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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그 시절

by 답설재 2024. 7. 15.

 

 

 

 

그 시절에는 세월이 느릿느릿 무료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았고, 라디오와 전화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삶은 말없이 진지하게 띄엄띄엄 이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폐쇄된 세계를 이루었고, 집들은 모두 빗장을 걸어 잠가 두었다. 집은 어른들은 날마다 늙어 갔다. 그들은 남들이 들을까 봐 조용조용 얘기하며 돌아다녔고, 남몰래 말다툼을 하며, 소리 없이 병들어 죽었다. 그러면 시체를 내오려고 문이 열렸으며, 네 벽이 잠깐 동안 비밀을 드러냈다. 그러나 문은 곧 다시 닫혔고, 삶은 다시금 소리 없이 이어졌다.

 

 

"영혼의 자서전"(Report to Greco, 니코스 카잔차키스 ㊤)의 그 시절.

 

지나간 날은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에도 있었고, 세상 그 어디에도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하겠나.

그 시절은 모든 것이 느릿느릿 무료해서 좋았고, 거의 어떤 일이든 생각해서 결정했다. 그것을 무슨 수로 되돌리겠나.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없던 일로 하자는 건 억지에 지나지 않겠지.

신문을 읽지 않고, 라디오와 전화, 영화가 없어도 충분했다. 그걸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폐쇄된 사회에서도 답답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끝에 이르러 흐름을 주도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열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열렬히 주장해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 열린 사회가 닫힌 사회보다 나은지 알 수는 없지만 닫힌 사회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살던 사람들은 이미 이승에 있지도 않다. 어떻게 하겠나. 그 사람들을 어떻게 데려오겠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은 자신의 한 일이 옳고 거룩하다는 걸 써놓은 책이 아니어서,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읽고 있다.

그의 이야기들은 음악처럼 들리고 소설처럼 읽힌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