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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세월41

벚꽃이 피었다가 집니다 그 동네는 어떻습니까? 이 동네에선 엊그제 벚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오일장날 난전의 '펑튀기'가 떠올랐습니다. 깔깔거리고 웃던 아이들도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시끄럽지요?" 하고 묻길래 "아이들이니까요. 나 같은 노인은 떠들지도 못해요" 했더니 "그래도 교장실 옆이어서 신경이 쓰이는 걸요" 해서 "교장은 하는 일이 없어서 상관없어요" 했는데 선생님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나갔습니다. 지금 그 선생님은 또 꽃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떤 교장과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괜히 또 옛 생각 때문에 이 글도 '또' '괜히' 길어질 뻔했네요. 엊그제 그렇게 피기 시작한 것 같은 벚꽃은 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만개하고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그렇게 피어나면 세상의 그 누구도 어떻게 할.. 2019. 4. 18.
달력 몰래 넘기기 1 달력을 넘기려고 하면 섬찟한 느낌일 때가 있습니다. '뭐가 이렇게 빠르지?' 붙잡고 있는 걸 포기해버리고 싶고, 아니 포기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이내 평정심을 되찾습니다. '어쩔 수 없지.' 2 '또 한 달이 갔어? …… 우린 뭘 했지? ……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야?' 털어내야 할 것들,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 해결해야 할 것들…… 온갖 것들이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내가 그렇게 따지고 들 것 같은 초조감도 없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런 질문들이 점점 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3 그런 '숙제'가 싫습니다. 해결되거나 말거나 정리할 게 있거나 말거나 그냥 지내면 좋겠습니다. 덥거나 말거나 언제까지나 8월이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으면 그만이겠습니다. 이 .. 2018. 9. 1.
돌연 가을? 돌연 가을? 8월 15일,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열대야에 시달리며 "이 무더위는 아직 언제까지일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기가 막혔는데 웬걸, 이튿날부터는 기온이 사정없이 내려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즐거움이 담긴 표정, 시원한 느낌이 스민 음성으로 "살 만하다!" 했고, 이번엔 무슨 거창한 .. 2018. 8. 26.
봄여름가을겨울 그 미칠 것 같았던 봄여름가을겨울 텅 빈 채였던, 아무것도 없었던 봄여름가을겨울 나를 속이고 간 봄여름가을겨울 이제 와서 보이는 저 가을 그런데도 거기에 나는 보이지도 않는 가을 2017. 10. 9.
"이제 겨울이죠 뭐!" "이제 겨울이죠, 뭐!" 그 개인택시 기사는 느직하게 나가고 일찌감치 들어옵니다. 택시를 취미 삼아 하는 사람 같고, 걸음걸이도 한 걸음 한 걸음 의식적으로 내딛는 것 같습니다. 그는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피차 할 일도 없이 지내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초저녁에 샤워장이나 탈의실에서.. 2017. 8. 23.
월간지 표지 사진 책을 들고 있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기억들을 따라 서글픔이 밀려온다. 1. 2개월 전, 1, 2년 전 책도 그렇고 오래된 책은 더욱 그렇다. 모호하거나 짜증스럽거나 뭔가 초조해서 읽지도 않고 넘겨버린 글도 있었던 그 많은 시간들…… 우루루 몰려와 그렇게 머물던 그 수많은 시간들,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그 시간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되돌아올 수나 있는 길에 있을까. 그것들……. 2017. 7. 27.
세월 2017. 5. 20.
또 입춘(立春) 또 입춘(立春) 고양이 두 마리가 놀다 갔다. 털빛이 서로 다른 그 한 쌍은 신이 난 것 같았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사이도 좋았다. 부러운 것들……. 그들도 곧 봄인 걸 알고 있겠지. 달력을 보고 나왔으면 내일이 입춘이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는.. 2017. 2. 3.
미안한 날들 지난 2월 29일 오전, 작고 정겨운 나의 서가 앞에서 미안한 날들 12월입니다. 하릴없이 달력을 쳐다보게 되는 나날입니다. 쓸쓸하지만 않아도 괜찮을 날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나의 생일이어서 내가 당신에게 미안한 날, 당신의 생일이어서 당신에게 내가 미안한 날, 그런 우리의 생일처럼 .. 2016. 12. 2.
길가에 서서 길가에 서서 몸이 무거워서, 멈춰 섭니다. 주머니에는 별 것 없습니다. 확인해 볼 것도 없는 것들입니다. 다만, 몸이 무겁습니다. 지난여름보다 더한 무게입니다. 몸무게도 늘지 않았고, 드는 물건을 줄이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다니려고 하는데도 점점 무거워집니다. 언짢은 곳은 가슴속.. 2016. 11. 22.
세월 세 월 '또 가을…….' 아파트 뒷마당을 지나며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어느 초가을 저녁, 바로 그곳에서, 그 생각을 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낮에 버스 안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풋풋한 아가씨들이었습니다. "오늘이 화요일이야?" "응." "날짜 더럽게 안 가네!" .. 2016. 9. 29.
가을구름 나를 두고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나날들이 나를 두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버리네. 2016.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