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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44

키 이야기: 재커리 캐넌 《숏북 Short Book》 재커리 캐닌 글·그림《숏북 Short Book》키 작은 사람들을 위한 잡학사전노승영 옮김, 양문 2010      나는 책 버리기에 이골이 났다. 이젠 버릴 책이 많이 줄었는데도 그렇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초조감 때문이다. 책을 들기만 하면 당장 버릴 것인가 나중에 버려도 좋은가를 따지게 되니까 책을 읽기보다 버릴 책을 찾는 데 목적을 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이 책은 네 장으로 되어 있는데 앞 두 장(章) '올려다본 세상' '키 차별'을 읽고 버릴까 하다가 조금만 더 참아보자 싶었다.'키 작은 사람들을 위한 잡학사전'이 키 작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절망·좌절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성의를 다해 위로해 주는 게 도리일 것이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이 책은 유머로써 일관하고 있.. 2024. 12. 30.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2》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2》윤진 옮김, 창비 2018      그리하여(《군주의 여인 1》) 쏠랄과 아리안은 다시는 헤어날 길 없는 사랑의 늪에 빠져버린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끝없이, 그리고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다.아리안이 잠시 출장을 간 쏠랄에게 보낸 편지 일부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왔죠. 9시 오분 전엔 북극성을 보기 위해 정원으로 뛰어갔고요. 당신도 북극성을 봤겠죠. 당신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다음엔 나의 숲을 거닐었고, 꽤 늦게까지 있었어요. 침대에 누워 당신이 보내온 전보들을 다시 읽었는데, 혹시라도 편지에 담긴 향기가 날아가버릴까 봐 너무 많이 읽지는 않았어요. 당신의 사진도 손으로 가려가며 조금씩 봤죠. 그것도 너무 오래 보지는 않았고요. 안에 담긴 .. 2024. 12. 24.
'과학자들이란 참...' 가모프와 앨퍼의 이론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전에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 내부는 엄청나게 뜨거운 중성자 기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작은 공간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빠르게 팽창하기 시작했고, 부피가 커질수록 온도가 내려가면서 중성자들이 서로 충돌─융합하여 수소를 비롯한 원자들이 만들어졌다.그러나 이 가설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자연에는 질량이 5인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질량이 4인 헬륨에 도달하며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헬륨에 또 다른 중성자를 추가하면(질량=5) 원자핵이 매우 불안정해져서, 약 10억×1조분의 1초 만에 분해된다. 또 하나의 중성자가 침투하여 질량=6인 원소로 변신하기에.. 2024. 12. 11.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1》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1》윤진 옮김, 창비 2018      스위스 호반도시 주네브의 국제연맹 사무차장 쏠랄, 젊고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직위가 높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유대인 쏠랄은 뭇 여자들이 사랑을 퍼붓는 동쥐앙이지만 그는 자신의 외모와 직위 같은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며 파티에서 만난 부하직원의 부인에게 첫눈에 반한다.그 '아름다운 여인'은 주네브 명망가(家) 출신  유부녀 아리안 도블이고, 무능하고 천박하면서 출세만을 꿈꾸는 범속하기 이를 데 없는 국제연맹 B급 직원 아드리앵 됨이 그녀의 남편이다.쏠랄의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꿈은 그에게 모든 일, 모든 여자에 대한 경멸감을 품게 한다. 아름다운 여인 아리안에게도 그렇게 접근하다가, 그녀의 남편 아드리앵을 A급 직원으.. 2024. 12. 10.
"알베르트, 힘내세요!" 토머스 에디슨 흉상은 바라볼 때마다 그가 뭔가 걱정스러워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뭘 그리 걱정하고 있었을까? '이번에는 또 무슨 실험을 하지?' (아니면) '발명한 건 많은데 돈은 왜 그만큼 안 들어오는 거지?' (그것도 아니면 그럼) '내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계를 감싸 안는다."고 한 걸 사람들이 믿어 줄까?'..... 에디슨에 비해 아인슈타인의 표정은 알 길이 없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익살스럽다고도 하는데 그것으로 그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는 없다. 익살스럽다고? 그라고 해서 왜 걱정이 없었겠는가.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일자리도 뜻 같지 않았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전기나 일화를 읽으면 그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의 진가(眞價.. 2024. 12. 3.
죽음과 싸우기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여행의 책』에서 불운과의 싸움, 죽음과의 싸움을 이야기한다. 그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을 이야기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불운과의 싸움, 죽음과의 싸움의 가치, 그 싸움에서 순응하고 패배하는 태도를 이야기한 것 같았다.  불운과 싸우기(......)불운은 그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고그대를 발전시킨다.불운 앞에서 그대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받아들이고, 몸을 옹그리면서불운이 그대 위로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느껴라.이번만큼은 싸움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진정한 전사다.진정한 전사는 질 줄도 알아야 한다.그대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실패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 죽음과 싸우기여섯 번째 적은 죽음이다.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바로 그 적이찢어진 외투를 걸친 해골의 모습으로.. 2024. 11. 30.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조광희 옮김, 현대문학 2002      가엾은 엄마, 이 세상의 기쁨을 철저하게 박탈당했던 엄마,엄마, 당신이 준 내 손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어요.어쩔 수 없이 벌써 푸른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그 작은 손. 사랑하는 엄마,그 서투른 성녀─자신이 성녀임을 알지도 못하는─아, 나의 수호신, 엄마, 내 사랑하는 딸이여!오, 내 잃어버린 젊은 시절인 엄마.오직 한 사람뿐인 나의 유일한 간호원,오 당신, 유일한 사람, 어머니, 내 어머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내 열 살 적 예쁘던 엄마, 이제는 거의 해골로 변한 그 엄마, 천천히 흘러내리는 내 눈물에도 무심하고, 귀먹고 무감각한 내 엄마,여왕폐하,당신들, 모든 나라의 어머니들, 내 어머니의 자매인 당신들.. 2024. 11. 26.
종교의 아름다움과 무서움에 관하여 다치바나 다카시는 《사색기행思索紀行》에서 종교는 지극히 아름답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는 것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글을 써놓았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종교 이야기가 아니어서 좀 편한 마음으로 옮겨 썼다.  러시아에 처음 그리스정교를 도입한 것은 10세기의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인데, 그는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믿어 오던 러시아의 토착 민속종교를 버리고 어떤 종교든 세계종교에 귀의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종교가 참된 종교인지를 알아보려고, 심복을 파견하여 이슬람교, 가톨릭, 그리스정교를 차례차례 돌아보며 조사하게 했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심복은 그리스정교를 제일 좋게 평가했다. 그는 보고를 하면서 그리스정교의 전례에 참가했을 때 받은 인상을 이렇게 전했다."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 있.. 2024. 11. 25.
볼프강 보르헤르트 《내맡겨진 사람들》 볼프강 보르헤르트 《내맡겨진 사람들》Wolfgang Borchert 《Die Ausgelieferten》박병덕 옮김, 《현대문학》 2024년 11월호      저 밖에 도시가 서 있다. 거리에는 가로등이 서서 감시하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거리에는 보리수, 쓰레기통 그리고 아가씨들이 서 있다. 그것들의 냄새가 곧 밤의 냄새이다. 그것은 독하고 씁쓸하고 달콤하다. 가느다란 연기가 반짝거리는 지붕들 위에 수직으로 가파르게 떠 있다. 북소리를 내며 쏟아지던 비가 그치더니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러니 지붕들은 아직도 빗물로 반짝이고, 빗물에 젖은 거무스름한 기와 위로 별들이 하얗게 떠 있다. 이따금씩 발정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달까지 치솟아 오른다. 어쩌면 인간의 울음소리일지도 모른다. .. 2024. 11. 24.
알베르 카뮈 · 장 그르니에 《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김화영 옮김, 책세상 2012­      2012년에 구입해 놓았던 책이다. 보관할 책과 버릴 책으로 구분해서 과감하게 버리기로 하니까 더러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데, 버리는 데 재미가 붙으니까 덜 읽었어도 '버릴까?' 싶을 때가 있다. 카뮈와 그르니에가 주고받은 235편의 이 서한집도 이미 '절판'이어서 덩달아 시시한 느낌을 받았을까, 여남은 편 읽고 '그만 읽고 버릴까?' 했는데 큰일 날 뻔했다. 읽어나갈수록 재미가 있어서 거의 단숨에 읽었다. 그르니에와 카뮈는 '돈독한' 관계였다. '돈독한'보다는 '애절한'이 낫겠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서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그 관계를 이어갔다.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 2024. 11. 20.
베르나르 베르베르 《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여행의 책》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1998      그대 인생에서 단 한번만이라도,아무도 그대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아무도 그 무엇으로 그대를 위협하지 않으며,아무도 그 어떤 걱정거리로 그대 마음을흔들지 않을시간을 가져야 한다.……좋건 싫건 일상에 익숙해져서당당히 맞설 엄두가 안 나거든,나를 다시 덮어도 상관없다.그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책들은쌔고 쌨다.그러나 이제 그대의 마지막 속박에서벗어날 때가 되었다. …… 자, 갈까?                                (표지의 글)  '여행의 책'은 정신의 비상(飛上)을 위한 '비행(飛行) 안내자'가 된다.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만 용기와 위안을 줄 수 있으므로 독자가 부여하는 힘을 지닐 수 있고 그 힘이 무한.. 2024. 11. 16.
'세이노'의 독서에 관한 가르침 《세이노의 가르침》(데이원 2023)을 읽을 때 독서에 관한 '가르침'("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 눈여겨보았다.내가 지금 늦게라도 제대로 읽고 있나? 아무래도 아니지? 그저 세월을 보내고 있는 거지?...... 이런저런 생각에 갈등을 느꼈다.    1. 최대한 쉽게 되어 있는 책부터 읽어라  2. 실전을 다룬 책들을 먼저 읽어라  3. 같은 부류의 비슷한 책을 여러 권 읽어라  4. 아는 내용은 넘어가라  5. 외우려고 하지 마라(이 가르침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해하는 데만 신경을 써라.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 어떤 박사라고 하여도 그가 외우고 있는 지식은 시디롬CD-ROM 한 장의 절반 분량도 훨씬 안 된다. 암기가 되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실전에서 문제가 발.. 2024.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