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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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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과 《언더 더 독》

by 답설재 2024. 4. 3.

  황모과 《언더 더 독》

《현대문학》 2024년 3월호

 

 

 

 

 

 

 

돈이 많으면 곧 모든 일을 AI들에게 시키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겠지?

그런 세상에서도 더러 개(독)만도 못한 생활(언더 더 독)을 할 수도 있겠지?

돈으로 DNA를 편집해서, 그러니까 유전자를 조작(편집 혹은 시술)해서 머리가 최고로 좋게 하고, 온갖 험악한 바이러스를 다 물리치게 하고, 힘들여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근육이 울퉁불퉁한 인간이 되게 하고, 인물이 훤한 인간이 되게 하고 심지어 지성과 인품마저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겠지?

과학자들은 지금 그런 걸 연구하고 있겠지?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에 의하면 2050년경에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게 가능해진다고 했지? '죽지 않는 인간' '신인류' '신과 같은 인간'이 된다고...

그럼 그게 정말 '인간(호모 사피엔스)인가?'라는 물음에는 대답이 난처해지겠지? 사이보그가 되어버리니까. 

그럼 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돈 없는 사람이 겪어야 할 어려움이 지금보다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지?

과학자들은 일단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겠지?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겠지?

 

황모과란 작가는 그런 세상(편집인과 비 편집인의 세상)을 마음 시리게 보여주었다.

지금 제 발로 개 사육장에 들어간 비-편집인(DNA 편집을 하지 못한 인간)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수업 중에 졸거나 집중력이 나쁜 애들, 성적이 나쁜 데다가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애들은 거의 다 나처럼 비-편집아들이었다. 우리는 유전적으로 인품이 나쁜 걸까, 사회적으로 나빠진 것일까?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편집아의 유전적 특징이라고 불리는 칼귀와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 색 같은 것도 정말로 열등 인자 때문인지 그냥 소문인지 나로선 알 수도 없고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행한 일은 내가 칼귀이자 붉은 눈동자를 가졌다는 점이다. 우리 부모가 나를 성형수술을 시킬 돈도 없거니와, 액운이 잦아들길 기원하며 종교인에게 바칠 돈도 없는 통에 나의 불행은 아쉽게도 차선도 차악도 되지 못했다.

교사들도 우리 같은 비-편집아들이 거의 안중에 없었다. 한 반에 비-편집아들은 서너 명 정도였다. 수도 적었고 특별히 우대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편집아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애들처럼 되고 싶다는 욕구도 없었고 나는 왜 편집아로 태어나지 못했나, 하는 원망도 없었다. 부모를 졸라 늦게라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꿈도 꿔 본 적이 없을뿐더러, 후천적 노력을 통해 그 애들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는 망상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어린 내가 봐도 명백할 정도로 나는 열등했다. 그러자 아등바등하는 마음조차 일찌감치 고요해졌다. 그게 현명했다. 의무교육을 끝낸 뒤 비-편집아들은 대부분 폐인이 되어갔다. 일자리는 없었고 사회에 편입될 여타의 기회도 없었다. 애초 경제적 이유로 태아 유전자 편집 시술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 성년이 된 후 부모의 자산에 기댈 수 있는 애는 없었다.

 

 

그 비-편집인들(오늘날 아직은 DNA 조작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같은 인간들)은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인간 이하의 고생을 하고, 끝 모를 절망에 빠지고, 끝내는 편집인들의 통제와 술수에 휘말려 신체는 물론 뇌(정신과 마음)마저 맡겨버리게 된다.

 

나는 그런 세상은 싫다.

그런 세상에서라도 죽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면 저 비-편집인처럼 또 아등바등 적응하려고 시도하며 목숨을 이어가고 있겠지?

그 암울한 날들이 지금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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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과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 소설집 『밤의 얼굴들』, 중편소설 『클락워크 도깨비』『10초는 영원히』『노바디 인 더 미러』, 장편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서브플롯』『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등. 〈SF어워드〉〈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


- 『현대문학』 2024년 4월호에서 옮김.