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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82

사람 구경 '그들은 남들을 보고 또한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서둘러 성당으로 갔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이탈리아')에서 이 문장을 봤다.요즘 내가 밖에 나갈 때의 이유 중 반은 사람 구경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파트에서는 일단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내 호기심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가에 미친다. 하다못해 편의점에 다녀올 때도 그렇다. 누구를 만나도 만난다.'만난다'? 구경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다. 그 재미가 괜찮은 것이었는데 저 문장을 보고는 나 자신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물론 그들도 나를 슬쩍 쳐다보며 '저렇게 허접한 노인도 여기 사는구나' 하겠지만) 일방적·이기적으로 '사람구경'에 몰입한다는 걸 깨닫게 .. 2024. 7. 23.
쉰 목소리 바이든과 트럼프가 TV토론에서 맞붙었단다. 어느 신문은 토론 이후 바이든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면서 토론 내내 쉰 목소리였고 여러 차례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이면서 81세 고령과 건강 문제가 다시 부각되었다고 했다. 최근 다시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고 델라웨어 사저에서 요양 중이라는 것도 덧붙였다.이 기사대로라면 트럼프는 바이든에 비해 젊은이처럼 인식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을까?바이든이 현임이니까 재선 가능성이 높을까?바이든은 결국 사퇴하고 말까?제3의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까?알 수가 있나... 나는 바이든이 단상에 올라서 괜히 몇 발자국 뛰는 흉내를 내는 게 더 안타깝다. '뭐 하려고 저러지?'때로는 웃기려고 저러나 싶기조차 했다. 뛰어봤자 함께 .. 2024. 7. 21.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모두 아는 사이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다(케빈 베이컨 게임)" 오래전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2007)라는 책에서 봤다. 잠깐(돌연!) 세상이 좀 훈훈하게 느껴졌다(알고 보니 뭐 괜찮은 세상이네!).외국인 같은 건 아예 접어놓고(아니, 집어치우고) 우리나라에만도 떠오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따져보면 그들이 다 나하고도 가깝다는 거네?'기라성 같은 배우들, 멋진 작품으로 말하는 감독들, 아름다운 남녀 탤런트들, 저런 사람은 직접 좀 만나봤으면 싶은 연예인들, 운동선수들, 가수들, 굳이 만나고 싶진 않은 정치인들, 재벌들, 고고한 학자들, 문학가들, 화가들, 음악가들...... 이상도 하지. 떠오르는 그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텔레비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어서 나는 정말 친숙하게 느끼고.. 2024. 7. 18.
코리아 찰스 디킨스 이제 보니 블로그는 맛집이면 맛집, 여행이면 여행, 책이면 책, 일상이면 일상, 뭐든 한 주제를 깊이 있게, 흥미롭게, 전문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인데, 나는 종횡무진, 오합지졸, 중구난방, 또 무슨 말을 더해야 이걸 제대로 표현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 편한 대로 숨길 건 숨기고 밝혀도 좋을 것은 기록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예전에 우리 국민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들이 '국어, 산수, 사회... 체육' 식으로 교과목별 공책을 다 마련하고 아무거나 쓸 수 있는 '잡기장(雜記帳)'도 한 권 별도로 준비하라고 했을 때의 그 잡기장이 되어버린 것이 내 블로그가 되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나도 한번 블로그답게 해 보자!' 하면, 블로그를 열 개 이상 마련해야 할 판이고, 그건 말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 2024. 7. 17.
저녁노을 속을 달려 집으로 가는 부부 "남편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저녁노을. 남편이 지는 해가 이쁘다고 사진 찍으라 했다." 불친 W님의 블로그에서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오래전 영 연방국의 교육과정(curriculum)에 대해 알아보려고 보름간 여행한 적이 있는 그 나라가 그리워졌다. 그들 부부는 그 노을 속으로 달려가며 떠나버린 이 나라를 그리워했을까? W님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달리며 찍은 저녁노을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글은 단 두 마디였고, 위의 문장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실제로는 지는 해가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는데 사진으로는 이것이 최선이어서 아쉬웠다." 그렇겠지?아름다움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사진이 어디 있을까? 그러려면 그 사진에 W님 부부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스며들어야 한다. 노을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거의.. 2024. 7. 11.
블로그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에서 한여름의 정원을 보고 아름다운 가곡이 흘러나올 것 같다고 했더니 숲지기님은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쑥쑥 자라 있는 잡목들과 웃자란 잔디를 겨우겨우 제압했지만 제압한 것처럼 보일 뿐 머잖아 성큼 자라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숲지기님은 워낙 바빠서 답글을 읽고 또 댓글 쓰는 걸 자제해 왔는데 이번에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다.  온 힘을 다해 제압해 버리고 돌아서며 이내 굴복하고, 다시 제압하고 굴복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게 참 힘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다른 일 같으면 벌써 던져버렸을 일인데 단 하나 의무처럼 남은 것 같은 이 일에만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잡초에 대한 숲지기님 생각에 몇 자 덧붙였지만 사실은.. 2024. 7. 7.
이 편안한 꽃밭 주인양반은 의사 선생님이어서 너무 바쁘다.지난봄 어느 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부부가 와서 잡초를 대충이라도 제거하고 돌아갔었는데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렇게 자욱한 꽃밭이 되고 말았다. 이 꽃밭 사진을 본 시인은 참 편안해 보인다고 했다. 전에 진달래였던가, 내가 무슨 봄꽃을 이야기했을 때는 '점령(占領)'이라는 말을 썼었는데 이번에는 또 편안해 보인다고 한 것이다. 그 시인은 내 모든 열매를 직박구리가 거의 다 따먹는다며 미워하자 미운 건 당신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내가 다시 뭐라고 하긴 했지만 내가 그의 말을 부정하는 건 아무래도 완벽하게 논리적이진 않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안다.그가 이 사진을 보고 참 편안해 보인다고 한 걸 그 의사 선생님께 일러바칠 수도 있다.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 2024. 7. 1.
두꺼비 짝 찾기 저기 어디쯤에서 어제 비가 내린 후로 웩! 웩! 웩! 웩! 뭔가가 계속 웩웩거린다.체면도 없고 밤낮도 없다.두꺼비인가?간혹 개구리 소리도 들린다. 개개개개...(아니라면 갤갤갤갤...) 개구리는 훨씬 가늘게 간혹 가다가 운다.(두꺼비가 아니라면 두꺼비들에게는 미안하다.)아마도 짝을 찾는 소리겠지?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는 게 아니라 노래라고 하겠지?저게 노래인지 한번 와서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정말이지 저렇게 쉬지 않고 웩웩거리는 건 나는 싫다.지겹지도 않나?무슨 짝을 저렇게 악착같이 찾나?저건 도무지...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다른 볼일은 전혀 보지 않고 오로지 웩웩거리기만 한다.절박하겠다 싶긴 하다. 일기예보와 달리 날씨가 좋으면 지금은 습지가 되어 있는 저곳은 즉시 말라붙을 것이기 .. 2024. 6. 30.
어떤 깨달음의 순간 교육부 근무는 시종일관 어려웠습니다. 3년간 파견근무를 마치고 정규직 발령을 받은 것은 1993년 6월이었습니다.편수국 교육과정담당관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직원은 장학관(담당관)과 연구관, 연구사 합해서 7, 8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걸핏하면 출장을 나갔습니다. 당연히 신임인 내가 사무실을 지켰습니다. '교육부는 이렇구나...' 하면 그만이었는데 다른 부서 직원이 와서 무슨 말을 하면 그걸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말을 알아듣지 못하다니? 나중에 내가 과장이 되었을 때, 서울에서 전입된 장학관 C 씨는 우리 과 장학관(팀장) 회의 때 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팀원들에게 업무 전달을 하지 못했고 계속 그렇게 근무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이내 다른 과로 옮겨갔는데 장학실 실장이 그에게 대통령.. 2024. 6. 23.
짝을 위한 애도 어젯밤에 방충망 안쪽에 붙어 있는 놈을 살해했다. 살려줄까 하다가 방충망을 열고 내보내는 건 다른 벌레를 불러들이는 꼴이어서 이내 단념하고 말았던 것이다.그때도 저놈은 저렇게 붙어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와 있다가 내게 살해당한 놈과 커플일 거라는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방충망 안쪽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놈을 보고 생각한 것은, 어쩌다가 방충망 안쪽에 놓인 알이 여름이 되자 성충이 되었지만 뚫고 나갈 수가 없어서 날개 한번 써먹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인가 싶었었는데 오늘밤에는 문득 어젯밤에 살해된 그놈이 저놈과 한쌍이 아닐까 싶었고,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은 짝을 떠나지 못하고 그렇게 죽은 짝의 시체 주변을 맴돌던 그 비둘기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자 저놈과 어젯밤에 내가 살해한 그놈이 분명 한쌍일 것 같은 .. 2024. 6. 16.
산딸기 나무 그냥두기 이런 나무를 관목이라고 할까?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옆으로, 옆으로 번지는 나무.나는 관목과 교목을 구별하기가 어렵고, 물푸레나무가 뭔지 모른다. 둔해서 그렇겠지? L 시인이 이 사진을 주었다.산딸기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발견하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걸 느끼던 어릴 적 일이 떠올랐다. 그대로 스러져갈 기억이었을 것이다.저절로 솟아난 자그마한 산딸기 묘목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내가 없는 날, 누군가 보고, 와! 산딸기가 많이도 달렸네, 하겠지. 2024. 6. 10.
냇물아, 흘러 흘러... 생각은 단순해져서 마침내 실낱같아지고 멀리, 더 멀리, 돌아올 수 없을 듯한 곳까지 떠내려간다.아득해서 돌아올 수 없어도 좋을 곳으로 떠나가버린다.영영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까 생각하며 일어선다. 2024.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