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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퇴임 후의 시간들

by 답설재 2022. 3. 15.

 

 

퇴임 후 나는 힘들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낮에도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도 불안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고 전화가 오면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사람이 그립거나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싫었습니다.

그 증상을 다 기록하기가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러다가 비명에 죽겠다 싶었습니다.

숨쉬기가 어려워서 인터넷에서 숨 쉬는 방법을 찾아 메모하고 아파트 뒷동산에 올라가 연습했습니다.

심장병이 돌출해서 119에 실려 병원에 다녀왔는데 또 그래서 또 실려가고 또 실려갔습니다.

숨쉬기가 거북한 건 심장에는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잊히는 걸 싫어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른 십 년쯤 훌쩍 지나가기를 빌었습니다(그새 12년이 흘러갔습니다. 누가 나를 인간으로 취급하겠습니까).

그렇게 지내면서 남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한국교과서연구재단 전찬구 이사장이 퇴임 직전에 학교에 찾아와서 수석연구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전망 좋고 아담한 사무실을 마련해준 것은 연착륙의 길이 되어주었습니다.

가로수가 쓸쓸한 올림픽도로를 달려 사무실에 나가고 돌아오면서 더러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음악은 변함없는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사무실을 5년 3개월 동안 드나들었습니다.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조만간 또 따로 쓰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나의 그 병적인 증상을 아직 다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소시민의 편지>

 

'봄이 왔나' 하고 느끼려는 순간 봄이 아님을 느낍니다. 과거 어느 정치인이 자주 써먹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단지 계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학교의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겨울 공화국>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요? (...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 중 일부) 언젠가 제가 드린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아무리 교사들이 발버둥 쳐도 교장의 말 한마디면 학교는 교장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드린 말씀 생각나시는지요? 교장선생님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는 바뀌지 않습니다. 근평에 목을 매고 있는 교감, 부장과 교사들이 있는 한 더욱 바뀌지 않습니다. 요즘 갑갑함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풍토를 고스란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임자 흔적 지우기, 전임자 부정하기, 뭐 그런 단절적인 사회풍토 말입니다. 아이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나를 따르라>는 교장과 그것을 열심히 전달하는 교감, 불만에 싸여 씩씩거리면서도 학년 담임들과 담당교사에게 전달하는 부장들, 그리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볼멘소리를 하는 교사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학교 분위기에 끌려가는 아이들... 이제 그만 쓰렵니다. 더 쓰다 보면 제가 불평분자가 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윗글의 제목이 어찌 그리 현실과 맞아떨어지는지 혹시 아시고 쓴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내일은 꽃샘추위가 온다고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열매의 편지>

 

오래전 TV의 광고에서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하는 용기'에 대한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용기가 있는 분이 바로 교장선생님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니 그건 용기가 아니라 실력이었고, 철학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교장선생님이 거기, 그곳에 계신 것이 무척 아쉽고 아까운 요즘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퇴임 직후, 두 분이 이 블로그의 어디에 이 글을 써주었습니다.

12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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