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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세월43

봄은 어김없이 오네 온갖 사정을 막론하고 봄은 오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봄은 오고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달라도 봄은 오네 2023. 3. 24.
겨울밤 벽시계 사륵사륵…… 사각사각…… 눈 내리나? ... 아니네? ... 좀벌레가 벽을 갉아먹고 있나? 아, 벽시계 소리! 갉아먹는 소리 같은, 눈 오는 소리 같은 갉아 먹히고 내려서 사라지는 나의 겨울밤 나의 시간 2023. 2. 17.
그새 또 입춘 마음대로 시간이 가서 그리 차갑진 않은 바람이 붑니다. 야단스레 또 한 해의 겨울이 오더니 맥없이 사라지려 합니다. 나는 마음뿐이어서 말도 꺼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꾸 멀어집니다. 2023. 2. 3.
구월과 시월의 사이·차이 낮에 돌아와 점심을 먹으며 아내가 거실 달력을 넘겨놓은 걸 봤다. 내가 9월 30일에 떠나서 오늘 돌아왔으니까 그 생각을 못했던 거지. 달력 넘기고 메모해 놓는 건 으레 내가 해온 일이었는데... 아, 이제 보니 내 방 탁상달력은 아직 구월이네? 지난 금요일엔 구월이었지. 그새 달라지다니... 구월 달력을 그대로 둘 순 없겠지? 구월엔 아쉽지만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는데... 그대로 두어도 좋다면 나는 늦여름에 사는 것이고 구월 속에 살아가는 것인데... 일기예보를 들어보면 곧잘 늦더위로 기온이 29℃까지 오르는 곳도 있다고 했는데... 그런 현상을 기대하긴 다 틀린 일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도 않겠지? 비까지 내리네. 추적추적... 기온이 .. 2022. 10. 2.
잘도 오는 가을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제때 오지 않고 난데없이 나타나곤 했다. 기온이 아직은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물들여버렸다. 결국 올해도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면 누가 어디에 대고 어떻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항의를 할 수 있겠는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따르기가 싫다. 2022. 9. 18.
지난 3월의 눈 TV에선 오늘 상춘객이 넘쳐났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3월 19일, 저 산에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2022. 4. 3.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장편소설 《토성의 고리》 이재영 옮김, 창비 2011 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픽 카운티로 도보여행을 떠났다.(10) 이렇게 시작된다. 파괴와 고통, 희생 같은 것들로 점철되어온 역사를 슬픔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죽어갔고 폐허, 파괴의 흔적만 남아 있다. 보이는 것마다 공포와 공허, 덧없음, 우울을 보여준다. 슬픔은 끝이 없다. '토성의 고리'? 우리 모두는 우리의 유래와 희망이 미리 그려놓은 똑같은 길을 따라 차례차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우연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수록 나는 점점 더 자주 나를 엄.. 2022. 3. 25.
이 세월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달랑 "설명할 길도 없고 설명해봤자 별 수 없는 세월…"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옵니다. 베이징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고 적지 않은 나이에 기저질환이 있는 나에게 코로나는 여전히 위협적인 나날입니다. 순조로운 건 이야기하기가 쑥스럽긴 하지만 나의 이 세상에서는 단지 시간의 흐름뿐입니다. 일주일 후면 '우수'니까 봄이 완연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수(雨水)가 걸핏하면 우수(憂愁)가 되어 떠오릅니다. 문득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네 시간을 마치고 우리 교실이 있는 건물 뒤편 공민학교에 다니는 이웃집 성완(誠完)이 형을 찾아간 그 시간이 떠오릅니다. 칠십 년 가까이 지나가버린 그 시간은, 봄이 오면 꼭 한두 번씩 떠올려본 장면입니다. "봄비가 내립니.. 2022. 2. 12.
하루 또 하루...... 어제저녁이 잠시 전이었는데 오늘 또 날이 저물었습니다. 2021. 11. 5.
또 한 달이 가버렸네 느낌으로는 오늘이 아직 어제 같다. 이러다가 내일도 아직 그제인 줄 알지도 모르겠다. 뒷 담장의 마른풀을 정리한 것이 어제 같은데 이미 일주일 전이란다. 새벽이면 하루의 시작이구나 하지만 금세 점심을 먹게 되고 곧 저문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지? 저녁을 먹고나서 '오늘 밤에는 책을 좀 많이 읽어야지' 다짐하며 조금만 쉬었는데 어? 곧 이슥해져서 아내가 잠자리에 드는 걸 보고 말없이 놀라워했다. 나는 멍청이가 된 것인가? 늙은 사람의 시계는 정말 더 빨리 가나? 시계 공장에서 고약한 시계를 따로 만드나? "착시 중 하나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얼마 전에 밝혀졌어요. 알고 보니까 어렸을 때 뇌의 신경세포 정보 전달 속도가 나이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2021. 2. 1.
한복 차림 서울여인 # 1966년 삼각지 로터리 어디쯤이었습니다. 몇몇 집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배가 더 고팠습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데 하필이면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저기쯤 치마저고리를 입은 새색시가 보였습니다. 비를 맞는 건 똑같은데 그녀는 곧 사랑하는 이와 만날 것이어서 다 괜찮았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는, 저녁 준비를 해놓고 골목 어귀에 나와 기다리는 그녀가 부끄러워서 다정한 표정만으로 그녀를 포옹해주며 집으로 들어갈 것인데 나는 집도 없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예쁜 여인을 처음 보았습니다. 변함없이 암울한 한 해였고 세상이 돌연 다채로운 빛깔로 보이게 된 한 해였습니다. # 1971년 교사가 되어 시골 학교에 발령받은 나는 3년째에 6.. 2020. 12. 20.
미라보 다리아래 센 강이 흐르고 아침에 눈이 내렸습니다. 문득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이 우리들을 바라보다가 창밖을 내다보며 아폴리네르의 시를 암송하시던 장면입니다. 선생님은 청춘이었을 것입니다. 빛났어야 할 우리 선생님의 청춘......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서 옴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 마주 보면 우리의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가진 지친 물살이 저렇듯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사랑은 흘러간다 저 물결처럼 우리의 사랑도 흘러만 간다 ......................................... 선생님은 살아계.. 2020.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