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벗어 버리고 이곳에 숨어 수도자 생활을 하려던 열망을 지녔던 비극의 황제 니키포로스 포카스가 건설했다는 유명한 대수도원 라브라스를 어서 보고 싶어서 우리들은 날이 밝자마자 길을 떠났다. 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이 놓아주지 않아서 황제는 속세를 떠날 날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다시 미루면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결국 가장 신임했던 친구가 칼을 들고 찾아와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럴 수가 있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 》(나의 벗 시인─아토스 산)에 나온 이야기다.
니키포로스 포카스 황제가 아직 젊었던가? 그랬다면, 좀 더 살아보고 나중에 결정해도 좋았을 일을... 그렇게 미련을 둘 일도 아니었건만... 혹 모르는 일이긴 하지. 다 늙어빠져서도 성적으로 건재함을 자랑하는 경우가 없진 않으니...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무슨 배경 같은 게 더 밝혀질까 봐 그다음을 읽어보았다.
우리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나는 니키포로스 포카스의 고해 성직자인 성 아타나시우스가 심고, 다른 하나는 그의 제자 에루티미우스가 심었다는 잎이 무성하게 자란 삼나무 두 그루가 마당에 우뚝 서 있었다. 정상이 완전히 눈으로 뒤덮인 아토스가 판토크라토르처럼 수도원 위로 솟았다.
니키포로스 포카스 이야기는 그게 전부였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좋다. 사람마다(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이 이야기가 더 나와 있는 곳 없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시콜콜 다 밝혀진 이야기일수록 시시하게, 시시콜콜하게 보인다.
'판토크라토르처럼'?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는 우주의 지배자라네.
☞ 나무위키에서 이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세상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정말 끝이 없다. 이런 걸 두고 어떻게 내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드는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입을 닫고 살아도 충분할 일을... 자객이 된 황제의 조카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황제의 아내였고, 그녀는 황제의 조카와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다.
니키포로스 포카스 황제는 일이 그렇게 된 줄 알고 죽었을까?
이런 기구함은 옛날 얘기에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또 많이 차려놓을수록 더 기구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단 미련이 더 클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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