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글쓰기의 어려움

by 답설재 2022. 3. 8.

 

 

글을 쓸 땐 미끄러져나가는 기분으로 써야 한다. 말들은 절뚝거리고 고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미끄러져나가기만 한다면 문득 그 어떤 즐거움이 모든 걸 환히 비추게 된다. 조심조심 글을 쓰는 건 죽음과 같은 글쓰기이다.

셔우드 앤더슨은 말을 공깃돌이나 음식 조각처럼 갖고 노는 데 극히 능했다. 그는 말들은 종이 위에 칠했다. 그런데 그 말들이 너무도 단순해서 독자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문들이 열리고 벽이 반짝이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양탄자며 신발, 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앤더슨은 말들을 마음대로 다뤘다. 즐거운 말들을. 하지만 그것들은 또한 총탄과도 같다. 말들이 곧바로 독자를 죽일 수도 있다. 셔우드 앤더슨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헤밍웨이는 지나치게 애를 썼다. 애쓴 흔적이 그의 글에서 느껴진다. 그의 글은 딱딱한 덩어리들을 한데 붙여놓은 것 같다. 그런데 앤더슨은 뭔가 심각한 얘길 하면서도 웃을 줄 알았다. 헤밍웨이는 웃는 법을 몰랐다. 새벽 여섯 시에 서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무슨 유머 감각을 기대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뭔가를 꺾어 이기고 싶어 한다.

오늘밤은 지쳤다. 염병, 잠을 넉넉히 못 잔다. 정오까지 자고 싶지만, 열두 시 반에 시작되는 첫 경주에 맞추려면 (……)

 

출처 : 찰스 부카우스키(Henry Charles Bukowski)의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1998).

 

"글을 쓸 땐 미끄러져나가는 기분으로 써야 한다."

"앤더슨은 말들을 마음대로 다뤘다. 즐거운 말들을. 하지만 그것들은 또한 총탄과도 같다. 말들이 곧바로 독자를 죽일 수도 있다. 셔우드 앤더슨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결코 알지 못할 것 같기도 한 말들이다.

 

최근에 몇 꼭지의 글을 윤문하며 느낀 건 내가 오만에 빠졌었다는 것과 그렇다면 내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결국 무얼 하며 살아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