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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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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 《건축의 일곱 등불》 존 러스킨 《건축의 일곱 등불》 The Seven Lamps of Architecture 현미정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2 건축이라는 (전문) 분야를 '일반인'이 미학적으로 바라본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일반인'이 아니었고, 건축에 대해 당시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을 전문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생의 등불 The Lamp of Sacrifice 진실의 등불 The Lamp of Truth 힘의 등불 The Lamp of Power 아름다움의 등불 The Lamp of Beauty 생명의 등불 The Lamp of Life 기억의 등불 The Lamp of Memory 복종의 등불 The Lamp of Obedience 철저한 윤리관, 기독교적 윤리관에 바.. 2024. 1. 22.
한강호텔, 옛 생각 병원에 갈 때는 올림픽도로를 타고, 병원에서 올 때는 강변북로를 탄다. 비교적 길이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돌아올 때의 강변북로는 고속도로와 거의 같다. 강변북로를 오갈 때는 꼭 한강호텔과 워커힐을 찾아본다. 워커힐은 유명했던 호텔이고 한강호텔은 예전에 고 강우철 교수, 김용만 편수관 등 여러 사람과 사회과 교과서 편찬을 위한 회의 장소로 가장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병원에서 돌아올 때는 한강호텔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놓쳤나? 워커힐은 보였는데...' 기이한 느낌이 있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아, 이런! 그 호텔이 사라지고 그곳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뉴스가 보였다. 평당 1억은 되는 아파트일까? 그러고 보면 그때도 그 호텔은 좀 한산한 편이어서 작업하기에는 최.. 2024. 1. 21.
글을 쓴다는 것 : 멋있는 유발 하라리 과학은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유기적 생명의 시대를 지적설계에 의해 빚어진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대체하는 중이다. 특히 오늘날의 과학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재설계할 수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역사 과정 동안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존재했지만 인간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신라시대나 고대 이집트 시대 선조들과 여전히 동일한 몸과 마음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사회와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도 유전공학, 나노 기술,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의해 완전히 바뀔 것이다. 몸과 마음은 21세기 경제의 주요한 생산물이 될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서문을 읽으며 아득한 느낌이었다. 독후감을 쓰기가 어려울 것 같은 절망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흥분하지.. 2024. 1. 20.
정끝별 「세상 가장 작은 뼈에게」 귓속 고막에서 달팽이관 사이 이소골을 이루는 추골, 침골, 등골이라는 가장 작은 뼈들이 가장 나중에까지 듣는다기에 들을 때 속귀의 뼈들이 움직인다기에 임종을 선고한 의사가 나가자 아직 따뜻한 엄마 겨드랑이에 손을 묻고 작은 목소리로 가장 작은 엄마의 뼈들을 어루만지며 엄마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 엄마가 돌아간 시간을 잘 기억할게 엄마도 잘 기억해서 그 시간에 꼭 찾아와야 해 슬픔이란 얼마나 신비로운지. 슬픔도 없다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보면 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들으면 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시를 읽고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읽으면 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현대문학』 2024년 1월호에서 이 시를 보았다(나민애, 시 격월평 「상실의 시대, .. 2024. 1. 19.
갑진년(甲辰年)은 언제부터죠? 아침부터 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자정까지로 예보되어 있습니다. '올겨울'은 눈이 참 흔하지만 동향 출신에게 전화를 했더니 거긴 비만 내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그렇습니다. 올겨울은 어느 겨울입니까? 올해는 '지금 지나고 있는 이 해'이고 올겨울은 '올해의 겨울'이라네요? 그야 그렇지요. 다른 사전을 봤더니 올해는 금년, 차년, 본년, 금년도, 올겨울은 금동(今冬)이고요. 애매하지 않습니까? 올해의 겨울? 2023년 겨울일까요, 2024년 겨울일까요? 아니면 2023년 겨울이기도 하고 2024년 겨울이기도 한 걸까요?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이죠? 그건 알겠는데, 갑진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요? 2024년 달력을 보면 1월 달력에도 분명히 갑진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갑.. 2024. 1. 17.
"저 좀 착하게 해주십시오" 2014년 5월 6일에 써놓은 글입니다. 운보 김기창의「청산도」이야기에 덧붙여져 있었는데 지금 보고, 서로 어울리질 않는 두 가지 이야기를 붙여 놓은 바보짓을 발견했습니다. 김기창 화백이 본다 해도 그렇고 「청산도」나 석가탄신일을 찾다가 보게 되는 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해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버릇 버리지 못했지만 나는 읽어줄 사람도 별로 없는 이 블로그에 작정하고 글을 쓰고 있고, 하나 쓴다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아서 일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입니다. '이게 인간인가?' 싶어서 너무나 오랜만에 집에서 가까운 절을 찾아 부처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절을 했는가 하면 '저 조금이라도 착한 마음 좀 갖도록 어떻게 해주십시오'.. 2024. 1. 17.
유종호 「한밤중의 소리」 한밤중의 소리 앞으로 아플 일만 남았니라 궂은 일 섭한 일 딱한 일 숨찬 일만 남았어도 견딜 만하니라 버틸 만하니라 가엾은 어멈아! 불쌍한 아범아! 현대문학 2024년 1월호에 연재되고 있는 유종호 에세이 「꿈에 대하여」에서 보았다. 저승에 간 부모와의 대화 중에는 당연히 그런 부탁도 있을 것이다. 견디고 버티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2024. 1. 16.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2)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유정화,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 존 러스킨의 견해(예) 존 러스킨의 강연은 95개 절(節)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그중 한 절이다 25. (...) 축어적 검토야말로 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세와 표현을 세세히 살피고 항상 저자의 입장에서 보며, 우리 개성을 지우고 저자의 입장이 되어 밀턴을 오독하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밀턴이 이렇게 생각했군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은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라는 것에 점차 무게를 두지 않게 될 겁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그다지 심각하게 중요하지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 주제에 대한 여러분.. 2024. 1. 15.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유정화,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 1 독서란 어떤 것인지, 존 러스킨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견해가 극명하다. 「참깨: 왕들의 보물」「백합: 여왕들의 화원」은 남성(왕)과 여성(여왕)을 대상으로 한 존 러스킨의 강연집이고 「독서에 관하여」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존 러스킨의 강연 내용을 보고 반박한 내용으로 두 가지 다 흥미로웠다. 러스킨은 독서가 인생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독서 관행, 책의 가치와 특징, 독서법, 교육의 목적과 의무, 여성 교육,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확고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책 자체의 내용, 단어의 정확한 의미 파악과 사용 등을 국민 교육의 입장에서 강조했다. 2.. 2024. 1. 14.
부산 국제시장에 앰프 사러가기 김위복(金位福) 교장선생님은 진짜 무서운 분이었다. 우리는 정말이지 끽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완전' 절절매며 지냈다. 지서 순경들도 우리처럼 쩔쩔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었다. 교장선생님은 교사 경력이 단 6개월이었고 교감도 거치지 않고 바로 교장이 되었다고 했다. 초임교사 시절에 6.25 전쟁이 일어났고, 인민군이 '삐라'(전단)를 만들려고 등사기 좀 빌려달라고 아무리 간청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일이 알려져 당장 교장 발령이 났고 이후로 계속 교장이었다는 것이다. 운동회가 끝날 무렵,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선배 교사들이 우르르 학교 앞 도로로 뛰어나가 줄행랑을 칠 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 달리느라고 숨을 헉헉거리며 왜 이러는지 물었고, 운동회가 엉망.. 2024. 1. 13.
요즘 누가 소설을 읽나요? 성준과 나의 소망은 킹크랩을 배가 터지도록 한번 먹어보는 것이었다. 물론 진짜 소원이랄 게 그것뿐이냐 하면 집도 갖고 싶고 차도 갖고 싶고, 아무튼 돈을 잔뜩 갖는 것이 궁극적인 소원이겠지만 우선은 킹크랩. 내 얼굴보다 큰 등딱지를 엎어놓고 스팀에 제대로 푹푹 쪄다가 집게다리부터 우적 뜯어서 한입에 와아아앙, 입속에서 게살이 사르르 녹아 없어질 테지. 게다가 킹크랩 딱지에 비며 먹는 밥은 또 어떻고. 먹어보지 않아 맛은 모르겠으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알이 그냥 봐도 한껏 고소하고 녹진하겠지. 세상에 그것보다 맛난 건 없을 거다, 아마도. 월간 『현대문학』1월호에서 단편소설「퀸크랩」(이유리)을 읽다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은 마음으로 소설가 생각을 했다. 소설가의 생활, 소설가의 낭만, 보람, 애환.. 2024. 1. 12.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어젯밤에는 시청으로부터 '의외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추위나 눈에 관한 문자는 정부부처들, 서울시청, 이곳 도청, 시청 등에서 중복해서 자주 왔지만 안개 주의 문자는 처음이었다. 저녁 9시부터 내일(그러니까 오늘) 아침까지 안개가 심해 가시거리가 짧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는 오늘 아침에 한 번 더 왔다. 우리 동네는 걸핏하면 맞은편 산 정상 부근에서 내려온 안개가 무슨 거대한 짐승 모양으로 움직이며 큰길을 가로질러 서서히 이웃동네를 잡아먹는 것처럼 옮겨가곤 한다. 그게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좀 미안하기도 했다. 안개 주의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이 시를 떠올렸다. 안개가 심하거나 말거나 이젠 밤거리에 나갈 일이 없어서일까? 오래전 D시에 있을 때는 안개가 자주 끼었고 그럴 때마다 볼.. 2024.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