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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독서29

왜 책읽기에 미쳐 지냈나? 지금은 들어앉아 있지만 최근까지 나는 '삼식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몇 시간짜리 나들이를 하게 되면 기차표 구입 다음에는 꼭 가지고 갈 책을 골랐습니다. 시내에 나갈 때도 매번 책을 갖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인가를 판단했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책을 읽는 걸 아내가 '승인'해 주는지 아닌지를 늘 느낌으로 판단하며 지냈고(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주고 있지만), 혼자 앉아 있는 자유시간 중 얼마만큼을 독서시간으로 할애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하곤 했습니다. 교사로서 교육행정가로서 일할 때에도 그게 단 5분, 10분이어도 늘 '지금 이 시간은 책을 좀 읽어도 되는가?'를 염두에 두며 살았고, 최근에는 세상을 떠날 때에도 '나는 일생 동안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여 읽었나?'를 계산하며 .. 2022. 6. 29.
독서 인증제? 독서 대체벌?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어요. 글쓰기가 싫었다기보다 그게 숙제라는 게 싫어서 일기 쓰기를 싫어했던 기억이 나요. 어느 날 엄마가 중학생들이 쓰는 예쁜 공책을 사다 주면서 앞으론 여기다 일기를 써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앞장에 좋은 글귀도 써주고 날짜와 날씨 적는 칸도 만들어주셨죠. 공책도 정말 예뻤지만, 친구들과 다른 일기장이어서인지 숙제라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쭉 일기를 써왔어요. 그 습관이 서평을 쓰는 데 도움이 돼요."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큰딸은 책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독후감 쓰기는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편지'다. 예쁜 편지지를 딸에게 내밀며 '네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책 얘기를 해보라'고 제안한 것. 결과는 대성.. 2022. 4. 2.
젊음 예찬 2022. 1. 4.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 "저는 독서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네요?" 정말 그럴까? 독서가 좋은 일일까? 독서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해준 그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고, 나는 하염없이 독서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 그에게 마치 무장해제를 시켜주는 듯한 것이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너무 팍팍한 해석이겠지? 그럼 독서가 좋은 진짜 이유는 어떤 것일까? # "베토벤이 지금 이 연주회장에 있어요. 그의 영혼이 지금 이 연주회장에 있다면 바로 저 근처에 있을 겁니다. 지휘자가 보여요? 저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에요. 그가 베토벤을 해석할 거예요. 그가 바로 베토벤이죠." "내 하느님에는 이름이 없어요. 베토벤도 내 하느님이 될 수 있죠." 『솔로이스트』라는 실화소설에서 정신분열증을.. 2021. 10. 21.
내 눈 어머니는 구석에 웅크린 채 책을 읽었다. 편한 자세로, 천천히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맨발을 다리 아래로 감추고 책을 읽었다. 몸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책 위로 굽히고, 책을 읽었다. 등을 웅크리고, 목은 앞쪽으로 숙이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몸을 초승달처럼 하고 책을 읽었다. 얼굴은 반쯤 검은 머리칼로 가린 채, 책장 위로 몸을 구부리고 책을 읽었다. 내가 바깥 뜰에서 놀고, 아버지는 자기 책상에 앉아 연구하며 갑갑한 색인 카드들에 글을 쓰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 저녁 책을 읽었고, 저녁 먹은 것들을 다 치운 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아버지와 내가 함께 아버지 책상에 앉아, 내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아버지 어깨에 고개를 가볍게 대고, 우표를 분류하고, 분류 책에.. 2021. 9. 22.
책 읽기 1 나는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내내 책에 꽂혀 지냈고 이젠 책이나 읽으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책은 어느 분야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읽어도 좋겠지만(그게 거의 당연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것저것 읽을 만하다 싶은 걸 종횡무진으로 읽어치워도(치우다니?) 세상의 책은 무궁무진하니까 얼마든지 좋은 일이지 싶었습니다. 읽지 않는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부모는 두 분 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세상을 떠났고, 피붙이 중에는 그런 나를 가리켜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하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 열정과 노력으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그 어떤 일을 했더라도 뭔가 얼마쯤의 성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성과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20. 11. 27.
왕수이자오 《소동파 평전》 중국의 문호 소식蘇軾의 삶과 문학 《소동파 평전 蘇東坡評傳》 왕수이자오 지음 조규백 옮김, 돌베게 2013 1 '적벽부(赤壁賦)'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 적벽부를 읽으면 나도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렇지만 마침내 읽게 된 적벽부는 나를 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임술년1 가을 음력 7월 16일에 소자蘇子가 손님과 더불어 배 띄우고 적벽 아래에서 노닐었네.(169) 그렇게 시작되는 그 긴 부(賦)의 어느 곳에서, 선친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그 얘기를 듣던 육십여 년 전 어느 겨울밤을 그려보았습니다. (……) 진실로 일세의 영웅인데 지금은 어디 가고 없는가?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고기 잡고 땔나무 하며 물고기 새우와 벗하고 고라니 사슴과 친구 삼아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표주박.. 2018. 12. 5.
책과 함께 있기 책과 함께 있기 라스코 동굴 벽화(부분) (…) 이렇게 많고 다양한 동물과 크고 작은 것이 섞여 있는 스케일의 그림을, 그것도 암흑 속에서 작은 등불 빛에만 의존하여 그렸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려운 위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가 아니라 몇 명의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 2018. 10. 31.
"책에게" 알지 못하는 미지의 우르간다가 「재치있는 시골 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책에게 책이여, 그대가 신중한 태도로 훌륭한 사람들 곁에 다가간다면 세상 물정 모르면서 우쭐대는 사람은 그대의 생각을 알지 못해 감히 말을 건네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넘어가 매우 조급하게 다루어진다면 비록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짐짓 꾸밀지라도 그대는 이내 알게 될 것이오. 그가 정곡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18) 이롭지 못한 책을 많이 읽고 미쳐버린 라만차의 귀족에 대한 모험담을 그대여 들려주오.(19) 어리석은 책을 내면 끊임없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니.(20)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11, 초판 26쇄). '세상 물정 모르면서' '어리석은 사람의 손에 넘.. 2018. 9. 25.
공부 몇 년새 체중이 많이 빠졌다. 피곤하다. 주위에선 책 보지 말고 쉬라고 하지만, 나는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피곤한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고통이 되고 숙제가 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시늉만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즐거운 놀이가 되고 오락이 되고, 말할 수 없이 편안한 휴식이 되는 공부가 공부다. 나를 살아나게 하고, 긴장하게 하고, 숨막히게 하는 공부가 공부다. 일전에 읽은 『스승의 옥편』(정민)에서 본 글입니다. 부럽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아마도 돈 다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중 한 가지가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 "공부 좀 해라" "공부를 잘해야지"……. 공부에 관한 그런 관심을 열거하거나 설명하는 건 필요하지도 않거.. 2018. 7. 6.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지음 김미성 옮김|김민지 그림 여섯 살 적에 나는, 『경험담』이라는 제목의 원시림에 대한 책에서 굉장한 그림 하나를 보았다. 그 그림은 맹수를 삼키고 있는 보아 뱀을 묘사하고 있었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보아 뱀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런 다음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소화가 되는 반년 동안 잠을 잔다." 그때 나는 정글의 모험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했었고, 그 결과 색연필로 내 생애 첫 번째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그건 나의 1호 그림이다. 그건 이랬다. 난 나의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었고 그 그림이 무서운지 물었다. 어른들은 내게 대답했다. "모자가 왜 무섭겠어?" 내가 그린 그림은 모자가 아니었다. 그건 코.. 2018. 5. 8.
《문장강화》 이태준 《문장강화》 필맥, 2010 1 1963년쯤, 늦어도 1965년에 읽었어야 할 책입니다. 우리에게 국어를 가르치신 박용기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었지만, 교육 체제가 그렇질 못했으니까―지금은? 글쎄요? 그걸 왜 나에게?―선생님인들 우리에게 이 책을 읽힐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정겨운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설명보다 예문(例文)의 양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일일이 사례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상, 정지용, 나도향, 김소월, 이광수, 김기림, 홍명화, 정인보, 민태원, 이희승, 김기진, 염상섭, 주요섭, 현진건, 박종화, 박태원, 이병기, 김동인, 이효석, 김진섭…… 모교(母校) 교문을 들어선 느낌을 주는 분들을 이런 순서로 늘어놓아서는 안 되겠지요? 생각나는 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다 적지도 못.. 2017.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