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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세월47

이 시간 나를 멀리 떠나는 생각들 뒤로 더러 앞으로 빛살처럼 가버리는 것들 2017. 5. 18.
또 입춘(立春) 또 입춘(立春) 고양이 두 마리가 놀다 갔다. 털빛이 서로 다른 그 한 쌍은 신이 난 것 같았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사이도 좋았다. 부러운 것들……. 그들도 곧 봄인 걸 알고 있겠지. 달력을 보고 나왔으면 내일이 입춘이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는.. 2017. 2. 3.
미안한 날들 지난 2월 29일 오전, 작고 정겨운 나의 서가 앞에서 미안한 날들 12월입니다. 하릴없이 달력을 쳐다보게 되는 나날입니다. 쓸쓸하지만 않아도 괜찮을 날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나의 생일이어서 내가 당신에게 미안한 날, 당신의 생일이어서 당신에게 내가 미안한 날, 그런 우리의 생일처럼 .. 2016. 12. 2.
길가에 서서 길가에 서서 몸이 무거워서, 멈춰 섭니다. 주머니에는 별 것 없습니다. 확인해 볼 것도 없는 것들입니다. 다만, 몸이 무겁습니다. 지난여름보다 더한 무게입니다. 몸무게도 늘지 않았고, 드는 물건을 줄이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다니려고 하는데도 점점 무거워집니다. 언짢은 곳은 가슴속.. 2016. 11. 22.
세월 '또 가을…….' 아파트 뒷마당을 지나며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어느 초가을 저녁, 바로 그곳에서, 그 생각을 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낮에 버스 안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풋풋한 아가씨들이었습니다. "오늘이 화요일이야?" "응." "날짜 더럽게 안 가네!" 나도 그랬었습니다. '나도 저 나이가 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어서라도 먼저 이야기하도록 바라봐줄 때가 오기나 할까?' 그게 예고도 없이 와서 지나가려고 합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가씨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줄 것까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걸 미리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6. 9. 29.
가을구름 나를 두고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나날들이 나를 두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버리네. 2016. 9. 24.
2016년 7월! 7월! 2016년 7월……. 또 한 해의 가을, 겨울이 오고 있다. 「4계」1열두 곡을 단숨에 듣는 것 같다. '휙!' '휙!' 지나가버린다. 심각한 일이지만 몸도 마음도 모른 체한다. 태연하다. 더는 매일 밤 〈뉴스아워〉를 시청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정치나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논쟁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초연이다. 나는 중동 문제, 지구온난화, 증대하는 불평등에 여전히 관심이 깊지만, 이런 것은 이제 내 몫이 아니다. 이런 것은 미래에 속한 일이다. 올리버 색스는 죽음 가까이 가서 이렇게 썼다.2 앨빈 토플러도 저승으로 갔다.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 .. 2016. 6. 30.
경춘선 철로변 경춘선 철로변 용산행 경춘선 철로변 풍경입니다. 오고 가며 눈여겨보는 풍경은 여러 가지입니다. 빌딩 숲, 만(灣)의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해운대나 시드니항을 생각나게 하는 멋진 주택가,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생각나게 하는 나지막한 집들, 먼 산, 한강, 철로와 교차하여 끝없.. 2016. 2. 7.
힘겨웠던 설득 힘겨웠던 설득 2015.1.1.14:02 Ⅰ 권력이나 지위, 돈, 지식 같은 걸 가지고 있으면 영향력 있는 말을 하기가 수월한 것 같습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하는 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게 되고, 특별히 다듬지 않은 말을 해도 듣는 쪽에서 스스로 좋은 뜻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찾으려고 할 수도 .. 2015. 11. 8.
늙어가기 Ⅰ 일요일 새벽은 부지런한 이웃 주민이 폐품을 정리하는 소리로 시작됩니다. 그 순간에 부스스 잠을 깹니다. 이 아파트의 우리 동(棟)은 앞과 옆이 열려 있어서 이웃 주민들이 오르내리는 길이 훤히 보이고 그 길가에 재활용 분리수거함들이 놓여 있습니다. 빈 병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일요일 새벽이구나. 그새 또 일주일이 지나가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일요일 새벽의 기억들은 쉽게 겹쳐지기 때문에 지난 일주일이 무슨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저 텅 빈 시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월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은 그래서 더욱 절실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Ⅱ 순간(瞬間), 순식간(瞬息間).1 처음에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도 나와 같은 경험으로써 이 말들을 .. 2015. 8. 19.
"어디 갔다 이제 오니?" 그 식당에는 정자 같은 좌석들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앉아서 바라보는 한낮의 유월 하늘이 너무나 맑고 시원해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떠오르고 무척 미안했습니다. 얼마나 덥겠습니까? 가뭄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요즘은 전화도 오지 않습니다. 추석이 오거나 가을걷이를 해놓아야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미안한 일입니다. 전화를 받기만 했습니다. 일하는데 전화를 하면 방해가 될 것이라는 건 핑계입니다. '아! 소 먹일 시간이 아닌가?' 며칠 전에는 시내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전철역에서 난데없이 그런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늦지 않을까?', '뭐라고 꾸중을 듣지 않을까?'…… 그러다가 이곳은 서울이고, 지금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갈 수도 없는, 21세기의 어느 날, 2015년 6월이라는.. 2015. 6. 30.
2013 가을엽서 2013 가을엽서 저 하늘 좀 보십시오, 내 참……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실없는 사람처럼 저러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아니 며칠 전이라고 할 것도 없지요, 저 땀내 나는 옷 좀 보십시오. 그래 놓고는 시치미떼듯…… 나 참…… 어제저녁에는 '.. 2013.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