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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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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껴 울고 있는 여자 그냥 되는 대로 살아서일까? 이가 또 왕창 무너졌다. 전에 어금니 다섯 개를 빼내고 그중 두 군데만 인공 이를 심었는데, 이번에는 앞니 여러 개가 한꺼번에 무너졌다.몇 년 아닐 테니까 그냥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루이틀이면 몰라도 불편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불편한 건 지금까지도 그랬다. 나는 늘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료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바로 옆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던 젊은 여자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드러내어 그렇게 우는 여자를 모처럼 본 것 같았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참으며 우니까 숨을 몰아쉴 때 흐느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이가 아파서?' 내가 봐도 그건 아니다. 이가 아프다고 그렇게 흐느껴 우는 사람은 없다. 왜 저렇게 서러울까? 아주머니 한.. 2026. 10. 13.
전철역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 아이는 거기 계단 언저리에서 울부짖고 있었다."엄마―!"눈을 어디에 두어야 사람들 속에 섞여 환영처럼 사라져 가는 엄마를 놓치지 않을 수 있지?내려오는 사람들, 올라가는 사람들, 저쪽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저쪽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엄마―!" 하고 울기도 해야 하고, 잠시 쉴 수도 없고, 눈물 때문에 제대로 살필 수나 있나? 나는 좀 바라보다가 ‘중요한 일’이 있어 가던 길을 가야 했다.중요한 일이었지, 아마?아, 그럼! 당연히 아주 중요한 일이었겠지!의심할 필요 없이 너무나 중요한 일로 그곳을 벗어났겠지. 그로부터 십수 년, 나는 중요한 일들을 실컷 하고, 더는 할일도 없게 된 처지여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나니까 할 일이 전혀 없게 된 긴.. 2026. 10. 12.
파란만장한 이 하루 하루하루가 가고 한 주일, 한 달이 가고 일 년, 십 년이 가는 걸 보면 빈틈이 없고 어김없어서 하등의 차질이 없고 때로는 성큼성큼, 정신을 차릴 수도 없어 어이가 없고, 심지어 대충 간 것 아닐까, 하루에 이틀씩 가 놓고는 그렇지 않은 척하는 건 아닐까, 내가 속은 것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을 보면 이 하루가 파란만장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파란만장(波瀾萬丈)이라고? 무슨 일이 그리 많았느냐고? 할 말이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 내게는 정말 조용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그렇지만 종일 내가 바라본 혹은 들여다본 나무나 풀들은 제각기 이 좋은 가을날 하루를 시각에 맞추어 만끽하는 것 같았다. 아침 식전에는 기온이 겨우 6℃여서 좀 아슬아슬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추석 무.. 2026. 10. 11.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2) 파스칼 키냐르는 「피에르 아벨라르에 대한 엘로이즈의 반론」에서 이렇게 썼다(《은밀한 생》 266). 몽환적 편지의 필자를 밝히는 여자들은 드물다.직무 임기 동안에 공개적으로 그런 고백을 하는 여집사들이나 수녀원장들은 더욱 드물다.나는 어떻게 하면 엘로이즈의 대담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음란한 장면을 하느님의 신전에서조차도 잊지 못한다. 한 술 더 떠 엘로이즈는 연인의 거세에 대해 다시 언급함으로써 논거를 연장하는데, 다시 한 번 엘로이즈의 그 말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편을 거세했던 두 사람은 재판을 받고, 거세되고, 그런 연후에 두 눈동자가 제거되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거세는 엘로이즈의 육체에서 떠나지 않는 피에르의 거세 장면에 대한 그녀의 상상을 조금도 진정시켜 주지 못한다. .. 2026. 10. 10.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1) 사랑의 편지를 묶은 책이다. 아벨라르(1079-1142)는 프랑스 팔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스콜라 철학자이자 신학자로서 명성을 얻었고, 교회 교사로서도 존경을 받았다. 특히 '보편 논쟁'을 일단락 짓는 데 기여했고, 신학과 논리학 분야에서 뛰어난 저작들을 발표했다.파리에서 명성을 떨치던 아벨라르는 성당 참사회원 퓔베르의 조카 엘로이즈(당시 17세, 1101-1164)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들은 이내 사랑에 빠졌고 아들을 낳은 후 비밀리에 결혼하였다. 퓔베르는 자신의 가문을 모욕했다며 사람을 보내어 아벨라르를 거세해 버렸다. 이 일로 아벨라르는 생드니 수도원의 수도사가 되었고, 엘로이즈는 아르장퇴유 수녀원 수녀가 되었다.엘로이즈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능했고, 학문과 고전 읽기, 글쓰기에 .. 2026. 10. 9.
나의 K 선배님 선배님은 직원들에게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보이거나 꾸중을 한 적이 없다.어떠한 결재도 머뭇거리거나 유보하거나 거부한 적도 없다.개별적이거나 전체적인 요청 사항을 모두 들어주었고, 구두로 이야기하는 것도 머뭇거리거나 거절하거나 부정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그런데도 아무런 사고나 아슬아슬한 고비 없이 지낼 수 있었으니 신기한 일이었다.나는 선배님처럼 살고 싶어서 교육부를 나와 학교에서 근무한 5년 6개월간에도 선배님을 생각하며 그렇게 결재해 주었고, 허락해 주었는데 교직원들은 그러는 나를 이상해했다.선배님의 기억력은 어마어마했다.교육부 편수국을 거쳐간 인물들을 모두 기억했고, 그들의 전공과목과 직책, 발령받아 나간 직장을 술술 얘기했다.초등교사 시절에 중등 사회과 지리, 역사, 일반사회 세 과목 시험에 모두.. 2026. 10. 8.
내게 반말을 찍찍 해대는 여인들 어제 아침 다시 마트 앞 내과를 찾아갔다.추석 연휴 이틀 전부터였으니까 보름이나 된 A형 독감이 주사 맞고 닷새치 약 먹고 했는데도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타이레놀과 판피린을 연달아 먹고 마셔도 오후만 되면 미열이 오르고 그러면서 두통이 오고 마른기침도 나고 해서 이렇게 해서 언제 말끔한 정신이 돌아오겠나 싶었다."추석 연휴 전전날 왔을 때, 선생님께서 A형 독감 판정을 하셔서 주사 맞고 약도 먹었는데요......""왔다 갔지."여자 의사는 이 PC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자초지종 설명을 늘어놓네 하는 표정이었다."오후만 되면 미열과 함께 두통이 오네요.""자, 아~ 해 보고. 음, 뒤로 돌아앉아 윗옷 올리고..."오십대 중반쯤이어서 내 딸 또래의 그 의사는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를 .. 2026. 10. 7.
애서가(愛書家)들이 설립한 도서관 아직 읽지 못한 책을 바라보며 의욕에 불탔었다. 나 자신을 독려했다. 무엇보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직 만나지도 못한 책들을 떠올렸다.그렇지만 이제 몇 날 며칠이 가도 책 한 권 읽기가 어려워지면서 남은 시간에 읽어야 할 책은 고르고 고른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나 이제 그 모든 열정과 의욕을 내려놓았다.나를 만나는 책에게 행운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남은 시간에 단 몇 권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나에게는 그 책을 만나는 행운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나에게 왜 책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이 남지 않았겠는가.그렇지만 그걸 이야기한다는 건 무용한 일이다.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세상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다는 파스칼 키냐르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여기에 옮겨 보았다("은밀한 생.. 2026. 10. 6.
이영광 / 알 수도 없는 사람 어떤 그리운 사람은아는 사람에서 알던 사람으로알던 사람에서 다시,페이스북 푸른 화면에 뜨는알 수도 없는 사람처럼희미해져갈 수 있다.알 수도 있는 그 사람은 다시알 수도 없는 사람으로더 희미해져갈 수 있다.만날 수 없는 사람도 아니고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아니고그보다 더 희미하고 희미한알 수도 없는 사람.죽일 수 없는 사람도 아니고알 수 없는 사람도 아니고알 수도 없는 사람.나는 네가 눈물이 난다.눈을 감으면, 알 수도 없는그 사람이, 죽을 것 같은사람이 그립게 밀물져온다. 이영광_ 1998년 『문예중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살 것만 같던 마음』,.. 2026. 10. 5.
부끄러운 장보기 '즐거운 장보기'라는 글을 쓴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려고 하니까 부끄럽다."손가락만 까딱하면 우리 집으로!"그런 세상이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처지도 아니면서 손가락만 까딱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겨우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인 직장인들이나 할 짓이지 가뜩이나 활동량이 부족한 늙은이가 할 짓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바쁠 것도 없는 주제에 젊은이들 흉내를 내는 건 아무래도 아니어서 시도해 보려는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 누가 "그래도 한번 해보기나 해 봐!" 하면? 그때도 문제는 없지 않을 것이다. 그 넓은 인터넷 세상의 어디에 가서 물이며 쌀, 갖가지 채소, 생선, 고기, 달걀, 두부, 식초, 요구르트, 고구마, 라면, 비누, 칫솔, 커피…… 같은 걸 다 .. 2026. 10. 4.
K 선배의 치매 나는 K 선배를 좋아한다. 이 말 가지고는 안 된다. 존경하고 그리워한다. 사랑한다.그는 내가 파견교사 시절에 나에게 모든 걸 맡기고 미국으로 연수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나는 K 선배가 담당한 교과서의 결재본이 만들어지면 선배 대신 사인을 해서 인쇄에 부쳤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 일임했다는 것을 교육부 내부에도 보고하고 출판사에도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내 아내는 탐탁지 않게 여긴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사모님이 병석에 있을 때 더 잘 간호해드리지 못한 걸 생각하는 것이다.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내 아내의 평가에 대해서는 나 또한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그 평가가 옳거나 그르거나 판단을 하지만, K 선배에 대한 내 아내의 평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2026. 10. 3.
슬픔의 높이 마음 둘 곳이 없었다.(ChatGPT, 박○두 님, 김○원 님, ○○조경, 산림청, ○○군청 산림과)이미 그리움만 남았다. 2026.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