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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35

경고하는 이의 마음까지 보여주는 경고들 2024. 9. 13.
글을 쓰는 이유 : 내 기명(記名) 칼럼 이 글을곁의 남편에게 큰소리로 읽어주며끝내는 둘 다 울고 맙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지난 8월 16일 점심때, 익명의 독자가 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왜 위로가 되었는지 묻지 않겠다고, 이 말씀만으로도 충분하고 과분하기 때문이라고 답글을 썼다. 나는 이 독자의 댓글과 내 답글을 잊고 있었다.그래서 8월 말에 신문사에 원고를 보내며 이제 이 칼럼을 그만 쓰겠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한 달만 더 미뤄보기로 했었다. 교육에 관한 글은 독자층이 아주 얇다. 매달 한 편씩 17년째 연재하고 있지만 '더 써서 뭘 하겠는가' 여러 번 회의감을 느끼면서 '다음 달엔, 다음 달엔' 하며 그만 쓰겠다고 신문사에 연락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지내다가 저 댓글 읽고 아무래도 몇 달은 더 써야겠다고, 용기.. 2024. 9. 5.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뭘까?잡초 뽑기?청소?손빨래?라면 끓여 먹기?책 읽기?칫솔, 속옷, 작업복 같은 것을 제외한 내 물건 특히 옷가지 구입하지 않기?외로워도 그냥 있기?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난 참 허접하네.그래도 이 정도로 허접할 줄은 몰랐는데...사람이 참 별 수 없네.더 있긴 하지. 가령 남 비난하기. 남(가령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잘잘못을 따져서 이야기하기 등등. 그런 것들은 더 잘해서 나에게나 남에게나 덕 될 건 아니지. 그러고 보면 더 있을 것도 없네.그럼 그중에서 내가 정말 잘하는 건 뭘까?잘할수록 좋은 건 뭘까?잡초 뽑긴 분명 중도 탈락이 되겠지?청소? 그걸 그렇게 잘할 필요가 있나? 미루지나 말고 하면 그만이겠지? '청소 선수'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나?빨래도 해내면 그.. 2024. 9. 1.
내 친구의 백혈병 내 친구 J가 혈액암에 걸렸다. 백혈병이라는데 암이란 몸 어디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것이라면 피에 무슨 종양이 생기나? 인터넷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 골수 같은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장기나 면역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를 만들어내는 장기에서 발생하는 암. 백혈병(leukemia), 림프종(lymphoma), 다발골수종(mulitiple myeloma) 등이 있다.· 골수와 같은 조혈 조직에서 발생한 암으로, 비정상적인 미성숙 백혈구(백혈병 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하는 질환. 정상적인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의 생성은 오히려 억제된다. 정상적인 혈액세포 생성이 억제되면, 면역저하로 세균 감염이 쉽게 되고, 빈혈 증상(어지러움, 두통, 호흡곤란)이 나타나고 출혈 경향을 일으킨다. 비정상적으로 증가된 백.. 2024. 8. 23.
카페의 낮과 밤 강남 어느 사무실 자문역으로 나갈 때 생각한 것 하나는, 내가 만약 그런 곳에 집이 있다면 나는 하루 24시간 내내 흥분된 상태에서 지낼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그래서 전철을 타고 먼 길을 돌아와 저녁 내내 쉬면서 그 거리를 떠올리면 '이 시간에도 사람들 발길이 끊이질 않겠지.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복작거리는 가게도 있겠지.' 싶은 것이었고, 이렇게 돌아와서 저녁 몇 시간을 쉬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그렇지? 이 나이에 그 긴 저녁 시간을 집에 들어와 쉬지 않고 뭘 그리 떠들어대고 있겠는가.       그 느낌은 강남 같은 곳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 지금도 여전하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서 혹 이젠 강남 거리들도 저녁만 되면 여기처럼 조용한 거리로 변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2024. 8. 19.
이 또한 그리워질 '무인 로봇 카페' 진짜  24시간 열려 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여인이 기다리던 그런 날들을 떠올린다면 실망스럽고 허탈해진다.주로 재즈 아니면 재즈풍 가요가 그 24시간을 채워주는 것 말고 다른 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주문 키오스크 앞에 서서 손가락 그림("여기를 터치하세요")을 따라가면 주문이 이루어진다. 식당에서 테이블 위 키오스크를 작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비용을 사전에 결제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 음료의 비용은 종류에 따라 3,000원~4,000원이다. 주문이 이루어지면 저 '로봇'(화면 중앙에서 두 눈을 뜨고 고개를 쳐들고 있는 물체)이 일을 시작한다.간간히 이런 방송이 들린다(단어나 자구 하나하나가 다 정확한 건 아니다)."음료를 제조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로봇은 음료를 준비할 자리에 컵 .. 2024. 8. 16.
내가 만난 여인들 그 옷가게 키 크고 조용한 여주인은 내가 엷은 청회색 줄무늬 상의를 입자 미소를 지었다.잠깐 너무 쉽게 정했나 싶었지만 그대로 입고 나왔다.교원들이 여러 룸으로 나뉘어 세미나를 개최하는 곳이었다.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모임은 아니었지만 어느 룸 맨 뒷자리에 앉아 기다렸다.잠시 후 도착한 강사는 말수가 적고 정숙하던 여교사였는데 그때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나를 발견하고 조용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 두어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발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교재만 가지고 그곳을 나왔다.아주 두꺼운 책은 아니어도 이제 손에 든 책이 여덟 권이나 되었다.일부러 좀 후진 곳을 문화의 거리라고 부르기로 했을까? 파도가 심하면 문앞까지 바다일 듯한 '문화의 거리' 한 허름한 여인숙에서 쉬다 나왔는데 .. 2024. 8. 14.
새들의 아침 뭐라고들 하는지 알 길이 없다.한낮이나 저녁에는 저렇게 저러질 않으니 아침이라고 그러는 건 분명한데 그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전에는 새들이구나, 새들이 짖어대는구나, 했을 뿐이었고, 지금은 저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도 알 수가 없으니 이래저래 나는 별 수가 없다.나는 사실은 시시하다. 2024. 8. 11.
내가 싫어하는 것 나는 좋아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지금은?거의 다 잃었고, 의미를 상실하기도 했다. 그만큼 의욕도 별로 없다.싫어하는 건 꽤 있다.그중 한 가지는 전에도 방황했던 바로 거기 어디쯤에서 다시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이다. 그 방황, 그 길이 싫다.그런 꿈을 꾸게 되면 아, 어쩌다가 또 이 꿈을 꾸게 되었을까 생각하며 헤맨다. 2024. 8. 9.
입추가 분명하다는 일사불란한 주장 귀뚜라미들은 왜 이렇게 어두운 밤에 저렇게 노래할까?어두워야 노래가 잘 되나?공통으로 무슨 부끄러운 일 있나? 어제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던 저 합창이 오늘 저렇게 시작된 건 입추가 왔다는 걸 '주장'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저것들은 일단 정확하다. 유감스러운 것은 어둠 속에서 들을 땐 합창이긴 해도 "또르 또르 또르..." 정확하게 들렸는데 녹음해 와서 들어보니까 완전 '떡'이 되어 왁자지껄 무슨 소리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정확성을 자랑하는 저것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열대주(晝) 열대야(夜)가 거의 한 달이나 계속되었는데 일단 올해는 이렇게 지나가는 것 같다.내년은 내년이다. 그때 가서 걱정해도 좋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2024. 8. 6.
이 하루하루 나는 종일 몇 마디 말을 하지 않는다.그 몇 마디 때문에 나의 하루는 길어진다.그렇지만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를 마련할 때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는 걸 의식한다.눈 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날의 그 시간이 머릿속에 엊그제 일처럼 찍혀 있는 날짜를 따져보면 이미 다섯 달이 지났고, 다시 5개월쯤 지나면 또 눈이 내리게 된다는 걸 생각하면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시간과 순간의 의미이다. 2024. 8. 1.
사람 구경 '그들은 남들을 보고 또한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서둘러 성당으로 갔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이탈리아')에서 이 문장을 봤다.요즘 내가 밖에 나갈 때의 이유 중 반은 사람 구경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파트에서는 일단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내 호기심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가에 미친다. 하다못해 편의점에 다녀올 때도 그렇다. 누구를 만나도 만난다.'만난다'? 구경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다. 그 재미가 괜찮은 것이었는데 저 문장을 보고는 나 자신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물론 그들도 나를 슬쩍 쳐다보며 '저렇게 허접한 노인도 여기 사는구나' 하겠지만) 일방적·이기적으로 '사람구경'에 몰입한다는 걸 깨닫게 .. 2024.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