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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김복희 「새 입장」
새 입장 김복희 대한민국에 사는 희망은 키가 작다. 발이 작다. 손이 작다. 그래도 성인용 속옷을 입는다. 어느 날 희망은 자신의 몸이 커졌다 느꼈다. 희망이 발을 쿵 구르자 현관 계단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에, 희망은 드디어 내가 소인국에 왔군 올 곳에 오고야 말았어 흥분했다. 허물을 벗은 후 더 아름다운 뱀 더 커다란 뱀 태어나므로 희망은 두 발을 쾅쾅 구르며 계단을 완전히 부수고 허물을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희망의 수화물에서 찾아낼 것들, 뾰족한 것, 날카로운 것, 폭발하는 것, 흔들리는 것, 살아 있는 것, 자라날지도 모르는 것. 새를 그려 넣은 것, 뱀을 그려 넣은 것, 죽음 근처에 엉켜 있는 것, 그것들 중 일부는 소시지, 곰팡이, 번데기, 씨앗으로 보인다. 다 빼앗겨도 별수 없는 것..
2025. 1. 13.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
2024.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