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정겹던 한 블로그가 문을 닫아버렸다.
정년 퇴임을 했고 열렬한 가톨릭 신자이고 두 딸을 두었고 외손자 외손녀를 사랑하는 일에 푹 빠져 있고 남편과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사흘돌이로 함께 다니며 자신이 미소 지으며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초로의 여성이었다.
충북 어느 시골 초등학교 영양교사로 시작한 직장 생활이나 친정 부모의 유산 문제로 아웅다웅하는 일이 벌어지자 '그래, 맘대로 해' 넉넉한 마음으로 후퇴한 이야기 등등,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블로그를 열독해왔는데 덜컥 문을 닫은 것이다.
처음에 다른 블로그 이웃으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곧 돌아오겠지 했는데 ─ 그때 얼른 전화라도 해봐야 했는데 ─ 그 이웃이 다시 연락하더니 이런, 전번조차 바꿔버렸다네?
짚이는 데가 있긴 하다.
어느 독자가 비밀댓글로 내게 문의한 적이 있다.
"그녀는 문장은 엉성하고 맞춤법은 엉망이면서 나서기는 잘하는데 선생님은 왜 그녀에게 잘 대해주고 좋은 말만 해주시나? 그게 합리적인가?"
그 독자는 내 답글을 봤으니까 그렇게 했을 리 없고, 그녀에게 충격을 준 다른 인물이 있었던 걸까?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 않도록, 정나미가 떨어지도록 한 것 아닐까?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내 글을 싫어한다.
왜?
교과서적이잖아.
요즘 누가 이런 답답한 글을 좋아하나?
나는 그걸 잘 안다. 나란 인간은 어쩔 수가 없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니까 남이 쓰는 교과서적인 글은 정말 싫어한다. 읽지 않으려고 한다. 교과서적인 글이라면 내 것만 해도 진력이 나는데 선택할 수 있는 남의 글조차 어쩔 수 없어서 읽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교과서적인 글?
그런 성향은 문맥이나 문투(文套)는 물론이고 단어 하나하나에도 배어 있다. 내가 이래도 교과서에 생애를 바쳤다고 해도 괜찮은 사람이다. 귀찮아서 다 설명하기도 싫지만 몇 줄 읽어보면 아, 이 사람은 학교 다닐 때 교과서 문장을 잘 익혀서 지금 이런 문장 이런 단어를 잘 쓰는구나, 당장 간파해 낼 수 있다.
나는 푸릇푸릇한 글을 좋아한다.
풀잎처럼 이렇게 저렇게 솟아나고 싶은 대로 솟아난 글을 즐겁게 읽는다. 비문(非文 )이면 어떻고 맞춤법이 틀리면 어떤가, 블로그 쓰고 읽어서 수능 볼 것도 아니잖나?
이렇게 써다 보니까 더 열불이 난다.
그녀는 아주 솔직했다. 가족의 일상이나 사람들 만난 이야기, 싸워버린 이야기, 마음이 산만해진 채로 성모님 신부님 찾아간 이야기, 밥 해주는 봉사 단체에 가서 설렁설렁하다가 사진이나 찍고 왔다는 이야기, 못하는 얘기가 없었다.
짤막한 글인데도 비문이 보이고 맞춤법이 틀리고 심지어 아무래도 쓰다만 글 같은데도 올려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어떤가, 블로그는 그녀의 것 아닌가, 비위가 상하면 읽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나처럼 꼬장꼬장한 늙은이보다 푸릇푸릇한 그녀는 얼마나 싱그럽고 아름다운가.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도록 하려면 그렇게들 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내 글들은 한없이 길지만 그녀는 500자 정도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그녀가 다른 블로그 이웃과 둘이서 찾아갈 테니 식사나 한번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건 좀 미루자 싶어서 정중히 유보했었다.
누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부탁하고 싶다.
무슨 수를 써더라도 그녀를 찾아가 정중히 사과하여 부디 돌아오게 하라고, 우리에게 어떤 삶이 싱그럽고 사랑스러우며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 다시 보여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말씀 좀 전해 달라고.
나는 허접하지만 이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따스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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