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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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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꿈" 한창 일할 때는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에 두고(그 일이 뭔가를 나는 밝힐 수 없다) '나중에 시간 있을 때 한번 해봐야지!' 했었다. 그때는 심지어 '1주일만 주면서 하고 싶은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면 책이라도 한 권 쓰겠다'고 장담을 했었다.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정말 그렇다고도 했지만 빙그레 웃기도 했다.왜 웃었을까?'책은 무슨...' 하고 비웃었을 수도 있고, 자신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이니 어쩔 수 없어 미소를 지었을 수도 있다. 나이가 일흔 가까워지면서 나는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나는 메말라 가는구나! 아, 이미 거의 다 말랐구나!뿌리가 있는 나무는 그 가지가 결코 메마르지 않는다. 뿌리가 드러나버리면 나뭇가지는 이내 푸석푸석해지고 만다. 내가 그.. 2024. 12. 25.
내가 만난 여인들 그 옷가게 키 크고 조용한 여주인은 내가 엷은 청회색 줄무늬 상의를 입자 미소를 지었다.잠깐 너무 쉽게 정했나 싶었지만 그대로 입고 나왔다.교원들이 여러 룸으로 나뉘어 세미나를 개최하는 곳이었다.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모임은 아니었지만 어느 룸 맨 뒷자리에 앉아 기다렸다.잠시 후 도착한 강사는 말수가 적고 정숙하던 여교사였는데 그때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나를 발견하고 조용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 두어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발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교재만 가지고 그곳을 나왔다.아주 두꺼운 책은 아니어도 이제 손에 든 책이 여덟 권이나 되었다.일부러 좀 후진 곳을 문화의 거리라고 부르기로 했을까? 파도가 심하면 문앞까지 바다일 듯한 '문화의 거리' 한 허름한 여인숙에서 쉬다 나왔는데 .. 2024. 8. 14.
내가 싫어하는 것 나는 좋아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지금은?거의 다 잃었고, 의미를 상실하기도 했다. 그만큼 의욕도 별로 없다.싫어하는 건 꽤 있다.그중 한 가지는 전에도 방황했던 바로 거기 어디쯤에서 다시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이다. 그 방황, 그 길이 싫다.그런 꿈을 꾸게 되면 아, 어쩌다가 또 이 꿈을 꾸게 되었을까 생각하며 헤맨다. 2024. 8. 9.
엄마, 엄마, 엄마, 엄마 2024년 6월 4일 화요일 맑음. 엄마는 팔을 뻗으며 다가왔다.생시보다 눈동자가 뚜렷해보이고 눈가가 촉촉했다.사이를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연이어 네 번 "엄마"를 부르고 두 손으로 엄마의 두 손을 잡았다.아쉽지만 그게 끝이었다.손을 잡으며 잠에서 깨어나버렸고, 누운 채 엄마를 생각했다.우리는 52년 전에 영영 헤어졌다. 2024. 6. 4.
내가 듣는 것들 소식 없다고 서운했겠지. 다시 올 수 없는 날들의 일이야. 저기 있을 땐 음악을 들어. 여기 있을 땐 책을 '듣고'. 그것뿐이야. 다른 일은 없어.저기 있을 땐 또 생각하지. 여기선 음악을 '듣고' 거기 가면 책을 듣는다고. 다른 일은 없어. 세상의 일도 내 일도 나의 것이 아니야. 음악은 왜 들어? 책은 왜 들어? 그렇게 물으면, 둘 다 같은 거야. 음악은 지금의 나와 지난날들, 더러 앞으로의 내가 이리저리 떠오르는 것이고, 책은 구체적이어서 '그래, 세상에는 그런 일이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그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 정도야.결국은 같은 거야. 둘 다 듣고 나면 그만이야. 그것들은 다 '순간'이야. 앞으로도 소식 없을 거야. 나로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2024. 5. 10.
한강호텔, 옛 생각 병원에 갈 때는 올림픽도로를 타고, 병원에서 올 때는 강변북로를 탄다. 비교적 길이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돌아올 때의 강변북로는 고속도로와 거의 같다. 강변북로를 오갈 때는 꼭 한강호텔과 워커힐을 찾아본다. 워커힐은 유명했던 호텔이고 한강호텔은 예전에 고 강우철 교수, 김용만 편수관 등 여러 사람과 사회과 교과서 편찬을 위한 회의 장소로 가장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병원에서 돌아올 때는 한강호텔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놓쳤나? 워커힐은 보였는데...' 기이한 느낌이 있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아, 이런! 그 호텔이 사라지고 그곳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뉴스가 보였다. 평당 1억은 되는 아파트일까? 그러고 보면 그때도 그 호텔은 좀 한산한 편이어서 작업하기에는 최.. 2024. 1. 21.
꿈, 어쩔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사나흘 전에는 새로 배치된 학급의 아이들 앞에서 교사용 책상을 정리하는 꿈을 꾸었다. 내 경험 속 아이들은 당연히 긴장 상태였겠지, 화가들이 흑백으로 그린 '말없는 군중'처럼 혹은 무대 배경처럼 저쪽에서 내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는 책상 설합들을 일일이 열어보고 거꾸로 닫힌 것은 새로 닫으며 좀 불편한 느낌이었다. 어젯밤에 또 학교 꿈을 꾸었다. 어딘지 한동안 헤매면서 이제는 느낌으로 찾아다니지 말고, 대중교통 노선을 암기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어서 연수회장을 빠져나오는 장면, 뭔가 잊고 나온 게 있어 다시 들어갔다가 강의 중인 강사를 쳐다보고 나와서 각자 모종의 주장들을 내세우는 교사들과 함께 걷는 장면, 학교 안으로 들어가 돌아다니는 장면이 이어졌다. 우리 학년이 담당한 구역의 환경구성.. 2023. 12. 2.
부적은 열어보면 안 돼? 아이들 보라고 만들어낸 그림책을 사서 혼자 보고 있다. 온갖 도깨비들이 등장한다. 날쌔고 장난 잘 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는 그런 도깨비들을 좋아한다. 죽어서 가면 처음에 저승사자를 할래, 도깨비를 할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까 봐 고민이다. 어느 것을 하나... 고맙게도 부록으로 4종의 행운의 부적도 있다. 책 표지에 이미 저렇게 표시되어 있어도 그걸 펴보진 않았는데 어제저녁에 별생각 없이 열어봤고 그 순간 후회했다. '오늘 밤 좋은 꿈 꿀 운'은 맨 위에 있으니까 비닐봉지를 열지 않아도 다 보였고, 그 아래에 '용돈 운' '오늘 먹을 운' '게임!! 원 없이 하는 운'이 차례로 포개져 있었는데 용돈 운, 먹을 운, 게임 운이라니 내가 그런 걸... '이 속엔 또 어떤 행운이 숨어 기다리고.. 2023. 11. 2.
지나가버린 꿈의 나날들 나는 지금 자그마한 아파트에 삽니다. 처음엔 돌아눕기도 어렵겠다, 숨 쉴 곳도 없다 싶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더니 지금은 이만해도 괜찮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 아파트에서 이렇게 작은 집들은 3개 동입니다. 어쩌다가 젊은 부부나 어린아이와 사는 집도 있지만 다 늙어서 부부가 등산이나 다니거나 뭘 하는지 둘이서 들어앉아 있는 집이 많습니다. 젊은 아주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잠깐이라도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늙어버린 부부가 타면 그들끼리나 서로 간에나 아무 말이 없고 무표정합니다. 주차장에 내려가보면 평일인데도 차가 별로 빠지지 않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 오는 집을 봐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들어갈 공간이 없어 버려져야 마땅한 서장, 저렇게 어처구니없이 큰 액자 같은 물건이.. 2023. 9. 3.
고달픈 인생길 '고달픈 인생길' 이렇게 써놓고 어이없게도 일단 미소를 짓는다. 하기야 삶이란 결국 거의 슬픔으로 요약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 전 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는데 한번 모이고자 한다는 연락을 하면 늘 호의적이던 평소의 그분을 생각하니까 슬픔이 밀려왔다. 1월 22일 계묘년 설날 첫새벽에는 두 자루의 꿈을 꾸었다. 그믐날 저녁에는 '설날에라도 좋은 꿈을 꾸었으면' 싶어했는데 헛일이었다. 먼저 꾼 꿈은 절벽 같은 산을 오르내리는 꿈이었다. 애써서, 천신만고로 오르내리다가 '이건 꿈이라도 너무나 힘들구나!' 하며 깎아지른듯한 산마루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겠다고 했을 때 기가 막히고 마음이 비통한 것은 비록 아난다 등 제자들만은 아니어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 2023. 3. 3.
어머니의 영혼 꿈속에서 이미 저승으로 간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어머니도 대화는 나누었는데 손을 잡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표독스러운 여신 키르케를 잘 다루어 1년간 꿈결 같은 대접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그 여신의 안내로 저승세계를 찾아가게 되고 어머니도 만납니다. "오, 아들아, 어찌하여 이 어두운 세계로 들어왔단 말이냐. 너는 분명 살아있는 몸이 아니냐. 그런데 트로이에서부터 여태껏 바다를 헤매고 돌아다녔단 말이냐? 이제까지 이타카에는 전혀 가지를 못한 것이냐." "어머님, 제가 귀국하기 위해 이렇듯 테이레시아스 망령에게 신탁을 받으러 왔습니다. 트로이를 떠난 후 겹친 재앙 때문에 이렇듯 .. 2021. 12. 15.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행 정말인지 몰라도 20년을 키우면 주먹만 하게 된다는 마리모 앞쪽으로 넓게 내려다보여서 비행기 조종석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렇지 않을까 싶은 곳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의 왼쪽, 선생님은 오른쪽에서 1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냈습니다. 다 지내놓고 보니까 우리는 서로 옆 교실에 있었습니다. 어떤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곳에 있었다고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1년을 보낸 그곳은 정녕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지낸 교실들은 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을까요? 이제 나는 그곳을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 대한 걱정이 깊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자칫하면 그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게.. 2020.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