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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목목문왕(穆穆文王)이여"

by 답설재 2024. 2. 25.

음담패설을 유난히 밝히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여겨서 무모하게, 서슴없이 해버리기도 한다.

 

모처럼 남녀 동기회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퇴임들을 했기 때문에 참석자가 많았다. 1박 2일간의 프로그램을 끝내고 점심식사도 거의 끝나서 곧 헤어질 시간이었고, 다음에는 또 언제 이 얼굴들을 볼 수 있을지 숙연하여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였는데 학교 다닐 땐 말도 없이 겨우 얼굴을 들고 다니던 사람이 큰 소리로 음담패설을 해버렸다.

모두들 껄껄 웃었고 여성들도 그렇게 웃거나 두어 명은 소리없는 미소를 지었다.

 

개그나 해학이 아니었다. 저속하기 짝이 없어서 이후 그 음담패설이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40여 년 만에 처음 만났지만 아마 교직생활을 하는 내내 그의 행동은 저속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예부터 전해오는 우리의 해학(諧謔)은 이야기의 뒷끝에 묻어오는 느낌을 뭐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신비함을 머금고 있다.

얼마 전에는 내가 평생 불쌍히 여겨온 한 녀석이 이제 돈도 제법 모으고 아들딸 결혼도 다 시켜 천지에 거리낌이 없다 싶은지 어디서 들은 문자를 써가며 핏대를 세워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녀석을 불쌍히 여겨온 속을 달래느라고 며칠이 걸렸다.

 

 

 

 

 

 

 

김원길 시인이 엮은 《안동의 해학》에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가려보았다.

아는 척도 이쯤 한다면 알아주어도 좋을 것이다.

 

 

농사꾼 쏘두들 영감이 무식해서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른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를 처음 만난 사람치고 그가 선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면에 수인사를 할라치면 "저는 신목(申穆)이라고 합니다." 하고서는 자기 이름자를 '아름다울 목' 자라거나 '화목할 목' 자라는 게 아니라 꼭 저 시경(詩經)의 한 구절을 들먹여 "목목문왕(穆穆文王)이여 할 때의 그 목(穆) 자입니다." 하는 것이다. 상대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색이면 이번엔 저 예기(禮記)의 한 구절 "천자는 목목(天子穆穆)하고 제후는 황황(諸侯皇皇)이라 할 때의 그 '목'자입니다." 하는 것이다. 이럴 때면 마치 문왕이나 천자이기나 한 듯이 위의(威儀)가 당당했다.

동냥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귀동냥의 명수인 데다가 언행과 범절과 풍채가 여느 사대부 못지않았으니 사람들은 그 영감의 구이지학(口耳之學)의 깊이를 알기 어려워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출처 : 신진원(申鎭元, 56),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