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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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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인생길 '고달픈 인생길' 이렇게 써놓고 어이없게도 일단 미소를 짓는다. 하기야 삶이란 결국 거의 슬픔으로 요약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 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는데 한번 모이고자 한다는 연락을 하면 늘 호의적이던 평소의 그분을 생각하니까 슬픔이 밀려왔다. 1월 22일 계묘년 설날 첫새벽에는 두 자루의 꿈을 꾸었다. 그믐날 저녁에는 '설날에라도 좋은 꿈을 꾸었으면' 싶어했는데 헛일이었다. 먼저 꾼 꿈은 절벽 같은 산을 오르내리는 꿈이었다. 애써서, 천신만고로 오르내리다가 '이건 꿈이라도 너무나 힘들구나!' 하며 깎아지른듯한 산마루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고 했을 때 기가 막히고 마음이 비통한 것은 비록 아난다 등 제자들만은 아니어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 2023. 3. 3.
어머니의 영혼 꿈속에서 이미 저승으로 간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어머니도 대화는 나누었는데 손을 잡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표독스러운 여신 키르케를 잘 다루어 1년간 꿈결 같은 대접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그 여신의 안내로 저승세계를 찾아가게 되고 어머니도 만납니다. "오, 아들아, 어찌하여 이 어두운 세계로 들어왔단 말이냐. 너는 분명 살아있는 몸이 아니냐. 그런데 트로이에서부터 여태껏 바다를 헤매고 돌아다녔단 말이냐? 이제까지 이타카에는 전혀 가지를 못한 것이냐." "어머님, 제가 귀국하기 위해 이렇듯 테이레시아스 망령에게 신탁을 받으러 왔습니다. 트로이를 떠난 후 겹친 재앙 때문에 이렇듯 .. 2021. 12. 15.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행 정말인지 몰라도 20년을 키우면 주먹만 하게 된다는 마리모 앞쪽으로 넓게 내려다보여서 비행기 조종석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렇지 않을까 싶은 곳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의 왼쪽, 선생님은 오른쪽에서 1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냈습니다. 다 지내놓고 보니까 우리는 서로 옆 교실에 있었습니다. 어떤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곳에 있었다고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1년을 보낸 그곳은 정녕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지낸 교실들은 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을까요? 이제 나는 그곳을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 대한 걱정이 깊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자칫하면 그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게.. 2020. 7. 2.
'설날' 혹은 '새해' 1 섣달그믐에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여행단을 따라가다가 일행을 놓쳤는데 희한한 여성 집단에게 붙잡혀 인질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식사비 일체를 내가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기가 막혀하는데 그 집단의 대표인 듯한 여성이 식사를 시작하려다가 기꺼이 식사비를 내겠다고 했는지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결코 그런 적 없다고 했더니 그 수십 명이 모두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2 특히 섣달 그믐밤에는 좋은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평생 그런 기대를 하며 지냈습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한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새해 새벽에 좋은 꿈을 꾸면 일 년 내내 행복할 것이라는,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앞두거나 섣달그믐쯤이면 좋은 꿈을 꾸라는 덕담을 하는 .. 2020. 2. 1.
오십 년 전 # 1. 이우학교 방문 이우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단은 내일 아침 일찍 개별로 그 학교 앞에 집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시각에 도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걱정스러웠다. 새벽에 일어나서 출발하는 방법, 아예 오늘 오후에 그 학교 인근의 숙소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는 방법을 생각했고, 아무래도 오늘 출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우학교? 내가 교장이었을 때, 나는 내가 직접 가 본 적이 없는 이우학교에 우리 학교 교감과 부장교사 등 열세 명을 보내 관찰하고 오게 했었다. 그때 나는 학교에 남아 있었는데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가 그 학교를 참관하는 중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었다. '교장선생님꼐서 이 학교 교장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말하자면 내가 강조하는 것들을 그 학교에서 실제로 볼 수 .. 2019. 9. 28.
새해맞이 꿈 1 인터뷰를 마칠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는 연예인이 있다. 그쪽에서 나를 알 리가 없는데도 실없이 '인사를 하는군' 하고 그 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 12월 말부터 1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그런 인사는 잠시 주춤하다가 설날을 전후하여 또 이어진다. 어처구니가 없다. 무슨 새해가 그렇게 오래 시작되는가 싶은데, 연예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근래에는 새해 인사를 하는 연예인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새해가 그렇게 오랫동안 '시작'되어도 나는 정신을 좀 차리는 편이다. 아직도 음력이라니, 어쩌면 끈질긴 것일까? 새해맞이 꿈을 굳이 음력 섣달그믐 밤에 꾸는 것이다. 2 오랫동안 그 꿈은 대체로 어수선한 것들이었다. 버젓한(?) 노인은 아니더라도 노인은 노인이니까 풋풋한 꿈을 꿀 리가 없고 그런.. 2018. 2. 18.
이슬방울에 햇살이 지나는 순간 #1 여직원 두엇이 앉아 있는 강당 출입구 안내 데스크를 지나자 길을 안내하는 학생이 단정하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은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생각도 없이) 관례에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복도를 지나자 잘 차려입어서 더욱 아름다운 L위원장이 꽃다발과 무슨 두루마리 같은 걸 가지고 분주히 나오고 있었다. 나를 맞이하려고 그렇게 나오는 건 보나 마나이고 내가 알은체 했는데도 '저렇게 허접한 차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지나쳐 가고 있었다. #2 이동하라는 발령을 받고 나서 그동안 근무한 곳의 주변을 살펴보며 그곳 경치가 아름답다는 걸 발견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도 한 풍경에 감탄하며 나중에 정선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멋진 사진이 될 듯한 곳들을.. 2017. 12. 10.
흐트러진 시계 바늘 명패가 보이지 않았다. '회복'이면 좋겠다. 다음은『現代文學』 7월호. 조해진 단편소설 「눈 속의 사람」 첫 대문이다. 30분 뒤에 출발하는 태백행 버스표 두 장을 사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데 이곳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막연히 여진을 기다렸던 7년 전의 겨울이 떠올랐다. 그때 내 시계엔 숫자와 눈금이 없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돌연!……. '아, 그래! 그런 꿈을 여러 차례 꾸었지!' 손목시계의 바늘들이 모두 빠지고 흐트러져서 그것들을 제자리에 꽂으려고 애쓰는 꿈. 대충 맞추었는가 싶어 하면 와르르 다시 무너지거나 제 시각을 가르치지 못하거나……. 아예 영 맞추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 그 꿈들을 잊고 지낸 것이다. 마음이 자꾸 흐트러지던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이 지나간 .. 2016. 9. 1.
"이거 네가 그렸지?" "이거 네가 그렸지?" Ⅰ "이거 네가 그렸지?" 어머니는 그렇게 물을 것입니다. 저승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벌써 44년째입니다. 48세의 초겨울, 노란 하늘을 날아 그곳으로 갔으니까 기다리다가 지쳤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생전에도 나 때문에 지쳤고, 죽어서도 나 때문에 지쳐야 하는 운명입.. 2016. 7. 4.
2015년, 아쉬움과 미련에 관한 꿈들 2015.10.10(새벽) 교실 정리 교실을 정리하고 앉아 있었다. 서너 개의 수반에서 식물들이 제법 잘 자라고 있고, 그 중 하나의 수반에는 기묘하게 생긴 무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서울역 휴게실 같은 곳에서 대학 동기들 대여섯 명이 한담을 나누는 장면으로 바뀌었는데, 커다란 화분의 초록잎이 사람의 손길이 가까이 가면 홍색으로 변하는 걸 신기해하고 있었다. 나도 손을 대어보며 '이 식물은 흡사 사람처럼 부끄러워하는구나' 생각하였다. 꿈에서 깨어나며 '최근에는 교실을 정리하는 꿈을 자주 꾼다.'고 생각했다. 2015.11.3.0:15 "엄마, 엄마!" 정체가 불분명한 두어 명으로부터 어떤 압박을 받고 있었다. "아직 마스크도 벗지 않았잖냐?"고 항변하며 그 마스크를 벗는데 안경이 걸려 함께 벗겨졌다.. 2015. 12. 31.
2015년, 방황과 탐색의 꿈들 2015.7.21(화) 전문성? 협회 간부와 직원 몇 명이 환영하면서 자료의 검토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바꾼 용어는 화이트로 지워 공백이 되어 있었다. 정갈하게 다루긴 했어도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할 수 없는 자료였다. 짐작하기로는 K사 원로 L이 검토한 것 같았다. 자료관에 들어갔더니 예전에 내가 주관하여 만든 자료들도 상당한 양이 보관되어 있는데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한꺼번에 챙겨 보기에는 무리였다. 데이터를 과학적으르 분석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 늘 건성으로 정리하고 만 자신을 한탄스러워했다. 협회측이 보여주는 그 자료를 하나하나 분석하다가 잠이 깨었다. 늦잠이었다. 2015.7.22(수) 형상 몰아내기 벽쪽으로 커텐에 가려져 있는 무슨 형상을 보았다. 불상처럼 생겼지만 화려한 치장을 .. 2015. 12. 3.
2015년, 불안하고 초조했던 날들의 꿈 2015.1.1(목). 새벽. 아직도 학교 그리고 계획 이야기 멋진 양수용 책상 앞에 교감인듯 한 이가 서 있다. 연간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그에게 수정에 필요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나는 교사 신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권위가 좀 있는 입장이어서 그도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계획서는 일반적, 전통적인 모양새와 달리 표 안에 다시 사진과 도표들도 들어 있었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조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고 내용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또 살펴보겠다고 하자, 그는 "예, 예, 알았습니다―." 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 태도로 보아 "당신이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실없.. 2015.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