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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세 월 (Ⅰ) : 나의 일생

by 답설재 2008. 4. 4.

 살다 보니까, 산다는 것의 리듬이, 생각 없이 자고난 겨울날 새벽 창밖에 쌓인 눈의 경이로움 같은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겨울이 와도 그만이고 가도 그만이고, 그래서 플라타너스 -가로등을 배경으로 서 있는 봄날 초저녁의 그 싱그러운 자태- 를 보아도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어느 날 이번에는 여름이 와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산의 온갖 푸나무가 초록을 넘고 넘어 숨차도록 푸른데도 동해 - 그 그리운 바닷가에 갈 일이란 전혀 없어져버리고, 그 다음에는 가을이 와서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는 거야 너무도 당연하여, 추억에 젖어 ‘사계(四季)’나 ‘무언가’(無言歌, 멘델스존) 그런 음악을 들어보는 일도 우습고 웬지 좀 부끄럽기도 하고 차라리 시시하게 느껴질 때가 대부분인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봄이야 다시 ‘오거나말거나’가 되었습니다. 고개를 넘고 넘는 심심산골 그 산비탈에, 내가 왜 그렇게도 울며불며 묻었는지 이제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삼십여 년 전 우리 어머니의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에게도 이제는 ‘봄이야 오거나말거나’일 것입니다.

 

그렇게 지내며 웃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더러 속도 끓이고 조바심하며 살다보니, 진실이라고 믿어 필요하다면 혈서라도 쓰겠다던 일들이 아리송해졌고, 오히려 소홀했던 것들의 중요성이 -눈사람을 만들 때 끝내는 감당도 못하겠던 그 눈 덩이처럼- 커지기도 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 올에 백 원씩이라면서 흰 머리칼을 뽑던 그 일요일 오전에는 -아, 그 시간들이 참 그립군요.- 머리칼도 심심하여 장난을 치는 줄만 알았는데, 한꺼번에 몰려와서 “이래도?” “이래도 장난이냐?”며 더욱 기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봄이야 오거나말거나’에 더욱 침몰하게 되었지만, 그냥 멍청하게 살기는 싫었던지, 아니면 그렇게 ‘오거나말거나’가 되어버린 것이 허전해서 무엇에든 매달려 있어야 그 허전함을 메울 수 있어서였던지, 세상을 놀라게 할 무슨 큰 업적을 남기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으면서도 눈앞에 닥친 일에는 매진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세월에 ‘나는 이 일에 내 청춘을 불사르고, 나 자신을 다 바치고야 말겠다.’는 것은 아니면서도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그 일들을 해결하는 것인 양 억척스럽게 해내었습니다. 그 세월은 교실에서도 오고갔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십 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여름만 되면 해운대 같은 곳으로 몰려가 텅 빈 서울 거리에서 차가 막히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만 했고, 가을만 되면 산야가 단풍으로 물들었다는 걸 어느 날의 신문 1면과 저녁 9시 뉴스에서 설악산 풍경으로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설날도 추석날도 차례를 지내고난 오후에는 일 생각만 했고, 비오는 밤, 눈 내리는 새벽, 달 밝고 벚꽃 지는 밤, 사람들은 시내의 이곳저곳을 어울려 다닐 때도 저는 그런 일들에 파묻혀 있었다는 기억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무엇을 그렇게 했는지 한번 설명해보라면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하므로 차라리 그냥 가슴속에 담은 채 이대로 가고 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놀라운 느낌’ 한 가지는 밝히고 싶습니다. ‘어느새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입니다. 말하자면, 어느 날 정신이 들어 세어보니 제 나이가 63세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30대, 40대, 50대에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무슨 생각으로 지냈을까요. 그런 세월이 제게 정녕 있기나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내 청춘을 보상하라!”고 소리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들이댈 만한 용기도 없으면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나 자신은 도저히 다 이야기할 수가 없으므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는 분명히 말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네가 한 일을 왜 우리에게 설명하라고 하느냐?” 하시면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제게 맡겨진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며 지냈습니다. 웬만하면 다 하는 학위과정에 대해 몇몇 대학에서 오라고 해도 원서를 써 낼 시간조차 없었고, 누구를 찾아가 ‘저 상 좀 주십시오.’ 하면 ‘그래? 그럼 당신의 공적조서 좀 만들어 와 봐.’ 할까봐, 그러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봐 자제하며 지냈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식사가 끝난 점심시간에 얼른 일어서지 않고 잡담을 해대는 동료들이 한심하고 밉고 우둔해보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러시아 작가 고리키Maksim Gorky의 단편소설 《외투》가 생각납니다. -고리키가 맞습니까?- 시청 직원으로 평생 일만 하다 죽은 영혼, 그 유령(幽靈)이 밤만 되면 그 시청 주변을 배회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자세한 건 생각나지 않고, 그 유령은 눈 내리고 찬바람 부는 그런 밤에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만 생각납니다. 저도 죽으면 그런 유령이 될까요? 이제 그렇게 지독하게 일하지는 않게 되었으므로 유령이 될 처지는 면했을까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깨어나 보니 제가 여기까지 와 있으므로 깎고 또 깎아서 최소한으로 이야기한다 해도 저는 십여 년은 그냥 몽땅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두어 시간 낮잠을 자고 일어난 해거름의 상실감을 느낍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걸 누가 좀 설명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