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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퇴임18

정은숙 「멀리 와서 울었네」 멀리 와서 울었네  지하 주차장, 신음 소리 들린다.방음 장치가 완벽한 차창을 뚫고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울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그가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그가 낮게 낮게 시간의 파도 속을 떠다닌다. 눈물이 거센 파도가 되고 멈춰 선 차들은춤을 추네. 울음소리에 스며들어 점차나는 없네.이 차는 이제 옛날의 그 차가 아니라네.이 차는 속으로 울어버린 것이라네.나를 싣고서 떠나가 버렸다네.                        ―정은숙(1962~ )  아무도 없는 데로 가서 울어본 적이 있는지. 울려고 가다가 중간에 참던 울음을 쏟아진 적이 있는지. 미처 틀어막지 못한 울음 때문에 두리번거린 적이 있는지.누구도 오래 머물길 원치 않는 지하 주차장.. 2022. 5. 6.
'은퇴 전에 준비해놓을걸…' 은퇴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노후자금' '취미' '체력'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여가는 있는데 돈과 체력이 부족하고 뭘 할지 막연하다는 것이지요. 지난 2014년 연말에 삼성생명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조선일보 2014.12.3). 은퇴자 93명을 대상으로 돈·생활, 일·인간관계, 건강 세 가지에 대해 '무엇을 가장 후회하는가?' 물었더니 노후 여가 자금을 준비하지 않았고, 평생 즐길 취미가 없고, 운동으로 체력 단련을 못했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돈과 생활'에 대해서는 노후 여가 자금 준비를 못한 것 외에도 여행을 못했고,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고, 노후 소득을 위한 설계를 제대로 못한 것을 아쉬워하더라고 했습니다. 또 '일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취미를 개발하지 못.. 2022. 4. 25.
퇴임 후의 시간들 퇴임 후 나는 힘들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낮에도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도 불안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고 전화가 오면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사람이 그립거나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싫었습니다. 그 증상을 다 기록하기가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러다가 비명에 죽겠다 싶었습니다. 숨쉬기가 어려워서 인터넷에서 숨 쉬는 방법을 찾아 메모하고 아파트 뒷동산에 올라가 연습했습니다. 심장병이 돌출해서 119에 실려 병원에 다녀왔는데 또 그래서 또 실려가고 또 실려갔습니다. 숨쉬기가 거북한 건 심장에는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잊히는 걸 싫어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른 십 년쯤 훌쩍 지나가기를 빌었습니다(그새 12년이 흘러갔습니다. 누가 나를 인간으로 취급하겠습니까). 그.. 2022. 3. 15.
명퇴를 하겠다는 K 선생님께 (2021.11. 26) ‘명퇴 사유 예시’가 교육 단상 블로그의 단골 유입 키워드의 자리를 차지하더니 마침내 K 선생님으로부터 명퇴 얘기를 듣게 되었고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더니… 교육 말고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아름다운 교육자인 건 분명하지만 세상일에는 더러 멍청한 면을 보여주는 K 선생님이 명퇴를 해서 무얼 하시겠다는 걸까요? 물어나 봅시다. 놀겠다는 대답이 쉽겠지요? 무얼 하면서요? 골프? 사십여 년을! 그 오랜 세월 누구와 함께? 혹 해외여행인가요? 사십여 년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동남아로 마구 돌아다닐 작정입니까? 골프 치러 나다니고 패키지 해외여행 두루두루 다닌다는 선배 얘기에 혹했습니까? 교사시절보다 더 바쁘고 신난다는 그 말을 믿고 있습니까? 사십여 년 그렇게 하겠다는 삶이 부럽.. 2021. 11. 26.
"나는 이미 유령입니다" # 1 지금은 아파트 앞 미장원(헤어샵?)을 기웃거리다가 손님이 없구나 싶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슬쩍 들어가지만 전에는 굳이 이발소(말하자면 남성용 '헤어샵')를 찾았고 그것도 현직에 있을 때처럼 꼭 주말을 이용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리 없어서 연중 '주말'인데도 그딴 일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듯 굳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차를 가지고 멀리 이웃 동네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가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며 퇴임한 지 네댓 해가 지난 어느 토요일 아침나절이었습니다. 이미 두어 명이 소파에서 주말판 신문을 보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 머리를 깎고 있는 중년은 분명 K 교사였습니다. 들어서면서 거울 속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하마터면 인사를 할 뻔했습니다. 하마터면? 그 순간! .. 2021. 5. 14.
요코야마 히데오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클라이머즈 하이》 박정임 옮김, 북폴리오 2013 사상 최악의 항공기 추락 사고(JAL 123)를 배경으로 지방 신문기자 유키 가즈마사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책을 들고 있을 때는 코로나를 잊었다. 그게 왠지 미안한 느낌이긴 했지만 형편없이 가늘어진 기력을 쉬게 할 수 있었다고 하면 될지 모르겠다. 유키는 쓰고 싶은 걸 썼고, 싣고 싶은 걸 실었고, 위아래를 의식한 타협을 하지 않았다. 실어야 할 투고(投稿), 그러나 모두들 꺼려하는 원고를 실은 유키는 마침내 17년간 근무한 본사에서 구사쓰 통신부로 쫓겨나 다시 17년을 근무한다. 그는 그곳에서도 전원생활에 관한 기사를 썼다. 사표를 내고 보자는 생각을 가졌다가 동료들의 만류를 들었고, 아내와 아들, 도와주어야 할 친구를 생각했다. 무.. 2020. 11. 5.
선생님께 - 어느 독자의 편지 2010년 2월 11일에 이 블로그에 실은 편지입니다. 이번에 블로그 시스템이 바뀌면서 글자는 잘 보이지도 않고 그나마 글씨체가 아주 이상해서 그대로 두기가 민망했습니다. 좀 잘난 척하려고 각주를 하나 달아 놓았었는데, 각주가 달린 글은 수정이 불가능하니까 어쩔 수 없이 오늘 날짜로 새로 싣게 되었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은 6년 만인 1016년에 딱 하나가 달렸습니다. 그것을 옮기고 댓글란은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선생님. 몸 관리 잘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리곤 했는데 기어코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군요. .. 2020. 9. 11.
지금 내가 있는 곳(2) 지금 내가 있는 곳 (2) '이곳'은 고요한 곳입니다. 자주 적막하고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이 고요와 적막, 고독, 외로움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나는 마침내 '이곳'으로 왔으며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 이곳에 이렇게 있다가 '저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지금 내가 .. 2018. 3. 2.
지금 내가 있는 곳 (1) 위로 삼아 나의 경우 정년퇴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하자 동석한 부인은 자기도 그렇다며 맞장구를 쳐주었으나 정작 당사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유종호「어느 이산의 뒷얘기-한 시골 소읍의 사회사에서」(에세이),『현대문학』2017 3. 196. 저 자리에 동석했다면 저 '당사자'라는 사람을 보고 "그런다고 무슨 수가 날 것도 아니니까 포기하는 게 낫다"는 말을 해주거나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저 '당사자'와 나는―지금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와 있습니다. 어떤 곳인지 설명하자니까 참 난처하고 애매합니다. 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가 있는 이곳을 '이쪽'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떠나온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뭐.. 2018. 1. 18.
한가한 날들의 일기 - 퇴임 이후 예전에 숙직을 할 때처럼 교실들을 순회하고 있었습니다. 유령처럼……. 나는 사실은 유령인데 자신이 유령인 줄도 모르고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교실의 정원 쪽으로 난 출입문이 잠겨 있지 않은 걸 발견했는데, 손을 대니까 문이 열렸고 그러자마자 밖에 서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키가 2미터도 넘을 것 같았고 흰색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들고 있던 책을 그 남자의 가슴팍에 들이밀며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가 나가자마자 얼른 걸고리를 걸긴 했지만 빗장으로 쓸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서 조바심을 내다가 잠이 깼습니다.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었으니까 '자정을 갓 지났겠지?' 짐작하며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산기슭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학부모들과 삼삼.. 2014. 7. 3.
새내기 퇴직자들을 위하여 (Ⅳ) ♬ '새내기……'라고 하니까 대학이나 회사에 갓 들어가서 간편복을 입고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은 근사한 연수 시설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떠오릅니다. 한가롭게 해묵은 월간지 『공무원 연금』을 뒤적이다가 '새내기 퇴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 후배님들 이것만은 꼭…'이란 기사를 보고 옮긴 단어입니다. '아,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구나!' 사실은 '퇴직자'라고 하면 아무래도 서글픈 느낌을 줍니다. 어쩔 수 없지요. ♬ 월간지 『공무원 연금』을 아십니까? 아마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월 1000원, 연 12,000원인데 정기구독하시겠느냐고. '새내기 퇴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 후배님들 이것만은 꼭…'이라는 그 기사는, 퇴직자 9명의 제안을 실은 글입니다. 개요만 소개합니다.1 ▷ 신나게.. 2013. 2. 3.
소극적으로 살기의 즐거움 전에도 소개한 적 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버트런트 러셀은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라는 글에서 지겨운 사람이 되는 갖가지 방법들과 그것을 피하는 방법들을 정리해 일곱 권으로 된 학술논문을 쓸까 생각 중이라고 너스레를 뜰고 난 다음, 그 일곱 가지 부류의 기본에 속하는 사람으로 ❶ 계속되는 변명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❷ 지나친 근심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❸ 스포츠 이야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을 들었습니다. 그가 그 다음으로 든 지겨운 사람은, ❹ 현학적인 태도로 지겹게 하는 사람, ❺ ( ), ❻ 허풍, 즉 자화자찬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말하자면 ‘속물’, ❼ 지나친 활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 최악의 부류로 거의 예외 없이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여성들이여! 어쩔 수 없이 인용합니다. 미안합니.. 2012.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