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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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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한 성탄절 다음 주 수요일이 성탄절이다.나는 그동안 기독교도도 아니면서 성탄절을 즐거워하는 것에 굳이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 미묘한 갈등을 느껴왔다. '이래도 되나?''남들이 비웃지 않을까?''언젠가는 믿음을 가지게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곧 교회에 나갈 작정인지 물으면 어떻게 하지?'... 핑계 같은 것도 있다.'나만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누구누구인지 찾아보라면 난처하긴 하지만 어디 한둘일까?''그런 걸 보면 우리 사회는 엉망인 걸까? 종교적으로는 아무런 질서도 없는 사회일까?'... 모르겠다. 이런 것 아니어도 갈등을 느끼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그러다가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가이 해리슨)라는 책을 읽었고, 그 책에서 드러내놓고 성탄절을 즐겨도 좋겠다 싶게 하는, 다음과 .. 2024. 12. 20.
열흘쯤밖에 남지 않았다니... 2024년이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기이한 느낌이다.당황스럽기도 하다. 미래라기보다 2025년이 그렇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과거에 짓눌려 있다.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인데 거기에 매여 있다니...내 미래는 준비할 수 없는 것이다. 뭘 준비하고 말고 하겠는가.그저 떠밀려가고 맞이할 뿐이다.김성중 작가가 쓴 것처럼 시간은 거짓말처럼 흐른다.  우리에게 정말로 놀라웠던 것은 동결된 백 년이 아니라 그 후에 시간이 거짓말처럼 다시 흘렀다는 것이다. 그걸 알았더라면 백 년을 지혜롭게 썼을 텐데, 대부분 '이게 진짜야?' 하는 마음으로 탕진하면서 세월을 보낸 것이다.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시간의 역습으로 인해 그다음은 생을 온전하게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백 년 간 저질러놓은 수많은 일들……. 그 후 대.. 2024. 12. 19.
나는 언제 이렇게 쪼글쪼글해졌나? 아침에 세수하고 얼굴을 닦다가 입 주변과 아래턱이 눈에 들어와 새삼스럽게 놀라웠다.나는 언제 이렇게 쪼글쪼글해졌나? 내 속에는 아직 어린아이가 들어 있어 때로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땐 언제라도 이 사람들과 헤어져 그 아이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이렇게 쪼글쪼글해져서 돌아간들 사람들이 알아보기나 하겠나?언제 내가 팔십 살을 먹었나?계산 착오가 아닐까? 열 살 스무 살은 그렇다 치고 서른마흔쉰을 지나 예순일흔에 나는 어디에서 뭘 했나? 그때의 나는 어떤 나였나? 증거가 있나? 어디에 그 증거가 있나?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조치부터 해야 할까?누가 나더러 나이만 먹었지 무엇 하나 의젓한 게 없지 않냐고 하면 지금까지의 한심한 행위, 바보 같은 행위를 '일시에.. 2024. 12. 18.
택시 타기 "백발 손님 안 태운다." 정말이었구나! 빈말이 아니었구나......지팡이 짚고 비닐봉지 든 노인이 손을 들어도 서너 대가 그냥 지나갔다.겨우 잡은 택시, 기사도 백발노인이다.자랑스럽게 대답한다. "난 그러지 않아요."돈 받고 태워 주는 거지만 고마워하라는 건가?고마운 일이긴 하다. 차려입어봤자 노인 표가 다 나겠지?겨울에는 캡을 쓴다. 그것조차 밉게 보이는 요소가 되겠지?어떻게 하면 택시를 탈 수 있을지, 궁리가 필요하다.그런데도 이제 궁리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다. .................................................................. 2019년 9월 21일에 이렇게 써놓았다.지금은 빈 택시가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군데군데 모여 있다.핸드폰에 무슨 앱을.. 2024. 12. 17.
그저 손만 맞잡고 있다 내 옆에는 노부부가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꼭 맞잡고 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기도를 하는 것 같다. 방금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닭고기를 잘라 주고, 자기 것에서 완두콩과 마늘 조각도 골라내 할아버지한테 주었다. 할아버지는 음식을 천천히 씹는다. 할머니가 한 번씩 할아버지 입을 닦아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두 시간마다 약봉지를 건네는데, 할아버지는 먹을 때마다 약 넘기는 걸 힘들어하신다. 그러면 할머니가 할아버지 고개를 뒤로 젖혀 물과 함께 알약이 넘어가도록 해주신다. 두 사람은 영화도 보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서로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저 손만 맞잡고 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을 저렇게 잡고 있겠지. 그땐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겠지.  《행복만을 보았다》(그레구아.. 2024. 12. 16.
분노·절망이 악덕이라고? 14세기 초에 피렌체의 화가 조토는 한 성당의 벽을 프레스코화들로 장식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 성당에는 14개의 벽감(壁龕)이 있었으며, 조토는 그 하나마다에 서로 다른 미덕이나 악덕을 알레고리화한 초상화를 하나씩 그리게 되었다. 그는 회중석에 가장 가까운 오른쪽 벽에 우선 기본적인 미덕으로 일컬어지는 "신중" "용기" "절제" "정의"를 그렸고, 그다음으로는 기독교의 미덕으로 일컬어지는  "신앙" "자비" "희망"을 그렸다. 그리고 반대편인 왼쪽 벽에는 이에 상응하는 악덕들을 배치했다. "우둔" "변덕" "분노" "불의" "불성실" "시기" "절망"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의아해졌다. 신중, 용기, 절제, 정의가 기본적인 미덕이고 신앙, 자비, .. 2024. 12. 13.
보고서 만들기 사교육비 절감 방안 T/F를 만들어 밤낮으로 토론하고 검토한 결과로써 두툼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 일은 역사적으로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 T/F에 소속되었을 때 나는 다른 볼일을 보고 싶어서 늘 미적거리고 핑계를 대고 하다가 말았다. 미안했지만 그런 일은하기 싫었고, 그 대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 섭섭해하지 않았다.덧붙이면, 그래봤자 별 수가 없어서 사교육은 자랄 대로 자라왔다. 소설 "주군의 여인"을 읽으며 또 그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국장들은 갈팡질팡하면서도 요령껏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말이 너무 길어서 짜증이 난 동료들이 메모지 위에 도형을 그리고 또 우울한 얼굴로 그림을 다듬는 동안에, 판프리스.. 2024. 12. 12.
모두 수용되고 허용되는 곳 나쁜 짓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남을 괴롭히고 하면 결국 다 드러나서 비난을 받고 벌을 받고 뉘우쳐야 하기 마련이므로 나쁜 짓을 했거든 솔직하게 털어놓아 속이지 말고 그러기 전에 아예 나쁜 마음 같은 건 먹지도 말고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래서 도의가 있어 면면히 전해지는 것이고 교회나 절에 가거나 가지 않거나 함부로 신을 부정하거나 가벼이 말할 수 없는 종교가 있고 누구나 최소한의 교육을 받는 것이고 그래도 선을 넘는 인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정해진 법률에 따라 잘잘못을 따져 형벌을 가하는 것이 이 세상 이치가 아닌가 싶어 그렇게 살고 그렇게 가르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이건 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곧 이치에 따라 합리적인 흐름이 눈앞에 전개될 것을 기대하며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리 기다.. 2024. 12. 9.
텔레비전이 뭐냐고 묻는다 '여행의 책'(베르베르 베르나르)에서 주인공은 오랫동안 동굴 속에서 살아온 도인을 만난다.도인은 말한다. "인생이란 한낱 허깨비일 뿐이다." 우리의 주인공이 말한다.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반투명한 폭포수의 장막 너머로 보입니다.그 때문에 당신은 인생이 허깨비일 뿐이라고믿는 것이지요.그건 마치 텔레비전을 통해서만세상을 관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그러자 도인은 텔레비전이 뭐냐고 묻는다.그대는 녹음된 웃음소리가 나오는판에 박힌 미국식 연속극과주부 시청자들을 위한 멜로드라마,똑같은 구호를 무수히 반복함으로써사람들을 쇠뇌시키는 광고,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신변 잡사를주절주절 늘어놓는 토크쇼 따위로텔레비전을 설명하려고 한다.도인은 그대 이야기에 갈수록 흥미를 느끼는지그대 쪽으로 자꾸 다가간다.  ............. 2024. 12. 7.
버리기 - 다 버리기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과 수의壽衣는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 두자...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 2024. 12. 6.
버리기 - 책 버리기 책을 버리며 산다. 전에는 한꺼번에 수백 권씩이었는데 그간 많이 줄어들어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버린다. 누가 볼까 봐 주변을 살피지만 버리고 나면 개운하다. 책 몇 권을 버렸는데 매번 무슨 큰일을 치른 느낌이 든다. 책을 모으며 살던 때가 있었다. 늘어난 책을 보며 흐뭇해했다. 사람들이 보고 놀라면 자랑스러웠지만 혼자서도 그랬다. 삶의 보람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버리는 건 처음이 어렵지 나중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자서전 버리기는 예외다. 자서전은 책 중에서도 시원찮은 것들인데도 버리고 나면 개운하지 않다. 본인이 "지금도 갖고 있겠지요?" 할까 봐 켕긴다. 아직은 묻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긴 하다. 죽기 전까지 그렇게 물어오는 사례가 없어야 하는데 모르겠다.  극히 한정된 .. 2024.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