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847 "찔레꽃 붉게 피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담을 넘어온 찔레꽃을 보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 많이도 넘어왔다. '찔레꽃'(작사 김영일, 작곡 김교성, 1941년 가수 백난아가 발표한 노래),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노래로, KBS "가요무대"에서 가장 많이 불렸단다 ("나무위키"). 소리는 내지 않지만 자주 떠올린다.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 2023. 5. 28. 다시 태어나면 교사가 되지 않겠다는 선생님을 생각함 (2023.5.26)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겠다고 하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선생님! 그런 줄 알면서도 정작 "다시 태어나면 결코 교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는 기사를 읽으며 쓸쓸하고 허전했습니다. 다시 태어날 리 없다는 걸 염두에 두신 걸까요? 우스개 같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때 결정하기로 하고 이번 생에서는 속상하게 하는 아이들, 학부모들, 걸핏하면 섭섭하게 하는 행정가들 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대답하신 건 아니었을까요? 교사 생활이 쉬울 리 없지요. 누군들 짐작하지 못할까요. 말하기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알죠. 하필이면 행정가들은 잘 모릅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도 맡은 일이 따로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그.. 2023. 5. 26. 강화길 「풀업」 강화길(단편소설) 「풀업」 《현대문학》 2022년 11월호 굳이 세월이라 할 것도 없이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걸 실감합니다. 사랑과 연대로만 이야기해야 옳던 가족 이데올로기조차 해체되고 엷어지고 있는 걸 모른 채(인정하기 싫은 채, 인정할 수가 없는 채) 살았습니다. 「풀업」이란 소설에서 두 군데를 옮겨 썼습니다. "미수야." 그간 지수는 이렇게 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미수 역시 조금 당황한 듯했다. "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계속 엄마 집에 얹혀살았으면 좋겠니? 아니면 독립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니?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왜 그래?" "있잖아 미수야." 아주 오랫.. 2023. 5. 24. 수학이란 무엇인가? 하필 수학 공부가 싫다고 할 때(수학이란 본래 그런 공부인지 알 수는 없고, 수학 교육은 아이들이 너무 많이 혹은 지나치게 수학을 좋아할까 봐 일부러 따분하게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런 얘기가 있지" 하고 소개해 주었더라면 싶은 이야기가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수련사가 수도원 본관에 있는 장서관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해 몰래 잠입하고서도 우왕좌왕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런 장면도 있다. 바늘자석 이야기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이다(347). 「사부님, 그럼 가시지요. 세베리노에게는 그 기적의 돌이 있습니다. 이제 물과 물그릇과 전피만 있으면 됩니다.」 나는 흥분에서 떠들었다. 사부님은 내 어깨를 낚아챘다. 「가만……. 까닭을 모르겠다만, 나는 이 도구.. 2023. 5. 22. 이주혜(단편소설) 〈이소 중입니다〉 이주혜(단편소설) 〈이소 중입니다〉 《현대문학》 2023년 5월호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다. 그 여름 그들은 육지 끝에 당도해 한낮에 배추씨를 심고 밤이 내리면 해변에 나가 큰 소리로 시집을 읽을 것이다. 그들이 고른 시집은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이나 김영미의 『맑고 높은 나의 이마』일 것이다. 앤 섹스턴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은 고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시인들의 시부터 읽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미즈노 루리코와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집을 육지 끝까지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 여성 시인들의 시를 몹시 사랑하고, 특히 한 시인의 시집 제목은 무려 '끝의 시'이며 또 다른 시인의 시집에는 "그렇게 짧은 여름의 끝에 그이는 죽었다"*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 실려 있는데도.. 2023. 5. 19. 「샤갈의 마을」展(2010 겨울) 2010년 겨울, 「샤갈의 마을」展이 열리고 있었다(2010.12.3~2011.3.27. 서울시립미술관). 그 겨울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약골이긴 하지만 병원에 간 적 없었는데 한꺼번에 무너져 아팠고, 41년 공직에서 퇴임을 했고, 그런데도 큰일들을 치러야 했다. 그런 중에도「샤갈의 마을」을 볼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샤갈이 그가 사랑한 러시아의 마을을 어떻게 그렸는지,「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에 등장하는 그 아낙,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지피는 그 아낙', 혹은 「忍冬잎」(김춘수)에 나오는 저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진 인간'의 눈으로 구경할 수 있으면 싶은 마음으로 그림들을 보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좀 소란스럽고 무질서했다. 우리는 이미 돈이 많은 나라니까 좀 소란스럽고 .. 2023. 5. 17. 난감했던 낭독회(「엉망진창 학예회」) 지난해 가을, 세 명의 작가가 이 동네 앞 카페로 찾아왔다. 인사만 나누고 아직 차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중 선임인 작가가 가방에서 설설 내 책 《가르쳐보고 알게 된 것들》을 꺼내더니 다짜고짜 맨 처음의 글 「엉망진창 학예회」를 읽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걸 어떻게 하지?' "아, 시방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마세요! 쑥스러워요!" 그런다고 그러냐면서(쑥스럽냐면서) 몰랐다면서 미안하다면서 그만둘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읽다가 중단하고 좋은 책을 냈다면서 뭐라고 한 마디 덕담을 하겠지, 가볍게 생각하자 싶었다. 좌우간 그 순간이, 그 난처한 시간이 얼른 그리고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난처한 경우가 있나 싶어도 참으며 생각했다. '잠시만 중단해 달라고 해서 이러지 말고 차나 시키자고.. 2023. 5. 15. 움베르토 에코(추리소설) 《장미의 이름》 (하)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하)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그' 수도원에서 있었던 이레간의 이야기 중 제4일부터 제7일까지의 이야기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일어난 살인사건은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과정이었고 40년간 그 수도원을 지배해 온 늙은 장님 수도사 호르헤가 세상에 유일본으로 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에 맹독(猛毒)을 묻혀 놓은 결과였다. 윌리엄 수도사가 흉계를 밝히게 되자 호르헤는 그 책을 불태워버리려고 했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장서관이 불타게 되고 그 화재가 번져 수도원이 전소되고 만다. 윌리엄 수도사와 수련사 아드소 간의 대화.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서관이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가짜 그리스도 올 날이 임박했다. 이제는 학문이 가짜 그리스도를 .. 2023. 5. 13. 움베르토 에코(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상)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상)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이 소설을 읽으며 움베르토 에코에게는 박학다식이란 말이 무색하다는 걸 실감했다. 수련사 아드소가 사부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 '그 수도원'에 도착한 이래 이레간 벌어진 일 중 사흘간 벌어진 일을 적은 것이 이 책 상권이다. 수도원장은 윌리엄 수도사에게 살인 사건의 전말을 수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장서관 출입만은 통제하는데, 살인 사건은 연이어 두 차례나 더 일어난다. 추리소설이니까 (하)권을 읽어야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겠지만,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건 독자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고, 사실은 움베르토 에코가 중세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갈등과 역사를 소재로 종횡무진 자신의 어마어마한 지식과 .. 2023. 5. 11. 조용우 「나의 슬픔 기쁨 절망의 시인」 나의 슬픔 기쁨 절망의 시인 조용우 당신에게 당신의 시인이 있어 그는 슬픔의 시인도 기쁨의 시인도 아니라 그의 시를 읽으면 당신의 봄밤에 눈이 내리고 눈의 끝을 눈의 끝에 남은 이름들을 기억해 반복되는 이름들을 기억해 눈이 내리는 그의 시의 바깥으로 날아가는 물수리를 기억해 당신이 빠져 있는 혼곤한 잠의 수면 위를 스쳐 지나가는 물수리를 기억해 땀이 많이 나는구나 마을로 가 사람을 불러오마 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당신은 물 위를 돌고 있는 물수리들을 보아 물수리가 바위틈에 감춰 둔 송어를 기억해 결코 당신 것이 아닌 작은 송어들을 기억해 다시 정지비행 물수리의 여름 하늘 당신의 시인이 끊어낸 여름 하늘 쉽게 잘려나가는 절망을 만져봐 당신 몫의 절망 바닷물에 절여진 절망을 기억해 당신 절망은 축축해 당.. 2023. 5. 9. 늙으면 왜 지겨운 사람이 될까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어서일까, 교육부에 들어가 맨 처음 만난 사람 중 한 명인 C가 찾아오겠다며 '쐬주 한 잔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달라고 했다. 모처럼 만나면 어색할까봐 그랬겠지, 우리가 다 아는 사람 둘을 대며 함께 가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네 명이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이 자리를 마련한 그에게 감사 인사 겸 근황을 묻고 싶었는데, 교육부 근무 기간이 겨우 2년 정도였지 싶은 O가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제는' '이제는' 하며 우리도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지만 그는 아예 잠시도 틈을 주지 않았다. 누가 서두만 꺼냈다 하면 말도 끝내기 전에 그가 얼른 받아서 늙으면 뼈를 조심해야 하고, 근육은 한번 생기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간다느니, 인대는 구조가 어떻.. 2023. 5. 7.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소설)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남수인 옮김, 세계사 1995 이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도 표지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장편소설'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서도 이내 그걸 잊고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직접 이 회상록을 썼다는 착각 속에 책장을 넘기곤 했다. 하드리아누스(76~138, 재위 117~138)는 뛰어난 정치가이면서 전술에 능한 장군이었고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을 연구한 학자였다. 로마제국의 오현재(五賢帝) 중 세 번째로, 트라야누스의 정복 정책에 종지부를 찍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이 소설은 '방황하는 어린 영혼' '변화 변모 변신' '평정된 세상' '황금시대' '위대한 기강' '인내'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2023. 5. 4. 이전 1 2 3 4 ··· 2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