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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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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힘들면…”이라던 K 교장선생님께 놀랐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듣게 되다니요. 교장은 시군구 교육지원청 교육장, 시도교육청 교육감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가짜 행정가를 만난 적도 있긴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교육과정(목표와 내용, 방법)과 그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행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 교육과정이라면 교장선생님은 누구보다 밝은 전문가이고요. 행정도 그렇지요.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해야 마땅하겠지요. 교육부, 교육청, 심지어 해외 교육기관에서도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런 경우가 바로 산전수전(山戰水戰)이겠지요. 그런데 이제 와서 무엇이 교장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요? 한결같이, 수행하고 있는 일들을 전해주시고 활기차게 긍정적으로 교육계 이슈를 파악하게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수인사를 마치자.. 2024. 7. 26.
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이 놓아주지 않아서 왕관을 벗어 버리고 이곳에 숨어 수도자 생활을 하려던 열망을 지녔던 비극의 황제 니키포로스 포카스가 건설했다는 유명한 대수도원 라브라스를 어서 보고 싶어서 우리들은 날이 밝자마자 길을 떠났다. 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이 놓아주지 않아서 황제는 속세를 떠날 날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다시 미루면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결국 가장 신임했던 친구가 칼을 들고 찾아와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럴 수가 있나...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 》(나의 벗 시인─아토스 산)에 나온 이야기다. 니키포로스 포카스 황제가 아직 젊었던가? 그랬다면, 좀 더 살아보고 나중에 결정해도 좋았을 일을... 그렇게 미련을 둘 일도 아니었건만... 혹 모르는 일이긴 하지. 다 늙어빠져서도 성.. 2024. 7. 24.
사람 구경 '그들은 남들을 보고 또한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서둘러 성당으로 갔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이탈리아')에서 이 문장을 봤다.요즘 내가 밖에 나갈 때의 이유 중 반은 사람 구경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파트에서는 일단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내 호기심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가에 미친다. 하다못해 편의점에 다녀올 때도 그렇다. 누구를 만나도 만난다.'만난다'? 구경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다. 그 재미가 괜찮은 것이었는데 저 문장을 보고는 나 자신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물론 그들도 나를 슬쩍 쳐다보며 '저렇게 허접한 노인도 여기 사는구나' 하겠지만) 일방적·이기적으로 '사람구경'에 몰입한다는 걸 깨닫게 .. 2024. 7. 23.
쉰 목소리 바이든과 트럼프가 TV토론에서 맞붙었단다. 어느 신문은 토론 이후 바이든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면서 토론 내내 쉰 목소리였고 여러 차례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이면서 81세 고령과 건강 문제가 다시 부각되었다고 했다. 최근 다시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고 델라웨어 사저에서 요양 중이라는 것도 덧붙였다.이 기사대로라면 트럼프는 바이든에 비해 젊은이처럼 인식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을까?바이든이 현임이니까 재선 가능성이 높을까?바이든은 결국 사퇴하고 말까?제3의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까?알 수가 있나... 나는 바이든이 단상에 올라서 괜히 몇 발자국 뛰는 흉내를 내는 게 더 안타깝다. '뭐 하려고 저러지?'때로는 웃기려고 저러나 싶기조차 했다. 뛰어봤자 함께 .. 2024. 7. 21.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모두 아는 사이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이다(케빈 베이컨 게임)" 오래전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2007)라는 책에서 봤다. 잠깐(돌연!) 세상이 좀 훈훈하게 느껴졌다(알고 보니 뭐 괜찮은 세상이네!).외국인 같은 건 아예 접어놓고(아니, 집어치우고) 우리나라에만도 떠오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따져보면 그들이 다 나하고도 가깝다는 거네?'기라성 같은 배우들, 멋진 작품으로 말하는 감독들, 아름다운 남녀 탤런트들, 저런 사람은 직접 좀 만나봤으면 싶은 연예인들, 운동선수들, 가수들, 굳이 만나고 싶진 않은 정치인들, 재벌들, 고고한 학자들, 문학가들, 화가들, 음악가들...... 이상도 하지. 떠오르는 그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텔레비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어서 나는 정말 친숙하게 느끼고.. 2024. 7. 18.
코리아 찰스 디킨스 이제 보니 블로그는 맛집이면 맛집, 여행이면 여행, 책이면 책, 일상이면 일상, 뭐든 한 주제를 깊이 있게, 흥미롭게, 전문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인데, 나는 종횡무진, 오합지졸, 중구난방, 또 무슨 말을 더해야 이걸 제대로 표현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 편한 대로 숨길 건 숨기고 밝혀도 좋을 것은 기록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예전에 우리 국민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들이 '국어, 산수, 사회... 체육' 식으로 교과목별 공책을 다 마련하고 아무거나 쓸 수 있는 '잡기장(雜記帳)'도 한 권 별도로 준비하라고 했을 때의 그 잡기장이 되어버린 것이 내 블로그가 되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나도 한번 블로그답게 해 보자!' 하면, 블로그를 열 개 이상 마련해야 할 판이고, 그건 말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 2024. 7. 17.
박두순 동시집 《칼의 마음 》 박두순 동시집 《칼의 마음 》청색종이 2024      오랜만에 나온 설목의 동시집이 '왈칵'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프로필에는 문학활동만 나타내고 있지만 그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어서 그럴까? 책갈피를 펼쳐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여름·겨울 방학생활뿐이었던 그때처럼 잉크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 굴곡진 삶에 위안을 주는 것들을 찾아보면 '세상의 돈'만큼은 아니겠지만 간단히 열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무상의 것이라면? 하늘? 구름? 바람? 바다? 음악? 시냇물?...詩는? 시는 무상의 것일까?  불쌍한 로봇  로봇이 태어나 보니사방에 많은 사람이 빙 둘러서 있다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그런데!아무리 둘러보아도엄마가 없다엄마, 불러 보고 싶은데엄마, 울어 보고 싶은데예쁜 우리 아기라고 불러 주는엄마.. 2024. 7. 15.
그 시절 그 시절에는 세월이 느릿느릿 무료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았고, 라디오와 전화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삶은 말없이 진지하게 띄엄띄엄 이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폐쇄된 세계를 이루었고, 집들은 모두 빗장을 걸어 잠가 두었다. 집은 어른들은 날마다 늙어 갔다. 그들은 남들이 들을까 봐 조용조용 얘기하며 돌아다녔고, 남몰래 말다툼을 하며, 소리 없이 병들어 죽었다. 그러면 시체를 내오려고 문이 열렸으며, 네 벽이 잠깐 동안 비밀을 드러냈다. 그러나 문은 곧 다시 닫혔고, 삶은 다시금 소리 없이 이어졌다.  "영혼의 자서전"(Report to Greco, 니코스 카잔차키스 ㊤)의 그 시절. 지나간 날은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에도 있었고, 세상 그 어디.. 2024. 7. 15.
저녁노을 속을 달려 집으로 가는 부부 "남편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저녁노을. 남편이 지는 해가 이쁘다고 사진 찍으라 했다." 불친 W님의 블로그에서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오래전 영 연방국의 교육과정(curriculum)에 대해 알아보려고 보름간 여행한 적이 있는 그 나라가 그리워졌다. 그들 부부는 그 노을 속으로 달려가며 떠나버린 이 나라를 그리워했을까? W님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달리며 찍은 저녁노을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글은 단 두 마디였고, 위의 문장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실제로는 지는 해가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는데 사진으로는 이것이 최선이어서 아쉬웠다." 그렇겠지?아름다움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사진이 어디 있을까? 그러려면 그 사진에 W님 부부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스며들어야 한다. 노을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거의.. 2024. 7. 11.
정세구 《탐구수업》 & 주입식 교육에 대한 나의 투쟁 정세구 《탐구수업》 배영사 1977       세상에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읽은 걸 또 읽고 또 읽어서 마침내 외워야 한다는 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이기 싫고 지극히 싫증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엔들 대학에 들어갈 수가 있었겠나.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친구의 권유로 당시엔 2년 제인 교육대학이라는 데를 들어가게 되었다. '가르치는 걸 배우는 학교? 그렇다면 뭘 좀 배울 수 있으려나?' 그런데 웬걸, 그중에서도 과학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이가 완전 ○○○였다. 멀쩡한 교재를 두고 첫 시간부터 받아쓰기를 시키면서 이걸 암기해서 시험지에 써야 한다고 깨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당장 볼펜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교수라고?'나는 다른 교수들로부터는.. 2024. 7. 10.
《訓民正音》(영인본) 《訓民正音》  辭書出版社 1967(영인본)        우리 국어 선생님께서 '용비어천가'를 낭독하셨던 그 좋은 날들을 생각하니까 '훈민정음 서문'도 생각났다.1967년에 나온 영인본을 꺼내보았다. 지금 보니까 표지의 제목조차 비뚤게 붙었다. 원본도 아닌데 이미 표지는 표지대로 본문은 본문대로 낱장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그조차 57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선생님은 이런 글은 아이들더러 읽어보라고 하시지 않았다. 미소를 띠고 다짜고짜 선생님께서 몇 번이고 낭독하셨다.그때 선생님은 교과서에 실린 언해본 원문을 읽어주셨는데 어떻게 읽으셨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렇지만 60년간 나는 더러 선생님께서 낭독해주신 그 원문을 상기해보곤 했다.'나무위키' 같은 곳에는 정확한 내용이 나와 있지.. 2024. 7. 9.
블로그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에서 한여름의 정원을 보고 아름다운 가곡이 흘러나올 것 같다고 했더니 숲지기님은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쑥쑥 자라 있는 잡목들과 웃자란 잔디를 겨우겨우 제압했지만 제압한 것처럼 보일 뿐 머잖아 성큼 자라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숲지기님은 워낙 바빠서 답글을 읽고 또 댓글 쓰는 걸 자제해 왔는데 이번에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다.  온 힘을 다해 제압해 버리고 돌아서며 이내 굴복하고, 다시 제압하고 굴복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게 참 힘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다른 일 같으면 벌써 던져버렸을 일인데 단 하나 의무처럼 남은 것 같은 이 일에만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잡초에 대한 숲지기님 생각에 몇 자 덧붙였지만 사실은.. 2024.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