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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922

'차별' 그 유치함과 극악함 "여기는 순종이든 혼혈이든 간에 인디언이라곤 한 사람도 없어. 게다가 너의 어머니 아버지는 정식으로 결혼하지도 않았어. 우리가 사생아를 받아들인 건 정말이지 네가 처음이다." 나는 할머니가 말해주신 것을 목사에게 이야기했다. 체로키들이 아빠와 엄마를 결혼시켰다고. 목사는 체로키가 한 일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노라고 화를 냈다. 그건 사실이었다. 목사는 그 모든 일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기 교단은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동물에게조차 친절한 게 신조라고 했다. 그는 나더러 교회 예배와 저녁 채플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성경에 따르면 사생아는 어떻게 해도 도저히 구제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싶으면 들.. 2022. 10. 12.
노인들은 왜 조롱을 받을까? '노인들은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을 읽으며 신화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되었을지 궁금했습니다(흔히 신화에서 근원을 찾지 않습니까?). 제우스를 찾아보았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제우스는 자기 아버지 크로노스의 시대를 지배했던 티탄족과의 초기 전투에서 승리해 권위를 얻었다. 크로노스는 자기의 모든 자식들을 삼켜버렸으나 제우스의 어머니 레아는 제우스를 돌과 바꿔서 그를 구했고, 제우스는 자기 아버지를 무너뜨렸다. 그는 메티스를 삼켜서 한 몸에 힘과 지혜를 지니게 되었다. 제우스의 실용적 능력은 유명했으며 전혀 틀림이 없었고, 그의 판결은 비평의 여지가 없었다. 호메로스는 제우스가 정의의 황금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 2022. 10. 10.
"그럼 정신 없겠는데요?" 이런 스티커를 파는 가게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둔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요.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문구는 자신이 생각해내거나 남들이 써붙인 걸 보고 참고해도 되겠지만 저 예쁘고 깔끔한 글씨를 누구에게 부탁해서 썼을까,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스티커 가게를 구경하며 '그러면 그렇지!' 했고 모든 것에 돈이 드는 세상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보아온 스티커들 중에는 못마땅한 것도 많아서 나도 좋고 보는 사람 기분도 상하게 하지 않는 걸 고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인터넷의 가게에서 위 사진의 스티커도 있는지 살펴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럴 것 없이 저 차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로 했습니다. 2022. 10. 9.
구월과 시월의 사이·차이 낮에 돌아와 점심을 먹으며 아내가 거실 달력을 넘겨놓은 걸 봤다. 내가 9월 30일에 떠나서 오늘 돌아왔으니까 그 생각을 못했던 거지. 달력 넘기고 메모해 놓는 건 으레 내가 해온 일이었는데... 아, 이제 보니 내 방 탁상달력은 아직 구월이네? 지난 금요일엔 구월이었지. 그새 달라지다니... 구월 달력을 그대로 둘 순 없겠지? 구월엔 아쉽지만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는데... 그대로 두어도 좋다면 나는 늦여름에 사는 것이고 구월 속에 살아가는 것인데... 일기예보를 들어보면 곧잘 늦더위로 기온이 29℃까지 오르는 곳도 있다고 했는데... 그런 현상을 기대하긴 다 틀린 일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도 않겠지? 비까지 내리네. 추적추적... 기온이 .. 2022. 10. 2.
은혜를 원수로 갚아버리기 교사들의 승진 길은 교감이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더러 시험을 봐서 장학사나 교육연구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건 승진이 아니고 직을 바꾸는 '전직'입니다. 장학사를 밤낮없이 '죽어라!' 하고 나서 교감이 되어 학교로 돌아가게 되면 이번에도 승진이 아니고 전직입니다. 1980~1990년대에도 승진하기가 꽤나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경력 점수를 다 채운 교사들 중에는 주임(지금의 부장) 점수를 채우려고 혹은 근무성적을 잘 받으려고 교감 교장에게 쩔쩔매면서 살기도 했는데,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답설재 선생님~ 저는 그런 점수는 다 채웠는데 연구 점수가 모자랍니다. 교육연구라면 답설재 선생님이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어서 어떻게 좀 선처를 구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부디 물리치지 마시고 잘 .. 2022. 10. 1.
지도 위에서 길을 잃어 지도를 보다가 '여기가 어디지? 내가 지금 어디를 헤매는 것일까?' 하고 당황할 때가 있다. 지리학을 공부해서 중등 사회과(지리) 교사 자격증을 받았는데도, 그러니까 지도학 강의를 몇 강좌나 이수했는데도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지도 위를 헤매게 된다. 눈을 따라 마음도 길을 잃는다. 어제저녁에는 문득 오래전에 살았던 곳이 생각났고, 거기에서 속절없이 헤어진 사람이 갔다는 곳을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당시에는 멀리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행정구역으로는 멀지 몰라도 거리상으로는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영토가 작은 나라이니 어디인들 그리 멀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나는 지도 위에서 방향 감각을 잃어서 그때 살았던 도시도, 그 사람이 떠나간 곳도, 심지어 지금 내가 사는 곳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2022. 9. 25.
영혼 ③ 고양이네 가족 내가 포치 아래에서 바라보는 동안 고양이 일가족 세 명(?)이 놀다가 갔습니다. 저 가족이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있고 저 가족에게는 없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건 무엇입니까? 우애? 모정? 사랑? 영혼? 글쎄요... 2022. 9. 20.
이거 내가 가져도 돼? 괜찮아? 2022. 9. 19.
잘도 오는 가을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제때 오지 않고 난데없이 나타나곤 했다. 기온이 아직은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물들여버렸다. 결국 올해도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면 누가 어디에 대고 어떻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항의를 할 수 있겠는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따르기가 싫다. 2022. 9. 18.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Op.73 '황제' (L.v.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가을이 온 이후 주말에는 꼭 한 번씩 듣고 있어. 언제까지? 글쎄? 베토벤은 죽은 지 오래인데 딴생각을 못하게 해. 그의 사진을 떠올리면 더욱... 당연히 일도 못해. 딴생각을 못하고 일도 못하니까 아예 듣지 않으면 되는데 자꾸 듣네. 멍하게 앉아 있는 것도 이젠 괜찮겠지? 괜찮을까? 하기야 일부러 멍하려면 그것도 꽤나 힘들긴 하지? 이러다가 겨울이 오겠지? 좋은 가을밤인데... iframe width="1085" height="610" src="https://www.youtube.com/embed/LYUrPqaG11Y" title="21세 조성진│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Op.73 '황제' (L.v.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Pf.Seongjin Ch.. 2022. 9. 17.
맛있는 빵 사 갖고 가기 빵가게를 가려면 이 길로 내려오면 됩니다. 도서관 옆이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거기가 빵집입니다. 아주 작아서 세 사람만 들어가도, 그중에 좀 야단스러운 사람이 끼어 있으면 빵 구경하고 고르고 계산하고 하기가 순조롭지 못합니다. 그럼 슬그머니 나왔다가 조용할 때 다시 들어갑니다. 그렇게 작은 빵집은 언젠가 방송에서 전 세계적으로 제일 좋은 빵을 만드는 집인양 소개해서 우면동까지 찾아가 본, 빵맛이 너무나 형편없었던(그냥 밀가루 뭉친 듯한) 그 가게 말고는 처음입니다. 이 집은 고소한 빵만 만듭니다. 게다가 '계량제'와 '화학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이게 뭐죠? 아마도 좋은 것)을 써서 통밀, 밀, 보리의 풍미와 식감을 살리고,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만든다는 표지판을 보면(언젠.. 2022. 9. 16.
영혼 ② 저 소 눈빛 좀 봐 내가 축사 앞에 서면 쳐다보기도 하고 설설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슨 말을 할 듯한 표정입니다. - 왜 들여다봐? - 심심한 것 같아서... - 왜 그렇게 생각해? - 거기 축사 안에서만 평생을 지내다가 가니까. (도살장이란 단어를 꺼내는 건 어렵다. 저들도 안다.) - 너희 인간들은 달라? 갇혀 살지 않아? - 글쎄, 우리는 멀리 여행도 가고... 그러잖아. 달나라에도 가잖아. - 그게 대단해? 속담에도 있잖아. 오십 보 백 보... - 오십 보 백 보...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할 말이 없네. 나는 저 어미소와 아기 소(송아지)도 바라봅니다. 어쩌면 저리도 다정할까요? 저 앉음새의 사랑 속에 온갖 사연이 다 들어 있겠지요? 나는 축사 앞을 지날 때마다 들여다봅니다. 자꾸 나 자신을 보는 듯합니다. 2022.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