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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가와바타 야스나리 《잠자는 미녀》

by 답설재 2024. 2. 20.

가와바타 야스나리 《잠자는 미녀》

정향재 옮김, 현대문학 2009

 

 

 

 

 

 

잠자는 미녀의 집은 파도가 밀려와 부딪히는 절벽 위 숲 속에 있었다.

 

짓궂은 장난일랑 하지 말아주세요. 잠들어 있는 아가씨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으신다거나 하는 것도 안 돼요.

아가씨를 깨우려 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깨우려고 하셔도 결코 깨지 않을 테니까요. 아가씨는 깊이 잠들어 있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관리하는 여자가 제시하는 규칙이다. '안심할 수 있는 손님'만 출입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여자를 여자로서 다룰 수 없는 노인들이 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67세의 에구치는 다섯 차례에 걸쳐 그 집을 찾아간다.

잠자는 미녀를 바라보고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면서 그동안 그가 만난 여성들, 여성의 아름다움, 자신의 막내딸의 일들을 회상한다. 생의 교류, 생의 선율, 생의 유혹, 생의 회복과 함께 깊은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 속의 희열을 뒤쫓는 허망한 위로를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의 첫 여자는 어머니였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두 작품이 합본되어 있다.

단편「한 팔」은 자신의 팔을 떼어내 빌려준 고마운 여성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순간의 실수로 상처를 입히는 이야기이고, 「지고 말 것을」은 일정한 직업도 없는 25세의 젊은이 야마베 사무로가 다키코(23세)와 스타코(21세) 두 처녀를 죽이고 자신도 옥사한 이야기를 통해 요염하고 아름다운 23세의 여성, 맑고 아름다운 21세의 여성을 빼앗겨버린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읽는 소설마다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도 꼭 써놓아야지. 이 작품을 두고 에로티시즘 어떻고 하면 의아할 것 같고, 굳이 그 문제를 논의하자면 먼저 에로티시즘의 정의 혹은 의미의 폭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이 책은 2010년엔가 '이걸 다 읽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어서 중단했었는데 이번에는 단숨에 읽었다.

아마도 나는 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