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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영혼 ② 호통치는 강아지

by 답설재 2024. 3. 4.

 

 

 

살아 있는 '진짜' 강아지인데 태엽을 감아 놓으면 "멍! 멍!" 짖으며 방바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하얀 장난감 강아지 같았다.

너무 더워서 일거리를 가지고 냇가로 나온 할머니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왜 기웃거리고 있느냐"는 듯 내 오른쪽에서 녀석을 내려다보는 노인을 부릅뜬 두 눈으로 꾸짖고 있는데, 딴에는 앙칼지게(그래봤자 앙증맞게, 그러니까 귀엽게) 짖어대는 중이었다. 하도 용을 써며 짖어서 앞뒷발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번갈아 뛰어올랐다. 저게 어떻게 무슨 짐승이나 새를 쫓을 때 한 발을 쾅 쾅 구르며 위협하는 사람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강아지는 한 발로 구르는 게 아니라 두 발, 아니 네 발을 다 써서 그렇게 구르며 호통을 치고 있어서 더욱 앙증맞고 귀엽고(딴에는 '늠름하게'!) 그래서 '조것 봐라~' 싶었고, 할머니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참 보기 좋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녀석은 혼신을 다해 내 옆의 노인을 꾸짖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새로 도착한 내가 핸드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다행이다 싶었고,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아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저런 짐승이나 사람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개는 정신은 있지만 영혼은 없다? 우습다. 무슨 영혼이 사람에겐 있고 개에게는 없겠나. 참 같잖은... 사람이나 개돼지나 같다고 하면 체면 구기는 일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하기로 정했겠지?

꼴에 체면은 무슨...

개는 그 마음이 변치 않는다. 사람은?

사람은 마음도 변하고 숱한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부모형제고 뭐고 힘이 없거나 돈 없는 사람 괄시하고 업신여기고 내리누르고 죽이고 살려주고... 온갖 나쁜 짓을 가려가면서 해대는 사악한 동물이다.

참 같잖은 호모 사피엔스.

어쩌다가 이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점령하게 되었을까?

 

개는 특별대우를 받게 되었지만 소돼지나 닭오리 같은 건 태어나자마자 돌아설 수도 없고 일어섰다 앉았다 두 가지밖에는 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서 평생 젖이나 만들고 알이나 새끼 낳고 그러다가 좀 자라면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밖으로 끌려나가 도살장으로 직행해서 아름다운 크기와 모양으로 잘려 식당으로 어디로 팔려가는 고기가 되고 만다.

그 소나 돼지와 달리 호모 사피엔스는 이젠 태어나서 나이 들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게 싫어서 곧 고장 난 부분은 갈아 끼우며 '영원히 죽지 않는 사이보그'가 된다니까 말하자면 '영원히 떵떵거리는 신'이 되어 병든 지구 어느 곳 혹은 달이나 화성 같은 곳에 가서라도 잘들 살겠지?

실컷 한번 살아보겠지.

그럼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사이보그들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사이보그니까 정신만 있고 영혼은 없을까? 그럼 그들 말에 따르면 짐승에게는 정신만 있는데 비해 정신과 영혼을 다 갖추고 살아가는 지금의 이 사람들이 결국 정신만 있는 짐승처럼 된다는 이야기인가? 죽지도 않는다니까 영혼 같은 건 필요도 없겠지?

 

일전에 한겨울에 누군가 어미개와 새끼를 집어넣은 박스를 산기슭에 버리고 가서(그 사람도 한창 기분 좋을 때는 그 개를 아기처럼 안고 다녔을 텐데...), 배가 고파 온갖 쓰레기를 먹고 죽어버린 새끼의 사체 주변을 맴돌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미개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사시나무 떨 듯 그렇게 푸르르 푸르르 떨다가도 정신을 차려서 얼어붙은 새끼의 사체를 핥아주고 있었다.

나중에 구조되어 병원으로 갔는데 그 어미개는 ('고딩엄마'처럼) 이제 겨우 한 살이라고 했고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다. 양호할 수밖에. 다 정신과 영혼에 달린 일이고 새끼의 사체를 지키고 핥아주어야 하니까 결코 아파서는 안 되었겠지.

영혼 좋아하는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번엔 뭐라고 할까? 그건 본능이었다고 하겠지? 말을 할 줄 아는 단 하나의 종이니 무슨 설명을 못하겠나. 아, 지긋지긋한 호모 사피엔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인간에게는 몰라도 저 개들에게는 영혼이 있겠구나 싶었고,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