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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임선우(단편) 「프랑스식 냄비 요리」

by 답설재 2024. 2. 6.

 

 

 

임선우(소설)  「프랑스식 냄비 요리」

『현대문학』2024년 2월호

 

 

 

놀라운 이야기꾼을 발견했다.

 

 

한때는 단이 내 곁에서 먼저 잠들어버리면, 단의 잠 속으로 따라 들어가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드러나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단의 꿈에 잠입하고 싶었다. 단의 무의식 속 풍경을 훔쳐보고, 그 안에서 하룻밤을 꼬박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이면 단을 더욱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눈을 뜨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인이 된 단은, 호텔 베이커리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나'의 첫 연인이었고 6년을 함께했는데 그 단이 어느 날 수영장 물에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단이 눈앞에서 녹아내렸을 때는 왜? 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왜 지금 이 시점에 녹아버린 건데? 수영장 한 달 이용권을 재등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화요일 저녁이었다. 수영 도중 단이 아아, 하는 감탄사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서 바라보자, 단은 반투명히지고 있었다. 단, 왜 그래. 내가 소리쳤다. 믿을 수 없게도 단의 몸은 수영장 물에 빠르게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젤라틴 질감으로 녹아버린 단의 몸을 수영모로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고, 사흘간 텀블러 안에서 지낸 단은 자신이 썩는 것 같다며 텀블러 뚜껑을 열어두면 증발해서 집 안 곳곳에 스며들어 너와 계속 함께하겠다고 한다.

'나'는 단의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단에게 화를 낸다.

일에 지쳐서 돌아온 저녁, 단은 이번엔 내 뼈와 살점에 스며들겠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 가서 텀블러 바닥에 말라붙은 얼룩이 될 거야. 어두컴컴하게, 세균이 번식한 채로, 그렇게 더러운 얼룩이 되어 평생을 악몽처럼 남아 있고 싶지 않아. 단은 물이 된 이후로 가장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너에게 남고 싶어. 단의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한 다음 텀블러를 끌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 텀블러 입구를 닫고 소파에 기대어 눕자, 단도 나와 같은 각도로 기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울고 흐르는 단, 단, 단. 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말간 얼굴을 기억해. 떨리던 손끝을 기억해. 네가 처음 만들어줬던 음식의 맛을 기억해. 처음 보여주었던 네 시의 아름다움을 기억해. 그렇게 할게. 네 부탁을 들어줄게. 너를 남김없이 먹어줄게.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전개되지만 더 옮겨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재미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아껴가며 읽었다. 그럴 것 같지 않은 문장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언제 다 읽지?'가 아니라 이야기가 곧 끝나버릴까 봐 조마조마한 느낌으로 읽었다.

 

'소설가 임선우'.

 

1995년 서울 출생. 2019년 『문학사상』 등단.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초록은 어디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