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분류 전체보기3355

거울 / 조성래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부서지고어떤 시도가 영원해질 때 괴로움도 슬픔도자연自然이 됩니다 지난달 "현대문학"에 실린 아홉 편의 같은 제목 시 중 한 편이야. 어떤 시는 별 의미도 없는 아포리즘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그런 걸 읽으면 (좀 우스워도 그냥 얘기해 버릴게) 난 기분이 나빠. '누굴 뭘로 알고?'그런 시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좀 봐, 이렇게 쓰는 거야, 응?" 그건 그렇고"거울 속의 거울"생각나?이 시 읽고, 고요히, 자연自然의 곁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Spiegel im Spiegel(Mirror in Mirror) by Arvo Pärt☞ https://youtu.be/qZf-vreLpIE?si=MQwF8cD0pObDxo9i ............................ 2025. 6. 12.
야생화가 아름다운 이유 비전문가의 성능 낮은 스마트폰 사진이어서 이 정도지, 실제로 보면 이처럼 자연스럽고 이처럼 아름다운 꽃밭을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 수 있을까 싶지 않다.요 며칠, 나는 좀 객쩍은 작명(作名)도 해보았다.'잡초시대''잡초시대는 그렇고 야생화 시대''야생화 천지, 야생화 천국, 아니면 야생화 페스티벌'...'이 강산 삼천리, 우리의 야생화!'문제가 있긴 하다.'나의 사유지'에서는 다만 잡초들일 뿐이다.아름답기보다는 골치가 아프다.그렇지만 여기 '우리의 공유지'에서는 꽃집의 꽃들과 겨루어보고 싶은, 아름다운 갖가지 야생화가 저렇게들 피어난다.'나'와 '우리'에 따른 이 구분은 쑥스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극복해 보고 싶은 갈등이다.오늘 오전, 산책길로 접어들자 풀냄새가 진동을 했다.나는 마스크맨이다. 오늘은 .. 2025. 6. 11.
그게 4·19였어 쑥스러워도 털어놓고 싶어. 털어놓아야겠어.4·19부터 얘기할게. 나도 시위에 참가했어.어느 날 아침, 몇 명의 선배들이 교실로 들어와서 심각한 얼굴로 큼지막한 돌을 몇 개씩 주워오라고 했어.선생님들은 모두 교무실에 가 있었던 것 같아. '수업은 안 하나?' 생각하다가 그렇게 짐작했어. 우리는 선배들을 따라 시내로 들어갔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고함을 질렀어.돌은 담 너머로 던졌어."물러가라!""하야하라!"잠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싶었지만("물러가라"와 "물러가시오", "하야하라"와 "하야해주십시오" 같은 것들), 저 앞에서 우리를 이끄는 선배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어."물러가라!""하야하라!"('하야'가 뭘까?) 나중에 보니 그게 4·19였어.난 그 정도야. 그 정도일 뿐이야. 그렇지만 다른 생각도 하.. 2025. 6. 10.
현충일 오전 10시 그 시각에 나는 저 길을 걷고 있었는데 정각 열 시가 되자 사이렌이 울렸다.그러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하는 것이었다.묵념은 1분간 계속되었다.나는 주제넘긴 하지만 이 나라는 썩 괜찮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일찍이(19세기말) 좀 더럽고 비위생적이긴 하다면서도 이 나라를 사랑하여 여러 번 여행하고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을 쓴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그 책에 이렇게 써놓았다. 근사한 기후, 풍부하지만 혹독하지는 않은 강우량, 기름진 농토, 내란과 도적질이 일어나기 힘든 훌륭한 교육, 한국인은 길이 행복하고 번영할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협잡'을 업으로 삼는 관아의 심부름꾼과 그들의 횡포, 관리들의 악행이 강력한 정부에 의해 줄어들고 소작료가 적정히 책정되.. 2025. 6. 8.
'스카보로'를 찾으려고 또 읽은 소설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 소설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J. L. 카)은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데 단어들, 문장이나 문단에 눈길이 머물고 싶어 해서 보름이 걸려 읽었고,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해서 그럴 형편이 아닌데도 바로 또 한 번 읽었다.'스카보로' 때문이었다. 스카보로라는 지명이 나왔고, 분명히 그걸 의식했는데 거의 다 읽었을 때쯤 그 생각이 나서 앞으로 뒤로, 다시 앞으로 뒤로 여러 번 훑어봐도 찾을 수가 없었고, 이런 일은,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읽고 찾자'고 미뤄봤자 별 수 없고 늘 포기나 다름없어서 아예 당장 한 번 더 읽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마음 편하게 읽는데도 '스카보로'가 스스로 눈에 띄었고, 처음 읽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었던 부분이 명료해지거나 지나쳐 읽었던 부분이.. 2025. 6. 5.
나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노인이 되어가며 외롭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렇게 글로 쓰긴 하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은 없다. 그걸 말하나 하지 않으나 끝은 끝이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정말로 '끝일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뻔한 것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할 때가 있어도 나는 묻거나 하지 않는다. 상대방은 의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사는 날까지는 그 하루하루에 의미를 두고 살아보자는 생각일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로울 땐 누구에게든 전화를 하지 않는다.전화가 오면 가벼이, 즐겁게 대하고 즉흥적으로 가볍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 내 심경을 그대로 알리진 않는다. 나는 외롭긴 하지만 본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2025. 6. 4.
이것은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여기는 우리 아파트 피트니스센터 양쪽 출입문 사이다.아파트를 지을 때 멋지게 치장하려고 가슴 높이로 예쁜 돌들을 깔아놓았다. 혹 바닥에 저 돌들을 깐 멋진 수족관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위험하다는 결론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예쁜 돌을 구입하는 데도 돈이 제법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돌을 찾으려고 저기 올라간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반가운 일은, 처음 두어 해는 잠잠했는데 차츰 풀이 솟아오르더니 해가 갈수록 풀의 종류와 양이 많아지고 있다.나는 마음속으로 그 풀들을 응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풀보다 돌이 더 많이 보였는데 올해는 저쪽 편으로는 돌보다 풀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 섭섭하다고 할 풀들이 많겠지만, 지난해까지는 민들레가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 2025. 6. 2.
숙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해버린 대통령 (2025.5.30) 특별한 사유가 없는 어린이날에는 대통령이 어린이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벌여왔다. 초청 받는 어린이가 몇 명 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뉴스 시간의 행사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훈훈했다. 언젠가 어린이들과 대통령 간의 대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린이들이 질문하고 대통령이 대답해주는 형식이었다. 좋아했던 공부, 존경하는 인물, 평소 하는 일, 즐겨 읽는 책 같은 것들을 물어서 질문이나 대답이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아니었는데 돌연 한 어린이가 매일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마음 놓고 놀 수가 없다면서 숙제 좀 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순간, 어떻게 저 질문이 나오게 되었을까 의아했다. 당연히 사전에 어떤 걸 물을지 생각해보라고 했을 것이고 누군가 예상 질문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2025. 5. 30.
다른 사람 블로그 찾아다니기 올해 들어 다른 사람 블로그를 찾아다니는 일이 번거롭게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고지식하다.누가 와서 댓글을 달아주면 넘어가버린다. 그 사람이 새 글을 올릴 때마다 경탄의 표시를 해줘야 한다.올해 들어 그게 번거롭게 느껴져서 검색해 봤더니 상대방은 그렇게 다녀간 뒤로는 '아예' 오지도 않는데 나는 '아주' 목을 매어놓고 찾아가고 있었다. 내가 가서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댓글을 달았을 때 상대방도 즉시 내게 와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주는 건 뭐랄까 너무 실리적·현실적인 처사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런 사람은 차라리 체면이 있는 사람, 고마운 사람이었다.대부분 그렇게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미끼만 던져 놓고 물면 그다음부터는 나는 부지런히 달려가고 상대방은 아예 오지 않거나 잘해봤자 내가.. 2025. 5. 28.
스카브로, 숲 같은 서재, 자욱한 정원을 찾아 다시 읽어야 할 책들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J. L. 카)은 겨우 260쪽 정도인데 읽기 시작한 지 보름이 가깝다.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게 되었다. '스카브로'라는 지명 때문이다. 문득 이 지명이 생각나서 어디에 어떻게 나왔는지 저녁에 읽은 부분을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다 읽고 나서 시간을 내어 다시 읽어야 한다.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은 참 좋은 소설이다.그렇지만 읽고 있으면 꿈꾸는 것 같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10여 년 전이었지? 진주 공항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그 책을 읽다가 문득 마지막 주요 등장인물의 서재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고 싶어서 앞으로 뒤로, 다시 앞으로 뒤로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언제든 그 부분을 찾아야 한다.두.. 2025. 5. 27.
법령의 힘! 그때 어려운 일이 참 많았는데 자신이 나서서 다 해결했다고 자랑질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그런다고 이제 와서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잊힌다. 다 잊힌다. 사람이나 일이나 다 잊힌다. 제7차 교육과정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극렬히 반대하고 나서자 차츰 전국적으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어? 어? 하는 사이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마저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심지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그 교육과정(안)을 연구해서 교육부에 보고한 학자들조차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제점이 많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월급 받고 연구비 받으며 일해 놓고는 "연구가 잘못되었다"고 자백하는 건 마치 아이 낳아놓고는 스스로 잘못 낳았다고 비난하는 꼴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 2025. 5. 25.
아름다움을 향한 눈물겨운 노력 산책로에는 눈길을 따라 어디든 아름다움이 있다. 다가오고 멀어져 가는 풍경, 오가는 사람들, 작은 공원, 시냇물, 돌다리, 그 옆으로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 백로, 어느 것이든 마음대로 자라고 꽃피우는 언덕, 가로수......전신주를 세운 곳, 출입문 옆, 담벼락과 아스팔트 사이의 틈, 굳이 흙도 없을 것 같은 곳에 마련한 호리(毫釐) 같은 꽃밭도 정갈한 것만 골라서 올린 '성찬' 같아서 나더러 달리 한번 구상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다.이런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서 화가는 일생을 걸고 있겠지?그러므로 가망 없을 듯한 작품은 눈물겹다. 하필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고 변명하면 우선 아름다움부터 보여달라고 하기가 민망하고 대답해야 할 이의 입장이 남의 일 같지 않을 듯한 것이다.자연은 몇십 .. 2025.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