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논단221 암기의 한계 (2024.11.28) 1990년대 초 소설 『개미』 『타나토노트』 등으로 우리나라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기 시작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후로도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베르베르의 인기가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가 암기하기에 딱 좋은 온갖 지식이 소설 속에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평론가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독자들이 현실 혹은 실제상황을 방불케 하는 그의 공상·상상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암기를 싫어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그 걱정을 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선생님들이 늘 뭔가 외우라고 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수능.. 2024. 11. 29. 교과서의 변화에 대한 걱정 (2024.10.25) 학창 시절에나 교사가 되어서나 교과서 핵심 암기에 진력이 난 터여서 “이젠 그렇게 가르쳐선 안 된다!”는 장학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의 전율을 느꼈다. 50여 년 전 지역교육청 연수회 때였다. 열심히 외워서 암기의 능력으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한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때마침 좋은 책들이 번역되어 쏟아지던 시절이라 마음껏 호기심을 충족하며 지내다가 대학입학시험에서 낭패를 보고 결국 어쭙잖은 직장에서 고개 숙이고 지내는 경우도 적진 않았다. 장학사들은 교과서는 기본 자료일 뿐이므로 교사는 모름지기 교육과정(curriculum)의 취지에 따라 세상의 수많은 자료를 적절히 활용해서 학생들의 사고활동을 조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실마다 적어도 70명이었고 2부제, 3부제도 시행했다. 그럼에도.. 2024. 10. 25. 학교, 아름다운 곳 (2024.9.27) 학교 가는 아침의 아이들은 아름답다. 그 아이들이 있어 아침은 더욱 빛난다. 두엇, 서넛, 바쁠 것 없이 재잘거리면서도 게으름 피우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은 저절로 밝고 따스한 곳으로 바뀐다. 어김없이, 학교로부터 동네 곳곳으로 아침의 음악이 울려 퍼지면 아이들은 그 선율에 맞추어 한 송이씩 꽃이 되고 거리는 그 꽃으로 밝아져서 그 꽃들로써 충분한 아침이 된다. 높은 곳에서 세상일을 결정하는 분들이 오늘은 부디 딴생각 말고 저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들리면 온 학교가 일시에 숙연해진다. 어느 학교에서나 우리의 저 아이들이 공부할 준비를 하고 각자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떠올리면 전율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 2024. 9. 27. 예전의 그 학교가 아니라는 J 선생님께 J 선생님! 오늘은 좀 섭섭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대체로 두 가지 안부를 전합니다. 우선 그저 그렇게 지낸다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회피하는 대답인가 싶어서 구체적으로 물으면 “학교야 늘 그렇지요. 변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상외의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진 않거든요” 하고 여유로운 관점을 보입니다. 만사는 여전(如前)하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듯합니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그런 학교는 교장도 느긋해서 1년 내내 큰소리 한번 하지 않고 이른바 학교공동체 구성원 간에 서로 부딪칠 일도 별로 없고 교장실에 교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비바람이 몰아쳐도 야단스러운 꼴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건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2024. 8. 30. “요즘처럼 힘들면…”이라던 K 교장선생님께 놀랐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듣게 되다니요. 교장은 시군구 교육지원청 교육장, 시도교육청 교육감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가짜 행정가를 만난 적도 있긴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교육과정(목표와 내용, 방법)과 그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행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 교육과정이라면 교장선생님은 누구보다 밝은 전문가이고요. 행정도 그렇지요.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해야 마땅하겠지요. 교육부, 교육청, 심지어 해외 교육기관에서도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런 경우가 바로 산전수전(山戰水戰)이겠지요. 그런데 이제 와서 무엇이 교장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요? 한결같이, 수행하고 있는 일들을 전해주시고 활기차게 긍정적으로 교육계 이슈를 파악하게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수인사를 마치자.. 2024. 7. 26. 아인슈타인에게 물어보는 공정한 평가 (2024. 6. 28)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썼다. “모든 이가 다 천재다. 그렇지만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그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Everybody is a genius. But if you judge a fish by its ability to climb a tree, it will live its whole life believing that it is stupid.)” 끔찍한 상황의 물고기가 가련하다. 조금 더 생각해서 수능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그런 처지가 아닌가 싶으면 어떻게 끔찍하고 가련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인슈타인의 이 충고는 누구나 수긍할 만한 카툰(풍자만화)을 통해서도 소개되고 있다. 교육자가 분명한 늙은이가 권위를 상징하는 커다란 책상 위에 서.. 2024. 6. 28. 그 교실에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숙에게 (2024.5.31) 숙아! 벌써 오십 년이 다 되었지? 아침마다 우리가 그 교실에서 만나던 날들… 넌 습관적으로 내 표정을 살폈지. 그 모습이 왜 잊히지 않는지… 성적이 좋지 않았던 넌 6학년 때에도 내내 그대로였어. 아이들은 웃거나 놀리지도 않고 그냥 ‘꼴찌’라고만 했지. 당연한 일이어서 비웃거나 놀리거나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겠지. 넌 주눅이 들어 있었어. 학교는 주눅이 드는 곳? 네가 처음부터 내 표정을 살펴보며 지낸 건 학교에 주눅이 들어서였던 것이 분명해. 담임이란 언제 어떤 언짢은 소리를 할지 모르는 존재였겠지. 너의 그 표정은 내내 변하지 않았어. 졸업하고는 마음이 편해졌을까?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일찌감치 사회로 나갔고 꼬박꼬박 학력(學歷)을 묻는 이 사회 어디서나 ‘초등학교 졸업’이.. 2024. 5. 31. J 선생님, ‘마음’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2024.4.26) J 선생님! ‘청춘의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추락한 교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모여앉아 교사 본연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목 놓아 외친 지난해 여름 이래로, 선생님들 표정이 풀이 죽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밝지 못할 뿐인가요? 그것도 긍정적이진 않은 거죠? 그렇지 않아도 애들이 쌍욕을 하든, 난동을 부리든 그냥 둔다는 어느 선생님의 ‘극단적 표현’을 생각하면 다른 분들이라고 해서 그 마음이 한결같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둔한 것이겠지요. 교사의 길이 다만 아득한 느낌일까요? 점점 더 험난해지는 세상의 거친 파도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맞선다는 표현이 적절치 못하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대처한다는 표현은 소극적이라면 그럼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더구나 .. 2024. 4. 26.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일기 (2023.3.29) 2024년 3월 4일 월요일 긴장 속 하루였다. 날씨가 좀 쌀쌀했는데 몸도 마음도 분주해서 그런 줄도 몰랐다. 마스크를 쓴 아이가 세 명이었다. 얼굴을 보고 싶어서 점심식사 때 잠깐씩 살펴보았다. 정겨운 아이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 지난해엔 ‘추락한 교권’ 이야기가 참 많았다. 올해는 어떤 일이 있을까, 곤혹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별일 없을 것을 확신하고 싶다. 아이들 다툼은 충분히 이해시키면 서로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학부모와의 소통에서도 그것을 유념하면 그들도 나를 믿을 것이다. 로버트 풀검(「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은 사람의 머릿속에 든 것은 다 다르다면서 “당신은 왜 내가 보는 방식으로 보지 않나요?” 묻기보다는 “그렇게.. 2024. 3. 29. 개인별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하자! (2024.2.23) 우리나라 출산율(0.78명, 2022년)은 이미 세계 최저지만 곧 0.6명대로 내려간다고 한다. 서울은 벌써 0.53으로 떨어졌다. 충격이고 위협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학령인구 추계에 의하면 지난해에 40만 1752명이었던 초등학교 입학생이 올해는 34만 7950명으로 줄고, 2029년에는 다시 24만 4965명으로 급감해서 현재 513만 1218명인 초중고 학생이 427만 5022명으로 줄 것이라고 한다. “자포자기”라는 제목을 붙인 신문도 보였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육아휴직, 보육·양육 지원에 노력하고 있는데도 이렇다. 정당들은 계속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나갈 것이다. 지자체들도 최선의 지원을 강구해나가고 있다. 기업들도 방관하지 않는다. 출산 때마다 1억 원씩 지원하는 곳도 있다. 그럼에.. 2024. 2. 23. 학교는 성공할 수 있을까?(2024.1.26) 신 교사 : 어떻게 지내세요, 선배님? 고 교사 : 응, 방학이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좀 편하네. 신 선생은 어때? 신 교사 : 전 그렇지 못해요. 하루하루 개학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날짜 바뀌는 게 두려워요. 올해는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버텨낼 수 있을까 조바심을 느껴요. 고 교사 : 멋진 교사가 되자고 다짐하던 그 자존감은 어떻게 하고 그래? 신 교사 :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자존감은 저절로 사라져요. 그만두고 고시 준비할 용기 같은 건 없고 부모님 실망은 어떻게 하나 싶고 그렇다고 내가 이 좌절감, 절망감을 극복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요. 고 교사 : 그 정도야?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신 교사 : 그렇진 않고요. 그렇지만 학부모로부터 폭언을 듣고 민원을 받고 지나친 개입을 당하는 교사 이야기가 .. 2024. 1. 26. ‘어떻게’를 잃고 ‘무엇’에 빠져버린 교육 여기 대학 진학을 절체절명의 목표로 하는 한 고등학생이 있다. 놀기 좋아하지만 영리한 학생을 떠올려도 좋고 기억력은 그저 그래도 성실의 표본인 경우도 좋고 붙잡고 앉아 일일이 설명해주고 닦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여도 좋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어 하고 실패하면 실의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만 전제하면 된다. 이 학생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① 지금부터 학교 공부에 열중한다, ② 조밀한 학습계획을 세워 자기 주도적으로 실천한다, ③ 경험 많은 가정교사를 채용한다, ④ 학원에 더 ‘투자’하고 수면 시간을 줄인다, ⑤ 학교공부, 학원 다니기, EBS 청취 등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 등등 예시가 신통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우리 교.. 2023. 12. 29. 이전 1 2 3 4 ···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