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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228

무슨 재미로 학교에 가나? 중3쯤으로 보였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아파트 앞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내려뜨린 머리칼이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서 잠깐 섬찟했고, 스쳐 지나갈 때 겨우 그 표정을 일별할 수 있었다. 많이 일그러져 있었다. 순간, 그 소녀에게 까닭 없이 미안한 느낌을 가졌다. 어떤 괴로움 혹은 슬픔이 가녀린 소녀의 가슴을 할퀴고 있을까. 그 소녀와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가 소녀의 잘못을 지적했겠지만, 따지고 보면 계기는 바로 그 누군가의 행위였을 수도 있다. 그러고도 소녀를 나무랐겠지. 학교에 가봤자 상해버린 그 마음을 달래줄 사람이 없다면, 잘못을 저질러 놓은 그 사람 대신 사과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는 길을 찾아주면 소녀는 편안한 마음, 환한 얼굴로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즐겁게 만날 수 있.. 2025. 6. 27.
숙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해버린 대통령 (2025.5.30) 특별한 사유가 없는 어린이날에는 대통령이 어린이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벌여왔다. 초청 받는 어린이가 몇 명 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뉴스 시간의 행사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훈훈했다. 언젠가 어린이들과 대통령 간의 대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린이들이 질문하고 대통령이 대답해주는 형식이었다. 좋아했던 공부, 존경하는 인물, 평소 하는 일, 즐겨 읽는 책 같은 것들을 물어서 질문이나 대답이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아니었는데 돌연 한 어린이가 매일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마음 놓고 놀 수가 없다면서 숙제 좀 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순간, 어떻게 저 질문이 나오게 되었을까 의아했다. 당연히 사전에 어떤 걸 물을지 생각해보라고 했을 것이고 누군가 예상 질문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2025. 5. 30.
5월을 앞두고 한 아이를 생각함 (2025.4.25) 4월 중순인데도 자욱하게 눈이 내려 겨울옷 넣어두기를 망설였지만 벚꽃은 곧 이를 데 없이 화사했고, TV는 그새 초여름 기온이라면서 반팔 옷 입은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 주에는 5월이 시작되고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저 아이들을 위해 갖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그날 집에만 있을 수 있는 휴일이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지낼 아이들이 많지만 그 하루도 평소처럼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D시 중심가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담임하던 해 늦가을, 다른 교육기관에서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파견은 직원 취급도 받지 못하면서 근무는 더 힘들고 봉급은 소속기관에서 받게 되어 있어 1년에 한 번쯤 적을 둔 기관을 찾아가 미안한 마음을 .. 2025. 4. 25.
600만 학생이 만드는 600만 종 교과서! (2025.3.28) AI(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는 아예 그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국회에서는 이를 학습자료로 규정하는 등 논란이 거듭되었다. 쟁점의 배경은 교과서는 정부 예산으로 보급하는 데 비해 학습자료는 희망하는 경우 학교 자체 예산으로 구입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올해는 초등 3·4학년과 중·고 1학년(영어·수학·정보)에서 희망하는 학교만 사용하고 있다. 지난 1월 런던에서는 대규모의 에듀테크 박람회가 열렸는데,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4개 출판사에서도 AI 디지털 교과서를 실연하여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몇 가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꼈다. 우선 국내에서는 왜 그런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인기를 끌어서 교과서의 지위를 고수해야 마땅하다는 건 아니다. 어떤 성격의 것이든.. 2025. 3. 28.
사방팔방으로 가고 싶은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버리기 (2025.2.28) 변화를 실감한다. 신설학교가 그렇게 늘어나더니 옛 얘기가 되고, 올해 취학 예정자가 아예 단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전국적으로 160개교에 가깝다. 이제 입학생 수를 숫자로 다루지 않고 다행히 개별적 존재로서 환영한다. 60~70명씩 ‘수용’하고도 넘쳐나서 2부제 수업까지 해본 세대로서는 무상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선생님이 직접 연주하는 풍금 소리가 사라졌는가 하면, AI 디지털 교과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선생님들은 시험지에 100점, 90점, 80점…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문항별로 ○ 또는 ×를 표시해 주고 왜 틀렸는지를 알려준다. 다른 변화도 많다. 일일이 열거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다만 교육의 방법이나 환경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사회가 학교와 교사를 존중하.. 2025. 2. 28.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 (2025.1.24) 옛 얘기가 되었다. 학교보다는 스스로 읽은 책에서 더 많이 배웠다는 그 교육부장관이 시중의 좋은 책을 골라 초중고별 권장도서로 정하자고 했다. 그런 목록을 정하고 있는 나라의 교육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자 누군가 이름난 책의 경우 번역본이 수십 권씩이라고 했고, 그렇게 유명한 책이 분야별로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데다가 그 많은 책을 누가, 언제까지, 어디서, 어떤 기준으로 읽어서 분석·선정하고 어떤 형태의 목록을 만들어야 할지 암담한 일이 되었다. 장관 측에서는 이미 필독·권장 도서를 정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 각 학교에서도 잘하고 있는 그 작업을 확대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관련 회의에 초대된 출판사 대표들과 원로작가들도 이구동성 실현되면 좋겠다는 긍정적 반응을 .. 2025. 1. 24.
선생님! 유리판 좀 치워주세요 (2024.12.27)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운두는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다음에는 어항의 아가리를 막기 위해서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친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아프니까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올라가도록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는다. 모두가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상상력 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이라는 책에 나오는 ‘벼룩의 자기 제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하는 일들은 어떻습니까? 학생들은 왜 아침 9시까지 등교합니까? 그건 누가 .. 2024. 12. 27.
암기의 한계 (2024.11.28) 1990년대 초 소설 『개미』 『타나토노트』 등으로 우리나라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기 시작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후로도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베르베르의 인기가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가 암기하기에 딱 좋은 온갖 지식이 소설 속에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평론가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독자들이 현실 혹은 실제상황을 방불케 하는 그의 공상·상상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암기를 싫어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그 걱정을 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선생님들이 늘 뭔가 외우라고 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수능.. 2024. 11. 29.
교과서의 변화에 대한 걱정 (2024.10.25) 학창 시절에나 교사가 되어서나 교과서 핵심 암기에 진력이 난 터여서 “이젠 그렇게 가르쳐선 안 된다!”는 장학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의 전율을 느꼈다. 50여 년 전 지역교육청 연수회 때였다. 열심히 외워서 암기의 능력으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한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때마침 좋은 책들이 번역되어 쏟아지던 시절이라 마음껏 호기심을 충족하며 지내다가 대학입학시험에서 낭패를 보고 결국 어쭙잖은 직장에서 고개 숙이고 지내는 경우도 적진 않았다. 장학사들은 교과서는 기본 자료일 뿐이므로 교사는 모름지기 교육과정(curriculum)의 취지에 따라 세상의 수많은 자료를 적절히 활용해서 학생들의 사고활동을 조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실마다 적어도 70명이었고 2부제, 3부제도 시행했다. 그럼에도.. 2024. 10. 25.
학교, 아름다운 곳 (2024.9.27) 학교 가는 아침의 아이들은 아름답다. 그 아이들이 있어 아침은 더욱 빛난다. 두엇, 서넛, 바쁠 것 없이 재잘거리면서도 게으름 피우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은 저절로 밝고 따스한 곳으로 바뀐다. 어김없이, 학교로부터 동네 곳곳으로 아침의 음악이 울려 퍼지면 아이들은 그 선율에 맞추어 한 송이씩 꽃이 되고 거리는 그 꽃으로 밝아져서 그 꽃들로써 충분한 아침이 된다. 높은 곳에서 세상일을 결정하는 분들이 오늘은 부디 딴생각 말고 저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들리면 온 학교가 일시에 숙연해진다. 어느 학교에서나 우리의 저 아이들이 공부할 준비를 하고 각자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떠올리면 전율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 2024. 9. 27.
예전의 그 학교가 아니라는 J 선생님께 J 선생님! 오늘은 좀 섭섭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대체로 두 가지 안부를 전합니다. 우선 그저 그렇게 지낸다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회피하는 대답인가 싶어서 구체적으로 물으면 “학교야 늘 그렇지요. 변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상외의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진 않거든요” 하고 여유로운 관점을 보입니다. 만사는 여전(如前)하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듯합니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그런 학교는 교장도 느긋해서 1년 내내 큰소리 한번 하지 않고 이른바 학교공동체 구성원 간에 서로 부딪칠 일도 별로 없고 교장실에 교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비바람이 몰아쳐도 야단스러운 꼴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건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2024. 8. 30.
“요즘처럼 힘들면…”이라던 K 교장선생님께 놀랐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듣게 되다니요. 교장은 시군구 교육지원청 교육장, 시도교육청 교육감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가짜 행정가를 만난 적도 있긴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교육과정(목표와 내용, 방법)과 그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행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 교육과정이라면 교장선생님은 누구보다 밝은 전문가이고요. 행정도 그렇지요.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해야 마땅하겠지요. 교육부, 교육청, 심지어 해외 교육기관에서도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런 경우가 바로 산전수전(山戰水戰)이겠지요. 그런데 이제 와서 무엇이 교장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요? 한결같이, 수행하고 있는 일들을 전해주시고 활기차게 긍정적으로 교육계 이슈를 파악하게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수인사를 마치자.. 2024.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