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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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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을 믿어주기 바란다 오늘 눈이 왔다.많이 왔다.예보로는 아침나절 잠시 0.5cm쯤 내린다고 했다. 0.5cm라니, 혹 내리지 않으면 슬쩍 빠지려는 것이었겠지?그래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잠시가 아니라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2시까지 잠깐씩 두어 번 쉬고 그냥 펑펑 퍼부었다.분명히 그랬다. 그랬는데, 그 눈이 저녁나절에 모조리 다 녹았고 응달이고 어디고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4시쯤 광명 어느 학교 교장인 W가 전화를 해서 이곳엔 눈이 엄청 왔다니까 "정말요?" 하고 곧 딴 얘기로 넘어갔다.까마득한 선배 얘기여서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그 눈을 본 사람도 나밖에 없다.점심때 어디서 사람 소리가 좀 났지만 증거를 삼겠다고 그 사람을 찾아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세상 일이 거의 다 이렇다.오늘의 폭설(暴雪), 이 사진 .. 2025. 3. 29.
'샤갈의 마을에는 三月에 눈이 온다' 겨울이 오고 소한 무렵이 되면 춥다."절기가 얼마나 잘 맞아 들어가는지, 옛사람들의 예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그런 날 흔히 듣던 말이다.소한이 오기 전에 추위가 오면 "올해는 소한 추위를 당겨서 하네" 했고, 소한이 되어도 춥지 않으면 "올해는 소한 추위를 늦게 하네" 했다.그렇게 해서 소한 추위라는 건 맞지 않는 해가 없게 된다. 모든 걸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관점이 있다.유연성일까? 수동적일 수도 있고 수용적, 탄력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사회현상(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에 대해서도 그렇게 바라보면 더러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그런 관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너무 까칠하게 살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타이른다.공연한 소리를 해보는.. 2025. 3. 18.
또 눈... 눈이 거의 다 녹아서 일간 한번 가보자 했다가 또 연기했어.미안해.  눈 내리는 모습을 내다보고 있으면 김수영 시인의 「눈」이 떠올라.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궁금하지 않냐고?그걸 말이라고 해? 너에게로 가서 본 모습들 조금만 보여줄게.                   오늘은 한낮인데도 차갑지?며칠만 더 기다려 봐.입춘 지났잖아.이제 봄이야. 2025. 2. 7.
겨울이 온 날 밤, 이곳과 그곳에 바로 눈이 내렸네 아름답다.부질없다('허망하다'가 나을까? 모르겠다).부질없는 일들이다.아름다운 건 그런 것인가?모든 것이 그런가?모르겠다. 2024. 11. 27.
2024년 2월 25일(일요일) 눈 눈이 녹기를 기다려 들어왔는데 또 눈이 내렸다. 비로 시작했는데 눈으로 바뀌었고, 가늘던 눈발은 이내 폭설이 되었다. 가슴속에만 남아 있어 애써 감추며 살던 것들마저 잃어버린 나는 시인이 한계령을 넘으며 만나고 싶어 한 그런 눈은 생각할 것도 없다. 눈은 외로웠다. 올해의 마지막 눈일까? 이 겨울에는 이미 여러 번 내렸지만 알 수는 없다. 3월에 눈이 내린다고 해서 큰일 날 일도 없고 가슴 무겁게 하는 그 봄이 더디 온다고 해서 탈 날 일도 아니다. 2024. 2. 26.
2023년 12월 30일, 토요일, 눈 눈이 또 옵니다. 올해는, 예년 같으면 한두 번 올까 말까 한 12월에 엄청 옵니다. 오늘내일만 지나면 2024년인데 안 되겠다는 듯 마지막까지 눈으로 채웁니다. 펄펄 내리다가 지금은 그냥 조용히 퍼붓습니다. 한번 해보자는 건가, 잠시 그런 느낌도 있었습니다. 봄은 저 멀리서 오고 있겠지요. 나뭇가지가 봄에 피울 봉오리를 마련하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이 아파트에서 그걸 확실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목련입니다. 저 목련은 가지가 저렇게 옆으로, 아래로 뻗어서 사람들 머리 위로 휘영청 하얀 꽃을 늘어뜨립니다. 이제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으면 저 목련이 꽃봉오리를 준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목련 같은 것들에게는 정치도 없고, 무슨 철학, 교육, 문학, 윤리, 종교 같은 것도 없이 순하게 아름답게 피어나고 그.. 2023. 12. 30.
거기도 눈이 왔습니까? 일전에 L 시인이 올해는 첫눈이 자꾸 내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또 눈이 내렸습니다. 해가 중천에 올라온 것이 눈구름의 배경처럼 다 보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눈은 줄곧 내렸고, 한때 펑펑 퍼부어 오늘 오기로 한 친구에게 점심약속을 미루자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 조금만 조금만 하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눈은 그쳤는데 오늘 밤에 또 내린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폭설이 내릴 거라는 예보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의 일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내 친구는 점심을 먹으며 그게 일과가 되었다고 이야기해 놓고 조금 있다가 또 그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누구나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꾸하면서도 애써서 노년의 의미를 찾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회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고 그.. 2023. 12. 24.
백설난분분白雪 亂紛紛 2023. 1. 26.
이곳의 눈 그리운 곳의 눈 지금 그 아이를 그리워하듯 다시 이 날을 그리워 할 날이 오고 있겠지. 2022. 12. 14.
벚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리던 날 지난 13일 수요일, 겨우 사흘 전이었군요. 벚꽃잎이 휘날렸습니다. 눈 같았습니다. 바람 부는 날 첫눈 같았습니다. 벚꽃은 해마다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이제 놀라지 않아도 될 나이인데도 실없이 매번 놀라곤 합니다. '아, 한 가지 색으로 저렇게 화려할 수 있다니!' 그 꽃잎들이 아침부터 불기 시작한 세찬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져 마구 날아다녔습니다. 벚꽃잎들이 그렇게 하니까, 재활용품 수집 부대 속에 있던 페트병과 비닐봉지들도 튀어나와서 덩달아 날아다니고 함께 데굴데굴 굴러다녔습니다. 집을 나서서 시가지(다운타운)로 내려가는데 저 편안한 그네에는 몇 잎 앉지 않고, 그네가 싫다면 그냥 데크 바닥에 앉아도 좋을 텐데 하필이면 비닐창에 힘들여 매달린 것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도 물 .. 2022. 4. 16.
지난 3월의 눈 TV에선 오늘 상춘객이 넘쳐났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3월 19일, 저 산에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2022. 4. 3.
여기 이 세상에 눈 내리는 날 점심때쯤 눈이 내렸다. 하늘이 부옇긴 해도 구름 사이로 자주 햇빛이 비쳐 내려서 곧 그치겠지 했는데 두어 시간은 내렸고 쌓이진 않고 곧 사라졌다. 바람이 불면 눈송이들이 스스로 갈 길을 찾아가겠다는 듯 제각각 흩날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난분분 난분분'이란 말이 떠올랐지만 그건 '흩날려 어지럽다'(亂粉粉)는 뜻이어서 눈송이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이 떠돌아다니는 듯한 그 모습을 '난분분'이라고 하는 건 마땅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또 눈이 내리는구나 했고, 나는 나의 세상과 함께 점점 축소되고 있고 그렇지 않던 힘이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그걸 입밖에 내어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서글픈 일이 아닌가. 2022.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