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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70

종이책이 무사하네? ↑ 위는 소설 《장미의 이름》 표지화(부분) 인터넷 활용이 일반화되면서 종이책이 사라진다는 얘기가 회자됐었다. 사무실에서 종이 자체가 사라진다고도 했다.귀가 얇은 나는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곧 나의 전부를 걸어 판단하곤 한다. 그때 나는 책을 읽기보다는 모으고 있었다. 책 모으기에 매달렸다는 건 아니다. 매달린 건 당연히 업무처리여서 책을 읽을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읽기로 하고 일단 장만해 두자는 생각이었다. 단행본뿐만 아니라 월간지도 쌓아두었다. 그러다가 종이책은 사라지고 전자책을 읽게 된다는 말이 돌았는데, 그러자 내 책이 모두 허접해 보였다.'하기야 50년만 되어도 퍼석퍼석 무너지는 게 책이지.''저걸 다 재활용품으로 내다 버려야 한다는 거지?'서글펐다. 다 갖다 버리고 전자책 읽기를.. 2025. 5. 7.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이현 옮김, 김영사 2012 찰리 채플린의 자서전은 본문이 1037쪽까지였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열 권은 될 것'이라는 이를 서너 명은 만났다. 고생깨나 했는가 보다 하면서도 열 권이야 되겠나 싶었었다.채플린 이야기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 읽는 동안 다른 책을 별로 읽지 못했어도 좋았다. '소설책 열 권'이라더니 1천여 쪽이어도 괜찮구나 싶었다. # 나는 채플린이 그저 얼굴만 봐도 좀 우스운 배우인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역량이 어마어마하고 아름다운 예술가여서 책을 읽는 자신이 사소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 주었다.그는 자신이 출연한 모든 영화의 극작가, 작곡가, 감독, 제작자였다. 그에게.. 2025. 5. 2.
장세련 글·송수정 그림 《혼자가 아니야》 장세련 글·송수정 그림 《혼자가 아니야》단비어린이 2025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묻는 시가 있다.이렇게 묻기도 한다.'너 혼자 눈물 닦을 수 있겠니'(박상순 「너 혼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제 겨우 말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거나 겨우 책을 읽게 된 아이에게 '혼자 가야 한다' 혹은 '혼자 같아도 넌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가르칠 수 있을까?그런 철학을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그림책이다.아이가 어른이 된 어느 날, 문득 이 그림책이 생각나서 한참 동안 생각에 들 것 같다. 글도 그림도 간결하고 따듯하다. 2025. 4. 20.
'내 책을 보면 세상에 이런 책이!' 하고 놀랄 것이라는 기대 ↑ 위 : 오래전 「교사와 교육과정」 강의자료에 쓴 사진(출처 : 미상의 어느 신문) 처음에 책을 낼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참고 있으면 된다.'천만에!놀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아, 있다. 단 한 명. 나 자신이다. '이럴 수가!' 미안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다.책을 출판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은 거의 다 그렇다고 보면 된다. 연전에 이른바 지인이 책을 냈다.한여름이었는데 부지런히 읽고 독후감을 썼다. 열 일 제치고 일주일이 걸렸다. 그의 두 번째 소설이어서 이젠 작가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했다.그 독후감을 이 블로그에 실었다.며칠 만에 그의 지인으로 짐작되는 여성이 비뚤어진 관점으로 혹독하게 쓴 독후감이라는 댓글을 달았다.가슴이 내려앉았고.. 2025. 4. 19.
알랭 드 보통 《삶의 철학산책》 알랭 드 보통 《삶의 철학산책》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정진욱 옮김, 생각의 나무 2002(2002.4.20 초판 1쇄 인쇄, 4.25 초판 1쇄 발행)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1장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 소크라테스2장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 에피쿠로스3장 좌절에 대한 위안 · 세네카4장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 몽테뉴5장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 쇼펜하우어6장 곤경에 대한 위안 · 니체  2002년 4월 25일에 나온 초판을 구입했지만 '나중에 읽어야지' 했다.그러다가 2년 전 봄, 위의 책과 거의 같은 시기에 구입한《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것은 《파우스트》를 읽다가 재미있는 각주를 발견했기 .. 2025. 4. 10.
소중한 것은 그대로 있어 주지 않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생로병사'란 말은 많이 듣지만, 무슨 얘기일까, 했다.틱낫한 스님이 쓴 《화》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읽었다.  부처는 누구나 공포의 씨앗을 갖고 있지만 대다수가 그 씨앗을 억눌러서 어두운 곳에 감추어두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 공포의 씨앗을 확인하고 감싸안고 돌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반드시 늙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나는 반드시 질병에 걸린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나는 반드시 죽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모두 그대로 있어 주지 않는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나는 아무것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나는 빈손으로 왔으므로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내 행동만이 나의 진정한 소유물.. 2025. 4. 3.
틱낫한 《화 anger》 틱낫한 《화 anger》최수민 옮김, 명진출판사 2008   •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다, • 많이 먹어도 화는 풀리지 않는다, • 화가 날수록 말을 삼가라, • 성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라......  마흔한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술술 읽히긴 해도 어렵다. 짐작하면서도 실천하지는 못했던 일들이어서 그럴 것이다. 책을 다 읽었는데도 오늘도 설설 까닭을 설명하기가 난감한 화가 났었다. 지식이란 이런 경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방법이 없진 않다. 이 책을 하루에 한 꼭지씩 계속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싫기 때문에 헛일이다. 화가 나면 그 감정을 끌어안아야 한단다. 심호흡을 하고, 길을 걷는 건 자각을 위한 것이다.자각의 첫째 기능은 확인을 하는 것이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마음속이 .. 2025. 4. 2.
올리버 색스가 이야기한 지적장애인의 '구체성' 어젯밤 늦게 인터넷 서핑을 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정년퇴임한 D대 K 교수의 회고담이었다. 나는 중앙부처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인데 내가 그의 일을 살뜰히 살펴주었다고 써놓았다. 나는 야간대학 편입으로 2년을 더 배워 사범대학 졸업장을 받았고, 그때 특수교육 28학점을 이수해서 특수교사 자격증도 받았지만 실제로 그 자격증을 쓰진 않았다. 교육학을 더 배운 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그러다가 교육부에서 일할 때 그렇게 배운 것을 톡톡히 '써먹었다'. 내가 본래 맡고 있던 일 외에 추가로 특수학교 교육과정 및 교과서 개발까지 맡은 것이었다. 말이 특수학교지 그건 유치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에다가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신지체, 지체부자유, 정서장애 등 여러 영역이 있어서.. 2025. 3. 23.
정명환 단상 《인상과 편견》 정명환 단상 《인상과 편견》현대문학 2013   한 작가의 사상이 어떻다고 미리 결정하고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참으로 마땅치 않은 일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작품이 줄 수 있는 풍요한 의미를 등한시하고 또 작가의 변신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큰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특히 앙드레 지드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1952) 누구나 다 알다시피 예술작품에 관해서는 "그것은 객관적으로 진실인가?"라는 질문은 합당하지 않다. 그것이 철학의 포부(늘 좌절되는 포부이지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철학적 주장은 "그것은 개관적으로 진실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의해서 타격을 받는다. 그리고 철학자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이 타격의 연속이 철학사를 형성해왔다. 한데 그 연속이 진실로 .. 2025. 3. 21.
나는 왜 이 책에 빠져 살아왔을까 이 월간지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시절 '대본서점'에서였다.대입시험에 떨어져서 방황하던 시절, 대천 해변에서 '현대문학' 조연현 주간을 만났다. 어떻게 해서 만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해수욕장은 거의 해운대와 거기뿐인 시절이어서 그 여름 유명인사를 많이 봤다. 60년 전이었다. 조연현 선생과 찍은 사진이 몇 년 간 눈에 띄다가 사라졌다. 교육대학 다닌 2년간에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이 월간지를 들고 신기해했다.교직생활 내내 기회가 되면 보았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25년간에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다 읽었다. 그럼 뭐가 남았나?그걸 물으면 내게 유감이 있는 인간이 분명하다.남은 건 '단 한 푼'도 없다.그럼 뭘 하려고 읽었나?재미를 찾았다.'그냥 세상'은 뭐랄까, 쓸쓸하고 썰렁해서 자주 '허구의 세상'으.. 2025. 3. 13.
다니자키 준이치로 《슌킨 이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슌킨 이야기》谷崎潤一郞 《 春琴抄 》 『현대문학』 2025년 3월호   슌킨(春琴)은 오사카 도쇼마치의 부유한 약재상의 작은딸이었다. 그녀는 메이지 19년(1886), 58세로 사망했다. 그녀의 무덤 옆에는 사실상 부부로 지낸 제자 사스케의 무덤이 있다. 제자는 메이지 40년 (1907), 83세로 사망했다. 슌킨은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고상함과 우아함을 견줄 자가 없었다. 네 살 때부터 춤을 배웠는데 자세와 동작을 스스로 터득할 만큼 영리했다.그녀는 안질을 앓아 아홉 살 때 시력을 잃었다. 이후 춤을 그만두고 슌쇼(春松) 겐교(検校 : 남성 맹인 연주자에게 주어진 최고의 관직명)의 가르침에 따라 쟁과 샤미센 연습에만 힘썼다. 슌킨보다 네 살 위인 사스케는 슌킨이 시력을 잃은.. 2025. 3. 10.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임헌영 옮김, 범우사 1979   나는 나 스스로를 파멸시켰으며 또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손 이외의 것으로는 파멸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신은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다. 나는 천재성과 드높은 명성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와 광휘(光輝) 또 지적 용기까지 갖추고 있었다.(...)그러나 나는 육욕적인 향락 속에 파묻혀 있었고 지각없는 건달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동물같이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족속들 속에 휩쓸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재능을 낭비하기 시작했으며, 어이없게도 유한한 나의 청춘을 탕진하는 데에서 묘한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27~29)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소설) "살로메"(희곡).. 2025.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