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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by 답설재 2024. 2. 14.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강초롱 옮김, 을유문화사 2021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장 무거운 숙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지 않은 척해봐야 별 수 없겠지.
시몬 드 보부아르와 그녀의 어머니는 서로를 부정해 온 사이였다. 딸이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했으니(그것만도 아니긴 했지만) 그럴 수밖에. 어머니는 그랬겠지. "우리 집안에서 계약결혼이라니! 말이 돼?"

그러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다.

아주 편안한 죽음?
그런 죽음이 있을까 싶진 않고 죽음의 순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리치료사가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걷어 올리고는 엄마의 왼쪽 다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잠옷이 떨어지면서 얼떨결에 쭈글쭈글하고 잔주름이 진 복부와 한 오라기의 털도 없는 음부가 드러났다.
"이제 내가 부끄러워할 건 아무것도 없잖니."
엄마는 당황한 듯 말했다.
"그렇죠"라고 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정원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엄마의 성기를 보았다는 것. 그 사실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몸은 덜 중요한 것도 더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몸에 애착을 느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몸은 내게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혐오감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몸이 혐오스러움과 신성함이라는 이중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 즉 금기에 해당한다는 점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랬다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불쾌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엄마가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이는 걸 태평스럽게 승낙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불쾌하게 했다. 엄마가 평생 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금지 사항이나 지시 사항을 벗어던졌다는 점에 있어서는 엄마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벗어던진 결과 엄마의 몸은 한낱 몸뚱이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고, 그 결과 시체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린 셈이었다.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 거기에서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내게 했던 다른 수많은 말처럼 빈말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산송장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순간 보부아르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무너졌다.
보부아르는 진실을 썼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고통, 가족 간의 불만과 갈등(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딸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적인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서 돌아선 보부아르), 혼란, 질투, 연민, 슬픔, 절망, 원망, 분노, 포기, 타협, 위안, 사랑...(이런 단어들이 다 보였고), 병실의 분위기, 내방객들의 모습, 의료진의 태도, 죽음과의 대결, 고통의 공유, 죽음의 과정...

또 무엇이 궁금해질까? 병실의 분위기?

나는 엄마에게 말을 걸고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에 대해 몇 마디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어머니라는 사실로 인해, 엄마가 내뱉는 기분 나쁜 말들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보다 더 많이 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리고 엄마가 애써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로 평소처럼 어색해하면서 "네가 나를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거 알고 있어. 그래도 네가 그렇게 잘 사는 게 내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어쨌든 기분은 좋구나"라고 말하자, 나는 스무 살이었을 때처럼 화가 났다. 마지막 말만 들었더라면 나 역시 진심으로 엄마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마디 말에서 내 마음은 싸늘해졌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너 말이다, 나는 네가 무섭단다.
엄마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한 이 말에는 그동안 그녀가 내게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나는 동생의 잠옷으로 갈아입고 병상 옆에 놓인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나 역시 두려웠다. 엄마의 부탁으로 블라인드를 내리고 머리맡에 있던 전등 하나만을 켜자 저녁 무렵의 병실에는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내가 보기로는 어두움으로 인해 병실에 맴돌던 죽음의 기운이 깃든 불가사의한 분위기가 한층 더 짙어진 듯했다. 그런데 정작 그날 밤부터 사흘간, 집에서 잘 때보다 더 푹 잘 수 있었다. 언제 전화기가 울릴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상상 속에서 내가 만들어 낸 혼란스러운 이미지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곁에 있었으므로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그리고 통증?

"주사를 놔 드릴 거예요. 그러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예요. 1분, 1분이면 돼요."
엄마는 내 손을 꽉 쥔 채 절규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불에 타는 것 같아. 너무나 끔찍해. 못 참겠어. 참을 수가 없어."
그리고는 반쯤은 흐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도 불행하구나."

그렇게 해서 그녀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딸들은 그 어머니의 실체를 깨닫는다.

영성체를 위한 기도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영성체를 했다. 신부는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설교했다. 그의 입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이 불려 나왔을 때 나와 동생은 둘 다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이름은 엄마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 이름은 엄마의 생애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을 비롯해 과부였던 시절과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마지막 시기마저도 포함하는 생애 전체 말이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