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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세월50

세 월(Ⅱ) 지나는 길의 개나리가 이야기합니다. "봐, 노랑이란 바로 이런 색이야." 누군가 모를 무덤가에는 진달래가 곱습니다. 멀리에서 복사꽃도 담홍색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복사꽃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1960년대나 70년대의 그 정서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가 나만 이렇게 멀리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봄꽃들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 곧 아지랑이 피어오를 봄을 ‘희망’만으로 이야기하지만, 나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에게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그 희망이 잔인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린애들이나 소년소녀들은 저 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이란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얼굴이 무너지고 마음이나 정서도 그만큼 누추해져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2008. 4. 9.
세 월 (Ⅰ) : 나의 일생 살다 보니까, 산다는 것의 리듬이, 생각 없이 자고난 겨울날 새벽 창밖에 쌓인 눈의 경이로움 같은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겨울이 와도 그만이고 가도 그만이고, 그래서 플라타너스 -가로등을 배경으로 서 있는 봄날 초저녁의 그 싱그러운 자태- 를 보아도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어느 날 이번에는 여름이 와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산의 온갖 푸나무가 초록을 넘고 넘어 숨차도록 푸른데도 동해 - 그 그리운 바닷가에 갈 일이란 전혀 없어져버리고, 그 다음에는 가을이 와서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는 거야 너무도 당연하여, 추억에 젖어 ‘사계(四季)’나 ‘무언가’(無言歌, 멘델스존) 그런 음악을 들어보는 일도 우습고 웬지 좀 부끄럽기도 하고 차라리 시시하게 .. 2008.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