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기의 즐거움764 소중한 것은 그대로 있어 주지 않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생로병사'란 말은 많이 듣지만, 무슨 얘기일까, 했다.틱낫한 스님이 쓴 《화》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읽었다. 부처는 누구나 공포의 씨앗을 갖고 있지만 대다수가 그 씨앗을 억눌러서 어두운 곳에 감추어두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 공포의 씨앗을 확인하고 감싸안고 돌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반드시 늙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나는 반드시 질병에 걸린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나는 반드시 죽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모두 그대로 있어 주지 않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나는 아무것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나는 빈손으로 왔으므로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내 행동만이 나의 진정한 소유물.. 2025. 4. 3. 틱낫한 《화 anger》 틱낫한 《화 anger》최수민 옮김, 명진출판사 2008 •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다, • 많이 먹어도 화는 풀리지 않는다, • 화가 날수록 말을 삼가라, • 성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라...... 마흔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술술 읽히긴 해도 어렵다. 짐작하면서도 실천하지는 못했던 일들이어서 그럴 것이다. 책을 다 읽었는데도 오늘도 설설 까닭을 설명하기가 난감한 화가 났었다. 지식이란 이런 경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방법이 없진 않다. 이 책을 하루에 한 꼭지씩 계속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싫기 때문에 헛일이다. 화가 나면 그 감정을 끌어안아야 한단다. 심호흡을 하고, 길을 걷는 건 자각을 위한 것이다.자각의 첫째 기능은 확인을 하는 것이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마음속이 .. 2025. 4. 2. 올리버 색스가 이야기한 지적장애인의 '구체성' 어젯밤 늦게 인터넷 서핑을 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정년퇴임한 D대 K 교수의 회고담이었다. 나는 중앙부처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인데 내가 그의 일을 살뜰히 살펴주었다고 써놓았다. 나는 야간대학 편입으로 2년을 더 배워 사범대학 졸업장을 받았고, 그때 특수교육 28학점을 이수해서 특수교사 자격증도 받았지만 실제로 그 자격증을 쓰진 않았다. 교육학을 더 배운 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그러다가 교육부에서 일할 때 그렇게 배운 것을 톡톡히 '써먹었다'. 내가 본래 맡고 있던 일 외에 추가로 특수학교 교육과정 및 교과서 개발까지 맡은 것이었다. 말이 특수학교지 그건 유치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에다가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신지체, 지체부자유, 정서장애 등 여러 영역이 있어서.. 2025. 3. 23. 정명환 단상 《인상과 편견》 정명환 단상 《인상과 편견》현대문학 2013 한 작가의 사상이 어떻다고 미리 결정하고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참으로 마땅치 않은 일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작품이 줄 수 있는 풍요한 의미를 등한시하고 또 작가의 변신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큰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특히 앙드레 지드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1952) 누구나 다 알다시피 예술작품에 관해서는 "그것은 객관적으로 진실인가?"라는 질문은 합당하지 않다. 그것이 철학의 포부(늘 좌절되는 포부이지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철학적 주장은 "그것은 개관적으로 진실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의해서 타격을 받는다. 그리고 철학자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이 타격의 연속이 철학사를 형성해왔다. 한데 그 연속이 진실로 .. 2025. 3. 21. 나는 왜 이 책에 빠져 살아왔을까 이 월간지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시절 '대본서점'에서였다.대입시험에 떨어져서 방황하던 시절, 대천 해변에서 '현대문학' 조연현 주간을 만났다. 어떻게 해서 만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해수욕장은 거의 해운대와 거기뿐인 시절이어서 그 여름 유명인사를 많이 봤다. 60년 전이었다. 조연현 선생과 찍은 사진이 몇 년 간 눈에 띄다가 사라졌다. 교육대학 다닌 2년간에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이 월간지를 들고 신기해했다.교직생활 내내 기회가 되면 보았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25년간에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다 읽었다. 그럼 뭐가 남았나?그걸 물으면 내게 유감이 있는 인간이 분명하다.남은 건 '단 한 푼'도 없다.그럼 뭘 하려고 읽었나?재미를 찾았다.'그냥 세상'은 뭐랄까, 쓸쓸하고 썰렁해서 자주 '허구의 세상'으.. 2025. 3. 13. 다니자키 준이치로 《슌킨 이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슌킨 이야기》谷崎潤一郞 《 春琴抄 》 『현대문학』 2025년 3월호 슌킨(春琴)은 오사카 도쇼마치의 부유한 약재상의 작은딸이었다. 그녀는 메이지 19년(1886), 58세로 사망했다. 그녀의 무덤 옆에는 사실상 부부로 지낸 제자 사스케의 무덤이 있다. 제자는 메이지 40년 (1907), 83세로 사망했다. 슌킨은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고상함과 우아함을 견줄 자가 없었다. 네 살 때부터 춤을 배웠는데 자세와 동작을 스스로 터득할 만큼 영리했다.그녀는 안질을 앓아 아홉 살 때 시력을 잃었다. 이후 춤을 그만두고 슌쇼(春松) 겐교(検校 : 남성 맹인 연주자에게 주어진 최고의 관직명)의 가르침에 따라 쟁과 샤미센 연습에만 힘썼다. 슌킨보다 네 살 위인 사스케는 슌킨이 시력을 잃은.. 2025. 3. 10.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임헌영 옮김, 범우사 1979 나는 나 스스로를 파멸시켰으며 또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손 이외의 것으로는 파멸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신은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다. 나는 천재성과 드높은 명성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와 광휘(光輝) 또 지적 용기까지 갖추고 있었다.(...)그러나 나는 육욕적인 향락 속에 파묻혀 있었고 지각없는 건달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동물같이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족속들 속에 휩쓸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재능을 낭비하기 시작했으며, 어이없게도 유한한 나의 청춘을 탕진하는 데에서 묘한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27~29)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소설) "살로메"(희곡).. 2025. 3.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송병선 옮김, 민음사 2011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집 이름을 아예 「픽션들」이라고 했는데도, 허구적 인물과 함께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스토리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현학적·철학적이기도 하다. 각주들이 있어서 더 그렇다.충분한 설명을 해주는데도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꿈같기도 한 줄거리에 호기심으로 따라가게 하고 뜻하지 않은 결말을 기대하게 한다. 고양이의 새까만 털을 쓰다듬는 동안, 그는 그 감촉이 꿈이며 자기와 고양이는 마치 유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은 시간 가운데, 즉 연속성 가운데 살고 있지만, 마술적인 동물은 현재에, 즉 순간의 영원 속에 살기 때문이었다. 이건 「남부」에.. 2025. 2. 2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집 『픽션들』에서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옮겨 썼다. 독후감을 써 놓는 것에는 별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학생으로서 암기에 지긋지긋해했고, 교사로서, 교육행정가로서도 이 사회의 암기 혹은 기억에 대한 편중(偏重)에 지긋지긋해했다.그러나 내 힘으로는 그 막강한 성벽에 금이 가게 하기는커녕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그 성벽 안 사람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 걸 보았다. 그들도 그렇게 교육받고 그렇게 기억한 것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배경일 것 같았다. 기억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기억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가.그렇지만 기억이, 기억을 위한 훈련이 교육의 최우선 덕목이 되고 있는 건 기이한,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 2025. 2. 20. 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2 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2여백 2013 최초의 남자가 경아를 망가뜨렸듯이 두 번째 남자 만준도 음습하고 우울한 생활 속으로 경아를 밀어 넣어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경아를 한 번 더 파괴해 버렸다. # 그렇게 버려진 경아는 술집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게 되고, 술 없이는 한시도 숨 쉴 수 없는, 술을 마시면 종달새처럼 지저귀고 노래하는 여인이 되었다.세상의 사내들은 아름다운 경아의 성을 가지고 싶어 집요하게 다가가고, 함부로 소유했다가 함부로 짓밟고 버린다.그림을 그리는 화자(김문오)도 그 사내들 중 하나였다.문오도 경아를 사랑했다. 문오가 경아를 사랑했으므로 경아도 문오를 사랑했다. 그러나 동거생활까지 한 문오의 사랑은 경아의 사랑과 다른 사랑이었다. 나의 외로움, 나의 슬픔, 나의 고독,.. 2025. 2. 18. 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1 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1여백, 2013 1947년생 오경아는 인형처럼 예쁘다. 밝고 낙천적이지만 외로움을 잘 탄다.혼자인 것을 잊기 위해 아이처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인, 그러다가 울고 금방 또 웃는 여인, 혼자 있기가 싫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싶어 하는 여인, 불행한 사람이나 생명 있는 것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여인,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무엇이든 모아놓는 여인...... 열아홉 살 그녀를 농락한 사내가 있었고, 후처로 삼은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들은 경아가 술에 익숙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세상을 버리게 했다. # 이 소설을 50여 년 전, 1973년에 읽은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남아 있지만 경아는 나 같은 사내들 때문에 이미 그때 세상을 떠났다.나는 왜 이미 사라.. 2025. 2. 17. 유종호 문학평론집 《시와 말과 사회사》 유종호 문학평론집 《시와 말과 사회사》서정시학 비평선 18, 2009 제1부 '시와 말과 사회사'에서는 낱말 하나하나에 이르는 정독을 강조하고 그 사례를 보여준다. 제2부 '시론과 시인론'에서는 서정시의 근간, 시론, '청록집', 김춘수의 시세계(이데아의 음악과 이미지의 음악), 반시대적 서정시인 김영랑, 미당 서정주의 삶과 시, 시조의 오늘과 내일, 평가와 지적 유행, 친일시에 대한 소견을 이야기한다. 유종호의 글은 치밀하면서도 유연하고 재미있다.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다만 제1부에서 오독 사례를 이야기할 때 특정인을 호명한 부분들은 껄끄러웠다. 아름다운 모자이크에 흙물이 튄 느낌이었다. 그 다른 이가 그렇게 했더라도 그냥 설명했더라면 싶었다. '나의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게 아니라 나오자.. 2025. 2. 11. 이전 1 2 3 4 ··· 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