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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58

세수하고 거울 보다가 세수를 하고 거울 들여다보다가 이 얼굴이 이제 가랑잎 같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직 봄이고 몸무게도 줄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계절은 봄이지만 내겐 가을이 깊었거나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가랑잎인지도 모르지. 가랑잎? 그러면 이의제기 같은 것 없이 따르면 그만일 것이다. 순순히 따른다? 그건 "六十而耳順' 할 때의 그 이순(耳順)처럼 느껴지는 말이지만 나는 옛 성현처럼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거나 하지도 않았으니 애초에 그런 이순(耳順)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유감없이' '미련 없이' '홀연히' '표표히'... 뭐 그런 의미쯤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2024. 4. 24.
왜 그렇게 앉아 있나요? 비는 오는데 그렇게 앉아 있으니까 좀 민망합니다. 나는 아예 그 벤치나 의자에 앉지 않으려고 몸이 무거우면 선 채로 좀 쉬었다 걷지만, 그렇게 하는 건 나도 그렇게 앉게 되면 지금 그 모습과 한 치의 다름이 없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망하겠지요. 아니, 그 벤치에 앉게 되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것입니다. 왜 혼자 그렇게 앉아 있습니까? 역시 노년의 문제겠지요? "노년에 관하여"(키케로)라는 책 혹 읽어보셨습니까? 키케로는 흔히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고 불평들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노년에도 정치 활동과 정신 활동은 물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체력 저하.. 2024. 4. 22.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네 정처(定處)도 의지도 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축제가 끝나버려서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렇게 떠내려 간 것도 단 나흘 전이었는데 이미 추억은커녕 기억도 아니다. 그날 아침나절 나는 냇물을 따라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우산은 쓰고 있었다. 2024. 4. 19.
'雪柳'라는 이름 "雪柳가 피어났네~~" 淸님이 블로그 "Bluesky in Nara"에 그렇게 써놓았다. (https://nadesiko710.tistory.com/13412054). 설류? 뭐지? 뭐가 이 이름을 가졌지? 조팝꽃이었다. '조팝'은 튀긴 좁쌀 혹은 조로 지은 밥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그곳 사람들은 설류라고 하는구나... 雪柳, 고운 이름... 문득 '윤슬'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난 그 단어를 모른 채 살아오다가(그걸 몰라서 무슨 이변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연전에 '윤슬'(박상수)이라는 시를 보고 그 말, 그 시에 놀라서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아파트에 '윤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다. 그 아이 엄마 아빠가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주었겠지? 윤슬처럼 아름답게 빛나라고... 조팝나무를 .. 2024. 4. 14.
아, 정말... 이번 봄은 어쩌자고 이러지? 이를 데 없이 좋은 봄날이다. 어느 해에는 봄이 좀 오래 머물다 가지만 어처구니없을 만큼 금세 지나가버릴 때도 있다. 좋은 봄날이라는 말을 자주 하거나 자주 들으면 그해 봄은 금세 가버린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런 말을 하면 특히 그렇다. 그게 몇 번쯤인지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정해진 횟수가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사람들이 봄, 봄 하면 여름이 금세 와버리는 것이다. 나는 웬만하면 그 말을 스스로 하진 않는다. 속으로 생각만 한 것도 올해는 이게 처음이다. 2024. 4. 12.
이 아침의 행운 창 너머 벚꽃이 만개한 아침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실과 아픔, 지울 길 없는 아픔과 슬픔으로 이어져 온 생애의 기억들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는 느낌이다. 꽃그늘을 걷는 사람들 표정이 먼 빛으로도 밝고, 문득 이 아침이 행운임을 깨닫는다. 이런 시간이 행운이 아니면 그럼 언제 어디에 행운이 있겠나. 2024. 4. 9.
말씀 낮추시지요 허리를 구부리고 뭘 좀 하고 있는데 누군가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럴 때 "예~" 하고 대충 넘어가는 게 불가능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달려가 울타리 사이로 내다봤더니 웬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이웃'이라고 했다. 반가워하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불쑥 "전 올해 육십입니다. 자주 뵐 텐데 말씀 낮추시지요."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수가 있나. 응겁결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친절하게 대해 주시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저도 너무나 좋습니다." 종일 생각했다. '아, 이거... 어쩌다가 육십 먹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됐지? 말을 놓으라니, 그런다고 덥석 말을 놓진 않겠지만 빈말이라도 그렇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난 이젠 정말 늙었나 보다. 이거 참...' 도대체 난 뭘.. 2024. 4. 7.
산책로의 오리구이 전문점 나는 산책을 할 때 웬만하면 저 집 앞을 지나가는 길을 선택한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신점·신수·결혼운·사업운·궁합·택일'이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점집이 있다. 나는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 신수? 그분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당신은 워낙 박복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 그럼 어떻게 하나?... 생각만 깊어져서 지나간다. 저 방갈로 모양의 집은 오리 고기 전문점이다. 지난 초봄 어느 토요일, 동탄 사는 내 초등학교 친구 부부가 저 집으로 찾아왔었다. 오리구이는 워낙 맛이 좋아서 우리 내외는 먹을 겨를이 거의 없었다. 아내에게 좀 미안해서 며칠 후 둘이서 새로 찾아갔는데 그날은 또 내가 실컷 먹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니까 아내는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바야흐로 목련이 한창 피어나기 시.. 2024. 4. 4.
잡초는 쉬질 않네 해마다 저 세석 사이로 잡초가 올라온다. 잔디 사이로 올라오는 건 더 쉽다. 봄에만 올라오는 것도 아니다. 한겨울을 제외하면 사시사철, 며칠만 기다리면 그들을 볼 수 있다. 얼마나 다행한가. 그 잡초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게 주어지는 일을 한다. 2024. 4. 2.
봄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 어떤 선생님일까... 아이들을 봄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신 선생님. 2024. 4. 1.
이 치약 괜찮지 않아? 이 치약 괜찮네 싶어 또 구입하자고 생각했다. 거품이 너~무 심하게 일어도 거북하지만 적어도 가짜 같은 느낌이고, 특이한 맛이 나거나 특이한 냄새가 나면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가 보다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주 밍밍하면 지금 장난하나 싶고 적당히 톡 쏘고 적당히 매워야 그럴듯하다. 그럼 이 치약은 평범하면서도 적당한가? 나는 성격이나 취향 같은 건 고약해도 평범한 치약을 좋아하는 '치약적인 면'에서는 평범한 사람인가? 모르겠다. 필요하면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치약에 대해서도 특이하다(평범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진 않겠지? 그걸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나? 치약 연구가들이나 제조업 종사자들은 비교적 잘 알겠지? 이 튜브에 그걸 밝혀 놓지 않았을까? "이건 평범한 치약의 일종이다.. 2024. 3. 27.
에디슨 흉상 보기 블로그 유입 키워드 목록에 '에디슨 흉상'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에디슨 흉상이 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에디슨 흉상을 하나 사고 싶은 걸까? 에디슨은 돈을 많이 벌어서 요즘 갑부들처럼 온갖 호사를 누려보았을까?...... 인터넷 검색창에 '에디슨'을 넣으면 미국 뉴저지 주의 작은 도시로 토머스 A. 에디슨의 연구실이 있던 곳이라는 설명도 있고, 영어권의 인명이자 성씨인데 으레 사업가이자 발명왕인 토머스 에디슨을 가리킨다는 설명도 보인다. 에디슨은 묘한 인물, 재미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예전에는 병아리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달걀을 품고 앉은 그를 어머니가 발견한 이야기, 학폭을 저질 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쨌든 엉뚱한 짓, 황당한 행동을 하다가 퇴학을 당해서 어머니가 데리고 오며 걱정 말라고.. 2024.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