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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머니의 영혼

by 답설재 2021. 12. 15.

 

 

꿈속에서 이미 저승으로 간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어머니도 대화는 나누었는데 손을 잡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표독스러운 여신 키르케를 잘 다루어 1년간 꿈결 같은 대접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그 여신의 안내로 저승세계를 찾아가게 되고 어머니도 만납니다.

 

"오, 아들아, 어찌하여 이 어두운 세계로 들어왔단 말이냐. 너는 분명 살아있는 몸이 아니냐. 그런데 트로이에서부터 여태껏 바다를 헤매고 돌아다녔단 말이냐? 이제까지 이타카에는 전혀 가지를 못한 것이냐."

"어머님, 제가 귀국하기 위해 이렇듯 테이레시아스 망령에게 신탁을 받으러 왔습니다. 트로이를 떠난 후 겹친 재앙 때문에 이렇듯 헤매도 돌아다니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머님께서는 어찌된 일이십니까. 제가 떠날 때만 해도 건강하시던 분이 도대체 죽음의 운명이 왜 당신의 생명을 앗아갔단 말입니까? 그리고 또 아버님과 나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도 내 위신이 유지되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누구의 손에 그 왕관이 넘어가버렸는지요.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어머님, 무엇보다도 정숙한 제 아내 페넬로페와 나의 작은 아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내는 혹시 젊은 청혼자한테로 시집을 가버리지나 않았는지요?"

"그렇지 않단다. 그 애는 날마다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줄곧 너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단다. 또 너의 훌륭한 위신은 아직 그대로 유지되고 있단다. 그리고 아버님은 전과 다름없이 시골에 계시면서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계시지. 이제는 너의 귀국을 기다리다 지치고 가슴속의 비탄이 쌓여 어쩔 수 없이 괴로운 노년의 비탄에 접어드셨단다. 나 역시 너의 귀국을 학수고대하다가 이렇듯 때가 되어 저승길에 오른 거란다. 무서운 병이나 화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너의 분별력과 다정한 마음씨와 늠름한 모습들이 내 생명을 앗아가 버린 거나 다름없단다."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를 부둥켜안으려고 나는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지만, 잡히는 것이라고는 허공뿐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절망에 잠긴 목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어머님, 저승길에서나마 그리운 가슴에 묻혀 찢어지는 슬픔을 나눠보려는데 어찌 이토록 저를 붙잡아주지 않으십니까. 정녕 이것은 페르세포네 님이 나를 더욱 비탄에 빠지게 하려고 보내신 환상이던가요?"

"당치도 않은 소리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누구나 이곳에 오기 마련이란다. 일단 생기가 육신을 떠나버리면 영혼은 꿈이나 마찬가지로 허공을 떠다니는 거지. 그러니 너는 어서 태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도록 하라. 오, 불쌍한 내 아들! 온갖 재앙을 한 몸에 떠안은 가엾은 영웅이여!"(호메르스 《오디세이아》 김대웅 편역, 아름다운날 2018, 206~207).

 

나는 아버지하고는 꿈속에서 몇 번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꿈속의 대화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오십 년이 다 되어 최근에는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마흔여덟의 겨울, 노란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 살아 있다 해도 아흔일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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