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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정세구 《탐구수업》 & 주입식 교육에 대한 나의 투쟁

by 답설재 2024. 7. 10.

정세구 《탐구수업》 배영사 1977

 

 

 

세로쓰기로 인쇄된 책(1977)
가로쓰기로 인쇄된 책(1986)

 

 

 

 

세상에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읽은 걸 또 읽고 또 읽어서 마침내 외워야 한다는 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이기 싫고 지극히 싫증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엔들 대학에 들어갈 수가 있었겠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친구의 권유로 당시엔 2년 제인 교육대학이라는 데를 들어가게 되었다. '가르치는 걸 배우는 학교? 그렇다면 뭘 좀 배울 수 있으려나?'

 

그런데 웬걸, 그중에서도 과학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이가 완전 ○○○였다. 멀쩡한 교재를 두고 첫 시간부터 받아쓰기를 시키면서 이걸 암기해서 시험지에 써야 한다고 깨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당장 볼펜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교수라고?'

나는 다른 교수들로부터는 술도 얻어마시고 함께 영화도 보러 가고 입씨름도 하고 온갖 일들을 겪었지만 그런 이와는 아예 사적인 대화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F학점이어야 할 나에게 아무 말도 없이 C학점을 주었다.

1960년대였으니 주입식 교육의 폐단이 오죽했으랴! 착각인가?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가?

 

어영부영 세월을 보낸 나는 엉겁결에 교사가 되었다. 무슨 수가 나겠지 싶었는데 수는 무슨 수, 아이들은 여지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선생님" "선생님" 했고 교사들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의 교장선생님은 웬일로 그러시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유독 나에게는 따스하고 경이로운 눈길을 보냈다.

 

그러기를 약 20년, 그 기간에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야간에는 독학으로 교육학을 전공한 셈이었다. '교육'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은 눈에 띄는대로 모조리 구입했다.

그렇게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내 아이들은 자그마한 네모가 이렇게 세 개 제시된 시험문제 같으면 깊이 생각할 것 없이 '의식주' 석자를 하나씩 써넣으면 될 것인데도 굳이 아주 작은 글씨로 "선생님" "교과서" "어머니" 세 단어를 힘들여 써넣고 나서 "아버지"를 쓸 칸이 없어서 난처하다고 불평했다.

선배교사들은 단 5분도 걸리지 않고 아이들이 "의식주!" "의식주!" 외치도록 했고, 시험문제에는 해마다(어김없이!) 자그마한 네모가   □ 세 개씩 제시되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식대로 가르쳤다.

 

저 자그마한 책 "탐구수업"도 그렇게 구입한 책이었다. 그 아래의 "사회과교육의 과제"와 같은 표지였는데 자꾸 만지니까 표지가 상했고, 그래서 아예 벗겨내 버렸다.

지식을 주입할 것이 아니라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탐색을 거쳐 증거를 제시하게 하는 수업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 탐구수업(탐구학습)은 한국교육개발원(KEDI) 사회과교육연구실로부터 나온 이론이었고, 나는 거기에 완전히 몰입한 교사였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에는 사철이 있다는 걸 가르치는데도 탐구가 필요할까? 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봄·여름·가을·겨울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평가하고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쳐 가르쳤으니... '굳이 그걸 뭐 하려고?' 생각하면서   □ 네 개의 네모 안에 봄 ·여름·가을·겨울을 써넣는 훈련을 한 아이들에 비해 내가 가르친 아이들의 성적은 말할 것도 없이 훨씬 저조했다.

탐구수업은 주입식에 비해 '주입식 문제'를 푸는 데는 틀림없이 불리한 수업이었다.

 

나중에 교육부 편수관으로 근무하면서 저 책을 쓴 정세구 교수와 한국교육개발원의 그 후임 한면희 교수 등을 만나 회의도 하고 친교도 맺고 하면서 늘 그분들을 존경하고 있었다. 한국의 교육이 성공하려면 이런 학자들의 이론을 잘 받아들여 하루빨리 개혁,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화여대 대학원장을 지낸 강우철 교수가 정년퇴임을 한 후에는 그분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사회과 인사들이 식사를 함께하는 모임도 있었는데 정세구 교수는 그때 이미 서울대학교에서 윤리교육을 강의하고 있었고, 나는 마음속으로만 '사회과에서는 저분을 놓쳤구나!' 하고 애석해했다.

 

정세구 교수는 강우철 교수의 제자였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는 탐구수업을 연구해서 B.G. Massialas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으니까 사회과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학자였지만 몇 번 만나면서 '저런 신사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는 강우철 교수나 다른 학자들이 농담을 하면 늘 아름다운 미소를 짓기만 했다.

인품이 그러하므로 그는 지금 어디에선가 후학들의 섬김을 받으며 여생을 잘 보내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면, 탐구는 사실과 가치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사실과 가치의 기초가 되는 가정(假定)에 비추어 평가하고 어떤 평가기준에 입각하여 이를 입증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은 교육의 실용주의적·과학적 전통에 뿌리를 둔 것으로, 결국 어떤 아이디어를 지지(支持)하는 기초에 비추어 그 아이디어를 판단·평가하고 그로부터 입증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라는 존 듀이의 반성적 사고(reflective thinking)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탐구수업이고 뭐고 내게는 다 사라져 간 그리운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