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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by 답설재 2025. 3. 4.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임헌영 옮김, 범우사 1979

 

 

 

나는 나 스스로를 파멸시켰으며 또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손 이외의 것으로는 파멸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신은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다. 나는 천재성과 드높은 명성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와 광휘(光輝) 또 지적 용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육욕적인 향락 속에 파묻혀 있었고 지각없는 건달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동물같이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족속들 속에 휩쓸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재능을 낭비하기 시작했으며, 어이없게도 유한한 나의 청춘을 탕진하는 데에서 묘한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27~29)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소설) "살로메"(희곡) 등을 발표하며 '유미주의(唯美主義)'를 지향하는 뛰어난 글솜씨로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는 자신감, 자부심에 넘치던 작가였다.

동성애(男色) 사건으로 2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스스로 기고만장했다고 썼고, 처절한 반성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모색한다.

 

 

슬픔 속에는 성스러운 부분이 있다. 언젠가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인생에 대해서 실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며, 또 이런 것은 그 사람과 같이 어떤 특수한 성격을 지닌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두 간수 사이에 끼여 수갑을 찬 채 법정에 끌려 나올 때, 그는 그 긴 음산한 기분이 감도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수많은 군중 앞에서 나에게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해 주었다. 이러한 그의 거짓 없는 소박한 태도에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숨을 죽이고 있었다.(25)

 

 

책의 후반부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출옥 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구상을 보여준다.

 

 

실로 그리스도의 위치는 시인과 같다. 인류애에 대한 그의 모든 사상은 직접 상상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며, 이런 상상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61)

 

그는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다.(92)

 

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고도 이선적인 말 밖에는 안 되지만, 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자의 특권이다.(97)

 

비록 내가 자유로운 몸이 된 후에 내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잔치를 차리고도 나를 초대하지 않았다 해도 나는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 혼자서도 완전히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자유와 꽃과 책 그리고 달을 가지고도 완전하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97)

 

내가 출감하게 되는 바로 그날 정원의 라바남과 라일락은 만발해 줄 것이고, 그 라바남꽃의 황금색이 바람에 의해서 끊임없이 아름답게 한들거리는 것을 또 그 바람이 라일락의 연자주빛의 깃을 나부끼게 하여 온 천지가 흡사 아리비아의 별천지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것을 생각하면 내 가슴은 기쁨에 넘쳐 파들파들 떨리기까지 한다.(113)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 문장을 대조해 보았다.

 

 

…고통은 매우 긴 하나의 순간(瞬間)이다. 우리는 이것을 계절에 의해서도 가를 수가 없다. 우리는 다만 그 기분과 그것의 재래(再來)를 기록해 볼 수 있을 뿐이다.(처음)

 

이 사회는 나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으며 무엇을 나에게 무엇을 나에게 제공해 줄 것도 갖고 있지 않으나, 올바른 자에게나 그렇지 않은 자에게나 똑같은 단비를 내려주는 이 대자연은 나를 숨겨 줄 수 있는 바위의 틈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정적 속에서 홀로 조용히 눈물을 흘릴 만한 깊숙한 골짜기도 갖고 있을 것이다.

대자연은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밤하늘에 별을 매달아 줄 것이며, 그 누구도 나를 쫓아와 상처를 주지 못하도록 바람을 보내 나의 발자국을 지워 줄 것이다. 

「대자연」은 대양의 물로 나를 씻어 줄 것이며 쓴 약초로 나를 건강하게 해 줄 것이다.(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