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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나는 왜 이 책에 빠져 살아왔을까

by 답설재 2025. 3. 13.

 

 

 

 

이 월간지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시절 '대본서점'에서였다.

대입시험에 떨어져서 방황하던 시절, 대천 해변에서 '현대문학' 조연현 주간을 만났다. 어떻게 해서 만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해수욕장은 거의 해운대와 거기뿐인 시절이어서 그 여름 유명인사를 많이 봤다. 60년 전이었다. 조연현 선생과 찍은 사진이 몇 년 간 눈에 띄다가 사라졌다.

 

교육대학 다닌 2년간에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이 월간지를 들고 신기해했다.

교직생활 내내 기회가 되면 보았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 25년간에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다 읽었다.

 

그럼 뭐가 남았나?

그걸 물으면 내게 유감이 있는 인간이 분명하다.

남은 건 '단 한 푼'도 없다.

그럼 뭘 하려고 읽었나?

재미를 찾았다.

'그냥 세상'은 뭐랄까, 쓸쓸하고 썰렁해서 자주 '허구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작가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훨씬 재미있었다.

 

올 3월호는 다음과 같이 읽었다.

 

 

소설 「만춘」(윤보인)이 재미있었다.

주인공 만춘은 '흔히 사주는 미신'이라 하고, '그걸 믿는 인간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한숨 내쉬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리 세상이 미신 종사업이라 욕을 해도, 천한 직업이고 음지의 세계라 손가락질을 해도 이 업에 있다 보면 유명 정치인부터 재벌가 총수, 목사부터 바람난 주부, 백수까지 줄줄이 찾아온다'고 털어놓았다.

'젊을 때는 인생이 마음대로 될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다가도 막상 나이가 40 넘어 인생의 굴곡과 흉년을 만나면 어떻게 해서든 잘되는 날은 언제 오는지, 그런 볕 드는 날에 대해 듣고 싶다며 저 멀리 미국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찾아온다'고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주 보는 일의 전문성을 엿볼 수 있어서도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뚜렷한 줄거리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중편소설 「슌킨 이야기」는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별도로 줄거리를 적어보았다.

 

이기호의 '짧은소설' 「장면들」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에 대한 사랑 이야기였다. '미성년(未成年)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는 이 작가의 글은 늘 따스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소개된 중편소설 「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허진희)도 재미있게 읽었다. 등장인물은 구니(話者)와 할머니, 친구 보하, 타로 카페 마스터뿐이고 줄거리도 단조로운 중편(中篇)인데 편안한 문체로 이끌고 가면서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다.

나(구니)를 하나님처럼 여기던 할머니를 배신하고, 내가 하나님처럼 여기던 보하에게 배신당하는 이야기, 그러면서 '사람'을 마음에 담고 싶어 하는 이야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걱정과 답답함, 분노, 슬픔, 고통을 느끼는 이야기, 다시 찾아온 보하와 함께 명멸하는 일루미네이션의 일부가 되기로 한 이야기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야기였고, 그들 간의 그런 이해를 이끌어주는 단초를 마련해 놓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깊은 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네 편의 소설과 알쏭달쏭한 시들, 몇 편의 수필을 읽는 데는 일주일쯤 걸린다. 그 일주일, 하루 몇 시간씩은 허구 속에서 살아간다. 시 이야기는 제쳐놓고 싶고, 수필은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횡설수설로 페이지를 채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일주일쯤 읽고 난 뒤 또 다른 책 속의 허구를 찾아다니면 한 달이 간다.

그러면서 일 년, 또 일 년, 세월이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