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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상)

by 답설재 2024. 7. 30.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상)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2021

 

 

 

 

 

 

 

많은 책들이 오랫동안 남아 읽히는 것 같아도 곧장 쓰레기가 되고 사라지는 책은 그 몇십 몇백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웬만한 책은 다 그렇지만 특히 자서전은 대부분 '거의 바로' 쓰레기가 되는 것 같다.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군사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자료실 관리, 도서실 관리, 서무와 경리(그때는 행정실이 없었지) 등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들은 모두 나에게 맡겼다. 덕분에 나는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 살다시피 했다.

책은 좋은 것이어서 어느 일요일 오전, 오늘은 도서실 정리나 해볼까 싶어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이승만 대통령 자서전(평전이었던가?)을 발견했다. 표지를 넘기자 마치 구식 졸업 기념 앨범의 교장 사진처럼 '이승만 박사'의 사진(흑백)이 미농지에 덮여 있었다. 그가 대통령 시절에 나온 책이었겠지?

이후로 나는 자서전이라 읽지도 않고 별로 믿지 않게 되었고 가능한 한 서장에 넣어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네? "파브르 평전"(마르틴 아우어)이나 "베토벤의 생애"(로맹 롤랑)처럼 남들이 써준 평전이 아니어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 자서전은 자서전을 근거도 없이 소홀하게 생각한 나를 비웃으며 내가 이 책을 읽는 날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런 책을 읽은 적이 있긴 했지? 가령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의 자서전 "나라 없는 사람 A Man without a Country".

 

친구 앙겔로스와 함께 40일간 아토스 산의 수도원들을 방문한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그중에서도 아그나티우스 신부의 고백,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같은 건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것들도 다 그만큼 흥미로웠다.

그래서 당신은 마침내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 어떤 일을 하기로 했나? 당신이 살아 있다면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겠나?... 여러 가지가 궁금한데 마침 "영혼의 자서전 (하)"가 있으니까 보고 싶어 어쩔 수 없는 책 몇 권을 읽고 이어서 그 하권을 읽기로 했다.

예전에 교육부에서 일할 때는 '아프더라고 (어쩔 수 없어 죽게 되더라도) 이번 일만 끝나거든...' '나를 정말로 못살게 하려면(어쩔 수 없어 내가 자살할 수밖에 없다면) 이번 일을 해결해 놓고...' 생각하며 허덕였는데 지금은 '이 책들만, 이 책들만...' 하게 되었으니 내가 이렇게 시시해진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나는 어찌나 교만해졌던지 어느 날 프랑스어 사전의 모든 단어 옆에 같은 의미의 그리스어를 써넣으려는 엉뚱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업은 몇 달이 걸렸고, 온갖 다른 사전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마침내 프랑스어 사전을 다 번역하고 난 다음에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교장인 페르 로렝에게 가지고 갔다. 그는 학식이 높은 가톨릭 신부로 과묵했고, 회색 눈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큼직한 수염은 반쯤 하얗고 반쯤 노란 빛깔이었다. 그는 사전을 받아 뒤적거리더니 놀란 눈으로 축복이라도 내리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해놓은 일을 보니 넌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되겠구나.」 그가 말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갈 길을 찾았으니 넌 참 복이 많아. 학문 ─ 그것이 네가 갈 길이지. 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빈다.」

 

그런데 같은 학교 교감 페르 를리에브르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는 뚱뚱하고, 놀기를 좋아하고, 눈에는 장난기가 넘치고, 학생들과 함께 웃고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전을 받은 그는 아주 천천히 한 장씩 넘기며 보았다. 사전을 보면서 그는 점점 더 얼굴이 험악해졌다. 갑자기 그는 사전을 들어 내 얼굴에 던졌다.

「망할 녀석!」 그가 고함을 질렀다. 「넌 소년이냐, 아니면 늙은이냐? 왜 이런 노인의 일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지? 웃고 놀고 지나다니는 계집아이들을 창문으로 내다보는 대신, 망령 든 영감처럼 앉아서 사전을 번역하다니! 없어져 버려, 내 눈앞에서 없어져! 이러다간 넌 절대로 ─ 영원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말 거다! 넌 어깨가 축 늘어지고 안경을 쓴 초라한 선생이 되겠지. 네가 참된 크레타인이라면 거지 같은 사전을 태워 버리고 그 재를 나한테 가져와. 그렇게 한다면 내가 축복을 해주겠어. 잘 생각해 보고 행동해. 어서 가!」

 

교장과 교감 중, 누가 옳은가?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연전에 "현대문학"에 연재되는 황인숙 시인의 에세이에서 이 책의 이름을 보았다. 황인숙 시인은 이 동네 저 동네 고양이 밥 주고, 아는 사람들 만나고, 시 쓰고 하느라고 바빠서 더는 그 에세이를 연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달 그 시인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이러다가 연재가 중단되는 것 아닐까 조마조마했는데 지금도 나는 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