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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김원길14

《적막행寂寞行》 김원길 시집 《적막행寂寞行》 청어 2020 시인과 함께하던 그 저녁들로부터 오십 년이 흘렀습니다. 나는 이렇게 허접하고 시인은 변함 없습니다. 여든이 된 시인이 바라보는 적막이 이런 것이구나, 표지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저 빛깔은 이십대 중반의 시인이 보여주던 적막이었습니다. 서정(抒情)의 강물 같습니다. 소년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정(情)이 아니었습니다. "자, 또 한 편 써볼까?" 하고 술술 써내려갔을 듯한, 낯간지러운 '말놀이'도 아니었습니다. 마법 그리운 율리아나, 어이 할거나. 나는 몹쓸 저주에 걸려 여인의 사랑만이 사슬을 푼다는 별난 마법에 걸려 괴물의 몸으로 빈 성에 숨어 사는 이야기 속 딱한 왕자. 율리아나, 그대 또한 멀리 외져 발길 없는 숲속 궁전, 백 년을 옴짝 않고 누워 잠자.. 2020. 6. 28.
弔辭 "종민아" 종민아. 오전에 내 아들이 내 핸드폰에 문자로 "최종민 선생님 돌아가셨습니다. 분당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9호실. 16일 발인"이라 찍어 보냈구나. 어떻게 알았냐니까 페이스북에 났더라고 했다. 그럼 네가 죽었단 말 아니냐? 이게 무슨 짓거리냐? 일 년 전 뇌에 혹이 생겨 수술 후에 너는 분명 경과가 좋다고 했지 않았나? 구례 국악 행사에도 다녀올 거라 하기에 올라오는 길에 안동 들러 쉬어 가라 했는데 그 후에 소식이 없어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 후 1년 여를 네 전화는 먹통이고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기에 수신확인을 했더니 열어보지도 않았더구나. 우석이, 오춘이, 보영에게 전화로 네 근황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더구나. 언제 시간 나면 경기도 너네 집으로 찾아가든가 실종신고라도 내야겠다는 .. 2015. 10. 16.
이육사,「청포도」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고옵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서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안동 '지례예술촌' 김원길 시인은 이렇게 썼습니다(「아름다운 몽상, 육사의 "청포도"」에서). (…) 육사의 '청포도'가 '광야'와 함께 노래로 불리게 된 것은 1968년 5월 5일 안동의 낙동강 가에 육사의 시 '광야'가 시비로 세워지고 그날 저녁에 추모 공연을 시내 대안극장에서 할 때였다. 나는 그 무렵 고향 안동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문학 지.. 2015. 7. 30.
교과서의 작품 이야기 - 옥의 티 "문우(文友)"라고 하면 좋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보통 사람이어서 흔히 하는 말로 "아는 사람", 그러니까 지인(知人)이 쓴 글입니다. 계간지 《교과서 연구》(79호, 2015.3.1)에 실렸습니다. <교과서의 작품 이야기> 옥의 티 김 원 길(시인, 안동지례예술촌장) 안동지례예술촌 내.. 2015. 4. 14.
「여숙旅宿」「밀어」「시골의 달」 지례예술촌 김원길 시인이 이런 글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렇지만 결코 그리 깔끔할 것도 없는, 그 시절의 이른바 '무전여행'이란 것의 추억을 멋들어진 시 한 편으로 간직할 수 있는, 시인은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추억은 메마르고 저 맥고모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방랑시편 (1) 「여숙旅宿」 10월 하순, 오후 4시 경, 박영태와 나는 영덕서 강구로 넘어가는 바닷가 비포장 언덕길을 터덜터덜 힘겹게 걷고 있었다. 땀이 흐르고 숨도 차고, 어디 앉아 쉴 만한 그늘이 없나 하던 차에 길가에 문짝이 떨어져 나간 초가삼칸 폐가가 눈에 띄었다. 그 폐가의 먼지 앉은 냉방에는 누가 배고 간 것인지 모를 목침이 나딩굴고 벽에는 낡은 맥고모자가 베토벤의 데드마스크처럼 묵.. 2014. 9. 6.
「라일락」 강남대로변의 라일락입니다.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주눅이 들어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렇게 볼품없는 남성은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된 일인지 예전처럼 눈이 자그마한 여인조차 눈에 띄지 않고 하나같이 왕방울 같은 눈에 차림들이 영락없는 영화배우들 같아 보여서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그 길에서 도저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향기로, 라일락이 불러세웠습니다. "나, 여기 있다!" 어느 집 정원의 해묵은 라일락처럼 그리 자랑스러운 자태도 아닙니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그만큼의 향기를 내뿜는지, 그 분망한 길에서…… 불연듯 저 지례예술촌장 김원길 시인의 「라일락」이 생각났습니다. 접근하기 어려워서 아예 포기해버린 소녀, 무언가 복잡한 일들에 얽혀 있어서 .. 2014. 4. 11.
「취운정 마담에게」Ⅱ 시인들은 사랑 얘기를 어떻게 씁니까? 뭘 묻느냐 하면, 겪어본 얘기를 시로 표현하는지, 아니면 순전히 지어낸 이야기들인지, 그게 궁금하다는 뜻입니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그 배역에, 두어 시간의 그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 관념과 경험, 지식, 희망과 기대 같은 걸 모두 불어넣어 연출한다는, 그리고 그럴수록 멋진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예 자신의 생애를 자신이 맡았던 배역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마치 한 편의 멋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아가려다가 결국은 어려운 말년을 보내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 같고, 정작 증거를 대라고 하면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다른 부문의 연예인 중에서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 2014. 2. 19.
「마법」 마 법 시든 소설이든, 수필, 희곡, 평론이든 우리가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해, 그의 생애와 업적, 사상 등을 알아보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석사학위나 박사학위 논문, 혹은 저널에 실을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서, 문학작품으로서의 평론을 쓰려고, 단순.. 2014. 1. 7.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 재작년 2월 둘째 주 어느 날, 블로그 『강변 이야기』의 작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릉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 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徐廷柱詩選』민음사 세계시인선 ⑫, 1974, 111. 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 김원길 저 눈 좀 보아, 저기 자욱하게 쏟아지는 눈송이 좀 보아 얼어 붙은 나룻가의 눈 쓴 소나무와 높이 솟은 미루나무 늘어선 길을 눈 속에 가고 있는 여잘 좀 보아. 내리는 눈발 속에 소복(素服)한 여인의 뺨이 보이네.. 2013. 12. 1.
김원길 시인의 '손짓' 김원길 시인의 '손짓' ♬ 어제는 편안한 KTX, 그것도 특실 1인석에 앉아, 거기다가 약 40분인 거리를 다녀왔는데도 집에 도착해서는 그야말로 겨우내내 거기에 있는 줄 모르고 지내다 발견된 홍시처럼 녹초가 되어버려, 일곱 시간이나 잤습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 반이나 더 자서 에디슨이 .. 2013. 10. 30.
「상모재」 교육대학을 다닐 땐 곤궁하고, 재미도 없고, 걸핏하면 쓸쓸해서 그 2년이 참 길었습니다. 그나마 당시 안동 어느 여자고등학교 국어 선생 김원길 시인을 만나는 날에는 제법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원길 시인이 『월간문학』(「취운정 마담에게」, 『시문학』(「꽃그늘에서」 등)으로 등단하고, 고향 지례가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자 선대 유산인 고건축물 10동을 마을 뒷산으로 옮겨 지어 문예창작마을 을 운영하고 있다는 등 그간의 동정은 간간히 들었지만, 모른 척 지냈는데, 얼마 전에, 그러니까 45년만에 덜컥 연락을 해왔습니다. "만나러 가겠다!" 그 시인이 「상모재」라는 시가 들어 있는 글 「상모재」를 보내주며 심심하거든 한번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심심하거든…… 상모재 김 원 길 서울서 심야버스로 안동에 내리.. 2013. 9. 15.
「풍경의 깊이」 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 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2012.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