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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689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차경아 옮김, 까치 2012       이 책을 2012년에 구입했다. 그전에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 그릇된 환상의 종말무궁한 발전에 대한 위대한 약속─자연의 지배, 물질적 풍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리고 무제한적인 개인의 자유에 대한─은 산업시대 개막 이래로 여러 세대에 걸쳐서 희망과 믿음을 지탱해 온 토대였다. 사실상 인간의 문명은 인간이 자연을 능동적으로 지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산업시대가 개막되기 이전까지는 그 지배력에 한계가 있었다. 인간과 동물의 노동력을 기계 에너지가, 나중에는 핵 에너지가 대신하고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가 대신하기까지 산업의 발달은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무한한 생산과 아울러 소비의 도상에 있으며, 과학과 기술에 .. 2024. 5. 8.
사랑의 능력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온다. 참으로 줄 때, 그는 그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는 행위에서는 무엇인가 탄생하고 이와 관련된 두 사람은 그들 두 사람을 위해 태어난 생명에 대해 감사한다.이 말은 특히 사랑에 대해서는, 사랑은 사랑을 일으키는 힘이고 무능력은 사랑을 일으키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마르크스는 이 사상을 아름답게 표현했다."'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은 사랑으로만, 신뢰는 신뢰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2024. 5. 3.
싯다르타와 만신전 책을 쓰는 사람들은 두뇌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전에는 그걸 실감하고 확인할 때마다 나도 무슨 수를 써서 나에게도 이런 면모가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지 하고 과욕을 부리기도 했는데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말하자면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것인데, 마음을 그렇게 고쳐먹자 '와, 이런 사람은 언제 이런 걸 다 알게 된 걸까?' 하고 드러내놓고 감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도 있구나...'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을 땐 그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책의 내용들이 그의 견해를 대충 써놓은 게 아니라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지식을 갖추어 쓴 원고일 것이라는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싯다르타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믿음을 얻기보다 싯다르타가 .. 2024. 5. 1.
자라투스트라 유발 하라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 음악을 들어봤는지? 그건 아니다. 마음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종교에 대해서는 물어보고 싶다.종교에 대해서 뭘? 그걸 구체적으로 쓰기는 난처하다. 그를 만나면 직접 묻고 싶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그가 쓴《사피엔스》의 '제3부 인류의 통합' 중 12장 '종교의 법칙'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이걸 옮겨쓰는 건 단지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알아보고 싶을 때 쓰려는 것(使用)이고 그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그뿐이다!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 2024. 4. 29.
자연에 대한 경외심 '나'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우환 화백이고 '루트'와 '에스라'는 그의 친구들이다. 루트가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거인이었던 걸까?" 나는 조금 생각한 뒤 말했다. "그럴 리는 없지. 다만 지금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조금 더 자연의 에너지, 그 힘과 연이어 있는 존재였을 거라고 생각해." "자연의 힘?" "우리처럼 고립된 개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과 이어진 공동체의 힘이라고나 할까,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신에 대한 신앙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에스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괴력이 작용했다는 뜻이군." "현대인은 공통된 정보와는 연결되어 있지만, 생각도 신체도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의 힘밖에 없는 게지." "엄청난 힘을 잃고 말았네." 이우환의 에세이 「라.. 2024. 4. 18.
행복에 대한 접근법 : 유발 하라리의 생각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제4부 과학혁명(제19장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에서 행복이란 모종의 주관적 느낌(쾌감이든 의미든)이라는 가정은 논리적인 가정일 뿐이며 이는 우리 세대의 지배적 종교가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관적 느낌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은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주관적 느낌의 가치에 대해서라면, 찰스 다윈이나 리처드 도킨스도 성 바오로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평화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대신에 노동하고 걱정하고 경쟁하고 싸우며 삶을 보내는데, 이들의 DNA가 자신의 이기적 목적에 따라 그렇게 조종하기 때문이다. 악마와 마찬가지로, DNA는 덧없는 기쁨을.. 2024. 4. 16.
마지막 남아야 할 한 단어 다 사라지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은 단 한 문장, 한 문장이 안 된다면 그럼 한 단어, 단어도 길어서는 안 된다면 단 두어 글자로 된 단어,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사랑? 믿음? 힘? 돈? 기억 혹은 추억? 고독? 향수? 상상력 혹은 추리력?...... 나로선 도무지 재미가 없지만 유명한 어느 과학자는 그게 '원자 가설'이라고 했단다. # 1 1960년대 초, 아주 비범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어떤 대격변이 일어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이 모두 파손되고 오직 한 문장만이 남아 다음 세대의 피조물에 전해지게 된다면, 가장 적은 글자 수에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나는 원자 가설(혹은 원자에 관한 사.. 2024. 4. 10.
이런 중독 1. 모르고 같은 책을 두 번 산 적이 있다. 2. 시작하기도 전에 읽기를 포기한 책이 있다. 3. 표지 디자인이 좋다는 이유로 책을 산 적이 있다. 4. 책을 펼쳐 잉크와 종이 냄새를 들이마시면 안정이 된다. 5. 단지 할인한다는 이유로 책을 산 적이 있다. 6. 갑자기 잘 모르는 주제에 깊이 흥미를 느끼고 책을 여섯 권 이상 산 적이 있다. 7. 가족의 눈을 피해 책을 들여오기 위해 근사하고 엉큼한 계획을 짠 적이 있다. 8. 집에 손님이 와서 하는 첫마디가 대개 당신의 책에 대한 언급이다. 9. 침대 옆에 적어도 대여섯 권의 책을 놓아둔다. 10. 책방 직원이 찾지 못하는 책을 당신이 찾아낸 적이 있다. 이 물음들의 제목은 이렇다. ○×테스트 당신은 책 중독자인가? 톰 라비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2024. 4. 6.
황모과 《언더 더 독》 황모과 《언더 더 독》 《현대문학》 2024년 3월호 돈이 많으면 곧 모든 일을 AI들에게 시키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겠지? 그런 세상에서도 더러 개(독)만도 못한 생활(언더 더 독)을 할 수도 있겠지? 돈으로 DNA를 편집해서, 그러니까 유전자를 조작(편집 혹은 시술)해서 머리가 최고로 좋게 하고, 온갖 험악한 바이러스를 다 물리치게 하고, 힘들여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근육이 울퉁불퉁한 인간이 되게 하고, 인물이 훤한 인간이 되게 하고 심지어 지성과 인품마저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겠지? 과학자들은 지금 그런 걸 연구하고 있겠지?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에 의하면 2050년경에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게 가능해진다고 했지? '죽지 않는 인간' '신인류' '신과 같은 인간'이 된다고... 그럼 그게 정말 '인간.. 2024. 4. 3.
길가메시 프로젝트 : 불멸의 신인류 이 블로그 유입 키워드 목록에서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그거라면 내가 알고 있지' 생각했다. 사실은 나도 오래 전에 그 왕의 이야기를 읽었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건 어차피 이루어지지도 않을 일에 대한 인간의 무모한 욕심을 나타낸 것이어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그 기억이 흐릿했으나 《사피엔스》(유발 하라리)에서 길가메시 이야기를 다시 읽은 것이 최근이어서 기억에 생생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거라면 내가 알고 있지'라는 생각은 주제넘은 것이고 조리있게 설명하기가 그리 쉬운 것도 아니어서 얼른 책을 펼쳐보았다. 유발 하라리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류의 모든 문제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흥미롭고 중요한 것은 늘 죽음의 문제였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길가메시 이야기.. 2024. 3. 31.
애인(벤야민에 따르면 "알림 : 여기 심어놓은 식물들 보호 요망")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의 '실수', 여성스러운 변덕이나 약점에만 연연해하지 않는다. 어떠한 아름다움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더 오래, 더욱더 사정없이 붙잡는 것은 얼굴의 주름살, 기미, 낡은 옷, 그리고 기울어진 걸음걸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다. 어째서인가? 감정은 머리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맞는다면, 또한 창문, 구름, 나무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머릿속이 아니라 그것들을 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자신을 벗어난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긴장과 환희를 느낀다. 감정은 여인의 광채에 눈이 부셔서 새떼처럼 푸드득거린다. 그리고 잎으로 가려진 나무의 우묵한 곳에 은신처를 찾는 새처럼 감정.. 2024. 3. 26.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김영옥·윤미애·최성만 옮김, 길 2015 본문 앞에 긴 해설이 있다(~64). 다른 책을 읽을 때처럼 '해설은 됐고'로 넘겨버리고 69쪽에서 시작되는 『일방통행로』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주유소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보다는 사실(事實)에 훨씬 가까이 있다. 한 번도, 그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던 '사실'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정한 문학적 활동을 위해 문학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라는 요구를 할 수 없다. 그러한 요구야말로 문학적 활동이 생산적이지 못함을 보여주는 흔한 표현이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 보다, 공동체.. 2024.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