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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오늘의 운세'

by 답설재 2024. 3. 11.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오늘의 운세'를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별 희한한 걸 다...'

 

운세가 들어맞든 엉터리든, 뜬구름 잡는 식이지만 어렴풋이나마 그럴듯하든 영 어긋난 것이든 일단 ─지금까지 들어 온 바로는─ 그 사이트에 가입할 때 적어 넣은 내 생년월일이 음력으로 된 것이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 운세라는 것을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일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혹 양력으로 된 기록들을 일일이 음력으로 환산해서 찾은 운세라고 하자. 그래봤자 그렇다. 우리나라 나이가 고무줄 나이인 데다가 내 실제 생년월일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비밀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내 선친은 내가 태어난 1년 후에 나를 호적에 올렸고 그때 내 음력 생일로 신고했는데 그게 양력으로 등록된 것이다.

 

나는 사실은 내 사주조차 모른다. 생시(生時)를  잊은 것이다. 결혼할 때는 누가 내 사주를 적어서 처가로 보냈겠지만 나는 그걸 궁금해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고 어릴 적 부모의 귀띔조차 잊고 말았다.
아쉬울 것도 없다. 그동안 내 생시를 묻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내 사주팔자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냥 이대로 허용되는 시간을 살면 그만이니까...
 
그런 차에 친절하게도 '당신의 오늘의 운세'라니.^^
시큰둥해하거나 말거나 아침마다 보여서 심심풀이로 한번 읽어보았더니 누군가의 운세를 대신 좀 훔쳐보는 것이긴 하지만 꽤 괜찮은 운세라고 생각했고, 생뚱맞긴 하지만 그 운세를 내가 가져도 좋겠다는 느낌이어서 그 이튿날 아침 나는 또 그 운세를 읽었고, 그런 식으로 이제는 아침마다 확인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그 운세는  한동안 줄곧  썩  괜찮은  것이었고 그동안  내 하루하루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아닌가 싶어서 우습지만 나는 이 '오늘의 운세'를 선물처럼 여기게 되었고, 마침내 완전 내 것으로 삼게 되었는데, 3월 9일, 그러니까 지난주 토요일에는 상황이 좀 묘하게 되었다.

 

 

오늘은 성과 없는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는 영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여기서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었다간 그나마 그 사람들과도 원수를 지게 될 것입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면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성과가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마세요. 내일도 여전히 오늘과 같은 태양이 뜹니다.

 

 

얼마나 간곡한 부탁인가.

더구나 나는 그 토요일에 누군가에게 중요한 부탁을 해둔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은 금요일 오후에 보낸 내 문자 메시지를 밤이 깊도록 열어보지도 않았다.

일이 다 틀어지는가 보다 싶은 상태에서 토요일 아침이 밝았는데, 운세와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상대방은 일찍 전화로 일꾼 두 사람을 보낸다고 했고, 신경 쓸 일도 없으니까 그냥 기다려 달라고 했고, 점심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이 들어오더니 내가 부탁한 일을 장장 네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조용히 성심을 다해 처리해 주었고, 내가 유념할 일을 부탁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그 '운세' 때문에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 해 놓은 일이지만 밤이 깊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있지 않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어제,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 나는 엊그제 오후에 한 일들이 완벽하게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운세'는 뭘까?

성과 없는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나더러 조심하라고 그랬던 것일까?

'엉터리야!'

그러고 싶진 않았다.

틀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한 번 틀렸다고 앞으로는 날마다 틀릴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지켜보기로 하자.

어쨌든 고맙고 재미있는 일이니까.

어쩌면 생시도 모르는,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내 사주팔자가 고맙고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