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잘 아는 신발들이 모여 있어요 속초 바다의 모래가 묻어나는, 캔버스화 한 켤레는 젖어 있고요(곧 아궁이 옆에서 살살 말려볼 예정), 보라색 작은 단화는 뒤축이 접힌 채 가지런하네요 오는 동안에 스르륵 발이 자라고 있었을까요(그럴 리가요), 굽 높은 운동화 한쪽은 뒤집어진 채로 멀리 달아나 있어(제일 먼저 뛰어 들어간 사람의 것) 큭큭 제가 몰래 주워 왔어요, 보세요, 세 칸짜리 시골집 풍경입니다 방은 두 개, 문턱은 높고 고개를 숙인 채로 넘어 다녀야 해요 머리 조심! 앤티크한 뒤창을 열면 장독대와 돌담과 눈 덮인 겨울 나무들, 당겨놓은 듯 가까이 있어 다 같이 소리를 질렀지요 오른쪽 끝 방에는 흰색 타일로 장식한 입식 부엌을 들였고요 보일러 스위치는 냉장고 옆에, 방마다 어떤 이들이 영혼이 다녀갔는지 살피기라도 하듯 길게 완상을 하고 나면 부엌문을 열고 나와 툇마루로 올라요, 눈 쌓인 앞산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까만 새 한 마리, 다시 정적, 처마 밑 무드등에 스위치를 넣죠, 딸깍, 우리가 여기 있어요! 이 작은 불빛에 의지하는 우리가 여기 있어요! 사방 불 켠 집은 오직 우리밖에 없는, 앞산과 뒷산이 너무 가까워 때로 가파른 바람골을 따라 몰려든 바람이 집을 흔들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이곳, 연곡면 진고개로 1299, 흩어진 머리칼 보고 웃다가도 세상에 없는 적막에 가슴이 내려앉기도 해요, 문득 앞마당 수돗가 근처까지 도착한 푸른 밤은 옹기 파편처럼, 깨진 채로 쌓여만 가고, 높은 운동화 친구는 그새 부엌에서 솥밥을 안치고 있군요 젖은 발의 주인공은 방에서 까무룩 잠이 들어 있고요, 저는 방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털모자에 귀마개까지 하고 있으니까 신발 정리를 맡고 있죠 끝나면 아궁이에 불을 넣을 수도 있어요(잊은 사람들을 위해) 푸른 밤의 파편들이 방 안까지 밀려들기 전에,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면 타탁! 장작 터지는 소리, 불티 날아가는 소리, 홀린 듯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린 한데 묶여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오래전부터 우린 고통의 목격자, 서로가 겪었던 바닥을 알고 있어요 햇빛에 반짝이는 강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갔던 우리, 제발 뒤를 돌아보라고, 더 이상 가지 말라고 외쳐도 구부정하게 가버리던 작은 등을 가진 우리, 무너지는 얼굴을 본 적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해온 것일까요 우린 이 행성의 소박한 여행자이지만 이렇게 묶인 서로가 있어서 다시 집 밖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는 거겠죠(예외도 있어요), 보세요, 작은 보라색 단화의 주인공이 나타났어요 담요를 두르고 은박지에 싼 고구마를 들고 아궁이로 다가가네요 토치에 불을 붙여 장작불을 만들고, 작은 불이 너울로 번져가는 동안 발그레해지는 얼굴, 어느덧 한 사람 두 사람 신발의 주인공들이 모여들고 있네요 바람을 막아주고 싶어도 제 몸을 통과할 뿐이라서 저는 그저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요, 장작불을 쬐는 내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 누가 한숨처럼 내뱉어도 우리가 여기 모인 게 기적이야! 그런 말로 되받을 줄 아는, 이런저런 말도 없이 제가 조금 늦었어요, 스르륵 같이하고 싶지만 그럼 너무 놀라서 사람들은 이 집을 뛰쳐나갈지도 모르죠 오오! 그러니까 저는 밤새 세 사람의 신발을 지키고, 끝없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바람 소리를 먼 바다의 파도 소리로 잠재워 세 사람의 잠을 지킬 거예요 이 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것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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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숙녀의 기분』『오늘 같이 있어』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김종삼시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25년 2월호.
일어나서 돌아가고 싶다.
그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괜히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듯하다.
너무 오래 미련을 가지고 쓸데없이 이렇게 앉아 있었으므로 그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어느 멋진 건축가가 있어 이렇게 썼다(『현대문학』 2023년 1월호, 최욱 「두 번째 집」(신년특집 에세이).
땅이 사고파는 것이라면 터는 사람이 살면서 가꾸는 것이다. 좋은 터에 태도와 사고가 더해져야 비로소 문화가 된다. 문화는 좋은 터에서 오랜 시간 정성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싹이 꽃을 갖고 태어나듯 누구나 별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박상수 시인의 저 시를 읽으며 좀 엉뚱하게 이 건축가의 글이 떠올랐다.
시는 아름다운 이야기겠지?
이 건축가의 집과 터에 대한 생각도 시 같은 것이겠지?
시인도 건축가도 아닌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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