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713 버려진 책장 살펴보기 버려진 가구를 살펴보는 버릇을 고쳤다!사실은 고친 건 아니다. 저절로 고쳐졌다. 더 이상 필요한 가구가 없게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렇게 버려진 가구를 보면 다가가서 살펴보곤 했다. '아직 쓸만한데 버렸구나.'내가 살펴본 건 대개 책장이었다. 언제나 멀쩡했다. 부서져서 버려진 책장은 본 적이 없다. 그렇겠지. 누가 책장을 때려 부수고 그렇게 부수어버진 책장을 버릴 수밖에 없는 경우를 겪겠는가.나는 매번 들여놓을 자리만 있으면 내가 가져가겠구먼 생각했다.내 책장은 열 조가 넘었었다. 그런데도 모자라서 구석구석 책을 쌓아놓고 살았다. 그렇게 모은 책들을 반 이상 버려서 지금 남아 있는 책장은 다섯 조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갖고 있을 수 있는 책 수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2026. 9. 9. 김원길 《엘레지 40편》 김원길 시인은 "월간문학"(1971)과 "시문학"(1972)으로 등단하면서 '시로써' 살아왔다.시로써? 시를 써서 돈을 벌며 살았다는 게 아니라 여든넷 지금까지 시를 쓰며 살았다는 얘기다.몇 달 후면 그를 만난 지 꼭 육십 년이다. 멀리 떠나오다 바람이 불어옵니다.풀언덕에 눈 감고 누워 있으면실눈썹 간질이는 바람결 내음,그녀 머리채 빗질하다 온결 고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냇물이 흘러옵니다.더운 머리 식히려 여울에 들면손가락에 매끄러운 봄 물살 소리,그녀 하얀 발목을 핥다 온보드란 개여울이 흘러옵니다. 서편 하늘 고옵게 물이 듭니다.아득한 곳 그녀는 노을빛을 받고서나 있는 이쪽 하늘 바라보는지.물 어린 눈을 하고 바라보는지,오늘도 하루해가 산을 넘습니다. 그는 엘레지의 시인이다.이번에 나온 시집 《엘.. 2026. 9. 8. 울며 밤을 지새우는 소 이 동네에는 소 먹이는 집이 세 가구다.나는 처음에 축사 옆을 지나며 우리에서 지내며 평생 일도 하지 않으니 내 어린 시절 평생 일만 하다가 장날 팔려가서 다른 집 일소가 되거나 쇠고기가 된 그런 소에 비해 이런 소는 팔자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바보처럼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생각하니까 이런 소는 평생 저 우리에 갇혀 섰다 앉았다 하다가 새끼 낳고 팔려가서 한우고기가 되어버리니 팔자도 참 기구하다 싶었다. 일소는 들판에라도 나가보고 풀 먹일 때 산비탈에도 갈 수 있으니 일소 신세가 훨씬 나았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이제부터 '비건(vegan)'이나 해볼까 하다가 얼른 그 생각을 그만두었다.병원에 가면 매일 고기와 생선을 먹으라고 하지만 병원 문만 나서면 아내는 쓸데없는 소리, 웃기는 소리 듣.. 2026. 9. 7. 가을이 온 날 밤 2026년 9월 5일. 토. 맑음. 오전 11시경에 이륙한 비행기는 자정이 지나야 착륙한다고 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거실에서 저녁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다. 무려 10단까지 설정할 수 있는 선풍기를 1단에 맞추어 1시간 30분 혹은 2시간에 설정해 놓으면 시원해서 금방 잠이 든다. 선풍기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잊을 만하면 잔잔한 바람을 솔솔 불어준다. 내가 이런 선풍기 같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슨 대화(對話)가 필요했을까. 이 선풍기는 마트에서 샀고, 집에 가지고 와서 기계치인 내 손으로 조립한 것이다. 겨우 조립식 선풍기 같은 존재도 되지 못한 채 그만두어야 한다니 서글프다.잠이 깨면 선풍기가 멎어 있다. 그 상황은 선풍기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잠이 깊이 든 줄 알았더.. 2026. 9. 5. 고양이의 세상 어미가 주둥이를 먹이그릇에 몇 번 퍽, 퍽 집어넣어 한입 가득 먹이를 물고 새끼들을 찾아 나서는 걸 몇 번 봤다. 먹이를 먹는 새끼들을 지켜주기 위해 나를 경계하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 그 어미가 이번 주에는 나를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저렇게 엎드려 딴 곳을 바라보았다. 하기야 새끼 한 마리가 도착하지 않았다. 며칠 만에 풍부한 먹이가 생겼는데 어디 가서 뭘 하는지 모를 그 한 녀석이 안타까울 것이다. '얘는 아직 독립을 하지 않은 주제에 어딜 쏘다닌담. 쯧!'어미가 태평스럽자, 새끼들도 나의 움직임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새끼들은 어미가 먹이통 가까이 가면 몸으로 가로막지만(어리광인가? 인간 아기들 중에는 엄마는 맛있는 걸 싫어하는 줄 아는 경우도 있다.) 저희들끼리는 혼자 먹이통을 차지하려들지.. 2026. 9. 5. 세상이 바뀌었으면 교육도 바뀌어야지 교사가 되어 처음 소풍 간 날이었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 아무개가 손녀라며 찐 고구마 세 개를 내밀었다. 소풍 행렬은 자동으로 멈췄고, 그 선두에서 선물 ‘수수(授受)’가 이루어졌다. 포장지가 없어서 맨손에서 맨손으로 옮겨진 그 고구마는 도시락 준비가 안 된 아이의 점심이 되었다.변하기 전의 세상을 떠올려본 일화다. 굳이 그걸 강조하진 않았지만 그때의 ‘교육공동체’는 ‘선생님’과 학교를 일방적으로 앞세운 공동체였다. 그날의 내가 오늘의 현장에 있다면 가관 혹은 웃음거리의 표본쯤 될 것 깉다.교사와 학교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가 그런가? 그렇지도 않다. 어떻게 흔들리고 있나? 교사의 사회적 위상부터 예전과 달라졌다. 학생들이 교사를 우습게 여기기도 하고 덩달아 학부모들.. 2026. 9. 4. 정지용 / 홍역(紅疫) 석탄(石炭) 속에서 피여 나오는태고연(太古然)히 아름다운 불을 둘러십이월(十二月) 밤이 고요히 물러 앉다 유리(琉璃)도 빛나지 않고창장(窓帳)도 깊이 나리운 대로...문에 열쇠가 끼인 대로... 눈보라는 꿀벌떼 처럼닝닝거리고 설레는데,어느 마을에서는 홍역이 척촉(躑躅)처럼 난만하다. 한 행 한 행 읽어 내려오며 마음에 담아 본다.그 저녁의 분위기가 스며 있지 않은 곳이 없다.이 집 저 집 환자가 생겨 홍역이 개꽃 피어나듯 창궐한 마을의 분위기가 시를 읽어 내려온 마음을 압도한다.시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유종호 문학평론집 《시와 말과 사회사》에서 읽었다(20). 2026. 9. 3. 백로를 앞두고 D에게 엊그제 메시지 받고 '이 사람이 올여름 더위에 지쳤구나' 했네.저녁이 다가온 남산 위 하늘을 보게. 가을이 완연하지 않은가.일기예보는 오늘 아침에도 남부 지방 지도 위의 낮 최고기온을 보여주며 아직도 폭염이라고 했네.그럼 아직 여름인가?입추 처서 지난 지 한참 되어 곧 백로(白露)가 아닌가.오늘 이제 선풍기를 들여놓아야겠다고 생각했네.자넨 이미 들었지? 나에게는 에어컨이 없다는 얘기. 이번 여름도 선풍기 한 대, 부채 두 개로 났네. 그런데도 낮에 선풍기 앞에 앉아 있으면 내 아내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일쑤 호들갑이라고 했네. 하기야 그 부채 두 개도 하나는 거실, 하나는 내 방에 두고 내가 전용으로 사용해서 아내가 부채를 든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호들갑'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네. 땀.. 2026. 9. 2. 우리는 절대로 이집트라는 나라를 떠나지 않는다 노예들의 눈처럼……노예들의 눈이 주인의 제스처를 주시하는 것처럼,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랑한다. 책을 읽는다. 음악을 연주한다. 우리는 절대로 이집트라는 나라를 떠나지 않는다.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이란 책에서 옮겼다(123).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노예들의 눈이 주인의 제스처를 주시하는 것처럼? 그렇겠지?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다음.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거지? 일단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고 자부하며(이 표현을 거부하며), 누구의 제스처 같은 것 살피며 살지는 않는다고, 그따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며 다음을 본다.사랑한다.사랑도 그렇게 한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 감각대로, 내 의지대로, 내 의사대로, 모든 걸 내 맘대로라면 사랑도 .. 2026. 9. 1. 우리 맛집 가자, 응? TV에 나오는 맛집 그거 믿을 것 없다고, 믿지 좀 말라고 통사정을 해도 아내는 기어이 믿는다.나는 이제 지쳐서 아뭇소리 않는다.한때 나는 아내가 KBS, MBC, SBS에 나오는 맛집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저기 한번 가보자!"고 하면 "어디 어디?" 하면서 포스터잇에 일일이 그 맛집 정보 검색 결과를 기록해서 벽에 붙여나가다가 누가 보고 빙그레 웃으면 쑥스럽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두툼한 수첩에 붙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맛집 찾아다니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오늘은 서울, 내일은 목포, 그다음 날은 강릉…. 게다가 포스터잇은 자꾸 늘어나는데 우리가 가 본 집은 아주 적어서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이래선 안 된다 싶어서 우선 우리 지역 맛집을 중심으로 조그만 볼일이라도 만들어 부지런히.. 2026. 8. 31. 전욱진 / 인지부조화 나 혼자와 내 마음 여럿이서함께 걷는다 큰 개 여러 마리와 산책하듯끌어가는지 끌려가는지더는 나도 알 수 없는 그 상태로 한 다발 풍선을 산 사람같이색색의 빛깔은 끈에 매달려 아름다우나자꾸만 날고 싶어하고 이제 가던 길을 멈춰입안 가득 침이 고인 채속에 각가지 맛이 담긴아이스크림 수레를 본 것처럼 《문학동네》 119호(2024년 여름)에서. '나 혼자와 내 마음 여럿이서' 나는 얼른 가벼워져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개 여러 마리와 산책하듯,혹은 자꾸만 위로 솟구치고 싶다는 풍선 다발을 움켜쥐고, 그 풍선들이 "날고 싶으면 날아도 좋아!" 하는 것 같아서 샤갈Chagall의 그림(가령 '도시 위에서' '산책')이 떠오르는데,아, 이런!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야겠네! 이런 시 엄청 좋다.. 2026. 8. 30. 내 스위치들 인조인간(사이보그 혹은 로봇)이 저도 사람인 척(혹은 깨 놓고) 인간과 함께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것들이 우리 아파트에 입주해서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더라도 샤워 좀 꼭꼭 하고 담배도 흡연장소에서만 피우면 좋으련만…. 인조인간이 등장하는 소설은 재미있다. 작가가 자신이 설정한 인조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한 소설은 식상하다. 그걸 자연스럽게, 독자가 쉽게 유추하고 꿰어 맞추며 읽도록 한 이야기는 생각하며 읽기에 좋다.얼마 전에는 폐기 처분된 아빠 대신 새로 조립(?)되어 나온 아빠를 맞이하는 소설을 읽었다. 나중에 보니까 그 인조아빠를 맞이한 자녀 두 명도 인조인간이어서 느낌이 더 묘했다. 인조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소설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 인간들(?).. 2026. 8. 29. 이전 1 2 3 4 ··· 3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