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벽 다섯 시에 잠이 깬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저녁형 인간이어서 밤 열두 시경에 잠자리에 드는 걸 생각하면 늙어가면서 수면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
또 젊었던 시절에도 여섯 시간이면 충분했고 나폴레옹은 네 시간만 잤다고 하지만 언젠가 TV에 나온 한 전문가가 노인도 여덟 시간은 자야 한다고 해서 여섯 시간도 적구나 했는데 그 여섯 시간조차 무너지는가 싶기도 하다.
지난 초봄까지만 해도 여섯 시에 일어났었다.
그러면서 여섯 시는 넘기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아내 때문이다. 늦게까지 뭘 좀 읽고 있으면 자다가 깬 아내가 일쑤 '그만 좀 자라'고 했다. 아내는 나와 달리 아침형 인간이어서 초저녁에 잠이 들고 새벽 3~4시에 잠이 깨는데 내가 저녁 늦게까지 부스럭거리면 수면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대단한 일도 하지 못한 주제에 퇴임까지 해놓고 늦게까지 뭐 하려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힘겹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이면 "그러기에 뭐 한다고 저녁 늦게까지 그러느냐?" 잔소리를 할 게 뻔하기 때문에 늦지 않게 거실로 나가려고 기를 쓰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다섯 시경에 저절로 눈이 뜨이고 곧 말똥말똥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일어나자마자 튀어나가는 건 아니다. 그건 아내에 대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왔다 갔다 하면 어수선할 것이고 '얼른 아침 준비를 해달라'는 재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겠지? 아침식사를 얼른 해봐야 어디 나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난데없이 생긴 이 아침 시간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궁리를 하고 있다.
눕거나 일어나 앉아서 발버둥을 치는 방법이 있다.
눈알을 굴리고 팔다리를 휘두르고 쭉쭉 뻗어보거나 하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입으로 쉭, 쉭, 소리를 내거나 책장 유리문이나 테이블 다리를 치게 되면 아내가 '저 인간이 새벽부터 왜 저러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며시 PC를 켜볼 수도 있다.
이 방법은 조심스럽긴 해도 지루하지 않아서 시간 관리상 유용하긴 하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나 하는 양 잠이 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는 것이 궁색하고 점잖지도 못한 단점이 있다.
누운 채 생각하기도 있다.
이게 내 스타일에 맞는 것일까? 조용하고 에너지도 별로 들지 않고 좀 고급스러워서일까? 발버둥 치기나 PC 들여다보기보다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생각 속으로 빠져들면 그 골짜기는 끝이 없고 재미도 있다. 생각하기란 가령 아이들 줄넘기나 리코더 불기처럼, 어쩌면 세상 모든 일처럼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 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의 명수(名手)'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얘기하면 "생각하기 개론"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가볍게 유의할 점이나 생각해보면 잡스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잡념(雜念)이라고 하나? "잔머리 굴리지 말라"는 것도 맥락이 닿는 경고일 것 같다.
이쯤 하고, 무슨 다른 수가 있는지 궁리해 나가기로 하자.
1. 생각하기(+연습)
2. 발버둥 치기
3. PC 들여다보기
그래도 나는 서글프다.
아내에게 밉상을 보여서 투정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 것 같은데 ─아내는 일생이 내 투정 뒷바라지였다고 하겠지만─ 어언 돌아갈 길 없는 노인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5분만 더 자고 싶어. 5분 후에 나 좀 깨워줘" 하고 부탁해본 것이 일생에 단 한 번 뿐이었던 것 같다.
아아, 그래서 그날은 내게 빛나는 날이 되었다.
그 아침은 어렴풋한 기억의 강 저 편으로 건너가고 있지만 나는 그 아침을 잊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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