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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58

"결국 입춘" 어제 한 불친이 제 블로그에 와서 "결국 입춘"이라고 했습니다. ☞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40744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점점 더 나이들어 가고 그러는 세월에 대해 딱 넉 자로 갈무리한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답글의 심사는 만약 내년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 더욱 짙어질 것입니다. 그나저나 갑진년은 입춘부터라지요? 그러니까 어제부터 용띠 아기가 태어나는 거죠. 2024. 2. 5.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주는 집 아내와 함께 식품가게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자그마한 그 냉면집이 눈에 띄어서 김 교수 얘기를 꺼냈다. "저 가게 김 교수가 혼자 드나들던 집이야." "나도 가봤어. 그저 그래." "김 교수는 맛있다던데? 몇 번이나 얘기했어. 냉면 시키면 불맛 나는 불고기도 준다면서." "친구들하고 가봤는데, 별로던데..." "냉면이나 불고기나 평생 안 먹어도 섭섭해하지 않을 사람이니 어느 가게엘 가면 맛있다고 할까?" "......"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겠지?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탈이다. 아이들과 시험문제 풀이를 할 때처럼 매사에 정곡을 찔러야 직성이 풀린다. 죽을 때는 이 성질머리를 고쳐서 갖고 갈 수 있을까? 별수 없이 그냥 갖고 가겠지? "그 버릇 개 주나?"라는 속담도 있으니까. 인간은 고쳐서 쓸.. 2024. 2. 3.
"자네 말이 참말인가?" 김원길 시인의 책《안동의 해학》에서 「자네 말이 참말인가?」라는 글을 읽고 옛 생각이 나서 한참 앉아 있었다. 지나고 나니까 참 좋은 날들이었다. 구봉이가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것은 꼭히 얼굴의 곰보 자국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짚신도 짝이 있다고 드디어 동갑 또래 노처녀에게 장가를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길 좋아하던 구봉이가 장가를 가고부터는 사람이 아주 달라진 것이다. 전엔 제일 늦게까지 술자리를 못 떴는데 요즘은 술도 끊고 화투를 치다 말고는 슬그머니 사라지거나 아예 초저녁부터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짓궂은 명출이가 화투장을 돌리면서 슬쩍 말했다. "오늘 장터에 갔다가 들었는데 예안 주재소 순사가 여자하고 너무 붙어 지내는 사람은 일일이 .. 2024. 1. 31.
벌써 봄이 오나? 며칠간 저녁놀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사라질 때가 되었지 싶어서 바라보면 아직 그대로였다. 그럭저럭 한 시간은 되는 것 같았다. 봄이 오는 것이겠지. 당연히 반가운 일이긴 하다. 그렇긴 하지만 겨울이 가는 건 섭섭하다. 이번 겨울은 더 추워서 눈이 녹을 만하면 얼어붙고 눈도 자주도 내려서 밖에 나가기조차 두려웠는데 그래도 겨울이 가는 건 섭섭하다. 마치 헤어지는 느낌이다. 2024. 1. 28.
다시 생각나는 "let it be" 다 괜찮을 것 같았던, 달리 어쩔 수도 없었던 시절의 노래 'let it be'("괜찮아, 그냥 둬버려~")가 생각나는 나날이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Let it be 내겐 그렇게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야기해 줄 사람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다시 생각나는 노래가 된 것이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도 않았고,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에 있을 일은 더욱 그럴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20여 년 전 공항에서 사 본 책『존 레논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제임스 우달) 표지를 들여다보았다. 그 노래 때문에, 내가 나에게 그냥 둬도 괜찮다고 얘기하며 그를 그리워하는 나날이 되었다.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걸 생각하는 나날이다. Wh.. 2024. 1. 27.
그렇게 사랑해 놓고 왜 헤어질까?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커플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나는 아내에게 매번, 무조건 미안해진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해 주었을까?......' 그들이 부럽고 '저 커플은 그동안 어려웠으니까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그들이 부러운 그만큼 아내에게 더욱더 미안해하곤 한다. 우리의 처지가 민망해서 그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있기가 난처할 때도 있다. 그런 커플을 '선남선녀(善男善女)'라고 하겠지? 아닌가? 글자 뜻 그대로 단순하게 착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 신선 같은 '선남선녀(仙男仙女)'인가 싶어 하다가 사전을 찾아보고 '善男善女'라는 걸 확인했다. 글자로는 그렇지도 그 의미는 두 가지 단어의 어.. 2024. 1. 25.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하나... 2021년도에 만든 나의 블로그 이름은 '분리수거 연습'이다. 별명은 '비생물'. 자기소개란에는 '별명을 비대면 체온 측정기라고 지을까 고민했다'라고 적혀 있다. 모두 처음 블로그를 개설할 때 설정한 그대로다. 글을 올리는 카테고리는 세 개로 나눴는데, 각각 '종량제 봉투'와 '폐수' '재활용'이라고 이름 지었다. '종량제 봉투'에는 일기를, '폐수'에는 시를, '재활용'에는 나에게 영향을 준 음악이나 영화, 책을 올렸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구분이 모호해져서 카테고리를 모두 닫아버렸다(카테고리 자체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 그리고 '일기'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다. 지금은 '일기' 카테고리만 전체 공개인 상태다. 그곳에 새 개시글을 올리면 이전 개시글은 비공개 처리한다. 어차피 내 블로그를 꾸준히 보러.. 2024. 1. 24.
한강호텔, 옛 생각 병원에 갈 때는 올림픽도로를 타고, 병원에서 올 때는 강변북로를 탄다. 비교적 길이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돌아올 때의 강변북로는 고속도로와 거의 같다. 강변북로를 오갈 때는 꼭 한강호텔과 워커힐을 찾아본다. 워커힐은 유명했던 호텔이고 한강호텔은 예전에 고 강우철 교수, 김용만 편수관 등 여러 사람과 사회과 교과서 편찬을 위한 회의 장소로 가장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병원에서 돌아올 때는 한강호텔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놓쳤나? 워커힐은 보였는데...' 기이한 느낌이 있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아, 이런! 그 호텔이 사라지고 그곳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뉴스가 보였다. 평당 1억은 되는 아파트일까? 그러고 보면 그때도 그 호텔은 좀 한산한 편이어서 작업하기에는 최.. 2024. 1. 21.
갑진년(甲辰年)은 언제부터죠? 아침부터 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자정까지로 예보되어 있습니다. '올겨울'은 눈이 참 흔하지만 동향 출신에게 전화를 했더니 거긴 비만 내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그렇습니다. 올겨울은 어느 겨울입니까? 올해는 '지금 지나고 있는 이 해'이고 올겨울은 '올해의 겨울'이라네요? 그야 그렇지요. 다른 사전을 봤더니 올해는 금년, 차년, 본년, 금년도, 올겨울은 금동(今冬)이고요. 애매하지 않습니까? 올해의 겨울? 2023년 겨울일까요, 2024년 겨울일까요? 아니면 2023년 겨울이기도 하고 2024년 겨울이기도 한 걸까요?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이죠? 그건 알겠는데, 갑진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요? 2024년 달력을 보면 1월 달력에도 분명히 갑진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갑.. 2024. 1. 17.
"저 좀 착하게 해주십시오" 2014년 5월 6일에 써놓은 글입니다. 운보 김기창의「청산도」이야기에 덧붙여져 있었는데 지금 보고, 서로 어울리질 않는 두 가지 이야기를 붙여 놓은 바보짓을 발견했습니다. 김기창 화백이 본다 해도 그렇고 「청산도」나 석가탄신일을 찾다가 보게 되는 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해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버릇 버리지 못했지만 나는 읽어줄 사람도 별로 없는 이 블로그에 작정하고 글을 쓰고 있고, 하나 쓴다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아서 일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입니다. '이게 인간인가?' 싶어서 너무나 오랜만에 집에서 가까운 절을 찾아 부처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절을 했는가 하면 '저 조금이라도 착한 마음 좀 갖도록 어떻게 해주십시오'.. 2024. 1. 17.
부산 국제시장에 앰프 사러가기 김위복(金位福) 교장선생님은 진짜 무서운 분이었다. 우리는 정말이지 끽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완전' 절절매며 지냈다. 지서 순경들도 우리처럼 쩔쩔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었다. 교장선생님은 교사 경력이 단 6개월이었고 교감도 거치지 않고 바로 교장이 되었다고 했다. 초임교사 시절에 6.25 전쟁이 일어났고, 인민군이 '삐라'(전단)를 만들려고 등사기 좀 빌려달라고 아무리 간청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일이 알려져 당장 교장 발령이 났고 이후로 계속 교장이었다는 것이다. 운동회가 끝날 무렵,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선배 교사들이 우르르 학교 앞 도로로 뛰어나가 줄행랑을 칠 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 달리느라고 숨을 헉헉거리며 왜 이러는지 물었고, 운동회가 엉망.. 2024. 1. 13.
나무의 기억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주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내가 떠나면 세상은 어떻게 되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떠나도 저 나무는 당연하다는 듯 저기 저렇게 서 있겠지.' 그럴 때 나는 나무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 날 나무는 생각할 것이다. '한때 그가 이 길을 다녔지. 그의 잠깐을 영원처럼 여겼지.' 나무는 다시 다른 사람이 오가는 걸 보면서 곧 나를 잊을 것이다. 잊진 않을까? 사람은 무엇이든 금세 잊거나 오래 기억하거나 하지만 나무는 기억할 것은 영원히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을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무는, 가령 저 밤나무 같으면 어떻게 적어도 150년 혹은 수백 년을 살까? 당연히 할 일이 있겠지? 할 일도 없는데 태어나고 살.. 2024.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