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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여자 : 부정한, 잊을 수 없는, 구원의

by 답설재 2024. 8. 3.

경향신문 2016.5.27 "'여성금지 구역' 그리스 아토스산"

 

 

 

우리들은 성스러운 땅에 발을 디뎠다. 선창가에 서서 기다리던 수사들은 손님 가운데 남자 옷을 입은 여자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찾으려고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하나씩 능숙한 눈으로 살펴보았다. 성산이 성모에게 봉헌된 이후로 천 년 동안 어떤 여자도 이곳에 발을 디디거나, 여자의 숨결이 공기를 더럽히거나, 심지어는 양이나 염소나, 닭이나, 고양이 따위 짐승의 암컷들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기에는 오직 남성의 숨결만 섞였다.(267)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친구 앙겔레스와 함께 배를 타고 아토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불경할까? 성모는 여자가 아니었나? 나는 성모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지조차 모른다.

그러므로 "여자의 숨결이 공기를 더럽히거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아가피오스 신부는 자신이 그려서 맞은편 벽에 걸어 놓은 그림을 가리키며 우리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는 화가들 가운데 가장 젊었으며, 입술은 빨갛고 검은 수염에서는 윤기가 흘렀다.

「위대한 수도자 아르세니오스예요.」 자기 작품에 도취되어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여자는 그의 앞에 꿇어 엎드리기 위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찾아온 로마의 아름다운 귀족이죠. 하지만 수도자가 손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이맛살을 찌푸리는 걸 보세요. (난 그가 화를 내며 그녀를 쫓아 버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가시오.〉 그가 말하죠. 〈그리고 나를 찾아와 만났다는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요. 그랬다가는 바다가 한길이 되고, 여자들이 내 고적한 삶으로 몰려들어 올 테니까요.〉〈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신부님.〉 여자가 애원합니다. 〈여인이여.〉 수도자가 대답하죠. 〈나로 하여금 당신을 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겠소.〉」

화가는 얼굴을 돌려 교활한 눈으로 우리들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나로 하여금 당신을 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겠소.〉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수사가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우리들은 침묵을 지켰다.

「수도자가 여인의 아름다움에 자극을 받았으므로, 그녀를 잊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뜻이었겠죠.」 수사가 설명했다.

「그래서 수도자는 여자를 잊었나요?」 수사에게 눈을 찡긋하며 친구가 물었다.

「그런 일이 어찌 잊혀지겠어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늙은 하바꾹의 칼날 같은 눈초리로 입술을 깨물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공연히 그런 얘기를 했음을 후회하는 모양이었다.(290~291)

 

이오사파이온의 수사 화가 열 명 중 한 명인 아가피오스 신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의 친구 앙겔레스에게 우리의 영원한 숙제를 가르쳐준 것일까? 글쎄, 나는 알 수가 없다. 정말 알 수가 없다.

"나로 하여금 당신을 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겠소."

"나로 하여금 당신을 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겠소."......

"그런 일이 어찌 잊혀지겠어요?"

"그런 일이 어찌 잊혀지겠어요?"......

 

 

이번에는 디오니시우 수도원에서 파계 수도사 아그니티우스 신부를 만난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그는 시중드는 여인에게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난 다른 천국은 원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 나는 21년 동안 수도원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으며, 웃음소리도 못 들었고, 여자는 구경도 못 했어요. (...)

사유지 입구에서 어떤 여자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였어요. 순간적으로 ─ 하느님의 용서를 빕니다만 ─ 난 그녀를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숙여 경배하려고 했어요. 정말이지 나는 20년 동안 여자를 보지 못해서 머리가 어지러웠으니까요. (...)

30년 동안 나는 그녀의 저고리 단추를 풀었고, 거기에는 끝이 없어서 늘 단추가 하나 더 남았죠!

나는 그녀를 보내 주지 않고 새벽까지 붙잡아 두었어요. 그 기쁨, 정말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막힌 부활이었죠! (...)

오, 평생 비인간적이었고 기쁨을 몰랐던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나는 신이 어느 정도 선하고, 어느 만큼 인간을 사랑하며, 얼마나 인간을 불쌍히 여겼기에 여자를 창조하고, 우리들을 가장 확실하고 가까운 길을 따라 천국으로 이끌어 가게끔 여자에게 우아함을 부여했음을 깨달았어요. 여인은 기도나 단식이나 그리고 ─ 용서를 빕니다. 주님 ─ 은덕보다도 더 강해요. (...)

한 여인이 나에게 확신을 주었어요. ─ 다시 말하지만, 기도나 단식이 아닌 여자가요. 주님을 내 방으로 데려온 사람은 여인이었어요!

30년인가 40년 전의 그날 밤 이후로 나는 항상 죄도 신을 섬기는 데 필요한 방법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308~317)

 

아그니티우스 신부는 수도를 하나마나한 것이었을까? 그의 죄는 씻을 수 없는 것이었을까? 그의 성모 마리아는 허깨비, 악마였을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 필요나 있을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영혼의 자서전"에서 여자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찾아보았다.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