느냐는, 늙었으면 죽어야지 왜 살아 있느냐는 구박을 받더라는 씁쓸한 우스개가 생각났다). 어제저녁에는 고요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는데 괜히 '적막하구나...' '적막하구나...' 하며 두어 시간이나 헛된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잠들 수 있었다. 오늘은 또 그렇게 해서 일어난 새벽부터 이 저녁까지 뭘 했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또 저녁이 되었고 두어 시간 후에는 구처 없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이 저녁에도 책을 읽으면 좋을 텐데 나는 적막하다고, 한탄할 일도 아닌 걸 가지고 한탄처럼 생각하며 어정대고 있다. TV만 켜놓지 않는다면 나의 세상은 사실은 늘 이렇게 적막할 수밖에 .. 2023. 3. 23. 나는 '꼰대'가 되어 살아가네 묻지도 않았는데 늘 먼저 '답'을 주려고 하고, 심지어 그 '답'조차 유효기간이 지났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그 사람을 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묻지도 않은 답을 들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 답 속에 섞여 있을 자신에 관한 평가나 판단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일명 '꼰대' 기질은 나이 드신 분에게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오래 일했고, 많이 경험했으니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이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 구범준 세바시 대표 PD 「나이 들수록 '?'가 필요해」(《○○○○○》2022.11.)에서. 사람들이 "꼰대" "꼰대" 해서 어렴풋이 나이 들어 망령이 나기 시작한 사람을 보고 그러는가 .. 2022. 11. 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