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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야기'의 대가 헤로도토스

by 답설재 2024. 2. 2.

매일 아침 수많은 것들이 방송, 인터넷, 신문 등으로 전해지지만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서사의 위기》라는 책을 보면,  그런 일들이 이야기가 아니라 정보에 사용되기 때문이란다.

그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벤야민은 역사가 헤로도토스 Herodotos를 이야기의 대가로 예찬했다. 헤로도토스의 이야기하기 예술을 잘 나타내는 예로, 사메니투스 왕 일화가 있다. 이집트의 왕 사메니투스가 페르시아 왕 캄비네스에게 패배해 붙잡혔을 때, 페르시아의 개선 행진을 억지로 지켜봐야 하는 굴욕을 당했다. 붙잡힌 자기 딸이 하녀가 되어 지나가는 광경도 목도해야만 했다. 길가에 서 있는 모든 이집트인이 슬피 우는 동안 사메니투스 왕은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바닥에 고정한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뒤이어 자기 아들이 사형장에 끌려가는 것을 볼 때도 그는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 온 사람 중에서 자기 수하에 있던 늙고 허약한 하인 한 명을 알아보았을 때 그는 주먹으로 머리를 치며 깊은 슬픔을 분출했다.

 

 

이 이야기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그렇게 되어 있었던가?

오래 전에 읽은 그 책을 다시 펼쳐서 한참만에 그 부분을 찾아내었다.

 

 

멤피스 성(城)을 점령한 지 10일째 되는 날, 캄비세스는 왕위에 오른 지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집트 왕 프사메니토스에 치욕을 안겨 주고자 교외로 끌고 가 자리에 앉혔다. 이집트 왕을 다른 이집트인들과 함께 끌고 가 앉힌 후 다음과 같이 하며 그의 정신력을 시험했다. 왕의 딸에게 노예 복장을 하고 물을 긷게 하고, 그와 함께 이집트 요인들의 딸 가운데서 뽑은 여자들에게도 같은 복장을 하고 물을 긷게 했다. 딸들이 울부짖으며 아버지들 앞으로 지나가자, 아버지들도 모두 딸들이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똑같이 소리를 높여 울었다. 그러나 프사메니토스는 이 광경을 보고 일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자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볼 뿐이었다.

딸들이 지나가자 다음으로 캄비세스는 왕의 아들을 같은 나이 또래의 이집트 쳥년 2천 명과 함께 끌고 나오게 했다. 그들은 누구나 목에 줄이 매어져 있었고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그들은 멤피스에서 배와 함께 목숨을 잃은 미틸레네인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끌려 나온 것이었는데, 그것은 왕 직속의 판관들이 살해된 미틸레네인 한 사람당 이집트의 최상류 층 10명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었다(그렇다면 멤피스에서 살해된 미틸레네인은 200명이었던 셈이다). 프사메니토스는 앞을 지나가는 자들의 모습을 보고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울며 비탄에 젖어 있는 주위의 이집트인들과는 달리 딸을 보았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이들도 지나간 후, 전에 왕의 연회에 참석하던 사람으로 이제는 재산을 모두 빼앗겨 거지와 다름없는 무일푼의 처지로 떨어져 병사들에게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 노인이 때마침 도시 교외에 앉아 있던 아마시스의 아들 프사메니토스와 그 밖의 이집트인들의 옆으로 지나갔다. 프사메니토스는 그의 모습을 보자 큰소리로 울면서 옛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를 걸고 자신의 머리를 치며 슬픔을 표시했다. 그런데 그 곁에는 보초가 배치되어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그가 취하는 행동을 모두 캄비세스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프사메니토스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 캄비세스는 사자를 보내 프사메니토스에게 다음과 같이 묻게 했다.

"프사메니토스여, 그대의 왕인 캄비세스가 묻노니, 딸이 학대받고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소리도 내지 않고 탄식도 하지 않던 그대가, 다른 자들에게 들으니, 그대와는 아무런 혈연 관계도 없는 저 거지를 크게 걱정했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캄비세스의 이 물음에 대하여 프사메니토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키루스의 아드님이시여, 제 집안에 일어난 불행은 울며 슬퍼하기에는 너무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복했던 처지에서 거지 신세로 전락하고 게다가 노경(老境)에 접어든 저 친구의 불운은 울어 주어도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 대답이 캄비세스에게 보고되자 그는 훌륭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이집트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것을 듣고 크로이소스 ─그도 캄비세스를 따라 이집트 원정에 참가하고 있었다 ─ 도 그 옆에 있던 페르시아인들도 눈물을 흘리고 캄비세스 자신도 공연스레 동정심이 일어 즉시 측근에게 명해 프사메니토스의 아들을 처형자 중에서 구출하고, 교외에 있던 프사메니토스도 자기 앞으로 데려오게 했다 한다.

 

 

《서사의 위기》 에는 이렇게 덧붙여져 있다.

 

 

벤야민은 헤로도토스의 이 이야기에서 진정한 이야기하기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벤야민은 이집트 왕이 어째서 하인을 보고서야 비로소 슬피 울었는지를 설명해 내고자 시도한다면, 그건 곧 서사적 긴장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설명을 삼가는 것은 진정한 이야기하기의 필수 조건이다. 서사는 설명을 자제한다. "헤로도토스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서술은 그 무엇보다 건조하다. 이것이 바로 고대 이집트의 일화가 수천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경탄과 숙고를 자아내는 이유다. 이는 마치 피라미드 안에 밀폐된 채 수천 년 동안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발아력이 보존된 씨앗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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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Ⅱ. 1, a.a.O., p. 445, 446을 인용한 한병철 《서사의 위기》(최지수 옮김, 다산북스 2023)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