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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99

사이먼 후지와라 씨에게 후지와라 씨! 이번달 《현대문학》표지에서 후지와라 씨의 작품을 봤습니다. 피카소 그림은 아니고, 아니라 하기도 그렇고, 이건 희한한 패러디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번 장난을 하자는 것이었을까? 그럴 리 없는데...' 미안합니다. 이 월간지는 우리나라 굴지의 월간 문학지여서 표지 그림을 그리 가볍게 선정할 리가 없거든요. 잘은 몰라도 창간호부터 지난달 823호까지의 표지 구성을 생각해 보면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래, 그렇긴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지... 하고 책을 읽어가며 군데군데 들어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상하지, 지금까지 이 월간지에서 본 다른 표지화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때보다 눈길이 오래 머물곤 했습니다. 작품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주면.. 2023. 8. 13.
「샤갈의 마을」展(2010 겨울) 2010년 겨울, 「샤갈의 마을」展이 열리고 있었다(2010.12.3~2011.3.27. 서울시립미술관). 그 겨울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약골이긴 하지만 병원에 간 적 없었는데 한꺼번에 무너져 아팠고, 41년 공직에서 퇴임을 했고, 그런데도 큰일들을 치러야 했다. 그런 중에도「샤갈의 마을」을 볼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샤갈이 그가 사랑한 러시아의 마을을 어떻게 그렸는지,「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에 등장하는 그 아낙,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지피는 그 아낙', 혹은 「忍冬잎」(김춘수)에 나오는 저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진 인간'의 눈으로 구경할 수 있으면 싶은 마음으로 그림들을 보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좀 소란스럽고 무질서했다. 우리는 이미 돈이 많은 나라니까 좀 소란스럽고 .. 2023. 5. 17.
지루한 수업 저 유명한 시인 이상입니다. 화가 구본웅이 그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2013.10.29~2014.3.30)에서 봤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에 옛 편수국의 구본웅 미술 편수관의 작품도 소개되었습니다. 「친구의 초상」. 이상(李箱)이 모델이었다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이용기 선생님은 뜻도 모를 오감도(烏瞰圖)를 자꾸 읽어 주셨습니다. 벌써 50년이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우리들 곁을 오락가락하시며 그 시를 읽어 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선생님! 그 이상 시인의 초상화를 문교부 구본웅 미술 편수관께서 그.. 2022. 10. 6.
빠다샹젱(八大山人) 〈목련도〉 빠다샹젱(八大山人)의 〈목련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등심을 찡하게 달려가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혼이 뒤흔들어진다. 화면 바닥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전파가 보는 자에게 잇따라 밀려온다. 보고 있다기보다 어느 틈엔지 저쪽이 쏘아보고 있다. 외면하는 것도 눈을 내리까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기백에 찬 눈초리에 홀리고 있는 사이에 말할 수 없는 깊은 비애에 가까운 투명감이 온몸 가득 퍼져나간다. 일상의 진흙 밭에서 뭔가 숭고하고 아득한 세계로 떠올려지는 것 같다. 이우환의 에세이 '여러 작가들' 중 '빠다샹젱(八大山人)의 〈목련도〉에 부쳐' 첫머리(이우환 《여백의 예술》현대문학 2014)에서 이 글을 읽다가 중단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이우환의 설명 중에서 두 군데를 옮겨 써 두고 싶었다... 2022. 9. 23.
마티스 〈댄스〉 학교 다닐 때 미술 교과서에서 본 듯도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할 때는 교과서에서 봤고 그 사진이 아주 작았다고 기억하지만 불분명합니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장을 할 때는 여러 번 봤습니다. 중고등학교 미술 검정 교과서 발행 허가를 전결하며 '여기도 있네' '이 책에도 있네' 했습니다. 오래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습니다. 잠시 '이런 그림이야 아이디어만 가지면 웬만한 사람은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 않아?' '마티스가 그리지 않았다면 분명 다른 누군가가 그렸겠지?' 했을 뿐이었습니다. 나에게 마티스는 그런 화가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이우환 선생의 에세이를 읽고 아득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예술에 대해, 그림에 대해, 화가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사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최근에.. 2022. 9. 12.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이우환의 에세이*를 읽다가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아보았다. 그림 설명은 셋슈가 그린 「추동산수도秋冬山水圖」의 「겨울 그림」,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마스다 가네다카상(益田兼堯像)」 세 가지였는데, 두 번째의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림 설명은 다 옮길 수가 없어서 첫머리의 두 대문만 필사하였다. 기괴한 바위 굴에 함께 있는 두 인물의 극적인 신scene을 그린 작품인데, 보면 볼수록 범상치 않은 박력에 압도된다. 달마가 눈을 부릅뜨고 살벌한 암벽을 향해 앉아 있는 곳에, 혜가가 찾아와 왼팔을 베면서까지 제자로 받아달라며 간원하는 장면이다. "인도로부터 중국에 선종을 전했다는 달마가 있는 곳에, 후계자가 될 혜자가 입문하는 순간"(시마오 아라타)인 듯하다. 이 그림의 첫인상은.. 2021. 6. 17.
르네 마그리트(그림) 「빛의 제국」 신기한 이야기입니다. 그림 속에 들어가본 사람의 이야기. 못할 것도 없을 것 같긴 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 속에 들어가듯……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이라는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혹 지금보다 더 괴로운 곳이라 하더라도 이 그림 밖으로 나갈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화려한 조명을 받는 아역 스타였지만 그 조명은 금세 꺼져버렸고 스물다섯 살에 이르러서는 지방 소도시의 제빵사로 전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애인(이름은 ‘캉디스’)조차 변심하여 차갑게 굴게 되자 그는 이제 구렁텅이에 빠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경품행사에 당첨되어 2인용 여행권을 상품으로 받았지만 그녀는 이 여행조차 거부합니다. 여비와 체류비 일체가 .. 2020. 9. 12.
고갱,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파일은 2013년 9월 25일에 탑재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보니까 글자가 희미하고 편집이 하도 어수선해서 열람하시는 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런데도 각주가 있는 파일은 수정이 불가능해서 점 하나도 고칠 수 없게 되어 있으므로 아예 삭제해 버릴까 생각하다가 새로 탑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유치한 말이 눈에 띄지만 단어 하나 고치지 않고 그 당시의 생각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 당시의 댓글과 답글은 아래에 모아 옮겨두고, 새로운 댓글란은 두지 않았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2020. 9. 7.
자메 티소 '10월' 나의 기억들은 하나둘씩 총총걸음으로 사라져갑니다. 이 해의 시월조차 아주 단순한 숫자가 되어갑니다. 떠난지 이틀째인데 쓸쓸합니다. 뒷모습이 화려하고 쓸쓸했던 여인, 저렇게 총총 돌아서가는 저 여인이 아름다워서 차 한 잔 하고 가라든가 하는 말들은 공연한 일, 쑥스러운 일일 것 같고 옆구리에 낀 그건 어떤 책인지나 물어봤어도 좋았을 것입니다. 여인은 화가 자메 티소의 연인이었고, 아버지가 다른 세 아이와 살아가고 있었답니다.1 ...................................................... 1. 2019년 10월 22일, 한국경제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사이트의 검색창에 '자메 티소 10월'을 넣으면 그림과 해설을 볼 수 있습니다. 2019. 11. 2.
더 깊은 곳에 빠지고 싶은 남녀 2019. 8. 15.
월간지 표지 사진 책을 들고 있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기억들을 따라 서글픔이 밀려온다. 1. 2개월 전, 1, 2년 전 책도 그렇고 오래된 책은 더욱 그렇다. 모호하거나 짜증스럽거나 뭔가 초조해서 읽지도 않고 넘겨버린 글도 있었던 그 많은 시간들…… 우루루 몰려와 그렇게 머물던 그 수많은 시간들,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그 시간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되돌아올 수나 있는 길에 있을까. 그것들……. 2017. 7. 27.
금단(禁斷)의 시선 마음 놓고 바라봐선 안 되는 모습이 있다. 허가를 받을 수도 없다. 화가는 무언가 준비하고 있는 수심 어린 여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 뒤태는 일부러 보여주는 무슨 행사장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어서 혹은 무의식을 가장해서 일별하게 된다. 화가는 이런 구차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 시선을 남긴다. 그림으로 남지 못한 기억 속 불우한 아름다움이 초가을 햇살처럼 부서져 간다. 아스라하게 사라진다. 2016.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