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08

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이 놓아주지 않아서 왕관을 벗어 버리고 이곳에 숨어 수도자 생활을 하려던 열망을 지녔던 비극의 황제 니키포로스 포카스가 건설했다는 유명한 대수도원 라브라스를 어서 보고 싶어서 우리들은 날이 밝자마자 길을 떠났다. 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이 놓아주지 않아서 황제는 속세를 떠날 날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다시 미루면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결국 가장 신임했던 친구가 칼을 들고 찾아와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럴 수가 있나...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 》(나의 벗 시인─아토스 산)에 나온 이야기다. 니키포로스 포카스 황제가 아직 젊었던가? 그랬다면, 좀 더 살아보고 나중에 결정해도 좋았을 일을... 그렇게 미련을 둘 일도 아니었건만... 혹 모르는 일이긴 하지. 다 늙어빠져서도 성.. 2024. 7. 24.
박두순 동시집 《칼의 마음 》 박두순 동시집 《칼의 마음 》청색종이 2024      오랜만에 나온 설목의 동시집이 '왈칵'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프로필에는 문학활동만 나타내고 있지만 그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어서 그럴까? 책갈피를 펼쳐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여름·겨울 방학생활뿐이었던 그때처럼 잉크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 굴곡진 삶에 위안을 주는 것들을 찾아보면 '세상의 돈'만큼은 아니겠지만 간단히 열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무상의 것이라면? 하늘? 구름? 바람? 바다? 음악? 시냇물?...詩는? 시는 무상의 것일까?  불쌍한 로봇  로봇이 태어나 보니사방에 많은 사람이 빙 둘러서 있다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그런데!아무리 둘러보아도엄마가 없다엄마, 불러 보고 싶은데엄마, 울어 보고 싶은데예쁜 우리 아기라고 불러 주는엄마.. 2024. 7. 15.
그 시절 그 시절에는 세월이 느릿느릿 무료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았고, 라디오와 전화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삶은 말없이 진지하게 띄엄띄엄 이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폐쇄된 세계를 이루었고, 집들은 모두 빗장을 걸어 잠가 두었다. 집은 어른들은 날마다 늙어 갔다. 그들은 남들이 들을까 봐 조용조용 얘기하며 돌아다녔고, 남몰래 말다툼을 하며, 소리 없이 병들어 죽었다. 그러면 시체를 내오려고 문이 열렸으며, 네 벽이 잠깐 동안 비밀을 드러냈다. 그러나 문은 곧 다시 닫혔고, 삶은 다시금 소리 없이 이어졌다.  "영혼의 자서전"(Report to Greco, 니코스 카잔차키스 ㊤)의 그 시절. 지나간 날은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에도 있었고, 세상 그 어디.. 2024. 7. 15.
정세구 《탐구수업》 & 주입식 교육에 대한 나의 투쟁 정세구 《탐구수업》 배영사 1977       세상에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읽은 걸 또 읽고 또 읽어서 마침내 외워야 한다는 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이기 싫고 지극히 싫증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엔들 대학에 들어갈 수가 있었겠나.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친구의 권유로 당시엔 2년 제인 교육대학이라는 데를 들어가게 되었다. '가르치는 걸 배우는 학교? 그렇다면 뭘 좀 배울 수 있으려나?' 그런데 웬걸, 그중에서도 과학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이가 완전 ○○○였다. 멀쩡한 교재를 두고 첫 시간부터 받아쓰기를 시키면서 이걸 암기해서 시험지에 써야 한다고 깨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당장 볼펜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교수라고?'나는 다른 교수들로부터는.. 2024. 7. 10.
《訓民正音》(영인본) 《訓民正音》  辭書出版社 1967(영인본)        우리 국어 선생님께서 '용비어천가'를 낭독하셨던 그 좋은 날들을 생각하니까 '훈민정음 서문'도 생각났다.1967년에 나온 영인본을 꺼내보았다. 지금 보니까 표지의 제목조차 비뚤게 붙었다. 원본도 아닌데 이미 표지는 표지대로 본문은 본문대로 낱장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그조차 57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선생님은 이런 글은 아이들더러 읽어보라고 하시지 않았다. 미소를 띠고 다짜고짜 선생님께서 몇 번이고 낭독하셨다.그때 선생님은 교과서에 실린 언해본 원문을 읽어주셨는데 어떻게 읽으셨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렇지만 60년간 나는 더러 선생님께서 낭독해주신 그 원문을 상기해보곤 했다.'나무위키' 같은 곳에는 정확한 내용이 나와 있지.. 2024. 7. 9.
정인지 외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정인지 외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이윤식 옮김, 솔 1997      한학(漢學) 공부 좀 할 걸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정치인들이 사자성어나 고사, 옛 문헌의 한 구절 혹은 어떤 단어를 들어 남을 헐뜯을 때다. 그런 걸 인용해서 덕담을 하는 경우는 보기 어려웠다. 그렇거나 말거나 '저 사람은 그렇게 분주한 생활을 하는데도 한학을 깊이 한 것 같은데 난 뭘 했지?' 한탄을 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시경(詩經)을 한번 읽어봤는데 나로서는 아는 척할 때 써먹을 만한 부분을 눈 닦고 봐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제 책을 읽을 만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므로 아는 척할 때 써먹으려고 책을 들여다보는 무모한 짓은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노릇도 소질이 있어야 하는 건가?' '.. 2024. 7. 6.
아서 프리먼·로즈 드월프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 아서 프리먼·로즈 드월프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10 DUMBEST MISTAKES SMART PEOPLE MAKE AND HOW TO AVOID THEM송지현 옮김, 애플북스 2011      이 책을 10년도 더 갖고 있었다.누가 내게 선물로 주었을까?('답설재는 실수를 좀 하는 편이니까 이 책이 필요할 거야.')나 자신이 실수를 잘하는 걸 자각하고 그걸 좀 방지해 보려고 내가 산 책일까?지금도 읽히나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건재'하고 있다('그렇다면 그냥 버릴 순 없지.') 인지치료에 관한 책이다(발췌). 01치킨 리틀 신드롬 유명한 전래동화로 2005년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치킨 리틀〉의 주인공 꼬마 닭 리틀은 머리에 도토리를 맞고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으로 착각해 재앙이 일어났.. 2024. 7. 3.
브뤼노 블라셀 《책의 역사》 브뤼노 블라셀 《책의 역사》권명희 옮김, 시공사 2002       도판(사진)이 많아서 읽기에 좋다나는 박사학위논문도 혹 볼 만한 도표나 그림, 사진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싶어서 훌훌 넘겨보고 대부분 실망스러워서 바로 책장 속에 넣어두곤 했다. 컬러판 그림에 가까운 건 면지에 심사한 교수들이 찍은 도장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은 소설책을 들고서도 혹 삽화가 있나 싶어서 여기저기 살펴본다.도판이 많은 이런 책은 당장 읽지도 않으면서 일단 사놓았던 것들이다.  제1장 손으로 만든 책(13)제2장 구텐베르크, 논란의 발명자(41)제3장 인쇄술의 승리(69)제4장 검열의 시대(91)제5장 최고의 책(109)기록과 증언(129)  신기한 얘기를 찾으며 읽었다(예). 책을 뜻하는 그리스어 비블리온(bi.. 2024. 6. 30.
가브리엘 루아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가브리엘 루아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이소영 옮김, 이덴슬리벨 2012       할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다. 사 남매를 둔 할머니의 자손은 여러 명이다. 이제 그 아이들 이름도 잊었고, 그 손주들은 지나는 길에 들러 단 5분도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떠나버린다.여섯 살 외손녀 크리스틴이 어머니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할머니 댁에 머물게 되어 따분해하자, 할머니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찾아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고 멋진 모자에 여행 가방을 갖추어 곧 여행을 떠날 공주 차림의 인형을 만드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크리스틴은 못하는 게 없을 할머니를 좋아하게 된다. "우린 늘 우리가 바라던 일에서 벌을 받기 마련이지. 난 삶이 편안하고 질서가 제대로 잡히기만을, 그래서 애들이 치마폭에 매달려 시도 .. 2024. 6. 26.
가브리엘 루아 《싸구려 행복》 가브리엘 루아 《싸구려 행복》이세진 옮김, 이상북스 2010      몬트리올 근교 소도시 생 탕리, 레스토랑 '십오센트'의 열아홉 살 플로랑틴 라카스는 가냘프지만 예뻐서 뭇 사내들의 눈길을 끈다. 장녀로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 싸구려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한다.하필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세를 하려는 기계공 장 레베스크에게 끌려 혼신을 바치고 버림을 받는다.플로랑틴의 아버지 아자리우스는 말만 번지레하고 너무나 무능하다. 그의 아내 로즈 안나는 열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발버둥을 치지만 생활은 점점 더 궁핍해지기만 한다.플로랑틴은 입대하여 휴가를 나온 유복한 가정의 에마뉘엘 레투르노의 눈에 들었지만 마음속엔 장 레베스크가 자리 잡고 있어 거짓 사랑을 나누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유럽.. 2024. 6. 19.
이서수(소설) 「몸과 비밀들」 이서수 「몸과 비밀들」《현대문학》2024년 6월호      처음엔 요영의 말이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요영의 집에 초대받아 내밀한 고백을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지요. 요영은 성별을 구별하는 태도에 큰 반발심을 갖고 있었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갖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상당히 불편하겠다고 대꾸했지만,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요영의 곁에 누웠을 땐 성별을 구별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면 종류를 생각해볼 것도 없이 그저 '옷'을 입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질 거라고 상상했지요. 제 말에 요영은 고개를 저었습니다.옷이 없는 상황에 더 가까워. 모두가 옷을 입고 있지 않아서 어떤 종류의.. 2024. 6. 13.
아야베 츠네오 편저 《문화인류학의 명저 50》 아야베 츠네오 편저 《문화인류학의 명저 50》김인호 옮김, 자작나무 1999      일본 학자의 저서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그래서 이 편저의 신뢰도가 낮든 말든 그걸 문제 삼지 말고 일단 다 섭렵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무모하고 아득한 일이 아닐 수 없다.그렇지만 이런 걸 가지고 허전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 몇 권이라도 읽을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제1장 초창기 문화인류학의 고전원시문화·에드워드 타일러고대사회 ·루이스 헨리 모건황금가지 ·제임스 프레이저미개의 비밀결사 ·허턴 웹스터통과의례 ·아르놀트 반 게넙오른손의 우월성 ·로베르 에르츠미개사회의 사유 ·루시앙 레비 브륄종교생활의 원초형태 ·에밀 뒤르켐 제2장 근대 인류학의 계보언어 ·에드워드 사.. 2024.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