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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잠자는 알베르틴

by 답설재 2022. 3. 14.

 

 

2. 잠자는 알베르틴 - 프루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5권 『갇힌 여인La Prisonniere』

 

기나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갈피에는 “여기요!” 하고 속삭이고 싶은 장면, 주제, 이미지들이 감추어져 있다. 그 중 『갇힌 여인』에서 나레이터인 마르셀은 발베크 바닷가에서 만난 여러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 중 한 사람인 알베르틴을 마침내 파리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마르셀의 “갇힌 여인”이 된다. 그러나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지내면서도 마르셀은 그 여자를 소유하지 못한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녀가 외출만 하면 온갖 상상에 사로잡히고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하는 그는 어느 날 밤, 깜빡 잠이 든 그녀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잠은 대상을 가장 가까운 곳으로 데려다주는 동시에 가장 먼 곳으로 떠나보낸다. 잠은 잠든 사람을 하나의 “꽃가지”로, 하나의 “풍경”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안타깝고 아름다운 잠의 에로티즘은 오직 프루스트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심리학과 형이상학의 한 자락 꿈이며 존재와 부재, 현존과 상상, 소유와 상실, 동물성과 식물성,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미묘한 변증법이다. 천천히 곱씹어 읽노라면 이 기이한 잠의 리듬에 혼곤히 젖어들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있어서 알베르틴이 내면에 살고 있는 것은 해 질 무렵의 바다만이 아니라 때로는 달 밝은 밤 모래톱에서 졸고 있는 바다이기도 했다. 과연, 어쩌다가 내가 아버지의 서재로 무슨 책을 한 권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나면 알베르틴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밖에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다녔더니 너무나 지쳤다면서 그동안 좀 누워 있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그저 잠깐 동안 방에서 나가 있었을 뿐인데도 돌아와보면 그녀는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 일부러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은 자연스런 자세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길게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내 눈에는 무슨 긴 꽃가지 하나를 거기 갖다놓은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러했던 것이, 마치 그녀가 잠들면서 무슨 식물로 변하기라도 했다는 듯, 그런 순간, 나로서는 그녀가 부재해야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꿈꾸는 능력을 그녀의 바로 곁에서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녀의 잠은 사랑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현실로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혼자 있으면 나는 그녀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녀는 결핍된 존재여서 나는 그녀를 소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눈앞에 있으면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만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나도 부재하는 상황이어서 생각을 할 능력이 없었다. 그녀가 잠들어 있으면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 않아도 되고 그녀가 더 이상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나 자신의 표면에서 살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두 눈을 감고 의식을 잃어감으로써 알베르틴은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그날 이래 나를 실망시켰던 그녀의 갖가지 특징들을 하나하나 떨구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식물이나 나무의 무의식적인 생명일 뿐이었다. 나의 생명과는 더욱 다르고 더욱 기이한 생명이지만 그러면서도 나에게 속하는 그런 생명이었다. 그녀의 자아는 우리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때처럼,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생각과 시선의 출구를 통해서 시시각각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밖에 나가 있던 모든 것을 자기 속으로 불러들였으니 그녀는 자신의 몸속에 갇히고 압축된 모습으로 도피해 있었다. 그녀를 내 두 손 안에, 바로 눈 아래 잡고 있자니 그녀가 깨어 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그녀를 송두리째 다 소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었다. 그녀의 생명이 고분고분 복종하면서 내게로 가벼운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바다의 서풍처럼 부드럽고 달빛처럼 몽환적인, 그 속삭이는 듯한 신비스런 발산, 즉 그녀의 잠에 귀를 기울였다. 그 잠이 계속되는 한 나는 그녀를 몽상하면서도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잠이 더 깊어지면 그녀의 몸에 손을 대고 껴안을 수도 있었다. 그럴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생명이 없는 존재들, 즉 자연의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의 순수하고 비물질적이고 신비스런 그 무엇의 앞에서 맛보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가 약간 더 깊이 잠이 들자 그녀는 이내 지금까지와 같은 한갓 식물이기를 그치고, 그 잠의 언저리에서라면 나는 조금도 지루한 줄 몰랐기에 언제까지나 무한정으로 음미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잠, 그것이 나에게는 온통 하나의 풍경이었다. 그녀의 잠은 나뭇가지들이 움직이는 듯 마는 듯하고 모래 위에서는 끝없이 썰물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리는 발베크 해변의 보름달 가득하던 그 밤들만큼이나 고요하고 관능적으로 감미로운 그 무엇을 내 곁에 가져다놓는 것이었다.

나는 방 안에 들어서면서 감히 아무런 기척도 내지 못한 채 문턱에 서 있었는데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오직 간헐적이고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그녀의 입술 사이로 스며나오는, 마치 무슨 썰물처럼, 그러나 더 잔잔하고 더 부드러운 숨소리뿐이었다. 내 귀가 이 숭고한 소리를 맞아들이는 그 순간, 거기 내 눈앞에 누워 있는 아름다움, 갇힌 여인의 온 인격, 온 생명이 그 소리 속에 압축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차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이마는 미동도 하지 않고 여전히 해맑고, 그 숨결 또한 전과 다름없이 가볍게, 단지 필요한 공기의 발산에 그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나는 그녀의 잠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침대 위에 가 앉았다. 나는 알베르틴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놀면서 즐거운 밤들을 보냈지만 잠자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때만큼 감미로운 밤은 한 번도 없었다.“

 

- 김화영, 릴레이 에세이 “여기요!”(현대문학, 2008년 3월호, 217~220)에서 옮겨씀.

 

 

퇴임한 그해 봄, 나는 이 글을 옮겨쓰고 있었다.

틀린 글자가 없도록 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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