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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독서40

베르나르 베르베르 《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여행의 책》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1998      그대 인생에서 단 한번만이라도,아무도 그대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아무도 그 무엇으로 그대를 위협하지 않으며,아무도 그 어떤 걱정거리로 그대 마음을흔들지 않을시간을 가져야 한다.……좋건 싫건 일상에 익숙해져서당당히 맞설 엄두가 안 나거든,나를 다시 덮어도 상관없다.그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책들은쌔고 쌨다.그러나 이제 그대의 마지막 속박에서벗어날 때가 되었다. …… 자, 갈까?                                (표지의 글)  '여행의 책'은 정신의 비상(飛上)을 위한 '비행(飛行) 안내자'가 된다.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만 용기와 위안을 줄 수 있으므로 독자가 부여하는 힘을 지닐 수 있고 그 힘이 무한.. 2024. 11. 16.
"얼른 안 와?" "얼른 안 와?"어느 사서가 창턱에 어마어마하게 큰 책 한 권을 얹어 놓았고, 다른 사서는 그 위에 자그마한 화분 두어 개를 올려놓았다.나는 저 창을 바라보면 볼일을 그만두고 도서관으로 직행하고 싶어진다.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사람이 책만으로는 살 수 없고 책에서 빵이 나오지도 않는다는 건 뻔한 일인데도 그렇다."그러니까 얼른 와." 방학이 다가오는 어느 날 행정실장을 불러 '받아쓰기'를 시키던 일이 떠오른다."실장님, 받아써 보십시오. '얘들아! 우리 학교 도서관에 좋은 책 많아. 그리고 참 시원해!' 다 썼습니까?""예, 교장선생님!""그걸로 현수막을 만들어 교문 위에 걸어주세요."순간, 그분의 눈에는 내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자랑스러웠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그런 현수막만.. 2024. 10. 24.
책의 힘, 교사의 힘 책 읽는 일이 주된 일과가 되었지만, 나 자신에 관해서는 '책을 쓰면 뭘 해' 생각합니다. 전에, 젊은 시절에 아이들 보라고 낸 책 중에는 히트를 친 것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책은 원고를 '매절'로 넘겼거나 공저자가 여럿이어서 몇 푼 받지도 못한 경우였습니다. 책 써서 재미를 못 봤다는 얘기입니다. 교사로서 살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괜히 부추겨서 이름 없는 화가를 만든 경우 등은 가슴 아픈 일이었고, 홉스 봄의 지적대로 잘하는 아이는 그냥 두어도 잘한다 싶어서 자주 잘 못하는 아이에게 다가간 건 내가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그나마 다행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새로 한다면 당연히 더 잘해보려고 하겠지만 굳이 새로 하고 싶지는 않고, 한 번 더 살아보는 것 자체가 꿈도 꾸기 .. 2024. 9. 26.
소설과 소녀(소년)에 관한 존 러스킨의 견해 소설 읽기를 얼마나 허용해야 하는가를 여기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주장하겠습니다. 소설을 읽든 시나 역사물을 읽든 책을 그 효용성으로 골라서는 안 되며 반드시 내용으로 골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영향력이 큰 책 안에 여기저기 붙어 있거나 숨어 있는 위험과 악이 고결한 소녀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 없는 공허한 저자는 소녀를 우울하게 하고, 그의 쾌활한 어리석음은 소녀의 품격을 떨어뜨립니다. 오래된 고전으로 가득 찬 훌륭한 서가를 이용할 수 있다면 굳이 책을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나오는 잡지나 소설은 따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십시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고전이 가득한 서고에 따님을 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게 될 겁니다... 2024. 2. 15.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2)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유정화,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 존 러스킨의 견해(예) 존 러스킨의 강연은 95개 절(節)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그중 한 절이다 25. (...) 축어적 검토야말로 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세와 표현을 세세히 살피고 항상 저자의 입장에서 보며, 우리 개성을 지우고 저자의 입장이 되어 밀턴을 오독하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밀턴이 이렇게 생각했군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은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라는 것에 점차 무게를 두지 않게 될 겁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그다지 심각하게 중요하지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 주제에 대한 여러분.. 2024. 1. 15.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유정화,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 1 독서란 어떤 것인지, 존 러스킨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견해가 극명하다. 「참깨: 왕들의 보물」「백합: 여왕들의 화원」은 남성(왕)과 여성(여왕)을 대상으로 한 존 러스킨의 강연집이고 「독서에 관하여」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존 러스킨의 강연 내용을 보고 반박한 내용으로 두 가지 다 흥미로웠다. 러스킨은 독서가 인생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독서 관행, 책의 가치와 특징, 독서법, 교육의 목적과 의무, 여성 교육,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확고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책 자체의 내용, 단어의 정확한 의미 파악과 사용 등을 국민 교육의 입장에서 강조했다. 2.. 2024. 1. 14.
"야, 이놈들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고달픈 삶이랄까, 그 이전이 보잘것없는 세월이었다면 이후는 고달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일들이어서 말하자면 나는 세월에 끌려다녔다. 그럭저럭 책은 좀 읽었다. 그건 국어를 가르쳐주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굽이굽이에서 그분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중학교 담임도 국어 교사였는데 그는 취미란에 '독서'를 써넣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온갖 창피를 다 주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고 필수라느니 이제 온 국민이 독서를 생활화해야 한다느니, 무엇보다도 독서를 밥 먹듯 해야 한다느니...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독서에 힘쓰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매진하는 게 마치 중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내 잘못인양 한 시간 동안 나를 세워놓은 채 그렇게 지껄여대는 바.. 2023. 12. 13.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박상준 옮김, 황금가지 2009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정보만 중요하게 취급되는 축약의 세상, 벽면 TV가 즉각적·말초적 결론을 내려주는 세상, 빠른 속도의 문화에 중독된 사람들이 쾌락만을 추구하는 세상(가까운 미래)... 독서는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하므로 책을 소지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가이 몬태그는 그 세상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불태우는 직업을 가진 방화수(fireman)다. 자신이 하는 일에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 생동감 넘치는 호기심을 가진 옆집 소녀 클라리세 매클린을 만나게 되면서("아저씬 행복하세요?") 자신의 삶이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소녀 클라리세가 실종되면서 자신의 깨달음에 따른 생각을 실행하게 된다. 파버 교수의.. 2023. 10. 20.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김지선 옮김, 뜨인돌 2022(개정판) 책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에게 필요한 건 모두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은 그대 자신 속에 깃들어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 이제는 그대의 것이리 ── 헤르만 헤세 책 속에 다 들어 있다고? 구하던 지혜가 빛나고 있다고? 나의 경우는 그렇진 않았다. 나는 헤세처럼 읽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은 그 시간에 다른 일을 좀 더 했더라면, 유능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며 후회하거나 하진 않지만 책을 읽느라고 세상을 잊었으니... 그게 어떤 성격의 시간.. 2023. 8. 5.
집도 잊고 가는 길도 잃어버린 상중(湘中) 《열선전(列仙傳)》에 나오는 노인 상중(湘中)은 상수(湘水)가 넘쳐서 군산(君山)이 물에 잠긴 것도 몰랐고, 황로(黃老 : 노자를 시조로 하는 학문) 책 읽는 재미에 빠졌다가 집으로 가는 파릉(巴陵) 길마저 잃어버렸다고 한다. 일본인들을 책을 많이들 읽는데 우리는 일 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많고, 그만큼 책 읽는 걸 싫어하고 아예 책 읽는 사람마저 싫어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책을 읽지 않아도 좋지만, 어쩔 수 없지만 책 읽는 사람을 미워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책이 없으면 나는 오래전에 미쳤을 것 같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특별하지는 않다. 어려운 것만 싫어한다. 몇 살 되지도 않은 작자가 도통한 사람처럼 가르치려 든 책도 혐오한다. 가령 몇 살 되지도 않은 작자가 특별한 경험도.. 2023. 6. 18.
내 독서에 대한 나의 희망 나는 읽어야 할 책을 얼른 다 읽고 싶다. 읽어야 할 책? 사놓은 책, 꼭 한 번 읽으라고(그렇지만 이젠 누가 보낸 것인지도 모를 몇몇 권의 책) 아니면 내 책 좀 보라고 보내주는 책, 새로 나오는 책을 일부러 찾아서 사지는 않지만 더러 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하게 되는 책...... 저 서장(書欌)에서 나를 기다리는 책. 읽을 책은 줄어들고 있나? 모르겠다. 줄어들기를 기대하며 읽는 수밖에 없다. 다 읽으면 할 일이 있다. 읽은 책 중에서 꼭 확인해야 할 내용을 찾는 일이다. 가령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서장에 관한 부분, 그 부분은 소설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에서 그 지독한 향수 전문가가 자신이 냄새 맡아본 몇 천 가지의 향수를 종류별로 자신의 뇌 속 창고에 보관하듯 수많은 책이 정리되.. 2023. 3. 12.
왜 책읽기에 미쳐 지냈나? 지금은 들어앉아 있지만 최근까지 나는 '삼식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몇 시간짜리 나들이를 하게 되면 기차표 구입 다음에는 꼭 가지고 갈 책을 골랐습니다. 시내에 나갈 때도 매번 책을 갖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인가를 판단했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책을 읽는 걸 아내가 '승인'해 주는지 아닌지를 늘 느낌으로 판단하며 지냈고(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주고 있지만), 혼자 앉아 있는 자유시간 중 얼마만큼을 독서시간으로 할애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하곤 했습니다. 교사로서 교육행정가로서 일할 때에도 그게 단 5분, 10분이어도 늘 '지금 이 시간은 책을 좀 읽어도 되는가?'를 염두에 두며 살았고, 최근에는 세상을 떠날 때에도 '나는 일생 동안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여 읽었나?'를 계산하며 .. 2022.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