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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205

딱 한 번뿐이었던, 빛나는 아침 요즘은 새벽 다섯 시에 잠이 깬다.대단한 일은 아니다. 저녁형 인간이어서 밤 열두 시경에 잠자리에 드는 걸 생각하면 늙어가면서 수면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또 젊었던 시절에도 여섯 시간이면 충분했고 나폴레옹은 네 시간만 잤다고 하지만 언젠가 TV에 나온 한 전문가가 노인도 여덟 시간은 자야 한다고 해서 여섯 시간도 적구나 했는데 그 여섯 시간조차 무너지는가 싶기도 하다.지난 초봄까지만 해도 여섯 시에 일어났었다.그러면서 여섯 시는 넘기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아내 때문이다. 늦게까지 뭘 좀 읽고 있으면 자다가 깬 아내가 일쑤 '그만 좀 자라'고 했다. 아내는 나와 달리 아침형 인간이어서 초저녁에 잠이 들고 새벽 3~4시에 잠이 깨는데 내가 저녁 늦게까지 부스럭거리면 수면에 방해가 되기도.. 2025. 5. 19.
17층 아주머니 좀 보세요 초4 아드님 인사받으며 "그놈 참, 언제 봐도 착하게 생겼어." 했던 노인입니다. 아주머니는 시큰둥하며 "키워 보세요, 착한지." 하셨고요.엘리베이터가 제가 타는 층까지 내려올 때 안에서 잔소리하는 소리가 다 들렸었지요.공동 현관을 나서며 생각했어요. '아이 키우는 게 수월하진 않지. 그렇지만 저 애 같으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아주머니는 아이를 앞세우고 또 뭐라고 뭐라고 하시면서 주차장 쪽으로 가셨고요. 지난주 어느 날이었어요. 이번에는 아이가 제 아빠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제가 타니까 얼른 인사를 했고, 이어 아이 아빠도 아이를 따라 제게 인사를 하더라고요.사람 좋게 생긴 분이더군요. 몸매도 넉넉하고 표정도 순후하게 보였어요. 아이를 따라 제게 인사를 했지만 아이와 제가 인사.. 2025. 5. 14.
나도 그럼 막말 좀 하자 "노인네들 너무 오래 살아... 빨리빨리 돌아가셔야."*야단이 났었다.이런 말도 있었다.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끼는 데 기여할 것."**정치적 혹은 행정적인 문제가 연계되어 있어 논란의 경과를 이야기하기는 싫다.당시 견해가 같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견해가 같거나 다르거나'보다 그 견해를 피력한 사람이 어떤 입장이었는지 그게 궁금했다.이런 입장이었을 수도 있겠지?'좋아! 이제 내 입지가 이 정도일 때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을 밝혀야 해!'아니었을까? 그럼,'이 생각을 터뜨리면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지겠지? 멋진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열광하겠지?'이것도 아닌가?'이 제안을 하면 나는 몰매를 맞겠지? 그래도 나는 가야 해!'그러진 않았을 것 .. 2025. 5. 13.
아이가 다 본 책 어떻게 해? 이런 책 모아놓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거나 바꾸어 가거나 하면 좋을 것 같지?전에 그런 사업 하는 사람을 본 것 같은데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야. 잘 되면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고 알려지고 할 텐데 그렇지 않았잖아. 무료로 가져가게 하고 바꾸어가게 하고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을 것 같진 않아.전에 학교 근무할 때 학부모들 얘기 들어봤더니 다들 새 책 사주고 싶어 했어. 얻어다 주겠다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웠어.요즘은 더 하겠지. 그 열성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특성이지. 자녀교육이라면 아까워하지 않거든. 언제나 제1순위지. 뭐든 새것 주고 싶어 하고. 이런 소리 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이럴 때 남자들은 100% 수긍할 수밖에 없지.실없는 생각들 아니야? 헌책 버리지 않고 돌려보자고 하면 .. 2025. 5. 12.
푸릇푸릇하고 아름답던 그녀의 블로그 참 정겹던 한 블로그가 문을 닫아버렸다. 정년 퇴임을 했고 열렬한 가톨릭 신자이고 두 딸을 두었고 외손자 외손녀를 사랑하는 일에 푹 빠져 있고 남편과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사흘돌이로 함께 다니며 자신이 미소 지으며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초로의 여성이었다. 충북 어느 시골 초등학교 영양교사로 시작한 직장 생활이나 친정 부모의 유산 문제로 아웅다웅하는 일이 벌어지자 '그래, 맘대로 해' 넉넉한 마음으로 후퇴한 이야기 등등,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블로그를 열독해왔는데 덜컥 문을 닫은 것이다.처음에 다른 블로그 이웃으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곧 돌아오겠지 했는데 ─ 그때 얼른 전화라도 해봐야 했는데 ─ 그 이웃이 다시 연락하더니 이런, 전번조차 바꿔버렸다네? 짚이는 데가 있긴 하.. 2025. 5. 10.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카네이션이나 꽃다발을 들고 가던 시절은 지나갔다. 전철역 입구에서는 으레 임시로 설치한 좌판에 갖가지 카네이션을 진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슴에 꽃을 달아주는 것보다 돈을 받는 게 좋다는 중론을 좇아 돈봉투를 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꽃장사는 시들해졌고, 스승의 날이라도 일체의 선물을 금지한다는 엄중한 지시에 따라 아름다운 꽃다발을 안겨주는 예쁜 모습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새로운 문화가 좋고 편하고 즐거운 사람이 많겠지만 옛일들이 그리워지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졸업식 노래'에는 재학생들이 부르는 1절에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재학생들이 1절을 부르면 졸업생들이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2025. 5. 9.
문제가 풀리면 질서를 찾게 된다 직장이나 단체나 그 어디나 질서가 정연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질서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는 질서가 있을 땐 그 고마움을 알 수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또 굳이 그 고마움을 몰라도 좋은 것은 그것이 우리가 누려야 마땅한 혹은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질서란 그렇다면 공기와 같은 것일까? 하기야 공기도 앞으로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게 되었다. 세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학문별로 들여다보는(내다보는) 창(窓)이 다르다. 한 수학자는 이렇게 말했다."문제가 풀리면 복잡하고 지저분한 것들이 수정처럼 깨끗해지고 질서를 찾게 된다."명료하다.2014년 여름,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 기조강연자 황준묵 교수(고등과학원)에게 기자가 물었다... 2025. 5. 8.
버스 내리기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제발... ㅠㅠ차량이 완전히 정차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자리에서 하차벨만 미리 눌러주세요) # 젊은이들은 점잖게 앉아 있다가 느긋하게 일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걸어가서 카드를 태그하고 내린다. #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일찌감치 버스를 내릴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내릴 곳이 가까워지면 엉거주춤 일어나 가방을 둘러메고 카드를 꺼내어 들고 미리 좀 태그할 수 없을지 궁리해 보다가 정차하기 직전 '이때다!' 하고 얼른 일어나 비틀거리며 출입문으로 다가간다. 저렇게 써놓지만 그걸 믿진 않는다.믿지 못할 것들이 있다. 형식적으로 붙여놓은 표지판을 흔히 볼 수 있지 않나? 가령 '쓰레기를 불법투기하면 벌금 물리겠다', 'CCTV 촬영 중'...... 운전기사가 정.. 2025. 5. 5.
부부, 부부싸움 찰리 채플린은 아인슈타인 부부 만난 일을 재미있게 써놓았다(《나의 자서전》686). 아인슈타인 부부가 1937년에 다시 캘리포니아에 왔을 때, 그들은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나를 보자마자 얼싸안았다. 그리고 저녁에 음악가 세 명을 데리고 올 거라며 내게 통고하듯 이렇게 말했다."저녁식사 후에 당신을 위해 뭔가 연주할 생각이오."그날 저녁 아인슈타인 박사는 데리고 온 음악가 세 명과 함께 모차르트 사중주를 연주했다. 비록 그의 연주가 미덥지 않고 기교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몸을 흔들면서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그러나 다른 세 음악가는 아인슈타인 박사가 연주에 낀 것이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들은 박사에게 잠시 쉬라고 정중히 말하고 자기들끼리 연주하기 .. 2025. 5. 4.
워라밸? 나는 일 중독증에 걸려서 살았네 "워라밸, 워라밸" 하더니 요즘은 그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새로 나오는 말들은 유행을 타는 것 같고, 그 단어가 다 아는 상식이 되면 가치가 상실되는 건 아니지만 일부러 쓰지는 않는 것 같다.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게 좋다. 뒤늦게 그런 용어를 즐겨 쓰는 사람을 만나면 웬지 좀 한심해 보이고 '꼰대' '고집불통' 같은 용어가 떠오르면서 심지어 그를 기피하고 싶어진다. ‘워라밸’이란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를 줄여서 일과 개인적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말이란다. 말이 그렇지 80대 이상이라면 "나도 워라밸에 맞추어 살았네" 할 수 있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아는 척하면서 그 단어를 좀 써볼까 싶어도 조심스러워서 그만두곤 했는.. 2025. 4. 30.
여기 나의 이 길에서 나는 어차피 여기를 거치기로 되어 있었는데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고 그 생각을 할 수 없었다.그래서 여기에 이르러 나는 황당해하였다.'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의아하기도 했다.심지어 어이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로 보아야 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여기로 오기로 되어 있고, 이후 또 한곳으로 가는 것이지만 여기 올 때처럼 제각각 다른 길로 오게 되고, 제각각 다른 길로 가게 되는데, 제각각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좋은 길 혹은 당연한 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망설일 것 없어! 이렇게 가면 되는 거야!" 심지어 그렇게 여기는 실없는 사람도 보인다.그러면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말 가능성이 있고, 모두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걸로 착각하다가 쓰러질 것이다... 2025. 4. 28.
Carol Kidd 「When I Dream」 종일 비가 내렸다.지지난 주 어느 날엔, 지표에 닿자마자 녹긴 했지만 자욱하게 눈이 내렸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은 오래전에 와 있었고 오늘 오랜만에 봄비가 내리는 것 아니냐면서 시치미를 떼는 듯한 느낌이다. 캐럴 키드가 곱고 나지막하게 부른 「When I Dream」이 들려서 이런 날과 닮은 블로그가 있다.다른 표정인지도 모르겠다. 여름날 한낮의 거리를 내다보며 들었을 땐 또 그 표정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블로그의 글들도 그랬다. 노래 같다고 생각했다.지금은 '빈집'이다.이사는 가지 않았다. 비어 있을 뿐이다. 가끔 찾아가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살펴본다.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서 언제 또 새로 시작하겠지 생각하지만 세월은 가다 서다 하는 것이 아니어서 초조할 때가 있다. 왜 빈집일까?마음도 몸.. 2025.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