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진짜' 강아지인데 태엽을 감아 놓으면 "멍! 멍!" 짖으며 방바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하얀 장난감 강아지 같았다.
너무 더워서 일거리를 가지고 냇가로 나온 할머니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왜 기웃거리고 있느냐"는 듯 내 오른쪽에서 녀석을 내려다보는 노인을 부릅뜬 두 눈으로 꾸짖고 있는데, 딴에는 앙칼지게(그래봤자 앙증맞게, 그러니까 귀엽게) 짖어대는 중이었다. 하도 용을 써며 짖어서 앞뒷발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번갈아 뛰어올랐다. 저게 어떻게 무슨 짐승이나 새를 쫓을 때 한 발을 쾅 쾅 구르며 위협하는 사람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강아지는 한 발로 구르는 게 아니라 두 발, 아니 네 발을 다 써서 그렇게 구르며 호통을 치고 있어서 더욱 앙증맞고 귀엽고(딴에는 '늠름하게'!) 그래서 '조것 봐라~' 싶었고, 할머니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참 보기 좋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녀석은 혼신을 다해 내 옆의 노인을 꾸짖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새로 도착한 내가 핸드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다행이다 싶었고,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아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저런 짐승이나 사람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개는 정신은 있지만 영혼은 없다? 우습다. 무슨 영혼이 사람에겐 있고 개에게는 없겠나. 참 같잖은... 사람이나 개돼지나 같다고 하면 체면 구기는 일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하기로 정했겠지?
꼴에 체면은 무슨...
개는 그 마음이 변치 않는다. 사람은?
사람은 마음도 변하고 숱한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부모형제고 뭐고 힘이 없거나 돈 없는 사람 괄시하고 업신여기고 내리누르고 죽이고 살려주고... 온갖 나쁜 짓을 가려가면서 해대는 사악한 동물이다.
참 같잖은 호모 사피엔스.
어쩌다가 이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점령하게 되었을까?
개는 특별대우를 받게 되었지만 소돼지나 닭오리 같은 건 태어나자마자 돌아설 수도 없고 일어섰다 앉았다 두 가지밖에는 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서 평생 젖이나 만들고 알이나 새끼 낳고 그러다가 좀 자라면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밖으로 끌려나가 도살장으로 직행해서 아름다운 크기와 모양으로 잘려 식당으로 어디로 팔려가는 고기가 되고 만다.
그 소나 돼지와 달리 호모 사피엔스는 이젠 태어나서 나이 들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게 싫어서 곧 고장 난 부분은 갈아 끼우며 '영원히 죽지 않는 사이보그'가 된다니까 말하자면 '영원히 떵떵거리는 신'이 되어 병든 지구 어느 곳 혹은 달이나 화성 같은 곳에 가서라도 잘들 살겠지?
실컷 한번 살아보겠지.
그럼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사이보그들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사이보그니까 정신만 있고 영혼은 없을까? 그럼 그들 말에 따르면 짐승에게는 정신만 있는데 비해 정신과 영혼을 다 갖추고 살아가는 지금의 이 사람들이 결국 정신만 있는 짐승처럼 된다는 이야기인가? 죽지도 않는다니까 영혼 같은 건 필요도 없겠지?
일전에 한겨울에 누군가 어미개와 새끼를 집어넣은 박스를 산기슭에 버리고 가서(그 사람도 한창 기분 좋을 때는 그 개를 아기처럼 안고 다녔을 텐데...), 배가 고파 온갖 쓰레기를 먹고 죽어버린 새끼의 사체 주변을 맴돌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미개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사시나무 떨 듯 그렇게 푸르르 푸르르 떨다가도 정신을 차려서 얼어붙은 새끼의 사체를 핥아주고 있었다.
나중에 구조되어 병원으로 갔는데 그 어미개는 ('고딩엄마'처럼) 이제 겨우 한 살이라고 했고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다. 양호할 수밖에. 다 정신과 영혼에 달린 일이고 새끼의 사체를 지키고 핥아주어야 하니까 결코 아파서는 안 되었겠지.
영혼 좋아하는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번엔 뭐라고 할까? 그건 본능이었다고 하겠지? 말을 할 줄 아는 단 하나의 종이니 무슨 설명을 못하겠나. 아, 지긋지긋한 호모 사피엔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인간에게는 몰라도 저 개들에게는 영혼이 있겠구나 싶었고,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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