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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름다운 해리 왕자 -군 복무에 대하여-

by 답설재 2008. 3. 18.

 

  지난 3월 초의 여러 신문에는 영국 찰스 왕세자의 차남으로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자(23세)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수수하고도 깔끔하고 멋있어서 만약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면 젊은 여성들이 그야말로 “끼악-!”하고 말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기회가 오면 제 두 딸 중 한 명이나 아들에게 통역을 부탁해서 그와 차라도 한잔 함께하고 싶었으니까요. 혹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제 딸은 영화 『007』에서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로저 무어의 부탁을 받아 서울을 안내한 적도 있고, 엘리자베스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으니 제게 그런 기회가 영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본 사진 중에는 남부 아프가니스탄 최전선(最前線)인 헬만드 지역에서 군 복무 중인 그가 동료 군인들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찍은 것도 있고 -함께 어딘지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매일경제, 2008.3.1.)-, 다른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조기 귀국한 그가 아버지 찰스 왕세자, 형 윌리엄 왕자와 함께 옥스퍼드셔 브라이즈 노튼 공군기지를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아버지 찰스 왕세자는 이쪽을 보며 걷고 있고, 해리 왕자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채 아버지 앞에서, 형 윌리엄 왕자는 아버지 뒤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습니다(문화일보, 2008.3.3.). 좀 딱한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랑스런 해리 왕자는 어머니 다이애나 비 사망 이후 나치 제복 착용 등으로 더러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는 청년입니다.

 

 

 

  두 사진의 경위를 신문기사대로 설명하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무장 세력인 탈레반이 해리 왕자의 현지 복무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생포할 계획이었다고 하며,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었던 해리 왕자는 최근 이 사실이 언론에 노출됨으로써 신변 안전을 이유로 지난 3월 1일 파병 10주 만에 조기 귀국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탈레반 야전 지휘관인 물라 압둘 카림은 뉴스위크와의 위성통화로 “12월말에서 1월초쯤 정보 담당자로부터 ‘중요한 어린애(important chicken)'가 영국군에 합류했다는 정보를 보고 받았으며, 우리의 일차 목표는 ‘특별한 적’인 해리를 생포하는 것이었고, 이차 목표는 살해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해리 왕자도 자기 존재가 동료 병사들에게도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감명 깊은 것은, 헬만드 주는 영국군 7,800여 명 대부분이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탈레반 반군이 절반 이상을 장악해 영국군과 교전이 치열한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었지만 해리는 그 곳에서 의젓했고, 그러다가 조기 귀국한 해리 왕자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너무나 수치스럽다. 전장으로 곧 돌아가고 싶다.”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은 영웅이지만 나는 절대 아니다.”

  그는 4개월의 복무기간을 채우지 못한 것에 실망감을 나타내면서 언론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눈으로 보지 않는 언론도 있었습니다.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막스 클리포드라는 사람은, “전적으로, 겉으로 드러내기 위한 홍보활동”이 목적으로, 이른바 ‘파티 귀신’이었던 그의 이미지를 ‘일신(rebrand)'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는 것입니다(이상, 위에서 인용한 두 신문의 기사를 종합 인용함).

 

 

 

  막스 클리포드의 평론 내용이야 자유 의사에 의한 것이지만, 그런 눈으로 보면 ‘이래도 탈, 저래도 탈’ 아니겠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답지 중 한 가지를 고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머저리나 핫바지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잘 모르니까 가능하면 국회의원쯤이나 장관후보자 같은 분 중에서 대표로 답해준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① 영국 왕실은 해리 왕자의 군복무 사실을 철저히 숨겼어야 한다.

  ② 영국 왕실은 해리 왕자의 군복무 사실이나 전장(戰場) 배치를 적절한 시기에 홍보해도 좋다.

  ③ 군 미필이면 평생 ‘골치 덩어리’가 될 수도 있으므로 영국 왕실은 해리 왕자에게 그 위험한 지역에서 복무하는 군인을 만들지는 말고 런던에 있는 어떤 기관의 공익요원쯤으로 근무시키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④ 영국 왕실은 해리 왕자에게 군복무를 시키지 않고 나중에 그 사실이 알려지면 잘 궁리해서 -가령 ‘6.25전쟁’ 전후(前後)처럼 먹고살기가 너무나 어려워 체중이 미달되었다거나 외국 국적을 취득해 그 나라에 있었다든지 하는 등- 신문에 실려도 좋을(?) 답변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⑤ 해리 왕자가 군복무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속 썩일 상황을 만들지 말고 아예 군대에 보내지 않아야 하며, 그러한 사실을 들키기 전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⑥ 기타 적절한 대답.

 

  여러분이 해리 왕자이거나 엘리자베스 2세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참고로 영국 왕실의 군복무에 대해 말씀드리면, 앤드루 왕자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는 공주 시절인 2차 세계대전 당시 운전병으로 복무한 바 있답니다. 저와 견해가 다른 분이라면 이런 사실에 대해서도 무언가 토를 달고 싶어 하겠지요.

 

 

 

  저는 그랬습니다. 막내가 아들인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입대를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했지만 저도 남들처럼 그 애의 ‘아버지’이므로 참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어느 날 퇴근했더니 아내가 동사무소 직원의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방위를 해도 된다. 신체검사 결과 그런 소견이 있다. 의견을 동사무소로 알려 달라.”

 

  저는 아예 국회의원이나 장관 부류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아들에게는) 극비에 부치라고 부탁하고는 당시 기무사에 근무하는 K소령에게 “부디 우리 아이 좀 얼른 잡아가는 방법 좀 알아 달라.”고 했습니다. 방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제 아들에게 방위로 근무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된 것입니다. 

 

  K소령은 처음에는 제 진의가 의심스러워 의아해 하다가 이내 빠지기는 어렵지만 ‘그걸 거꾸로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그렇게 거꾸로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저는 그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신분에 따르는 도리 상의 의무)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것 따지고 살았습니까? 그때까진 그런 용어가 있는 줄도 몰랐지 않습니까?

 

  어느 분은 국회 청문회장에서 “장관할 줄 알았다면 주변정리를 잘 할 걸 그랬다.”고 후회스럽다는 발언을 했지만, 그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따질 만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요? 그 후회가 적절한 것인지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이나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얄팍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관점대로라면 그렇게 얄팍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정부 부처를 맡아 국정을 책임지는 장관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논산 훈련소 가는 그날은 아득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훈련소 가까운 그 마을에서 아들과 둘이서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국밥’은 썩 괜찮은 메뉴였는데 아들도 저도 서로 눈치를 보며 넘어가지도 않는 걸 억지로 넘겼습니다. 아들은 집에서는 언제나 남기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은 그걸 꾸역꾸역 다 먹어 치웠습니다.

 

  점심 식사 후, 연병장에 모이는 시각까지의 이야기는 하기도 싫습니다. 생각 자체가 싫습니다. 그 아들을 연병장에 남겨 두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운전기사가 건네는 말들에 대답하기가 참 귀찮았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그는 뭐하려고 자꾸 묻고 그 대화를 이어가려고 그러는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아침에는 멀쩡하게 둘이서 나갔지만 혼자 돌아오게 된 제 처지가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했습니다. 흡사 무엇을 몽땅 잃고 돌아온 처지 같았습니다. 옷을 갈아입는데 아내가 아들에 대해 무언가를 물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대답도 않고 “어허, 이 사람이!” 하고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뚝 그쳤습니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네 아들과 딸은 모두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더랍니다. 특히 시력이 좋지 않은 막내 쿠엔틴은 시력검사판을 모조리 외워서 입대했는데, 1918년 공중전(空中戰)에서 전우를 구하고 격추되었답니다(조선일보, 2008.3.3. 34). 바보 같은 루스벨트!

 

  조선 명종 때부터 선조 때까지 병조판서, 영의정 등을 지낸 이준경(李浚慶․1499~1572)은 명종이 후사(後嗣)가 없이 세상을 떠났을 때 중종의 후궁 안 씨의 아들(이균)을 임금(선조)으로 추대했으며, 고맙게도 우리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에게 중매를 서기도 한 분인데, 자신의 아들이 홍문관(弘文館) 관리(조선시대 문과 급제자의 최고 엘리트 코스!) 후보로 올라오자 “내 아들이어서 누구보다 그릇이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잘 안다”며 명단에서 지워버렸답니다. 바보 같은 이준경!

 

  언젠가 국회의원과 장관들 및 그 자녀의 군 복무 비율이 이른바 ‘보통사람들’인 우리보다 훨씬 낮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며 ‘그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훌륭한 분들이므로, 그런 기사를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저 같은 사람이 ‘비정상’인 걸까요? 아니면 아무래도 신문기사가 크게 잘못되어 그 국회의원이나 장관들이 지금쯤 "우리가 왜 군 복무 비율이 낮으냐? 그렇지 않다!"고 ‘언론중재위원회’에 기사 정정(訂正)을 요구한 상태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나라는 본래 저 영국과 같은 다른 나라 하고는 가치관이 영 다른 나라인 걸까요? 또 그것도 아니면, 이른바 지도자들은 ‘국민들 중에는 죽어도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군대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사람도 있다. 군대는 그런 사람들이 가면 된다’고 파악하고 있는 걸까요?

 

  이런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 사항'이어서 본래 하지 않는 것이 도리인가요? 제가 좀 둔하고 주제넘은 건 아닌가요? 누가 좀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이 글을 얼른 삭제하거나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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