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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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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아파트 앞을 내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본 아침에 나는 직장에 다닐 때의 아침을 생각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아침. 어제와 같으면 내겐 좋은 아침이다. 모든 것은 흘러가서 어제와 같을 리 없지만 그렇게 창문을 내다보는 아침에 나는 일쑤 어제 아침과 같은 아침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좋은 아침이라는 단순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좋은 아침'이던 그 아침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게 아쉽다. 막막하다. 2023. 3. 29.
장정일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2018(1987) 2019년 12월 26일 성탄절 이튿날 동네 서점에서 이 시집을 샀다. 1987년 3월 30일, 시인이 스물다섯 살 때 초판을 냈으니까 나는 33년 만에 마침내 이 시집을 산 것이다. 나는 시, 소설, 희곡, 수필처럼 버젓한 이름을 가진 글이 아닌 잡문이나 쓰며 지냈지만 33년 만에, 그러니까 내가 죽어서 일체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날 단 한 권이라도 내 책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은 내게는 중차대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식 키친 재래식 부엌을 신식 키친으로 바꾸자 싱크대를 달고 가스렌지 설치하니 너무나 편해 재래식 부엌을 신식 키친으로 바꾸자 부엌까지 끌어온 수도꼭지 삑삑 틀어 과일 씻어놓고 가스렌지 탁탁 켜 계란 구으니 .. 2023. 3. 28.
온갖 봄 온갖 봄이 한꺼번에 왔네! 어디든 다 이 봄이 와 있으면 더 좋겠네~~~ 2023. 3. 27.
얀 마델(소설) 《파이 이야기》 얀 마델(소설) 《파이 이야기》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2015 49쇄(2004) 이 책이 재미있더라는 어느 작가의 글을 본 건 오래전이었고 알라딘 강남점에서 중고본을 구입해 놓았는데 '내가 차지할 수 있는 파이(pie)는 어느 정도인지 속상해하는 얘기일까?' 추정해 보면서 또 망설이다가 지난겨울 팔을 다쳐 숨 쉬고 먹고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 '마침내' 읽었는데, 아이고~ 이런 바보! 읽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드물지 싶다. 나는 언제 또 이만큼 재미있는 책을 만나게 될까. 인도 소년 피신 몰리토 파텔의 애칭이 '파이'(그러니까 애플파이라고 할 때의 그 pie가 아니라 pi)다. 호기심 충만하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나는 힌두교도다. 붉은 쿰쿰 가루가 담긴 조각한 .. 2023. 3. 26.
봄은 어김없이 오네 온갖 사정을 막론하고 봄은 오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봄은 오고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달라도 봄은 오네 2023. 3. 24.
노인의 시간 새벽에 쓸데없이 일찍 잠이 깨어 오랫동안 뒤척였다. 그 시간이 꽤 오래 흘러 마침내 일어날 수 있었다(잠시, 왜 눈을 떴느냐는, 늙었으면 죽어야지 왜 살아 있느냐는 구박을 받더라는 씁쓸한 우스개가 생각났다). 어제저녁에는 고요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는데 괜히 '적막하구나...' '적막하구나...' 하며 두어 시간이나 헛된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잠들 수 있었다. 오늘은 또 그렇게 해서 일어난 새벽부터 이 저녁까지 뭘 했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또 저녁이 되었고 두어 시간 후에는 구처 없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이 저녁에도 책을 읽으면 좋을 텐데 나는 적막하다고, 한탄할 일도 아닌 걸 가지고 한탄처럼 생각하며 어정대고 있다. TV만 켜놓지 않는다면 나의 세상은 사실은 늘 이렇게 적막할 수밖에 .. 2023. 3. 23.
버려진 책장 : 먼지 대신 책 버리기 적어도 서너 곳일 이 아파트 폐기물 처리장에는 걸핏하면 멀쩡한 책장이 나와 있다. 물론 다른 가구도 나온다. '저렇게 나와 있으면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AI 시대가 되어 책장 같은 건 구식 가구가 된 걸까?' '내겐 저걸 들여놓을 만한 공간이 없지?'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책을 모으고 틈틈이 분류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하던 시기는 지나가버렸다. 그 시절엔 그렇게 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위나 돈 따위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가치였다. 그런 책이고 책장이었다. 그 책, 그 책장들이 바로 나라고 해주면 그보다 고마울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이젠 그렇진 않다. 뭐가 변했나? 아니다. 세월이 갔을 뿐이다. 세월이 간 것이어서 그런 흐름에 무슨 관점이 필요할 것도.. 2023. 3. 22.
여성의 몸 보기 : 이서수(중편소설) 《몸과 우리들》 이서수 《몸과 우리들》 현대문학 2023년 3월호 ※ 일부 발췌 여자도 남자도 아닌 상태로 당신과 자는 기분. 잠시 그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신체 기관들 가운데 제가 이름 붙인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는 권한을 박탈당한 채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지요.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멋대로 이름 짓기 놀이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저의 입술은 캐러멜입니다. 제 가슴은 솜사탕입니다. 저의 질은 와플입니다. 어떻습니까. 디저트로 이름 붙인 신체 기관이 먹음직스럽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상당히 퇴행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먹다니요. 신체 기관은 먹고 먹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 다시 이름을 붙여봅시다. 저의 입술은 지평.. 2023. 3. 21.
집에 대한 최욱(건축전문가)의 생각 1. 우리는 바다다.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했고 몸속의 농도도 바다와 비율이 같다.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면 우리 눈높이가 바다의 높이다. 앉으면 내려오고 서면 바다는 올라온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찍은 바다 영상을 보면(특히 영화 「부초」의 도입부) 무릎 높이에서 바다가 걸린다. 촬영기사가 엎드려서 찍었기 때문이다. 어떤 바다의 풍경을 가진 창을 원하는가? 창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바다가 작게 보여 하늘이 보이는 창이 된다. 창은 바다의 높이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비례 상자이다. 로스코 그림의 틀과 같다. 2. 인간은 햇볕에 반응하는 해바라기다. 동해 바다가 서해와 남해 바다와 다른 점은? 낮에 바다를 보면 남쪽 바다는 햇볕 때문에 반짝이는 빛인 반면 동해 바다는 빛을 반사하는 색이다. 바라보는 사람의 눈과.. 2023. 3. 20.
소설 《어머니의 연인》에 등장한 음악들 「모차르트 교향곡 G단조」(7) 「돈 조반니」(8) 「천지창조」(8) 죄르지 리게티 (8) 콘라트 베크 (8) 브루노 발터 (9) 오토 클렘퍼러 (9) 브람스 (10) 베토벤 (10) 브루크너 (10) 리하르트 바그너 (10)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0) 제수알도 (11)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12)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13) 「라 토스카」(15) 카루소 「여자의 마음」(23)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칸타타」(24) 벨러 버르토크 「조곡 4번」(29)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피콜로와 현을 위한 협주곡」(29) (지방 작곡가) 「프랑수아 리샤르의 그대 앞에 흐르는 시내 주제에 의한 다섯 개 변주곡」(29) 크레네크 (37) 부조니 (37) 스트라빈스키 「제2조곡」(37) 「랩소디 인 블루」(.. 2023. 3. 19.
리베카 솔닛(에세이)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김현우 옮김, 반비 2022(2016) 부모가 알츠하이머 혹은 치매에 걸렸을 때 함께, 그러니까 24시간 함께 생활해보지 않았으면 그 질환 혹은 환자에 대해, 환자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주제넘다. 이건 확실하다. 나는 그렇게 주장한다. 또 그 환자를 마음 깊이 사랑했다는 건 입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있어도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의심스럽다고 단정한다. 이 책은 그런 어머니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리베카 솔닛의 어머니는 평생 딸을 못마땅해하고, 시기하고, 불평했다. 리베카는 그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죽은 후 어머니의 삶을 추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2023. 3. 18.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그렇게 묻는 건 사치겠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까지 와서 아직도 나는 이러고 있네? 2023.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